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폐하의 성조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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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정 2정목 3번지 1호. 다른 이름으로는 수상관저. 미합중국에는 백악관, 잉글랜드에는 다우닝가 10번지, 러시아라면 크레믈린. 일반적으로 정부수반이 거하는 행정중심시설이라 불릴 만한 곳에는 애칭이 있는 법인데, 이 건물은 1929년 구관저 창설 이후 그런 것과는 이었다.
 재단은 이 시설을 단순히 관저, 라고 부른다. 사실 이 호칭 자체는 널리 부연되고 있어서, 일단 내각관방이 자칭하고 있으며, 이제는 백악관 공문서에까지 오르곤 한다. 대부분의 초상관계기관은 관저에 요원을 파견하고 있으며, 용무가 있으면 대개 요원이 4층에 얼굴을 비친다. 4층에는 각료집무실이나 대회의실 등이 집중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초상관계정책의 행정집행자의 방이 섞여 숨어있기 때문이다.
 호소야 코우지는 내각총리대신 국가안전보장담당보좌관으로서 2년차이며, 재임 중 국난이라 불릴 만한 사건도 많이 겪어 보았다. 그리고 재단이나 세계오컬트연합. 일본초상조직평화우호조약기구JAGPATO(작파토) 같은 정상성 수호기관들과의 연락절충 및 정부 내 초상관계기관들의 조정역으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일에 쏟아붓고 있다. 그 개인의 고민은 대개 그 근처에 기인하고 있는데, 결혼이 목전인 약혼자와의 소원함이 바로 그 고민거리다. 일이냐, 여자냐, 중혼은 위법이다, 라고 얼마 전 상대측에게 경고를 받은 직후였다.
 현재 시각은 오전 10시 반. 그의 몸은 오오사키의 자택을 떠나, 가죽의자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네에, 그 건은 이미 총리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호소야는 세 번째의 휴대전화가 울리면 바로 비서를 내쫓는 습관이 있다. 충실한 부하는 그러니저러니 5분을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으로 1, 2분 안에 해방될 전망이다.
「……아뇨, 지금으로서는. 하지만 조만간 있겠죠. ……네에, 감사합니다. ……반드시. 지금 공안이 깊숙히 들어가 있습니다. ……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통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휴대전화를 접어 책상 위에 내팽개친다. 눈을 감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자연스레 시선은 천장을 향한다. 곧은 나뭇결에 아무 특이점이 없는 천장. 실제로는 이 방 곳곳에 도청기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의 멍청한 얼굴도 당연히 보일 터.
 좋을 대로 보라지, 라고 호소야는 생각했다. 작년 말의 간부자위관 살해사건・러시아인 외교관 살해사건 이래로 초상행정계 주변은 계속 술렁대고 있다. 관저는 그 한가운데서 거친 파도에 맞서는 한 점 조각배와 같다. 재단, 혹은 연합, 혹은 양측이 손가락을 까딱하기라도 하면 이곳은 당장 주민 총원이 교체될 것이다. 총체로서 인류가 가지는 제헌권Species' Constituent Power. 일반협정. 이 나라는 그것들에 절대 이길 수 없다.
 수상보좌관은 마음을 결정하고 신체를 일으켰다. 그렇기 때문에, 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는 그가 일하는 곳이다. 지금이야 관저가 저들의 집회소 같은 꼬라지지만,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 일어나자 방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나가 있어야 할 시각을 넘겼다.
「미안하네. 자네를 다시 부르는 걸 깜빡했어」
 비서에게 사과하면서 현관을 나섰다.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도보 9분 거리를 부러 관용차를 타서 단축해야 했다. 4분만에 중앙당사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내각관방의 담당관료인 엔도와 합류한다.
「수고가 많습니다. 호소야 선생」
 정문의 자동문을 통과하자, 한 기수 후배인 아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년 경산성 정무관으로 임명된 후배는, 파벌 영수의 아들로서 지역구를 물려받고, 극진히 비호를 받는 당의 호프 중 한 사람이었다.
「아아, 이봐. 점심은 벌써 마쳤나?」
「아뇨, 아직입니다. 호소야씨는요」
 아직이지만, 이라고 말하고 호소야는 위를 가리켰다. 지금부터 부회・조사회의 합동회의에 출석할 예정이라, 식당에 갈 여유가 없다. 물어본 것은 인사치레일 뿐이었지만, 「그렇군요」라며 아시마는 유감스러운 듯 쓴웃음을 지었다. 정무관인 아시마가 당본부에 와 있다는 것은, 그도 무언가 당무에 볼일이 있음일 터.
「부회 멤버들과 식사하십니까」
「그럴 시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만」
