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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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

2021년 4월 28일

세기의 기증, '이건희 컬렉션' 2만 3천점, 국가 소장품으로

28일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산의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국내 미술계가 주목해온 이건희 회장의 수집 미술품, 일명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안이다.

삼성전자 측은 28일 오전 유족들의 뜻을 전하며 미술품 기증을 통해 사화 환원을 실천하기로 했다며 국보와 보물 60건이 포함된 전통문화유산과 세계적 대가의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 작가의 작품 등 2만 3천여점을 국립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통문화유산은 모두 2만 1600여점으로 국립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비롯해 국내의 도자기, 고서, 고지도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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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916-1956) <황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26.5x36.7cm.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과 여러 유명 작가의 미술품과 드로잉 등 근대 미술품 1600여점이 기증된다. 이외에도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여러 서양화 작품이 기증된다.

삼성 측은 "지정문화재 등이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되는 것은 전례가 없어 국내 문화자산 보존은 물론 국민의 문화 향유권 제고와 미술사 연구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2021년 3월 13일

리움 미술관 미술품 보관고

미술품 보관고는 매우 많은 것에 신경을 써야한다. 첫째는 보관 중인 미술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유물들은 수백년의 세월을 버터낸 시대의 역작들이고, 앞으로 수백 년의 세월을 이겨내서 미래에 전달되어야 한다. 적절한 습도와 온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물감과 먹이 스며든 종이는 쉽게 상해버린다. 둘째는 미술품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이 소중하면 할수록 손을 뻗는 이들은 늘어난다. 비록 장물 처리라는 위험이 있더라도 수백억에 달하는 유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이들은 충분히 많을 것이다.

이 두 가지로 인해 이 보관고에는 삼엄한 경비, 엄격한 관리가 항상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아래, 지하의 지하, 금고 속 금고에는 더욱 특별한 작품이 숨겨져 있다. 여기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기밀. 평범한 사람은 그 존재를 알아서는 안 되는 작품. 예술을 위해 세상의 법칙을 거스른 변칙.

보관고의 가장 철통 같은 보안을 가진 금고에는 몇 가지 유물과 미술품이 있었다. 그 안에는 습도도 온도도 조절되고 있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작품들은 그 빛을 바래는 일 없이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금고 안에는 각각의 작품들을 위한 개별 보관고가 있었다. 이 가장 깊숙한 금고의 문은 열리는 법이 거의 없었고, 개별 보관고의 문은 한 번 닫히고 난 뒤로는 열리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항상 무겁게 침묵을 지키던 금고의 문이 열리고 그 다음에는 보관고의 문이 열리며 작품이 수십년만에 다시금 빛을 보게 되었다. 언제 그려졌는지 모를 수묵화는 요사스러운 기운을 내뿜으며 다시금 사람의 눈 앞에 놓였다. 한 폭의 그림 속에는 당장이라도 덮쳐올 듯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한 마리의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작품의 감상자들은 천천히 그림을 살피곤 태블릿을 꺼내 무언가를 기록하고는 다시 그림을 보관고의 어둠 속에 밀어넣었다.

다음 보관고에는 원색의 유화가 있었다. 감상자들은 눈을 돌렸고, 눈을 돌리지 않은 이들이 쓴 바이저는 조용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장부가 빠르게 마무리되자 그림은 다시 보관소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런 반복 작업은 모든 보관소가 열리고 닫힐 때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는 아름다운 백자 하나가 나타났다. 언뜻 보이는 세월의 흔적이 멋을 돋보여주고 있었고, 새하얀 바탕에 푸른빛으로 독특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복잡하면서 우아하게 그려진 기계장치의 모습은 마치 설계도를 연상시켰다. 주둥아리는 자기 마개를 밀랍으로 봉해둔 모습이었다. 그 안에서는 무언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도자기 속 내용물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백자가 진동했다. 태블릿은 지직거리며 꺼져버렸고 전등이 순간 암전되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모든 것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내 부산스러워졌고, 도자기는 오묘한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2021년 2월 15일

