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마. 나는 SCP 재단의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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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토리움. 면회다."

밝은 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딱딱한 방에서 나는 눈을 뜬다. 평소와 다른 기상방식에 적응하기도 전에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경비 요원이 복도를 지나가는 소리에 나는 곧 정신을 차리며 되뇌었다.

"잊지 마. 나는 SCP 재단의 박사다."

면회할 때의 주의사항은,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외부에 유출시켜서는 안 된다. 설령 가족이라고 해도 재단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가 여기에 취직될 때부터 누누이 들어온 사실이다. 그리고 이 협박을 무시하면 어떻게 될지는 자명한 일이다. 나는 그 어리석은 선택을 한 자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나는 가족의 얼굴을 보고서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면회 시간은 너무 오래 끌지만 않으면 된다. 때가 되면 알려주지."

경비 인원의 충고를 듣고 다과가 일부 차려진 면회실에 들어가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면회를 신청한 아내임이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 같았지만, 다행히 아내는 눈치 채지 못한 기색이다. 하지만 내 속은 연신 떨림이 멎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야 온 걸까봐? 당신 일하는 얼굴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내가 침을 너무 삼키고 있는 걸까? 눈은 45도 각도로 위를 쳐다보는 거던가? 팔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되지?

무의식적인 행동을 전부 의식적으로 제어하려다보니 혼란이 찾아온다. 난 깊은 숨 한번으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이러면 안 되지. 나는 SCP 재단의 박사잖아?

"하, 이렇게 찾아와준 건 고맙지만 아직 여러 가지로 바빠서 말이야."

"한숨을 쉴 정도야? 중요한 일할 때 찾아온 거면 다시 들어가…"

"아냐! 괘, 괜찮아!"

내가 무슨 생각으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말렸는지는 모른다. 나도 모르게 억압된 무의식이 튀어나와 내 몸을 일순간 지배라도 한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그런 것이었다.

"그래? 그럼 조금 더 있다가야겠네."

"아직 여유는 있으니까."

막상 앉혀놓고 보니 뭔가 할 말이 있었던 듯이 술술 입이 열렸다. 그동안 있었던 일과 여러 가지 추억을 서로 털어놓으며 금세 시간을 보냈다.

"이만 들어가 봐야겠네."

"응. 다음 휴가는 언제 나와?"

"이번 실험 끝나고 휴가 낼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해, 집에 제대로 가장이 있어야하는데…"

아내는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선 말했다.

"나라를 위한 일이잖아. 난 당신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 자식들만큼은 잘 키워낼 자신이 있어."

활짝 웃으며 잡은 얼굴을 가까이한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어?"

나는 아내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그럼, 이만 가볼게."

고민할 사이도 없이 아내는 차를 타고 멀어져갔다. 그럼에도 나는 멍한 표정으로 아내가 했던 말을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며 위화감의 원인을 찾았다.

"끝났나? 멍하니 서있지 말고 슬슬 들어…"

경비 인원이 어깨를 친다. 그 순간 무언가 빛이 번쩍하며 내 눈을 뒤덮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휴가? 자식들?"

내가 재단에 온지 석 달. 그동안 먹을 것도 못 먹고 마실 것도 못 마신 채 실험에만 매달려있던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 기간에는, 휴가 따위를 나올 틈은 없었다. 그런데 왜 아내는 마치 '이전 휴가'가 있었던 말투로 '다음 휴가'를 언급하는 걸까? 왜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을 복수형으로 지칭하는 것일까? 정신이 혼란스럽다. 알아선 안 될 일을 알아버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이봐!"

뒤에서 경비 인원이 소리치는 것을 무시하고 기지 안으로 향한다. 내 목에 걸린 카드키를 수없이 긁고 들어간다. 어디서 솟아오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끝없이 체력이 솟아올라 계속해서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복도에 달린 내선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

"바니토리움이다. 내 가족의 병원 진료 기록과 내 휴가 일정표, 지금 당장!"

- …네?

이 고문관 새끼가!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면서 당장에 전화기를 부셔버릴 것 같은 기분을 가라앉힌다. 곧 수화기 너머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정보부의 큐빅 박사입니다. 연구과의 바니토리움 박사님 맞으십니까?

"맞다. 지금 당장 찾아갈 테니까 자료 준비해놓고 기다리도록."

- 아니 잠…!

뭐라고 대꾸하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고 정보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동안 머릿속을 차갑게 식혀놓고, 지금 생각하는 가정이 들어맞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무례한 박사군. 쯧!"

짬으로 따지자면 3년차가 넘어가는 큐빅 박사는 들어온 지 1년도 안된 신입 박사가 반말을 하면서 전화를 끊는 무례함에 혀를 찼다. 그런 큐빅 박사를 보면서 옆에 있던 연구원이 물었다.

"어떡할까요?"

"준비해놔. '조작' 없이."

"알겠습니다."


내가 정보부에 도착했을 땐 어리바리하게 생긴 연구원 한명이 서류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 서류를 빼앗듯이 받아내고는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내가 이곳에 온 시기는 3개월 전.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밖으로 나간적은 없다. 그런데 서류상에선 믿지 못할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틀 전에 검사받은 아내의 진료 기록에는 임신 8주째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내 휴가 일정표에는 떡하니 휴가 날짜가 찍혀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어째서인지 2개월 전이다.

"██년 ██월 ██일자 CCTV기록… 볼 수 있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연구원은 컴퓨터를 잡고선 무언가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억겁의 시간과도 같은 느낌이다.

"여기 있습니다."

일부러 찾아서 맞춰놓은 것일까. 연구원이 내민 CCTV 영상 기록에는 재단기지 정문을 나가는 한 사람이 찍혀있었다.

