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리학부 오리엔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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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 혹시 잘 들리니?

아니지. 지금 이 관념이 잘 생각나니? 갑자기 머릿속에 생각이 막 주입 당하니까 좀 놀랐을 거야. 뭐 별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그냥 단순한 텔레파시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해. 미안, 신입에게 바로 다이렉트로 텔레파시를 꽂는 거는 좀 그런 거 같네.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늦었네. 안녕, 난 분석심리학부의 부서장을 맡고있는 천세윤 박사라고 해. 원래 오늘 오전에 너희들 오리엔테이션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말이야. 늦게나마 부랴부랴 세미나실 와보니까 다 가고 없더라? 아니 한 30분 정도는 사람 기다려 줄 수는… 아니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양심 없다.

그럼 이제 아까 못한 오리엔테이션을 이걸로 마저 진행해 보도록 할게. 밥을 먹든, 업무를 하든, 멍 때리고 있든, 똥을 싸고 있든 그냥 알아서 잘 듣고, 이따 설문조사 링크 메일로 보내면 오티 잘 들었다고만 써 줘. 잘 들어. 지금 이 오리엔테이션은 세미나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거다. 모두 설문조사에다가 그렇게 써 줘야 해. 이거 대충 텔레파시로 진행했다는 거 수일이가 알면 나 진짜 큰일 난다.


아무튼, 이제 진짜 본격적으로 오티 시작할 게. 음… 뭐부터 시작할까. 일단 분석심리학부에 대한 설명부터 할 게.
분석심리학부. 줄여서 분심부. 대충 초심리학 연구부서야. 인간의 정신과 관련한 변칙이나 정신이 유발하는 변칙, 변칙이 유발하는 정신과 관련한 그런거 다 다루지.
근데 왜 '초심리학부'가 아니라 '분석심리학부'일까?

그 이유는 바로 다른 부서에서 대충 슬쩍 연구만 하고 지나가거나 사이오닉 학부에서 삐까뻔쩍한 간지나 보이는 용어로 신입들의 혼을 쏙 빼놓고는 하는 정신 영역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부서이기 때문이지.

심리학을 만든 삼대장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 아 지금 이 텔레파시 송출 장비로는 수신이 안 되니까 대충 누군가 대답했다고 치고… 그래! 맞아!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구스타프 융, 그리고 알프레트 아들러, 이렇게 있지. 우리는 바로 이 두 번째, 칼 융 박사님의 해석에 따라 인간의 정신, 그 속의 의식과 무의식을 연구하고 있어. 이게 우리 부서가 단순히 '초심리학부'가 아닌 이유야. 칼 융 박사님이 창시한 '분석심리학'은 정상세계에도 있지만 우리는 그냥 어디 대학교 심리학과가 아니지. SCP 재단이잖아? 우리는 바로 이 분석심리학의 '변칙적'인 부분을 연구하고 있어.

더 쉽게 정리를 할 게. 우리 부서는 다음 세 가지를 연구해. 집단무의식과 텔레파시, 그리고 싱크로니시티.



집단무의식 들어본 사람은 많이들 들어 봤을 거야. 대충 전 인류가 공유하는 무의식이지. 인류가 모두 동시에 어떤 특정한 반응을 가지면 100% 집단무의식에서 변칙적인 문제가 생긴 거라고 봐도 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인간의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뉘고, 무의식은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으로 나뉘어.

  • 의식은 말 그대로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모든 정신 반응을 칭해. 그리고 정신 외부로부터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이라는 기능을 통로 삼아 정신 활동을 위한 연료인 '리비도'라고도 불리는 정신에너지를 얻어.
  • 개인무의식은 우리가 겪은 경험과 기억들이 위치하는 곳이야. 어떤 강렬한 기억은 스스로 뭉쳐서 컴플렉스가 되지.
  • 집단무의식은 고대부터 정신에 각인된 강렬한 상징들(이걸 아키타입 이라고 해)이 위치해있는 곳이고, 이 아키타입들이 다양한 정신반응을 유발하는 원천이 돼.

