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소녀의 다이얼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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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아저씨. 나 산타클로스가 보고 싶어. 그냥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걸로 하면 안 돼?

진짜 안 돼?

…알았어.

그러면 선물도 미리 못 받겠네?

어른들도 카드 긁어서 미리 땡겨 쓰잖아. 왜 나만 안 되는데. 우리 아빠도 그렇게 게임기 샀단 말이야.

…응. 엄청 혼났지.

그렇네. 나쁜 행동이네.

(침묵)

아저씨.

(들판을 바라본다. 들판은 데이지, 라일락, 제비꽃 따위의 들꽃이 가득 피어서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우울하다.)

나쁜 행동이면 내가 해도 되는 거잖아.

나쁜 아이…가 아니야. 나는 어른이 되면 나빠지니까, 미리 나쁜 짓을 좀 하자는 거야.

신용 등급이랑 관계 없잖아. 요즘은 무이자로 대출도…

알았다니까.

(들판에 돌을 던진다. 돌은 느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꽃밭에 떨어진다. 툭, 하는 소리가 난다. 시선은 들판에서 먼 산으로 향한다.)

나는 어른이 되면 나쁜 사람이 된대. 주문을 외워서 공주님을 괴롭히는 삶을 사나 봐.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응. 나는 옛날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

(햇살이 구름 사이로 삐져나온다. 갑작스럽게 드리우는 햇빛에 얼굴을 찌푸린다.)

우주가 좋아서. 고향에서는 별이 잘 보였거든. 책에서 읽은 것처럼, 판에 박힌 듯이… 그게 너무 좋아서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

지금은 낮이잖아. 바보.

딱히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지루해. 부모님이 그리워. 여긴 너무 멀고 방학도 없잖아. 우리 학교가 해리 포터가 다니는 학교같이 좀 가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응. 그러고 보니까 위즐리도 없네. 킥킥.

(침묵)

우리, 기분 전환하게 별이나 보자.

(해가 산 너머로 지고 달이 뜬다. 하늘에 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겨울 하늘 예쁘지?

이렇게 보면 더 잘 보인다.

(뒤로 눕는다. 눈을 하늘로 향한다. 정신없이 별을 보면서, 별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하나 둘 읊조릴 때마다 해당하는 별이 반짝거린다. 점점 소리가 작아지다가 결국 조용해지고,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있잖아, 아저씨. 아저씨한테는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사실 나도 아저씨 바쁜 거 알아. 내 아빠도 매일 바쁘거든. 그런데도 매일 와서 나랑 말상대를 해 주잖아.

그래서 오늘 산타클로스한테 받은 거 아저씨한테 선물로 주려고 했었어.

당연히 진짜지.

아, 됐어. 어차피 안 속았으면서.

(침묵. 다시 고개를 하늘로 돌린다. 손을 뻗어, 하늘에 사람 모양을 그린다. 남자와 여자 모양 별자리가 새롭게 나타난다.)

가.

바쁜거 알아. 또 누구랑 싸워야 하잖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라며. 빨리 가.

난 괜찮다니까. 알잖아. 나는…여기서 못 나가.

마녀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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