 엘리베이터에서 아시마와 헤어지자, 이번 회의의 아이보가 되는 엔도가 수첩을 펼쳤다. 합동회의에서의 의제에 대해 다시 한 번 가볍게 강의가 있었고, 플로어에 이르자 이미 대의원들이 복도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부회 개시 시각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회장이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왠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호소야는 회의를 빨리 끝내기로 결심한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오, 하며 중년 남자들이 돌아보았다. 훈증식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은 전 방위부대신이자 3기수 선배 의원인데, 이번에 국방부회장대리로 취임했다. 각료를 경험했으니 그 다음은 고문을 맡아야 하지만, 당내 계파간의 조정과 앞 기수 선배분들이 발목을 잡아 이번에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은 잘 좀 부탁하네」
 예. 하고 호소야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오늘의 그는 이 자리에 ──총리의 대리인으로서 참석한 것이다. 엔도는 성실하게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먼저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자 곧바로 회의실로 들어가 사라졌다. 오늘 회의와 일련탁생할 젊은 관료인 호소야는, 며칠 전부터 회의자료 작성에 바빴다.
「그럼, 정각이 되었으니 개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야마카와山川 사이지犀治 국방부회장이 들어온 것은 개회 직전 타이밍이었다. 안전보장조사회장과 부회장의 인사치레가 있고, 곧 방위성의 관료들과 호소야의 차례가 돌아온다. 몇 가지 안전보장정책에 대하여, 방위성과 내각관방이 설명을 한다는 것이 이번 회의의 주요 테마였다.
「그럼, 호소야 수상보좌관께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각총리대신 국가안전보장담당보좌관이라는 문자열이, 그의 이름표에서 가장 번쩍이는 직함이었다. 수상의 신임을 얻은 국회의원으로서, 호소야는 안전보장정책의 중추에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부회 멤버들의 질문은 손속이 없었다.
「고액의 예산이 할애되는 이상, 부회에서는 어려운 정밀조사를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야마카와 부회장 앞에, 엔도와 호소야가 만들어본 예상질문집은 거의 무력했다. 하지만 꼼꼼한 자료작성이 그래도 빛을 발해, 자료를 참조해가며 응답을 만들어가는 식으로 회의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겨 계속되었다. 종반에는 신경이 닳아버린 엔도는 안경을 잘못 쓴 채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게 되었다.
「그럼, 이상으로 산회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자리를 뜨는 의원들에 섞여, 호소야도 방을 나갔다. 이제는 또 관방으로 돌아가서 법안을 작성하고 결재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문을 통과한 순간, 「어이」 하고 낮고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이 그를 저지했다. 엔도가 놀라서 돌아보니 야마카와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권유에 호소야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이제 다시 관저로 돌아가나?」
「예」
 엔도는 야마카와와 점심을 함께하는 사태를 상상한 듯, 아주 조금이지만 얼굴을 밝혔다. 호소야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국방부회장은 그것을 눈으로 재빨리 알아챘다.
 단련이 필요한 젊은이구만, 이라고 야마카와는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소감을 밝혔다. 40대 중반의 호소야는 당내 들 가운데서는 아직 젊은 축에 든다.
「회합까지는 앞으로 삼 주 정도인가」
「예에, 준비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나도 이 건은 큰일이라. 아무튼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고」
「아아, 그러셨습니까. 아직 들은 적 없습니다」
「그런가, 연락이 늦으면 곤란하군」
「언제나 그러니까요」
 정말 그렇지, 라는 판에 박은 위로의 말을 건네며, 야마카와는 호소야의 귓가에 다가갔다. 수상보좌관은 조금도 떨지 않고, 빈틈없이 시선을 옆으로 미끄러뜨린다.
「잘 좀 해 달라고. 새가 떨어지느냐는 선생 하기 나름에 달렸으니까. 회합 때 즈음에는 결착이 나야 하지 않겠어」
「충고 황송합니다. 야마카와 선생께서도 부디 힘내십시오」
 몇 가지 뉘앙스가 섞인 애매모호한 웃음이 국방부회장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엔도는 대화에 따라가지 못해 곤혹스러운 모습이지만, 이 대화가 그렇게 단순히 머리를 비집어 넣어도 되는 일이 아님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이만, 언제 또 보세」
「네. 그럼, 실례했습니다」
 가볍게 인사하고 호소야는 회의실을 나선다. 그 뒤로 야마카와의 시선이 화살처럼 꽂혀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엔도군, 밥 먹으러 가지」
 뒤에서 졸졸 따라온 관료는, 기다렸다는 듯 위세 좋게 대답한다. 호소야는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가 그것을 즉시 지워냈다.
 속편히 지낼 수 있는 것도 지금 뿐이다. 호소야나 야마카와 어느 한 쪽이 며칠 뒤에는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승산은 충분하지만 정국이 단순하지 않다. 룰이 무용한 생존경쟁, 정상성 수호기관과의 다툼에 몸을 던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돈카츠 덮밥으로 할까. 잘 하는 곳을 내가 아네」