그리고 의식 파트에서 말한 정신 외적인 네가지 기능 말고도 또 정신 내적인 네가지 기능이 있는데, 이건 텔레파시 파트에서 자세히 설명할 게.

뭐 이거 말고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자세한 건 어차피 너희들이 곧 배울 거니까 그냥 대충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면 돼. 아니면 관련 보고서를 좀 정독하거나. 집단무의식 쪽은 곽수일이 담당하고 있으니 더 자세히 알고 싶거나 연구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들은 걔한테 메일 보내봐.



그리고, 다음에… 내가 아까 뭐 이야기했지? 음… 아 집단무의식이랑 텔레파시랑 싱크로니시티였지.
이번 오티에는 텔레파시 관련해서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룰게.

자, 아까 내 칼 융 박사님의 이론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왜 갑자기 텔레파시 사이킥 초능력 이야기냐? 정상세계에서 심리학 공부한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칼 융 박사님은 실제로 우리 재단에서 일하다가 나가셨어. 지금 이 텔레파시 장비의 메인 연산 장치인 JUNG 아키텍쳐가 바로 그 분이 설계하신거지. 융 박사님은 재단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초심리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텔레파시 분류 체계를 만들고 그 매커니즘을 열심히 연구하셨지. 우리는 현재 그분의 이론을 이어받아서 계속하고 있고, 또, 이용해서 더 쩔게 잘 써먹고 있지.

자, 지금 어떤 실제로 음성을 듣는 거는 아니지만, 꼭 그런거 같은 느낌이 들지? 내가 말하는 것이 관념의 형태로 머리에 그대로 박히고 있잖아. 지금 천장 쪽을 한번 살펴보면 묘한 초록색을 띄는 금속 안테나가 박힌 검은색 플라스틱 상자가 보일거야. 그게 텔레파시 수신기야. 지금 그걸로 내가 너희들한테 B1 사고형 텔레파시를 쏴 주고 있어. 이게 내가 말하는 것의 관념을 텔레파시의 형태로 사고 기능을 통해 너희에게 전달하고 있는 거지.

텔레파시는 간단히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누가 니 정신에 원격으로 무슨 짓을 하는 거.'
그 짓이 뭔지,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여러 분류로 텔레파시를 나누고 있어.

아까 말했지? 지금 이건 B1 사고형 텔레파시라고. 앞에 알파벳은 이 텔레파시가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분류야. A는 읽기, B는 쓰기, C는 읽고 쓰기 둘 다 되는 거. 컴퓨터 좀 아는 애들은 익숙할 거라고 수일이가 자주 이야기하던데, 나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A형 텔레파시 사용자는 남의 정신활동을 읽어낼 수 있고, B형은 남의 정신활동을 입력하거나 유도할 수 있어. 지금 이 오티는 내가 너희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너희 정신에 관념을 입력하고 있지? 그래서 B형 텔레파시인거야.

그리고 텔레파시는 정신에 간섭하는 통로도 중요해. 크게 2개로 분류할 수 있어. 이 텔레파시가 너희 의식 내부로 어떻게 들어가느냐? 바깥에서 정문 뚫고 들어가는 1형 텔레파시와 안에서 은밀하게 파이프 타고 잠입하는 2형 텔레파시로 말할 수 있지. 즉, 1형은 집단무의식을 거치지 않고, 2형은 집단무의식을 거쳐.

