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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그 빈민가에서 태어난 친구들의 수였다. 전부 지옥 속에서 자랐고, 약에 취해 온갖 범죄를 함께 저지르던 친구들. 마약과 낙서를 해대고 주먹을 휘두르며 깽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그거밖에 배운 게 없었으니까. 우리가 자식들을 낳는다면, 그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도 그거밖엔 없었고. 우리는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을 물려주고 지옥으로 들어갈 운명이었다. 여기서 벗어날 만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하던 시절이었다. 누가 나처럼 멍청하고 못 배운 범죄자 놈을 뽑아주겠는가 하면서. 지금 내 꼴을 생각해보면 여기가 멀쩡한 직장일지는 좀 많이 의심이 가지만.

그런 절망 때문에 그 종이를 보자마자 전화한 걸지도 모르겠다.

흔한 전단이랑은 다르게, 하는 일이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같은 것들은 하나도 적혀있지 않았다. 단순히 전화번호랑 받을 수 있는 대우와 비밀 유지 서약서뿐. 심지어 회사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보고 홀린 듯이 전화를 걸었다. 그 정도 대우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기껏해야 낡아서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자동차 공장이 우리가 상상하던 최대한이었다. 뭐, 지금 생각하면 실제로 홀리게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반란엔 사람이 많이 부족하니까.

전화를 마치고, 애들과 얘기하고, 그렇게 어쩌다 보니 전부 거기에 지원하게 되었다. 다들 뭘 받을 수 있는지 얘기해 줬더니 눈이 뒤집혔었지. 난 한순간에 영웅 취급받았고. 그 대가가 뭘지도 모르면서. 하하.

전부 함께 약속 장소로 갔고… 그곳은… 우리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쉬운 일이 아닐 건 예상했다. 몸이 뻥뻥 뚫려있는 사람들과 뭔가 괴상하게 생긴 괴물들, 또… 그 괴물들보다 괴상하게 변해버린 사람들의 시체를 묻으며, 우리는 그 좋은 대우의 원인을 깨달았다. 얼마 안 가 죽을 텐데, 좀 잘 대해준들 무슨 상관이랴.

시체를 묻고, 벽에 구멍이 슝슝 뚫린 건물을 정리하고 개조해 멀쩡하게 만들어 놓은 이후, 우리는 세 조로 나누어졌다. 나와 마이클은 경비 담당이었고, 나머지 열둘은 청소랑 실험에 배치되었다. 경비 일은 나름 할만했다. 경비라고 해봤자, 사람들이 못 도망가게 지키거나 유리벽과 철창 속 갇혀있는 괴물들이나 괴상한 물체들 앞에서 멍때리는 것밖에 없었다. 잭과 크리스가 실험실로 끌려가는 걸 보기 전까지는 말이지.

나와 마이클은 당장 달려갔고… 그다음은 기억이 없다. 내 옆자리는 다른 놈으로 재배치되었다. 나는 계속 재미없이 서 있어야 했고, 세상은 계속 돌아갔다. 마이클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긴 했는데, 아무 감정도 생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집중해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 모두에게 그랬고, 이 '혼돈의 반란'이라는 조직이 하는 일이 나쁘다는 생각 자체에도 그랬다. 내게 뭔 짓을 했기에 내가 이리되었는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죽기 직전에서야 이걸 깨닫다니. 킥.

어쨌든 그렇게 계속 시간이 흘렀다.

아마 겨울이었던 것 같다. 녹아내린 벽으로 들어온 바람이 찼던 걸 기억하면.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주워듣자니 무슨 재단의 공격이라고 했다. 재단이라니, 웃음이 나왔다고 기억한다. 그때까지 내가 알던 재단은 뭔 같잖은 자선재단밖에 없어서였겠지. 총알과… 뭔가 이상한 불덩이가 날아다녔다. 분명 총에서 나오긴 했지만, 벽 속 철근을 휘어버리는 걸 보곤 확실히 알았다. 그 벽은 당장 내 머리 위에 있는 곳이었고, 난 쫄아서 당장 도망쳤지…