 
 

서력 201█년 1월 7일

직원제위

재단 일본지부이사회 막료부
관리총국 인사교육국 제1부 발령과
과장 후키아게吹上 마코토

 
 

인사이동보고

 
 

인사이동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통지한다.

 
 

아  래

 
 

1. 인사이동

 

서력 201█년 1월 7일자

 

운노海野 이츠미一三 제8181기지 첩보기관 케이스오피서
사이토西塔 미치카道香 상동

 

상기 2명에게 제8100기지 일본지부이사회 막료부 정치국 행정감독부로의 파견근무를 명한다.

 
 

이상

 

 


 

「정치국으로…… 파견이라」
「무슨 짓 했냐 너」
 태평한 어조로 나를 툭 치는 사이토 역시 정치국으로의 파견을 명 받은 인간이다. 예년보다 긴 연말연시 휴가를 마친 우리를 기다린 것은, 사무실에 붙은 한 장의 통지서와 치워진 책상이었다. 휴가 전에 필사적으로 처리했던 서류더미가, 거짓말처럼 깨끗이 다른 사물들과 함께 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지랄인가 의심했던 나였지만, 이 서면을 보고 겨우 납득이 되었다.
 이것은 조직이 하는 지랄이구나.
「오 느그덜, 분하겠지만 한 발 늦었구먼. 느덜 책상들 내용물은 정치국 놈들이 거의 다 갖고 갖다. 이제 제8100기지 로 배치전환한다는 지령도 웃기지」
 반장은 의젓이 우리의 어깨를 두드린다. 평소에도 귀찮은 안건들을 물고오는 우리들이 사라져서 가장 기뻐할 인간은 바로 이 남자일 것이다. 비특정조직전담반은 잠시 제8181기지 첩보기관의 기간업무 로테이션에서 빠지고, 광역사령부 직속조직으로서 보조임무에 충실하게 된다는 모양이다. 즉, 일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 혜택을 우리들은 받지 못한다. 그것이 초래된 원인은 우리에게 있을 터인데.
「죄송하지만, 정치국이라 함은……」
 나는 이 인상도 저의도 못되먹은 미소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모나지 않게 질문을 날렸다. 재단의 상세한 조직단계 따위, 간부교육을 받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기밀사항 1정목이니까.
「모르겠구만. 정치개입 전문부서 아니겠냐」
 얼마 전에 정치국 담당자하고 술 마시러 갔었는데, 일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재단에서는 흔한 일이다. 필요지의 원칙이 커뮤니케이션을 압도한다.
 나는 다시 한번 이동통지서를 내려다보았다. 제8100기지라 하면 일본지부이사회 본부시설이 존재하는 기지다. 이사회 직속 보필기관인 막료부에 소속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딴 시설이 제대로 된 위치에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신분이 제8100기지 지킴이가 된다니, 어쩐지 「업무상의 죽음」의 은어 같아서 께름칙했다.
「뭐어, 힘내라고. 나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오기로라도 돌아와주마,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미소로 배웅당한 우리들은, 마중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기지 지상시설 현관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간신히 밝아온 새해는, 현재로서 최악의 출발이었다. 세상에는 연말연시가 없는 직업이라는 것도 있는 만큼, 이 정도 처사는 그래도 아직은 인도적일지도──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데,
「웃기지 말라 그래 그 꼰대 정강이 털을 다 뽑아버릴 테다」
 이렇게 벼르고 계신 분도 있다.
 손목시계에 눈길을 떨어뜨려 보니, 아직 오전 10시였다. 출근하고 1시간만에 임지가 바뀜은 효율성과 유동성을 추구하는 재단 조직 특유의 현상이다. 그 결과 까닭 모를 벽지에 갑자기 날아가게 생겼다는 점에서 오히려 미개하기 그지없는 조직이지만.
 마중은 5분이 되지 않아 도착했다. 그냥 검은 승용차──국산차 세단은, 공용차라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이사회 슬하의 마중인가, 우리는 카구야히메마냥 긴장한 표정으로 정차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이 자동적으로 열리고, 안에서 「타요」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실례합니다」
 나는 사이토를 뒷좌석 왼쪽에 먼저 태우고, 뒷좌석 오른쪽에 앉아 후시경에 반사되는 운전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낮은 앉은키로 간신히 차를 운전하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놀란 나머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내 옆에서 사이토는 「오이오이오이……」 하면서 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맨 것인지 모를 안전벨트를 당겨 늘린 여요원이 몸을 뒤로 내밀었다.
「이봐 아가씨.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면허 딸 수 있잖아」
「여중생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의 동료 또는 상사입니다」
 하아, 라는 반응으로, 우리들의 선배님이 불쾌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뒤돌아보는 여중생──쿠루스来栖 사쿠야朔夜라는 이름의 요원은, 적어도 사이토보다는 운전을 잘 했다. 현재로서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그 정도다. 그리고 카오디오에 딕시랜드 재즈를 계속 틀어놓음으로써 동승자를 잠에 빠뜨릴 수도 있는가보다.
 저거 진짜로 밈이 섞여 있거나 한 거 아닌가 몰라.
「도착했습니다」
 거기는,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나라의 중심이었다.
 치요다구 키오이정의 빌딩 안으로 들어간 차는, 입체주차장 엘리베이터에 삼켜져 간다. 아마도 지하에 숨겨져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직 목적지를 모른다. 아무래도 제8100기지로 가는 길은 아닌 것 같다, 거기까지는 슬슬 감이 잡히는데.
「여기는」
일본초상조직평화우호조약기구JAGPATO(작파토), 그 본국 소재지──일에 착수하기 전에, 우선 만나야 할 인간이 있습니다」
「만날 사람이라, 그런데」 사이토는 앞좌석에 손을 걸치고 운전수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결국 당신은 뭐지. 소속은」
 그 몸짓이 너무나도 버릇없어서인지, 쿨쿠스는 몸을 움츠렸다. 앞유리 너머에서는 콘크리트에 처박힌 닻들이 규칙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거기에 희미하게 비치는 모습은, 역시 소녀에 다름아니다. 대화가 서툴러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싫어하는. 요원 쿠루스에게는 대인공포증 기가, 아주 가벼운 것이겠으나 있는 듯했다.