무슨 차이가 있냐? 바로 '자아'를 통하느냐는 것에 있지. 바깥에서 오는 1형은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이라는 4개의 기능을 통해 우리의 의식에 간섭할 수 있어. 집중력이 좋고 자아가 잘 발달한 인원은 여기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지. 텔레킬 금속으로도 간단히 막을 수 있고. 하지만 집단무의식을 통해 들어오는 건 꽤나 까다로워. 텔레킬 금속이 조금 저항할 순 있지만, 꽤 많이 필요하고 확실한 것도 아니야. 아무튼 2형 텔레파시는 이미 우리의 집단무의식에서 개인무의식으로 천천히 스멀스멀 의식을 향해 다가오고, 본격적으로 침투를 할 때 정신 내부의 4가지 방법을 통해 발현돼. 바로, 기억, 주관, 정서, 침공이지. 2형 텔레파시는 이미 설득된 마음을 반박하는 느낌으로 저항 할 순 있어. 물론 그걸 알아채는 것부터가 상당히 힘들기 때문에 2형 텔레파시가 까다롭지.

그래서 결론적으로 텔레파시는 우리 의식의 내외적 기능에 따라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앞서 말했듯, 이 기능들은 결국 우리 의식의 통로니까. 각 기능에 따른 효과를 간단히 말해볼 게.

1형은 정신 외부에서 오기 때문에 의식의 외적 기능에 따라 영향을 끼쳐.

  • 사고: 너희에게 어떤 논리적인(혹은 그렇다고 여기는) 생각을 심거나 방해해.
  • 감정: 무언가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유도하거나 혼선을 일으켜
  • 감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감각을 만들기, 또는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각을 변질시키거나 없애곤 해.
  • 직관: 이미 무의식에 존재하고 있던 특정한 요소를 비추어 너에게 상기시키거나 어떤 의도된 영감을 너에게 불어넣어.

2형은 정신 내부에서 오기 때문에 의식의 내적 기능에 따라 영향을 끼쳐.

  • 기억: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만들거나 그걸로 임의적인 컴플렉스를 만들 수 있어.
  • 주관: 너의 주관과 사상을 뒤흔들고 조종해.
  • 정서: 다양한 개인적 감정반응을 유도하고 변질시켜.
  • 침공: 심화된 컴플렉스를 네 의식구역으로 밀어 넣고 자아를 위협해.

자 그럼 시험 삼아 B2 침공형을 좀 써볼까? 잠깐만 2형 텔레파시 발생기가… 이런, 접근 권한이 막혀있네. 잠시만… 막았으면 왜 막았는지 써놓았을 거 같은데, 수일이 성격이면… 어, 얘들아 미안하다. 그건 못하겠다. 영구적인 PTSD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하네. 아무튼 이거 정말 위험한 거라는 거 알겠지?

자, 그럼 아쉬운 대로 다른 거 써보자. 임시 이미지로, 지금까지의 내용을 한 짤로 정리한 걸 보내볼게.

jung.png

자! 눈앞에 이 이미지가 떠있지? 아마 눈을 감아도 계속 보일 거야. 역시 놀라지 말고, 반사적으로 잡으려고 손을 휘젓는 사람이 많은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되게 웃겨 보이니까 그러진 말고.
이미지 설명을 조금 하자면, 개개인의 정신은 이렇게 의식,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으로 나뉘어 있고, 의식은 외부의 요소를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을 통해 받아들이는데, 직관은 그러면서도 무의식을 관철해내고 있지. 또, 의식은 우리의 무의식 영역에서 기억, 주관, 정서를 비추고, 때론 무의식의 것이 의식으로 침입하는 침공도 일어나.

그리고… 텔레파스는 크레파스 같은 게 아니고, 텔레파시를 유발하는 변칙적 인간을 뜻해. 자, 이놈이 의식을 향해 다이렉트로 영향을 주면 1형, 집단무의식을 통해서 은밀하게 영향 주면 2형이지.

아무튼 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내가 지금 B1형… 아니지, 자, 아까 말 잊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내가 지금 이 이미지를 너희에게 전달하기 위해 특정한 텔레파시를 적용시키고 있는데, 이건 어떤 유형일까?

