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하기 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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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손님이라고는 네 명의 노인밖에 없는 식당에,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들어섰다. 이미 있던 네 명의 손님은 전부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먹느라 새로 들어온 손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무도 아닌 자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네 노인이 앉아있는 곳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오른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직 오후 5시였다. 남자는 입을 열었다.

“이른 저녁을 들고 계시는군요.”

한 노인이 대답했다.

“이 나이 먹으면 배가 빠르게 고파진다네. 자네도 그 정도는 알 텐데.”

남자는 옅게 미소 짓고는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스테이크 파이. 사진으로만 봐도 군침이 돌았다. 애플파이. 달달한 사과에 시나몬까지 뿌리면 맛이 정말 환상적이지. 아무도 아닌 자는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물 한 잔을 날라다 줄 종업원은 없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이 걸리지 않게 조심하며 물 한 컵을 따라 물통과 컵을 자리로 가져왔다. 시원한 물이 목으로 넘어가니, 찬 기운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아, 거기 소금 좀 주게, 팻Pat.”

한 노인이 구운 생선 요리를 먹으며 말했다. 다시 찬물을 한 모금 넘긴 뒤, 남자는 말했다.

“길을 가다가 다리가 좀 아파서 말입니다. 잠시 쉬려고 들어왔죠.”

“웃기는 친구로군. 그래서 여기 이 친구들을 전부 잠재웠나?”

스파게티를 먹던 노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문을 받던 여종업원과 계산대에 있던 남자 직원, 요리하던 요리사들은 물론 안에 있던 네 명의 노인을 제외한 다른 손님들까지 전부 쓰러져 있었다. 전부 일반인으로 위장한 재단 요원들이었다. 아무도 아닌 자는 미소를 잃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절 그닥 반기지 않는 사람들인지라.”

“그렇다면 우리가 식당에서 나왔을 때 말하면 되지 않나? 굳이 이 늙은이들 마지막 한 끼 식사가 방해받도록 만들어야겠어?”

“에잉, 쯧. 난 한 그릇 더 먹으려고 했는데. 이보게 워렌Warren, 그 만두까지도 먹을 건가?”

“당연하지, 프레데릭Frederick.”

프레데릭이라 불린 노인은 혀를 차고 호박파이를 마저 먹기 시작했다. 아무도 아닌 자는 속으로 낄낄 웃고 있었다. 그 누가 이 네 명의 노인이 성경에 나오는 네 명의 기수라고 생각할 텐가? 재단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그냥 성격 나쁜 네 명의 노인이니까.

“아, 잘 먹었다. 참 좋은 식당이야, 그렇지?”

“80년 동안 다니기에는 딱 좋은 식당이었지. 드와이트Dwight, 휴지 좀 주게나.”

“여기 있어. 이제 못 온다니 아쉬울 따름이지.”

아무도 아닌 자는 중절모를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벌써 가실 필요가 있을까요.”

“실직하면 빨리 가야 하는 법이지. 요즘 참 실직하기 쉬운 세상 아닌가? 할 일이 없는데 더 있을 필요는 없어.”

“글쎄, 드와이트. 이왕 온 거 관광 좀 하다 간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닥쳐, 워렌! 이게 다 자네 때문이야!”

“오늘은 저 때문에 식사를 방해받았으니, 차라리 내일 만족스럽게 가시죠.”

아무도 아닌 자의 말에, 네 명의 노인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생각까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도 아닌 자는 쿡쿡 웃었다.

“거 참 현명한 친구로구먼.”

팻이라 불렸던 노인이 말했다. 그 말에, 아무도 아닌 자는 미간을 좁혔다.

“…글쎄요. 오히려 우둔한 쪽이 아닐까요.”

“그런가? 뭐, 당사자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아무도 아닌 자는 빈 잔에 물을 따라 식사를 마친 드와이트에게 건넸다.

“예의 바른 젊은이로군. 고맙네.”

젊은이라. 정말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또 보- 아, 그건 불가능하겠군. 살펴가게, 젊은이. 우리 대장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가는 길에 이 친구들 좀 깨우고 가게나! 난 한 그릇을 더 먹어야겠어.”

아무도 아닌 자는 슬며시 미소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식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렸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었다.


부록 1295-B: ████년 ██월 14일 오후 5시에, 제618전초기지의 보안이 무력화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초기지 내부에 있던 모든 인원이 30분 동안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린 재단 직원이 SCP-1295가 있던 식당을 보자 내부에 직원과 손님으로 위장하고 있던 재단 요원들도 정신을 잃고 있었다가 막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식당 내부에 설치해놨던 감시 카메라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이 사태는 ‘아무도 아닌 자’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보이며, ‘아무도 아닌 자’는 모든 재단 인원이 정신을 잃었던 오후 5시부터 5시 30분까지 SCP-1295 개체들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당시 카메라의 녹음 기능이 고장 나 대화 내용은 알 수 없다. SCP-1295 개체들은 늘 하던 대로 오후 6시에 식당을 나섰으며, 이때 SCP-1295-2가 여종업원으로 변장한 █████ 요원에게 “내일까지 신세를 지겠네”라는 말을 하였다. SCP-1295 개체들은 자신들이 격리되었음을 자각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부록 1295-C: ████년 ██월 15일 오후 6시에 식당에서 SCP-1295 개체들이 사라졌다. 현재 SCP-1295의 네 개체를 수색하고 있으며, 수색이 무위로 돌아갈 경우 SCP-1295는 무력화된 것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당시 식당에 있었던 재단 요원들은 SCP-1295 개체들이 ‘80년간 신세 졌다’라는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순간 네 번째 조각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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