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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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어젯밤, 아내가 자식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이제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사업이 망하니 먼저 돈들이 나를 떠났고, 직원들이, 친구들이,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이 나를 떠났다. 부모님들은 진작 세상을 떠나셨다. 사업이 성공하면 모셔오려고 했는데…

이 집에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집세를 낼 수 없으니 한 달 안에 이 집에서 떠나야 했다. 아니, 집이 나를 떠나는 건가? 뭐가 됐든 간에 있을 곳이 없어지는 것은 똑같았다. 과연 내게서 더 떠날 것이 있을지 집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고민하고 있으니 오늘따라 텅 빈 집이 더욱 허전해 보였다. 벽도, 문도, 창문도, 그리고 얼마 없는 최소한의 가구들도, 오늘따라 멀어 보였다.

철퍽

뭔가 축축한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비가 오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윗집에서 물이 세나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은 나는 내 시야가 반쪽이 된 것을 발견했다. 분명 양쪽 눈 모두 뜨고 있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오른쪽뿐이었다.

꾸물꾸물

이번에는 뭔가가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내려다보니 신경과 혈관을 매달고 있는 내 왼쪽 눈알이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눈알은 천천히 반쯤 열린 문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눈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빠진 눈알을 어떻게 도로 집어넣을지는 몰랐지만 머릿속에는 저걸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영영 나를 떠나버리기 전에.

철퍽

다시 축축한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번에는 절반만 남은 시야마저 사라졌다. 남아있던 오른쪽 눈알마저 빠진 것이다. 아마 그것도 문을 향해 기어갔으리라. 손을 마구 휘둘러보았지만 딱딱한 벽과 바닥에 부딪치는 느낌과 소리뿐이었다. 눈이 내 곁을 떠났다.

이번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느낌은 있었다. 양쪽 귀에서 뭔가 축축한 것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아마도 소리를 느끼게 해주는 장기들일 것이다. 손으로 귀를 막아보았지만 축축한 느낌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움켜쥔 진흙처럼 흘러나왔다. 어떻게든 그것들을 주워보려고 바닥을 헤집었지만 놓치고 말았다. 어쩌다가 붙잡은 부스러기들마저 내 손바닥 위에서 사라져버렸다.

목구멍을 통해 뭔가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토하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았지만 소용없었다. 내 입안을 꽉 채운 고깃덩어리는 끊임없이 꿈틀거렸고 나는 토사물과 함께 그것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입을 열자 그것은 목구멍 속에서 한참을 더 기어 나왔다. 입안이 허전했다. 혀가 없었다. 나는 혀를 찾기 위해 입안 깊숙이 손을 집어넣었고 구역질을 했다. 뱃속에서 흘러나온 토사물들도 모두 내 곁을 떠나버렸다.

그 다음에는 이가 떠났다. 그 다음에는 코가 떠났다. 그 다음에는 귓바퀴가 떠났다. 그 다음에는 발이, 그 다음에는 고환이, 그 다음에는 간이, 그 다음에는 위가, 그 다음에는 폐가, 그 다음에는 허벅지가, 그 다음에는 척추가, 그 다음에는 심장이, 그 다음에는 식도가,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피가 내 곁을 떠났다.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붙잡으라고 명령할 뇌도, 명령을 전달해줄 신경도, 명령을 밭을 팔과 손도 모두 나를 떠나버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발 돌아와 달라 빌었다. 제발 나를 떠나지 말라고도 빌었다. 하지만 돈도, 직원들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그리고 내 육체마저도 나를 떠났다.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혼이 나를 떠났다.


사건 설명: ███ 씨(남성, ██세)가 자택에서 아무런 징조도 없이 분해된 사건.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분해된 ███ 씨의 잔해들은 자택에서 스스로 기어 나와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한다.
사건 일자: ████-██-██
위치: 대한민국, ███████
후속 조치: 분해된 ███ 씨의 잔해들 중 왼쪽 안구, 심장, 그리고 혀를 회수하는 데 성공함.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잔해들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음. 목격자들에게는 기억소거제를 처방함. 해당 사건 발생 이전의 ███ 씨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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