이거는 너희들의 시각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 관념이나 감정이 아니라 시각이니까, 감각형일 테고, 즉각적으로 너희 의식에 적용되었으니까 1형이고, 이 이미지를 너희 정신 속에 입력한 거니까 B형. 즉, 지금 이건 B1 감각형 텔레파시야. 음, 근데 이거 어떻게 끄냐? 이거 끄는 방법 아는 사람 있냐? 어… 아무튼 좋은 내용이니까 이참에 한번 찬찬히 살펴보면서 익혀봐. 아, 찾았다. 이제 안보이지? 다행이네. 아니 무슨 종료버튼이 깨알만하게 있어 사람 찾기 힘들게…

음… 그리고 지금 눈이 제대로 안 보이는 사람 있으면 내 사무실로 와. 갑자기 강한 감각정보가 들어와서 일시적으로 감각 기능이 마비된 걸 수도 있어서, 대충 텔레킬 망치로 머리통을 두들기면 괜찮아질거야. 물론 농담이야. 아, 문제 있으면 내 사무실 오라는 건 농담 아니니까 올 사람은 오고.

아무튼 그거 외에도 이런 텔레파시에 대해서 연구해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 내가 그쪽 담당이니까.



마지막으로 '싱크로니시티'. 공시성이라고도 불리는 것이야. 칼 융 박사님의 마지막 연구인 동시에 그가 재단에서 쫓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 후딱 지나갈게.

간단히 말하자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가 모종의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고, 어떤 정신적 상징이 강하게 떠오를 때 물질세계에도 그와 연관 있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지. 우리는 대부분 이걸 우연의 일치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라는 거야.

대표적인 예로, 융 박사님이 말한 '황금 풍뎅이' 상징이 있지. 자신과 면담하던 환자가 황금 풍뎅이에 관한 꿈을 꾸었고, 그때 창가에 금빛 풍뎅이가 날아들었다고 해. 그리고 그 풍뎅이는 융 박사님이 재단에 입사한 날, 그리고 퇴출되는 날 다시 한번 나타났다고도 하고. 음, 아니면 좀 일상적인 게 뭐가 있을까… 머릿속으로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길을 걷다가 어디 카페에서 그거랑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 경우 한번 쯤은 겪어 봤을거야.

그게 바로 싱크로니시티라는 거지. 정신에 대한 묘한 연결성, 현실에 숨겨진 상징, 우연처럼 보이는 그것들이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직관을 통해 그것을 관철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싱크로니시티 이론이 말하는 것이지.

음… 솔직히 말할게. 나도 잘 모르겠어. 칼 융 박사님은 재단에 퇴출되기 직전 제자와의 트러블과 신경쇠약을 겪었다고 해. 그게 아무래도 이 이론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거라고 생각해. 비과학적인 건 둘째 치더라도, 변칙의 영역에서도 밈이나 현실조작과 너무 동떨어진 물건이라 재단에서 더 크게 연구할 가치가 있을까 싶기도 해.

혹시라도 이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나한테 이야기해. 현실조정과로 전근 보낼 거니까. 그래도 진짜 분석심리학의 영역에서 이것을 연구하고 싶다면 윤금선 교수님에게 연락해봐. 아직까지 융 박사님의 이론을 이어가는 것에 열심이신 분이니까. 하지만 곧 있으면 정년 퇴임하실 예정이고, 그럼 그 이후에 남겨진 너희들은 아무래도… 현실조정과로 전근 가게 되겠지.


자, 그럼 대충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대충 알았지? 뭔가 내 전담분야인 텔레파시 이야기만 주구장창 한 거 같은데, 아무튼 이거 관한 만족도 설문조사 곧 각자 메일로 갈 테니까 거기다 우리가 약속한 거 있지? 그거 잘 써주고.

기억해. 이 오티는 제시간에 도착한 내가 세미나실에서 멋지게 ppt로 너희들에게 보여준 거야. 그 과정에서 너희들한테 그 어떤 텔레파시도 송출한 적도 없고… 뭐? 잠깐, 수일아? 너 여기 어떻게…


아냐! 내가 설명할 수 있어!


잠깐만!



아악! 오늘 오리엔테이션은 여기까지!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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