대한민국 서울, 우린 알 수 없는 어딘가

몇 명의 남자, 그리고 몇 명의 여자, 그리고 몇 명의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었다. 앉고 또 서 있는 곳, 시선의 방향, 몸짓에서 그 무리가 셋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물론 그 한쪽에는 재단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 놓여진 탁자의 한 쪽은 재단이 자리잡고 있었고, 가운데에서는 정부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이 나라 최대 기업의 남자들이 있었다. 삼성 법무팀은 재력으로 얻어낼 수 있는 최고였고, 또한 그 뒤를 지켜주는 이들 덕에 항상 상대보다 쓸 수 있는 패를 하나 더 쥐고 게임을 했다. 때론 전관예우를, 때론 막대한 자금을, 그리고 이번엔 독자적인 정보망으로 상대의 패는 보면서 자신의 패는 하나 늘렸다. 초상법률의 전문가는 어느 곳에서도 찾기 어려운 이들이었지만, 삼성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양측은 다시 지지부진하던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론이 날 것이다.


2021년 3월 15일

대한민국 서울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월요일은 탁재헌에게 있어서 별로 좋은 날은 아니었다. 특히 월요일 아침만큼 힘든 때는 별로 없었다. 시계가 6시 00분을 가르키고 알람이 울린 순간, 그의 오른손이 알람을 꺼버렸다. 10초 남짓한 시간 오른손을 알람 위에 올려두고 미동도 없던 몸은 이내 전신을 일으켜 세우고 이불을 걷어냈다. 탁재헌의 기상 후 루틴은 우선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어깨, 허리로 이어지는 스트래칭을 끝내고 일어나서 다시 스트래칭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5분 동안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몇년쯤 전인지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책에서 읽은 이 루틴은 어쩌면 그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루틴을 매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 뿐일 수도 있고. 1년 전, 국가초상방재원으로 소속을 옮기고 처음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들은 날부터는 어째서인지 루틴을 지키지 않으면 뭔가 불안해지곤 했다.

명상을 끝내고 난 뒤부터는 별다른 순서가 없었다. 아침을 먹고 씻기도, 씻고 아침을 먹기도,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기도, 아침을 먹고 씻고 갈아입기도 했다. 그는 강박증적으로 이런 걸 지키는 사람은 아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은 보통 6시 30분이었다. 물론 오차 범위는 꽤 컸다.

문을 나서서 직장에 도착하면 보통 7시 20분이었다. 그의 직장은 영등포에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평범한 회사로 위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평범한 회사들로 위장하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안 카드를 잠금 장치에 댄 다음, 비밀 번호를 입력하고, 동공을 인식 장치에 댔다. 그리고 나서야 두 번째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국가초상방재원 서울제1감시소가 있었다. 서울이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구 밀도와 시설 밀도를 가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 더해서 지정주시위치 Lc003 "명천구"과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이 감시소는 항상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다. 탁재헌은 시계가 7시 30분을 지나갈 때쯤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켜지고 복잡한 인증 절차를 통과하고 나서야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바탕화면은 구식 보안 포스터였다. 밈적 접종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바로 발작을 일으킬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그냥 보기 싫은 화면이었다. 그 다음 그에게 남은 일은, 특별히 주어진 임무가 없는 이상, 지루한 문서, 문서, 문서 작업이었다.

탁재헌은 점심이 다 될 때까지 어제 일어난 2명의 초상인물이 관여된 교통사고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모니터에 열중할 무렵 뒤에서 그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신욱, 탁재헌의 사수였다. 김신욱은 비밀 요원에 어울리지 않게 눈에 띄는 체격과 훤칠한 가진 이었다. 그는 탁재헌이 이 건물 안에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친하게 지내며 또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슬슬 점심 먹으러 가자고."

"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더라니."