「어이어이, 우리 이름이야 이미 그쪽에 밝혀져 있다고」
「자자, 사이토씨」
「기록정보보안행정처」
「에?」
「라이사에서 나온 요원입니다」
 그녀가 이름을 댄 기록정보보안행정처Security AdministrationRecord And Information, 라이사RAISA라고 호칭되는 조직은, 기밀관리를 일원적으로 담당하는 한편, 그 존재 자체도 기밀로 되어 있다. 재단 내부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기밀을 해금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 명칭을 보게 되는 조직이지만, 그 실태를 아는 자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쿠루스는 라이사로서의 직무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하기야 전담직원은 원래 이런 자리에 나올 일이 드물 것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것은, 관리총국의 정치국장입니다」
「우선 상사에게 마수걸이부터 한다는 건가」
 어느 정도 기분이 좋아진 사이토는 앞서 가는 쿠루스를 머리에서 내리누르기도 했다. 멋대로 여동생 같은 취급을 당한 라이사 요원은, 키를 물어보자 「기밀입니다」라고 발뺌했다. 라이사는 가드가 단단하구나, 라고 사이토는 감명받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경미하지만 대인기피증을 가진 인간에게 를 거듭하고 있는 내 동료님은, 이윽고 거리를 노골적으로 빼앗겨 버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입니다」
 정치국장의 비서관이라고 밝힌 남자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뭇결이 있는 문을 열어젖히자 미지근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인다. 동시에 부드러운 융단의 감촉이 가죽구두 너머로 전해져 당돌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발을 내딛자 거기에는 지하공간이라는 어감과는 거리가 먼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높이가 10 미터 이상은 되어 보이는 천장과 거기 매달린 샹들리에, 여기저기 보이는 격조 높은 가구 등이 고급 호텔의 접수처를 연상시켰다. 보기에는 이렇지만, 재단과 세계오컬트연합과 일본 정부의 삼자협의의 장으로서 정비된 이상, 보기보다 시큐리티는 단단할 것이다.
 비서관이라는 남자가 입고 있는 신사복도, 우리들의 작업복과는 가격이 아주 다를 것 같은 물건이었다. 정치가인지 외교관인지의 비서인 이상, 그 나름의 옷차림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업용 미소를 띄운 남자는 연령도──어떠면 국적도── 판별하기 어려워 기묘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재단 일본지부의 중추에서 일하는 관료들이란 이런 인간들이구나 싶다.
「국장님, 세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들라」
 재단 작파토대표부라고 인각된 문패가 달린 문이 열리고, 거기에는 다다미 30장 정도 크기의 응접실이 있었다. 집무책상에 앉아 있는 은발의 남자가, 우리를 보자마자 일어섰다. 쿠루스와 키재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작다. 하지만 그 신장 이상으로 눈길을 끈 것은 화려한 색의 신사복이었다.
「노란색……」
「어서 와, 잘 왔다. 자아, 앉아──아니, 미안하게 됐어. 연초부터 갑자기 이동 같은 걸 시켜서. 뭐, 필요했으니 부른 것이긴 하다만──자, 앉아 앉아」
 튀는 색에 뒤지지 않는 성량과 표정의 힘에 우리는 벌써 기가 죽었다. 쿠루스는 아까까지의 요원하는 태도가 일변, 기세가 눌리다 못해 겁을 먹고 있다. 사이토는 그런 쿠루스를 재미있게 관찰하느라, 눈앞의 정치국장의 장광설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그래, 통성명이 늦었군. 나는 카시오카菓子岡 코지카仔鹿. 막료로서 정치국장과 작파토대표부 전권대사를 겸임하지」
 화려한 남자의 명함이 내밀어졌지만, 나는 그 한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보기만 해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첫 인상의 모든 것이 수상쩍은 간부는 우리들의 미묘한 표정을 살피고 첨언한다.
암호명코드네임이야. 정치국은 바깥과 통할 일이 많지. 자네들도 갖고 있잖나」
 과연 그렇군요, 라고 말하긴 했어도, 나는 재단 내부용 명함 같은 것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은 사이토도 쿠루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카시오카는 겨우 거기에 생각이 미쳤는지, 「실례실례」 거리며 머리를 긁었다. 「아무래도, 정치바닥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명함교환이 당연해지는 거라」
 재단은 거대조직이다. 우리가 모르는 관습을 때로 마주할 일도 이렇게 있다. 카시오카는 소소한 배려가 능숙했다. 농담을 털면서 우리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하고, 사이토도 이 위태로운 토크에 기민하게 대응한다.
 몇 분 사이에 우리는 이 남자의 보기 드문 화술의 재능을 마음껏 맛보았다. 오로지 쿠루스만이 경계심을 무너뜨리지 않고, 적은 말수로 카시오카의 이야기만 경청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카시오카는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을 일으킨다.
「자네들을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고 『쏙독새』夜鷹에 관한 안건 때문이다」 우리가 전에 쏙독새부대와 함께 돌아다닌 것을 칭찬하기 시작한 정치국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몸을 일으켰다. 「곧 재단 작파토대표부는 쏙독새부대에 대한 비난성명을 낼 거다. 자네들이 막지 못했던 그 통신부대 간부 건으로 말이지. 그 사안을 쏙독새부대가 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해서 제재를 내리는 거다」
「조약위반이라, 하지만 제재대상은 쏙독새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되겠군요」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어. 작파토에서 대표권을 가지는 것은 일본 정부 자체다. 그들이 제 식구인 쏙독새의 처벌에 동의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겠지」
