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의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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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로 구성된 지하 구조물 내부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는 사이렌이 돌아감과 동시에 보안 실패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린다. 그 시설에 소속된 병사들은 즉각 전투 배치 태세로 이동해 자신들의 소총을 지급받았다. 안전장치를 풀고 노리쇠를 당기고 약실에 총알을 삽입 한 후, 기지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의 오른쪽 어깨에는 붉은색 바탕에 노란 별과, 낫, 그리고 망치가 새겨져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면 발포해라!"

소대장이 소리쳤다. 그의 뒤에서 UAZ가 엔진에 시동을 걸어 약간 묻히긴 했으나, 명령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다. 목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시베리아의 빌어먹을 비밀스러운 탄도탄 기지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다. 막사는 더러운데다가 거지같았고, 피복과 장비는 그닥 좋다고 하진 못했으며, 그리고 비밀이 너무 많았다. 그도 아프간에 한번 가 본적이 있었다. GRU라던지 KGB놈들을 간간히 본 적있었고, 그런 일들은 모두 끝이 좋지 못했다. 특히 스페츠나츠 GRU 놈들은 특히나 그랬다. 한때는, 작전 수행 도중에 어떤 미친 하사놈이 내 동지를 쏴죽인 적이 있었다. 우리 분대 인원 전체가 달려들어 그 놈을 반쯤 죽여놓긴 했으나, 여전히 하사의 눈에서는 이성에 의해 절제된 광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 기지에는 GRU 놈들이 심하게 많았다. 왜지? 이 탄도탄 기지가 그리 특별하기라도 한가?

일반 사병의 입장에선 그걸 알 수 없었다.

"맙소사, 저게 뭐야?"

위병소 옆에 엄폐하고 있던 드미트리가 고개를 들고 무언가 들여다 보고는 경악했다.

"쏴, 쏘라고! 저 개자식이 기지에 접근하는걸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 한다!"

권총을 든 장교가 소리쳤다. 우리라고 쏘고 싶지 않은 기분은 아니였다. 나는 총을 들고 가늠쇠와 가늠좌를 일직선상에 일치시켰다. 눈에는 푸른 형체의 사람같지 않은 것이 들어왔다. 어찌됬건 방아쇠는 당겨졌다. 약간 가벼운 반동이 어깨를 때렸다.

얼마 전에는 경계를 서다가 실수로 동물을 향해 쏜 적도 있었다. 사체는 엉망이였다. 난 그 효과를 똑같이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놈은 매우 빠른 속도로 위병소로 접근했다.그게 뭔지도 몰랐지만, 알 수 없는 공포심으로 인해 무작정 쏘아대며 탄창을 갈아서 뒤에 GRU 요원들이 접근하는걸 눈치채지 못했다. 부서가 어디였더라? 어쨌건 그들은 무거워보이는 기계뭉치 하나씩을 들고 전원을 켰다. 눈에는 탄환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어 보였다. 처음에는. 그 파란색 형체는 잠시 갈 길을 잃고서 갈지자로 걷기 시작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권총부터 대전차로켓까지, 모든 가용 화력을 퍼부었으나. 보기 드문 화염의 꽃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그 광자들은 내 신경 회로를 자극해 약한 감동마저 느끼게 했다. 그래, 난 멍때렸다. 하지만 이도 오래 가진 못했다.

기계 한대가 어이없이 연기를 내며 스파크를 뿌려댔다. 글쎄, 빌어먹을.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더라도 딱히 효과가 있을거 같진 않다. 놈이 대략 60~40m까지 접근함에 따라 옆에 있던 드미트리와 블라디미르, 셀 수 없이 많은 장교와 부사관, 사병이 머리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철처럼 단단해 보였던 GRU 요원놈들도 예외는 아니였다. 대여섯명은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쥐어뜯고 무릎꿇었다. 아니면 실신해서 자리에서 쓰러지고는 발작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코에서는 콧물같은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니였다. 나는 기지 내부로 달려갔다. 그 난장판에서도 생존하고자 하는 욕구는 강했던건가?

정말 된 공산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노동자라면 자본주의자들의 함정인 종교 따위는 믿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하느님이라도 부르고 싶었다.

간신히 막차에 타서 기지 내부로 들어가자 가지각색의 금속음과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두꺼운 기지의 문이 닫혔다. 내가 들어가자 내부 보안대 인원중 한명이 벙쪄있는 나를 끌고 엄폐물 뒤로 거칠게 내던졌다. 고통따윈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까 GRU 놈들이 들고 있던것과 같은 기계장치를 들려줬다. 바로 옆에 있던 라디오에서는 항상 술마신듯한 옐친의 강렬한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그게 참 좋았다. 이 빌어먹을 공간에서 유일하게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다시 새겨주는 도구였다. 그리고 암흑 속에서 빛을 향한 유일한 창구이기도 했고.

난 기계를 집어들고 콘크리트 바리케이트 뒤로 숨어들었다. 눈을 부라리고 문을 주시했지만, 영원과도 같은 몇분 동안은 이상이 없었다. 그깟 유령이 전자동식으로 작동하는 문을 어떻게 뚫고 오겠는가? 순간적으론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외부 인원이 들어오는 줄로 알고 착각했다. 보통 괴물이 문을 뚫고 들어온다면 무지막지한 힘으로 문을 뜯어내거나 조각내버리고 들어오는걸 상상한다. 문은 자연스레 열렸다. 그리고 뒤에는 빌어먹을 유령이 있었다. 놈은 여유롭게 다가왔다. 아까 입구에서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총성, 화염, 병신같은 기계, 그리고 지옥도.

날 보고 겁쟁이라 해도 좋다. 두번이나 도망쳤는데, 그런 말을 듣지 않으면 그게 군인일까?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주면 좋겠다. 그 정도로 극한 상황이라면 그 누구든 다 집어 치우고 뒤를 향해 달렸을 것이다. 내 코에서도 투명한 액체가 흘렀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의식은 불분명해졌다. 다리는 뒤틀린 강철처럼 점점 변형됬다. 무서웠다. 나는 버려진 탕비실에 숨었다. 신막사가 생기고 난 이후로는 버려졌는지 그 탕비실은 반쯤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거미집이 온 곳에 널려 있었고, 먼지는 방 안을 장식해줬다. 나는 문을 잠구고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잠시동안은 평온한 수유를 즐겼다. 흐르는 콧물과 코피를 해결해준건 아니지만 마음에는 위안이 됬다. 밖에서는 계속해서 산발적인 총성과 비명이 들렸다. 환상인가 아닌가는 중하지 않다.

의문의 발소리가 문 건너에서 들렸다. 생각 하지 못할 만큼 차분한 그 발소리는 탕비실의 문 앞에서 멈췄다. 친절한 노크 네번이 들렸다. 나는 오래된 손님을 맞이했다. 잊을 수 없는 증오에 찬 하사관의 눈동자.

"체르니코프, 이 개자식아."

그리고 유령은 사라졌다. 난 몸이 이끄는 대로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었다. 더 이상 투명 콧물이니, 피눈물이니 따위는 없었다. 양철 관짝 속에서 죽고 싶진 않다. 시베리아의 백설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미사일의 섬광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릴 적에 방 속에서 보던 촛불과 이에 이끌려 불타는 불나방을 보고 있다. 그래, 종말은 이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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