탁재헌은 그의 사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향했다. 김신욱은 그 사이 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답만으로 그의 결혼식과 관련된 사안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올해 5월에 3년간 사귄 연인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오늘 오후에 브리핑 있는 건 기억하고 있지?"

"하모요"

탁재헌도 그의 예비신부를 만나본 적이 있었다. 자세한 인적사항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남편이 가진 직업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변칙사회에 사는 사람이 어디서 사는지 탁재헌은 아는 바가 없었다. 지식으로는 알아도 실제로 변칙사회에서 사는 사람을 만나본 일은 없었었다.

"근데 브리핑 시작 시간까지 지금 쓰던 거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 교통사고 났다고 뒤지게 싸운 거?"

"사실 싸운 것보다 차에 해둔 게 더 문제긴 했죠."

김신욱이 결혼 소식을 동료들에게 전하자 다들 한마음으로 축하해주며, 영화의 클리셰 얘기를 하며 놀리기도 했다. 사실 단순히 농담 뿐이 아니었다. 어느정도 위험이 있는 작전에선 그를 배려해주고 있었고, 그 덕에 몸 무사히 준비를 끝내가고 있었다. 그런 김신욱도 이번 브리핑에 참여하는 걸 보면 이번 작전은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불이 꺼진 방에는 열 명정도 되는 인원이 참석하고 있었고 탁재헌과 김신욱도 왼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내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작전 개요가 빔 스크린에 띄워졌다. 첫 화면은 위에 적힌 작전 개요란 단어 외에는 공백 뿐이었다. 다음 순간 슬라이드가 진행되면서 정보들이 띄어졌다.

"이번에 진행되는 작전은 초상물품의 수송입니다. 수송 물품은 최근 화재가 되고 있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컬렉션의 일부, 소지 자체가 불법인 변칙예술품입니다. 최근 삼성 재단 측은 정부 측과 접촉해 이러한 물품을 포함해 다수의 불법 소유물 다수를 대한민국 정부에 넘기는 것에 대해서 협의했습니다."

다음 화면에는 유명인사의 사진과 몇 가지 유물과 미심쩍은 제품들 사진이 지나갔다.

"이 중 다수는 조약에 따라 재단 측에 인계되었지만, 이러한 변칙예술품의 경우, 살짝 달라집니다. 18년 지정주시위치 명천구의 관리 권한을 인계와 함께 내부에 산재한 변칙예술품을 전부 인계할 수는 없기에, 관리를 위해서 명천구 내부에 변칙예술품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항이 당시 인계 조항이 있습니다. 일종의 편법이지만, 재단도 별다른 불만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화면에는 별로 보기 좋아보이지는 않는 동네의 모습과 조항 발췌문이 나타났다.

"따라서 이 물품들은 명천구 내부로 수송하기만 하면 보관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삼성 소유 리움 미술관, 호암미술관 보관소와 삼성 소유 기밀 보관소 2곳에서 총 125개가 수송 예정입니다."

"저희는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리움 미술관의 수송에 참여합니다. 리움 미술관 측 수송 작전에는 재단 측을 포함 50여명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화면에는 선 3개가 그려진 재단 인장이 나타났다.

"자세한 일정, 작전 개요, 총 지원에 대한 사항은 기밀 유지를 위해서 작전 시행 5일 전 전파될 예정입니다. 참여 인원은 현재 참석하신 분들 전원이며, 없다고 생각하지만 참여에 문제가 있으신 분은 부디 사전에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질문은 없었다. 다들 표정에 이번에는 그나마 편한 작전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타났다. 탁재헌도 마찬가지였다. 리움 미술관이나 명천구나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길어봐야 30분도 안 걸릴테니 설마 그 사이에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후 브리핑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듯이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탁재헌은 새로운 임무가 배정되고 자리에 돌아와서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 지으러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서 잠시 머리 속으로 이번 임무의 위험요소와 주의점을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이렇게 생각했다.

삼전 주식은 빼는게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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