 예에, 뭐. 하고 나는 수긍한다. 일본 정부측 작파토대표부는 국가안전보장국 산하에 설치되었고, 수상관저가 장악하고 있다. 만약 제재를 요구한다면 재단은 일본 정부에게 자벌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정부의 일부 고관들과는 벌써 협의를 끝냈지. 구체적으로는 쏙독새의 해체까지 바라보고 있다」
 쿠루스는 놀란 모습으로 등받이에 몸을 맡긴다.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여 정치국의 움직임은 급격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와 공동으로 외교수속을 진행하는 부서가 있다는 것은, 평직원이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카시오카는 자신감에 가득찬 태도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한다.
「정치국원들은 그들에게 주문을 하고 조종하는 데는 일류지만, 공동으로 수수한 조사활동을 하는 데는 완전히 초짜다」
「그래서 저희들이」
 수수한 수사활동이라는 말을 들은 사이토는, 조금 콧대가 찌를 듯 높은 카시오카의 언동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막료는 그 기분을 살피고, 기분나빠하지 말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떡은 떡집에 맡겨야지. 프로페셔널인 자네들에게 경의를 표함세. 이사회에 조약위반 증거를 수집할 인원을 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기대 이상의 인재들을 보내주다니. 첩보활동 전문가 두 명에, 요원 쿠루스는 라이사의 재량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지」
 카시오카는 양손을 모아 비비면서, 친척 큰아버지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라고요」
「뭐어, 그래, 우선은, 그 살인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봐줬으면 좋겠군」
「언제까지」
「서류작성 포함해서 3주. 그래서 나온 1차 보고서를 우선 방위계획위원회에 제출할 거다」
「또 급한 얘기네요」
「그런 전술이다. 피아 모두 조사능력이 열려있기 때문에 가능한 억지이지만. 회합은 3주일 후로 설정되었으니, 쏙독새──정부 쪽에도 시간은 3주일밖에 없다」
「1차, 라는 것은」
「그건 확실히 세계오컬트연합이 반대한다. 최초 보고서를 낸 단계에서는 필히 그렇게 된다」
「그러니까 감촉을 한 번 더 확인한 후에, 보고서를 한 번 더?」
「그렇지」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장지뱀이 무사하다는 말을 들은 막료는 미묘한 태도를 취했다. 과거에는 함께 일했을 텐데, 끈질긴 파충류의 생존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자네들도 필히 고생하게 되겠어」
 일어서서 악수를 요구받은 나는, 하아, 하고 애매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사건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키오이정을 떠난 우리는 그 길로 치바현 카시와시──과학경찰연구소로 향하고 있다. 경찰청 특사조사부의 연구기관인 과경연 제5부에는 작년 12월 살해된 통신부대 간부 이누야마 토우스케의 시체가 수용되어 있다. 시체의 관할권은 완전히 저쪽에 있지만, 카시오카의 주선으로 우리는 그 시체와의 대면을 허락받았다. 결국 이것은 특사경찰과의 공동수사가 된다.
「이누야마는 인식재해무기로 스스로 목숨을──끊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작업당한 것인지는 불명. 현재로서 밝혀진 것은 그것이 쏙독새에 의한 것인 것 같다, 는 것 뿐」
「이누야마의 죽음을 통보해온, 특사과에 걸려온 전화도 결국 누가 건 것인지 불명이니까요. 그것만 알면 이 사건의 배후관계가 드러날 것인데」
 시각은 이미 오후 다섯시를 돌고 있었다. 도심에서 한 시간 미만 거리로 도착한 과학경찰연구소는 흐린 날씨의 어두운 색 가운데 홀로 황황이 불을 밝히고 있다. 다시 쿠루스에게 안전운전을 맡긴 가운데 사이토는 계속 자고 있었다. 운전하겠냐고 물었지만, 촬영기재를 가지고 있으니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연구소 지하시설에는 법과학 제5부의 랩이 있다. 오자마자 촬영기재를 압수당한 우리는, 계원에게 대드는 사이토를 뜯어말려야 했다.
「영안실에 들어간 뒤에 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본진에 들어와선 몰래 촬영 같은 쓸데없는 짓을 하려고. 무다다조」
 이쪽이 세 명인 반면, 특사조사부 관련인원으로 보이는 경관은 다섯 명이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연구원다운 백의를 걸친 남자가 손님을 맞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 이쪽으로」
 노골적으로 적의만만인 경관들과 달리 신사적인 대응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감시시스템을 몇 개나 지나온 우리들이지만, 얼굴과 지문이 기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시 기명거부의 밈이 신체에 각인되어 있다. 요주의 단체 시설을 방문할 때 기본적인 장비로서, 교질 에 의한 저주패턴을 전신에 달리게 하는 것이다.
 나는 얼굴에 그걸 바를 필요가 없다.
「망막 내부에 새겨진 인식재해의 을 해독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과거 몇 건 확인된 정체불명의 현실개변 능력자 살해와 비슷한 패턴으로 밝혀졌습니다」
「쏙독새부대가 개입한 것으로 지목된 사건입니까」
 그렇다고 연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쏙독새부대의 활동에는 수수께끼가 많아, 재단마저도 그 포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활동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가장 빈번히 활용하는 것이 작파토의 데이터베이스인 일본특이례보고였다.
 정부 산하 초상기관 상당수는 이 데이터베이스에 성실하게 사건들을 등록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잘 조사하다 보면 출처가 불분명한 위협존재 청산에 관한 안건이 섞여 있는 것이다. 대부분 현실개변 능력자나 마술사의 살해였는데, 그 방법으로 보아 세계오컬트연합과는 다른 조직의 활동에 의한 것으로 단정되고 있었다.
 즉, 그 사건들은 쏙독새의 작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살해당한 것은 『인간형 위협존재』컬러즈(colors)도 아닌, 그저 한낱 인간이다. 이것은 청산이 아니라 단순한 살인이라고 불러야 옳다.
