외교-2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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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의 사진. 당연하게도 사진에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보고서: 외교-2020-03

요약: 예비 회원 "이영"에 관한 조사.

상세: 대개의 심령, 즉 예비 회원들은 사망 시각으로부터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인사부의 시스템이 치밀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무엇보다도 차사(差使)들의 눈은 언제나 날카로운 터이다. 그러나 저 밖에는 사망하고 나서 아주 긴 세월을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심령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닥쳐오면, 대부분 심령은 원귀 또는 악귀의 상태로 변질되고 만다. 고독의 깊이는 그 끝을 알 수 없으며, 그 구렁 사이에서 사람의 시야는 무릇 흔들리게 되어 있으니.

최근 이영이라고 자칭하는, 현재 모종의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예비 회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파악되었다. 작년의 사건으로 재단세계 오컬트 연합 양측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특파원들의 정보로 판단하건대 늦어도 조선 중기부터 심령 상태로 존재했다. 이에 더하여, 이영은 그간 존재가 인지되지 않았다는 점, 현재 파악이 불가능한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 무엇보다도 재단과 연합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 등의 다면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그의 행보는 우리 클럽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었으며, 이에 조사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실행 안건 후보:

제안 방안 안건 평가
예비 회원을 대하는 기존 프로세스를 준용. 부정적. 이영의 소속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이때, 그에게 섣불리 접촉하는 것은 클럽 자체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영의 행적을 추적, 그의 근거지를 파악하여 지속적인 감시 실시. 중립적. 이영에게 같은 심령 상태의 회원이 따라붙는 것은 실질적인 이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영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해당 방법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영에 관한 증언을 채록, 정리. 중립적. 가장 안전하고 용이한 방법. 그러나 실제와 다른 정보가 섞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채택 안건: 이영에 관한 증언과 행적을 동시에 추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졌다. 다만 최대한 클럽의 존재를 노출하지 않는 쪽으로 안건을 실행한다.

상세 실행 작전: 전반적인 작전은 증언 채록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실시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해당 단체와 이영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바, 최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지정한다. 다양한 외부 단체와 맞닿아 있는 특파원들과 심야클럽에 우호적인 변칙 집단들을 이용하여 이영의 내력을 조사하는 것이 주요한 활동이 될 것이다.

또한 소수의 회원을 파견하여 이영의 근거지를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그와 접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이영의 집, 혹은 근무처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부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어떤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가 자신의 상황에 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할 것이다.

첨부 자료: 이 문서에 첨부된 자료는 이영을 추적하면서 얻은 사진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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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이촌1동 주민센터. 이영이 자주 찾는다고 알려진 곳.

작전 변경점: 이영 본인을 추적하는 작전은 부분적으로 실패하였다. 앞서 수집했던 정보를 통해 이영이 해당 지역에 자주 출현하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으나, 정작 추적에 나설 때마다 이영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이것이 어떠한 신비적 힘이 개입된 현상임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영에게 우리 회원의 존재를 노출할 수도 있다는 우려 하에 추적 작전은 중단하는 것으로 총의가 모여졌다. 그에게 심야클럽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 대한 안전성을 판단하기 전까지, 해당 작전은 재개하지 않을 것이다.

사후 평가: 부분적 성공. 방랑자의 도서관 일원과 김서방 몇 명의 증언으로 이영과 그의 내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에 성공했다. 심야클럽에 적대적인 집단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으며, 가능하다면 그와 점진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거나 클럽에 가입시키는 방향으로 향후 안건을 상정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심야클럽과 회원들에게 아군이 되어준다면 클럽의 기본 이념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그가 평범한 회원들과 조금 다른 상황을 겪어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파악 중인 사안이지만, 인사부의 고유 시스템에 이영이 탐색되지 않았다는 점이나 그의 유구한 심령 생활 등은 이영의 정체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하물며 그 오랜 세월 간 기억을 잃은 채 홀로 서울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가. 더군다나 아무리 찾아봐도 이영이라는 심령이 세상을 배회했다는 기록은 드러나질 않았으니.

여러 심령의 사연을 모으다 보면 문득 얻어지는 증언이 있다. 육체에 심령이 갇혀, 모든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이러한 자들은 인사부의 시스템에도 거의 감지되질 않고, 주변에 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다고 한다. 아예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겪는 기간은 심령마다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수집된 증언을 들어보자면 아주 긴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상태로 약 10년을 존재했던 자가 내가 아는 최장의 경우였으니까. 그러나 만일 이영이 거진 수백 년에 달하는 시간을 그리 보냈던 것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게다.

그의 죽음에 어떤 일이 개입된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그가 자기 자신의 시신에 유폐되어 그 오랜 시간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추론의 영역이지만, 만일 그것을 참으로 본다면 그의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가. 기록의 부재, 탐색되지 않은 존재… 그리고 조선 출신이면서 현대인의 외양과 말씨를 썼다던 목격담까지.

바로 그러한 심령이기에 이영은 경계해야 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비록 작년 사건으로 그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다고는 하나, 실은 모르는 일이다. 심령은 같은 처지의 존재가 보더라도 그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다. 한의 대상이 다른 것으로 전이되는 경우도 허다하며, 정말 관련이 없는 어떤 것에 몰두하여 그것을 파멸시키는 일도 많다. 더군다나 그는 저도 모르는 새에 그 한이란 것이 수백 년이나 유예되어버리고 만 존재다. 만일 그에게 또 다른 강렬한 의지가 있어 이 땅에 머무르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의지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 자신을 집어삼키는 결과를 낳는다면…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이영은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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