악운은 또 더럽게 강해서, 어떻게 또 좁은 구석탱이에 엉덩이를 들이밀 수는 있었다. 문제는 마이클도 거기로 도망쳤다는 거겠지. 몇 달 만에 만나는지 세어볼 틈도 없이, 그 녀석은 날 잡아 끌어내려고 했다. 엄청 겁에 질려서. 그런데 나도 그만큼 겁에 질렸었고… 쐈다. 나름 경비랍시고 받은 총을 친구놈한테 쏴버렸다. 얼굴에 묻은 피는 섬뜩하도록 따뜻했다. 멍청하게도, 총소리를 듣고 누군가 따라올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한 나는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정신을 놓고 또 뒤로 총을 쏴갈겼다.

정신을 차리니, 내 앞에는 방금 뱉어낸 듯한 토사물과-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사람을 둘이나 죽일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난 몸에 바람구멍 하나 안 뚫리고. 난 그리곤 윗대가리들한테 불려가선, 뭔 역설계니 무한탄창이니 하는 과학적 개소리를 잔뜩 듣곤, 베타 계급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듣자하니 내가 죽인 놈들 중 한 놈이 들고있던 파이어볼 캐스터가 '재단'에서 개발한, 옙스니 뭐니 하는 최신 기술이랬다. 멍하니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나는 3일의 휴가를 받았다.

3일 후, 새로 맡게 된 임무는 첩자질이었다. 일단 뭔 이상한 그림으로 지식을 주입받고… 그건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다. 지식이 억지로 뇌에 쑤시고 들어와서, 뇌가 터지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렇게 그 빌어먹을 그림쪼가릴 머리속에 집어넣은 난 재단의 27기지로 가서 거기 정보를 뒤지다가, 거기 관리자가… …아니다, 이제와서 이건 별 상관은 없겠지.

뭐, 어쨌든 본부에 전한 말은 꽤 성공적이었다. 당장 반란의 부대가 이 기지로 들이닥쳤으니. 문제는 그 와중에 내 상사새끼가 날 쐈고, 난 내 피가 얼마나 맛없는지 혀를 처박고 맛봐야 하는 신세라는 거겠지. 대체 왜일까. 내 공적이 탐났나… 난 승진같은건 관심도 없는데… 하긴, 알파 베타 계급은 전부 쓰레기 취급하는 양반이니. 알파 계급 쓰레기… 킥킥킥.

젠장, 그래서 결국 이 모양으로 끝나는군… 낄낄. 하긴, 그 시궁창에서 태어나서 이정도면 성공인가… 그래도 나름 충성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노래가 들린다. 이상하게도 배의 통증이 줄어든 느낌이다. 죽는 길에 이렇게 박자 빠른 노래라니, 아무래도 어색하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겠지. 이렇게 된 김에 좀 오래 쉬어야겠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한 무리의 진군하는 병사들 뒤에서, 허탈한 표정의 남자가 숨을 헐떡였다. 그와 마주한 여자의 손에 들린 총에선 아직 연기가 피어올랐다. 남자의 배에서 흐른 피는 바닥에 고였고, 곧이어 남자는 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여자는 총소리에도 아무도 뒤를 보지 않았음에 만족하며 말을 꺼냈다. "적어도 이번 알파 계급 쓰레기들은 잘 훈련된 모양이군." 여자는 냉소하며 말을 끊고는, 바닥에 흐르는 피가 더럽다는듯 쳐다보았다.

남자는 당황과 고통에 찬 채 말을 이어갔다. "대체… 왭니까?" 남자의 말소리가 순간 격해졌지만, 죽어가는 것을 나타내듯 숨소리는 점점 옅어져 갔다. 여자가 총을 다시 집어넣고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똑똑한 베타 계급은 필요 없어. 내 자리를 위협하거든." 여자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남자가 바닥에 얼굴을 묻는 광경을 보고는, 그대로 밖으로 걸어나갔다.

'결국 이렇게 끝인가.' 남자는 조용히 냉소했다. 그의 눈 위로 주마등이 스쳐지나갔고, 그는 과거를 한번 되씹었다. 갑자기 귓가를 휘감는 듯한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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