 카시오카는 이번 제소로 인해 세계오컬트연합이 쏙독새를 변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었다. 세계오컬트연합──그 극동부문은 성립 과정 자체가 재단 일본지부에 대한 카운터의 색채가 강하다. 재단에 흡수된 수집원을 떠난, 반재단적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은 자들 대부분은 극동부문에 몸을 맡겼다.
 작파토에서 일어나는 분쟁 중 다수는 재단과 세계오컬트연합 양자의 변칙존재 대책활동의 방향성의 차이에 의한 것이다. 이항적 갈등이 상시화되는 가운데, 이들은 모든 장면에서 서로 반목한다. 정치투쟁은 즉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계 초상기관이 현실개변 능력자 사안에 대처할 때 이용하는 무기와는 다른 계통입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미국계 초상기관이 이용하는 쪽에 가까울지도」
「하지만 이건 결정적 증거가 못 된다. 재단의 랩과 비슷한 견해입니다」 쿠루스는 자료를 몇 개 정리하면서, 딱히 누구 들으라 고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객관적인 증거에 기반하면, 쏙독새가 한 짓이 맞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돌아갑시다. 라고 라이사의 사자가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이 연구소에서 수확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이토는 특사과 형사들과 무언가 대화하고 있지만, 어차피 또 협박이나 다름없는 생트집이 틀림없다.
「뭐야, 너도 있었냐」
 방구석에서 선배 요원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그 자리의 모두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오오야大屋 형사. 어째서 여기에」
「아? 너는…… 누구냐」
 역시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특사과 베테랑은 앵겨오는 사이토를 뿌리치고 노안경을 썼다. 그런 말을 한 시점에서 이미 내 얼굴을 떠올릴 리는 없지만. 오오야는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아, 이 여자의 부하냐」
「역시 모르잖아, 네녀석」
 어째서 여기 있냐는 내 물음에 노령의 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위로부터의 지시, 라면서 우리에게 클리어파일을 내밀었다. 안에는 이누야마 살해사건에 관련된 수사자료들이 한 다발이었다.
「그쪽은 전자데이터는 받지 않잖아. 일부러 인쇄하느라 욕봤다」
「세심도 하셔라」
 물 흐르듯 내 손에서 파일을 빼앗아간 사이토는 그 내용도 훑어보지 않고 가방에 처넣는다. 읽지 않냐고 묻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로는 읽지 않기로 했어」
「이 놈은 이미 그쪽의 검역을 마친 거다」
「무슨」
 사이토는 파일을 다시 꺼내서 눈을 부라리며 그 표지를 바라본다. 눈을 부릅뜨면 재단 밈정보재해 부서 검역필 도장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이미 타불라 라사1에 의해 무해함이 검증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들 외에도 수사에 종사하는 인간들이 당연히 있겠지만, 경찰과 공동전선을 펴다니 움직임이 재빠르다.
「내가 아는 경찰이란, 보다 관공서적으로 둔중한 것입니다만」
「『위의 위의 위』에서의 지시요. 당신들에게 무엇이든 협력하라는」
「위의 위의 위……」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고위의 사람들에게서 내려온 것이라는 것만 알 수 있는 대답. 계급사회에 속한 인간을 운용하는 방법을 속속들이 아는 인간의 짓이다. 감탄하고 있는 나는 뒷전으로 하고, 사이토와 쿠루스는 파일의 내용을 이미 음미하기 시작했다.
「당신네들은 별건에 미혹되어 버리곤 하지만, 우리는 보다 끈기 있게 조사하는 성질의 조직이라」
 쿠루스의 머리 위에서 오오야가 파일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누야마가 죽은 날의 행동이 샅샅이 조사되어 있는데, 이 내용은 2에게 맡기면 하루도 안 되어서 이해할 내용이다. 고인의 행동을 확인하는 작업──만약 내가 현역 형사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좀 무거워진다.
「잘 조사했네」
「경찰이니까」
 그 날──이누야마는 여느 때처럼 오전 8시경 이치가야의 직장에 출근했다.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예정이 잡혀서 급히 오후에 유급휴가를 냈다. 이후 약 한 시간 반의 공백. 그리고 오후 2시경 인식재해로 자신의 경동맥을 끊었다.
「오후에 중요한 예정이라. 이누야마의 수첩에 오후 두시에 내 목을 찌른다 뭐 그런 일정이라도 있으려나?」
 사이토의 불근신한 농담은 무시하고, 오오야는 뻐끔히 비어 있는 오후 0시 반부터 오후 2시 전까지의 시간을 가리켰다.
「이 공백의 한 시간 반, 여기에서 인식재해에 걸린 것이겠지」
「돌아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시간을 확실히 하면──」
「이 시간의 이누야마는 도심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우리 쪽에서도 확실히 파악된 것이 없습니다」
 드물게도 쿠루스가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이미 파일을 둘러싼 고리에서 벗어난 라이사 요원은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묘하네, 라고 사이토가 눈짓을 했지만, 키 작은 요원은 이미 문 저편으로 사라졌다.
「왜 그럽니까, 쿠루스씨」
「그 시간의 이누야마의 행동에 관해서는, 우리도 이미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했던가요」
「아니, 그래서 모른다는 것으로 조사가 끝났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AIC조차도 조사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라고 나는 탄식한다. 결국 여기서 얻은 수확은 쏙독새가 쓴 인식재해무기의 종류와 피해자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몇 시간 동안의 상세한 행적 뿐이다. 보고서 내용을 불리는 데는 쓸 수 있겠지만, 쏙독새의 관여를 확증할 만한 증거는 안 된다. 그런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는지, 쿠루스는 한숨을 쉬며 다음 말을 이었다.
「좀 제대로 된 곳을 맞혀 봅시다」
「어딘데요」
「쏙독새의 컷아웃 아닐까. 아직 심문 중이다」
「명안입니다」
 사이토는 이런 곳에서 묘하게 기억력을 발휘한다. 내 어깨를 쿡쿡 찌른 뒤 차에 올라탔다. 아까는 신경이 꽤나 곤두섰던 것 같지만, 발걸음도 가볍게 운전석으로 향한다. 빈손으로.
「사이토씨, 촬영기재는?」
「아, 」