"이걸 찾으신 거죠?"

역시 이 새끼는 고문관이다. 난 확대시킨 CCTV 영상을 보았다. 그곳에 찍힌 얼굴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행동거지와 모습을 보며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한 나는 머릿속에서 몇 가지 가정을 지웠다. 그러자 제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니토리움 박사."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은 데바노스 박사이다. 아무리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나라도 이 박사에게만큼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예."

"따라오게."

하오체를 쓰며 명령하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데바노스 박사가 가지는 직속 상사라는 감투는 그런 욕설을 밖으로 내뱉을 수 없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한다.

"알겠습니다."

데바노스 박사를 따라가면서 내가 해온 막장 짓이 그대로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복잡한 머릿속을 지우며 다시금 데바노스 박사를 따라갔다. 나는 SCP 재단의 박사다. 기밀을 누설한 것도 아니고, 약간의 소동을 일으켰을 뿐이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는가? 물론 죽는 것 이상의 고통을 주는 방법이 이곳에는 무궁무진하겠지만…

"들어가게."

눈앞에 들어오는 푯말에는 '데바노스'라는 암호명이 적혀있었다. 데바노스 박사의 사무실이다.

"기록하게나."

"네?"

순간 나에게 명령하는 소리로 인식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조건반사적인 행동을 데바노스 박사는 신경 쓰지 않고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는 데바노스 박사의 조수가 있었다.

조수는 책상에서 서류를 꺼내들며 기록했다.

"상태, 양호. 행동반경, 변화 없음. 특징, 이종변수에도 같은 반응을 보임."

"실례합니다. 무엇을 기록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조심스레 물었지만 조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데바노스 박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 SCP는 더 이상 실험할 가치가 없는 것 같군."

"뭣…!?"

파직! 대뇌의 전두엽까지 퍼지는 무언가의 강렬한 느낌이 내 의식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데바노스 박사의 목소리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사라진다.

"하나만 잊지 말게나. 자넨 SCP 재단의 박사일세."


여긴 어딘가. 나는 또 누군가.

눈을 뜨자 밝은 빛이 눈을 찔러온다. 나는 손으로 빛을 막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동공이 충분히 수축되자 이제서야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나는… 바니토리움… 여긴… 재단…"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내 모습은 마치 지체장애인의 그것을 보는 것과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복잡한 기억이 밀려들어왔다.

"그래… 나는…"

내 기억에 없는 외출을 통해 아이가 생긴 것, 그리고 정보부에서 그걸 보고 데바노스 박사에게 불려가서…

"으아악!"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고통이 커질수록 기억도 선명해진다.

"나는, 나는!"

꾸역꾸역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두개골이 깨질 듯한 아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 틈에서 다시금 소리가 들려온다.

- 안녕하신가.

기분 나쁜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상상하던 데바노스 박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넌 누구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말했다.

"바니토리움… 나는 바니토리움이야. SCP 재단의 박사고, 기억소거 실험…"

그 일을 떠올리자 다시금 몸이 움찔한다. 그때 느낀 충격의 기억이 단단히 머릿속에 각인되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린 것이다.

"기억소거 실험 대상자…"

- 냉정한 판단이야.

그리고 스피커 아래에 있던 작은 문이 열렸다.

"잘 있었어, 바니토리움? 내 이름은…"

내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사람과 지금 처한 나의 상황에 대해 끝없는 공포를 느낀다.

"바니토리움이야. 너랑 이름이 같네?"

눈앞에는 나와 같은 얼굴의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플갱어Doppelgänger를 보는 사람은 죽는다는 독일 전설이 있다. 전승에 따라서는 자아를 잃고 미쳐버린다는 것도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미친 게 맞는 것 같다.

자기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에도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또한 실험체에 동정하지도 않았다. 저것은 D-9584이자 바니토리움 박사로 남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은…

"그래, 이제 양쪽에 기억 소거를 실시하면 되겠군."

"부탁드리겠습니다."

데바노스 박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바노스 박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용히 서류를 꺼내들었다. 조수가 기록해놓은 실험 내용을 읽어보는 것이다.

강██(바니토리움)의 재단사임 완료 및 실험 보고서

책임자: 데바노스 박사

초록: 이번 실험은 바니토리움 박사의 동의를 얻어 진행되었다. 실험 VTM-1은 바니토리움 박사의 기억을 부분 소거하여 기억이 소거되기 이전과 이후의 행동의 차이에 대한 실험이다. 실험 VTM-2는 바니토리움 박사를 SCP-███-KO로 복제하여 양쪽을 대면시킨 후 두 피험체에 대한 반응을 기록한다. 이는 SCP-███-KO의 격리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예상 시뮬레이션을 겸한다. 마지막으로, 피험체 VTM-1은 재단에 관한 모든 기억을 소거하여 일반인으로 복귀시키고, 피험체 VTM-2는 재단 이외의 기억을 소거하여 기존 바니토리움 박사가 하던 업무를 승계한다.

가설: 완전한 변수 배제를 이루어낼 수 없으므로 피험체의 행동은 매우 달라질 것으로 예상…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데바노스 박사의 시선이 서류에서 문으로 향한다.

"데바노스 박사님, 계십니까?"

"있네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니토리움 박사다. 데바노스 박사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서류를 자연스럽게 뒤집어놓으며 바니토리움 박사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기지에 편성된 예산에 대한 건입니다만…"

"추가로 지원요청을 하지."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나가는 바니토리움 박사를 보며 데바노스 박사의 시선은 엎어진 서류로 향한다.

"잊지 말게. 자네는 SCP 재단의 박사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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