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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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어두운 방에서, 어떤 한 인간의 형체가 일어선다. 그 형체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 하듯이 주위를 살폈지만, 자신의 손조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 그냥 정처 없이 걸어 다니더니 이내 발이 자신의 발에 걸려 쓰러진다. 형체는 다시 일어서 주위를 살피다, 저기 어딘가 어둠 속에서 작게 빛나는 불빛을 발견하고는 그 불빛 쪽으로 이끌리듯 걸어간다.

그 인형人形은 작은 불빛의 근원지를 따라 계속 걸어가지만,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다. 형체는 자신이 발을 디딜 때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이내 자신이 걷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바닥일지도 모르는 곳에 앉아, 가만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형체는 다시 일어서더니, 불빛 쪽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다. 이제는 점점 불빛과 가까워지고 있다. 형체는 불빛에 도달한 후, 그 불빛이 컴퓨터 모니터였음을 깨닫는다. 형체는 여러 번 연습한 것처럼,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한 파일을 열람한다.


인원 파일 - KR-021-446-3



이름: 이 무영

직책: 현장 요원 및 후임 연구원


그녀는 정보를 열람하는 순간 무뎠던 신경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그녀는 자신의 팔을 확인하듯 들어봤지만, 자신의 몸을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략 자신의 팔이 그곳에 있다는 것만 본능적으로 깨달을 뿐, 그녀가 인지하려고 든 팔은 배경과 동화되어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다시 한번 자신의 다른 팔로 오른팔의 존재를 확인하려 해보지만, 역시나 왼팔 또한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선 다시 주저앉는다. 주저앉은 후, 그녀는 자신의 실존하지 않는 팔과 손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마우스를 잡고 마우스 휠을 내리기 시작한다.


직책: 현장 요원 및 후임 연구원

담당 기지 식별자: KRSE██-Site-21K

담당 부서: 존재학부

업무:


그녀는 자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한다. 분명 처음 본 언어이지만, 그 개념들이 머릿속에 직행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이 이상한 느낌과 함께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간다.


업무: 존재론적 변칙 격리 및 연구

이력:

  • 2006년 - 민간 대학 소속 시절 SCP-███-KO를 최초 발견함. 이후 재단에 입단함.
  • 2008년 - 초월개념 존재론에 대한 논문 발표 및 실질적 격리 절차 수립에 이론 적용을 성공적으로 마침.
  • 2010년 - SCP-███-KO 격리에 처음으로 투입됨.
  • 2011년 - 초월개념적 이데아 분리 이론 제기.

이력 문단을 읽다가 스크롤을 멈춘다. "SCP"와 "초월개념 존재론" 등 그녀가 모르는 단어 때문이다. 그녀는 단어들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위쪽의 "재단"으로 시선을 맞춘다. 그녀는 어렴풋이 자신의 직장을 떠올린다. 난해하게 생긴 기호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 등, 분명히 이 "재단"이 그녀의 직장이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문서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있지도 않은 시계를 두들기며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 문서의 "이무영 요원 및 연구원"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직장이 이 "재단"이라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그녀는 자신이 이무영 요원이라면 왜 전의 일을 기억 못 하는지 생각해보다, 자신이 이무영 요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문서를 아래로 내리며,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 2012년 - 변칙 현상 조사 중 사망.

그녀는 역시 자신은 이무영 요원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사망한 사람이라면 부활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살아있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기에, 확실히 자신은 이무영이 아니라 한 번 더 확신한다. 그녀는 문서의 열람을 멈춘 후, 습관적으로 시계를 확인한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던 손목이었지만, 시계는 손목에 착용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손도 확인한다. 그녀는 오른쪽 팔목의 상처를 발견하고는, 쓰라린 듯 손을 턴다. 분명 아까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라 생각하며 온몸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는 복장이 마치 연구할 때나 입는 연구복과 유사하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상의의 왼쪽 가슴 쪽에는 그녀의 직장 로고가 부착되어있다. 그녀는 그 로고를 유심히 보더니, 어떠한 것을 떠올려낸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기억을 떠올려내곤 그 상대를 떠올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내 기억은 점점 사라지더니, 결국 어떠한 개념이 자신의 속에서 게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 "게워지는" 현상 이후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나머지 "이무영 요원"의 정보만을 익힌 채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그녀는 저 멀리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그 빛에 비춰본다. 그녀의 몸은 색채와 모양, 질감 등 여러 정보가 굳어지기 시작한다. 정보가 굳어지며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빛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그녀의 자아가 정해진다.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그녀는 아까까지만 해도 넓었던 방의 중심에 있던 컴퓨터를, 지금은 작은 방의 중심에 존재하는 컴퓨터를 바라본다. 그녀는 경계를 건넘과 동시에 의식이 완전히 확립되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 과정은 언제 해도 기분 나쁘네요."

이무영 요원이 방의 안쪽에서 몸을 털며 나온다.

"이번엔 겨우 3시간밖에 안 지났네. 점점 업무에 복귀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나쁜 거네요. 솔직히, 재단에서 일하는 거보다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 훨씬 낫거든요."

이무영 요원은 근처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인사 파일을 다시 열람하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윤리위원회에서 심사 통보가 왔네. 이 기술은 쓰지 말라더군. 그러고 보니까 궁금하네, 정보를 게워낸 후엔 그 정보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저기 상위 차원에서 자신의 하위 그림자를 잃은 채로 돌아다니고 있겠죠. 뭐, 운만 좋다면 다시 다른 그림자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군. 그럼 정보 수복 작업은 얼마 정도 걸릴 것 같나?"

"3일 정도면 적당할까요?"

"아니, 그보다 더 빨리 복귀하게. 지금 자네가 없는 사이에 쌓인 보고서가 수두룩해."

"복귀해도 보고서 처리는 못 할걸요. 그러게 손목 좀 조심해서 넣지 그랬어요."

"미안하네. 그럼 3일 후에라도 복귀하게나."

이무영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고리를 잡고 방에서 나간다. 방 앞의 옷걸이에는 D계급의 옷 한 벌과 이무영 요원의 겉옷이 걸려있다. 이무영 요원은 자신의 옷을 옷걸이에서 뺀 후, 옷을 펄럭이며 챙겨 입은 뒤 연구동의 보안 철문을 지난다.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며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을 쳐다보며, 정문을 나선 뒤 신선한 공기를 양껏 들이쉰다. 이무영 요원은 주머니에서 쩔그럭거리는 차 키를 꺼내어 차에 시동을 건 후, 자신의 직장을 뒤로 한 채 제21K기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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