 

 괴물이 입을 벌린다, 고 나는 생각했다.
 육중한 강철 게이트는 금속끼리 서로 마찰하는 불편한 소리를 내며 상하로 나뉜다. 제81JA기지는 구금 중인 요주의 인물들이 다수 수용된 기지인지라, 그냥 감옥에 방폭문 여러 장을 덧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수용시설 입장신청은 쿠루스 덕분에 금방 통과했지만, 실제 현장에 도착한 뒤가 힘들었다. 소지품 검사니 검역이니 하여, 저위험도 객체 수용시설 이상의 경비체제가 깔려 있었다.
「어이어이어이, 도대체가 얼마나 숨겨 놓은 거래, 이거」
「앞으로 2분 정도는 이 엘리베이터에 탄 상태로 유지입니다」
 진짜냐, 라며 사이토는 페트병의 물을 마신다. 그녀가 어떻게 반입을 허가받은 음료수는 아마 어제 사서 마시고 있던 것이다. 내가 관측한 바, 최장 사흘간 같은 페트병의 물을 마신 적이 있다.
 헛빵이었던 과경연 출장으로부터 아직 반나절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국은 모든 부서에 증거수집 협조를 요청했는지, 지금 향하는 제81JA기지는 원래 보안부와 내부보안부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다.
「담당자가 야카인가보군」
「아는 사람입니까」
「정직하고 치열이 예쁜 것 외에는 쓸모없는 새끼야」
 쿠루스가 뭔가 바보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사이토의 인물평만큼 못 믿을 만한 것이 없지만, 의외로 이것이 정곡을 찌르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쿠루스는 몇 분 후 그 사실을 통감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타이밍에 왔다고, 자네들」
「죄송합니다, 야카 심문관. 하지만 보고서 제출이 늦어지고 있다 하셔서」
 나는 애써 저자세로 눈앞의 중년남에게 종이를 건넸다. 우리들의 기밀접촉자격을 증명하는 서류다. 야카는 사인을 마치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 야카八家 쥬지十次는 고무 앞치마를 옷걸이에 걸고, 방구석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이 방에 의자는 그것 하나밖에 없다.
「차라도 내오쇼」
「난 커피밖에 안 마신다. 자판기는 지상이다」
「하여간 씨발 열받게 하네 당신」
 사이토가 시비를 걸었지만, 야카는 익숙한 모습으로 무시했다. 책상 서랍이 열리고, 파일을 꺼내서 우리에게 내민다. 그것은 야카 쥬지가 담당중인 안건──쏙독새부대의 컷아웃에 대한 심문기록이었다. 침습적・비침습적을 가리지 않는 심문의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그는, 이번에도 예와 같이 그 수완을 발휘한 듯했다.
「일은 제대로 해냈다. 그는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을 토해냈어. 이누야마를 죽인 것은 쏙독새에 있는 스즈키鈴木라는 이등육좌의 명령이다. 사용한 무기에 대해서도 증언했다──는 건데」
「뭔가 있었습니까」
 야카의 거동에는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평소에 꼼꼼한 인간임은 방이나 꼴로부터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손님이 올 줄 알고 있다면 의자를 여러 개 준비하는 정도는 하는 남자인 것이다.
「오늘 중으로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방금──」 심문관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방의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우리들이 들어온 문과는 별개로, 심문실로 통하는 문이다. 「그의 『지뢰』를 밟아 버렸다. 주의가 부족했어」
 문에서 나온 것은 거대한 검은 자루를 둘러멘 방호복 차림의 인간들이었다. 둘이 합심해 들것을 나르던 방호복들은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어디론가 가려 한다. 황급히 쿠루스가 그들을 불러세우고, 야카 쪽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설명을 부탁합니다. 야카 심문관」
 사이토는 시체 자루의 지퍼를 열었다가, 입 위가 없는 시체를 대면했다. 이제 얼굴을 확인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야카의 심문실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예의 컷아웃이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찢어진 혀가 축 늘어져, 탄화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고통 없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직전까지 야카에게 심문을 받고 있었으니.
「우와아, 폭탄?」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의 죽이 펀치라인는 무엇이었습니까」
 파일을 내린 쿠루스는 다시 야카에게 물었다. 보고서에는 그가 최후에 사망한 사실이 아직 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딱히 감출 생각도 없어 보이지만, 참고인 한 명이 죽은 것은 중대 사안이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보는 편이 좋다」
 야카가 일어나서 장화와 고무장갑을 벗었다. 작업복 아래에는 말끔한 양복을 받쳐입고 있어, 좋은 체격까지 더해지니 얼핏 보면 현장요원 같은 외모가 된다. 「격투기는 전혀 배운 적 없어서 말이야」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심문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경우에 따라서 당신은 재단 내규를 위반한 것이 됩니다」
 보안부 사무실로 향하는 도중, 쿠루스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야카가 의도적으로 컷아웃의 사망을 전달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재단에 대한 반역행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남자는 조금도 꿈쩍 않고,
「그럴 생각은 없다. 그의 머리통이 날아간 건 자네들이 오기 10분 전 일이었다」
「어째서 우리에게 즉각 연락하지 않았지요」
「쓸데없으니까. 나로서도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고. 어차피 자네들은 심문 영상만 받아가면 그만이잖나」
「그렇다고 해도──」
「도착했군. 영상 확인이나 하라고」
 쿠루스는 최대한 불만스러워하는 얼굴로 야카의 등을 노려본다. 한 발 늦게 들어온 사이토는 앞선 대화를 듣지 못했기에 라이사 요원이 보로통해진 것만 재미있어했다.
「웬일이야」
「정말 좋은 점이라고는 치열밖에 없네요, 저 사람은」

 

등록명칭: 재단 일본지부 지정 요주의 인물 ████████호에 대한 청취의 영상기록
심문담당자: 재단 일본지부 첩보기관 대외정보국 분석부 심문과 야카 쥬지 정보분석관
심문대상자: 재단 일본지부 지정 요주의 인물 ████████호 (본명 ███ ████)
실시일: 서력 20██년 █월 ██일
장소: 제81JA기지
영상시간: 9시간 10분 42초
부기: 심문대상자가 특정정보제어프로그램에 의해 머리가 파괴되어 즉사. 이상 상황에 의하여 심문은 즉시 중지.

 

[재생개시]
[09:3:17]


 

심문자: 슬슬 때가 되지 않았냐. 정부나 재단이나 어느 조직도 대단한 가치는 없다고 인정하기 좋을 때지.

대상자: [10초간 침묵]

심문자: 돌아가면 당연히 너는 입막음을 당할 거다. 그 의미는 알겠지. 네 혀를 뽑는 정도로는 그들은 안심하지 못할 테니까.

대상자: [5초간 침묵]

심문자: 넌 이제 썩은 사과다 이거야.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쏙독새』 패거리들한테 그렇겠지.

[대상자는 얼굴을 들어 야카의 얼굴을 바라본다]

심문자: 어쩔래. 재단이라면 너에게 새로운 인생을 약속할 수 있다. 안심하라고. 예컨대 네 머릿속에 원격조작식 폭탄이 박혀 있다손 쳐도, 그거 제거하는 정도는 간단한 일이다.

[대상자는 고개를 작게 가로젓는다. 떨고 있다]

심문자: 스즈키 이등육좌 이야기를 했군. 고맙다. 그 사람──쏙독새부대의 작전 일부가 드러난 것은 큰 진전이다. 그리고 너에게도.

대상자: 나는 이제 더 아무것도 모른다.

심문자: 그러냐. 너의 뇌파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심문자는 태블릿을 보여준다. 머리에 장착된 뇌파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솟구쳐 있다]

대상자: [3초간 침묵]

[심문자는 태블릿을 내려놓고, 살해된 올렉 바락신의 사진을 보여준다]

심문자: 같은 길을 가고 싶은 건가? 우리가 손을 쓰기 전에, 먼저 이 나라가 너를 죽일 걸.

대상자: 우리는 야스쿠니에는 못 가지만, 쏙독새는 동료를 잊지 않는다.

심문자: 그러냐, 멋진 조직이군. 그럼 다시 묻지. 그 훌륭한 쏙독새부대에서 이누야마를 죽여도 좋다고 승인한 것은, 어디의 어느 놈이냐.

대상자: 말 못한다. 그것은.

심문자: 어이어이어이, 너의 가족은 전원 우리 쪽에서 확보했다고 전에도 말했잖나? 무서워해야 할 상대를 잘못 골라서는 쓰나. 너가 무서워해야 하는 건 판단착오다. 이제 집에 돌아가야지.

대상자: 아아…… 아아…… 알고 있다.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나는 영구히 돌아갈 수 없다.

심문자: 이해가 빨라서 좋군. 괜찮아, 나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하루, 한 달, 일 년도.

[대상자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려는 기색이 없다. 심문자는 세컨다이드3 주사기를 꺼낸다]

심문자: 자, 한 번 더 묻지. 너가 말할 마음이 들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하루, 한 달, 일년일까.

대상자: 이제 싫다…… 거기는…… 싫다.

심문자: 용기를 내라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대상자: 알았다…… 말……한다、

심문자: [가로막으며] 아아, 됐어. 너가 그런 인간인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 실제로는 말할 생각 따위 전혀 없지 않아.

[심문자가 주사기를 찔러넣고 엄지손가락으로 약제를 밀어넣는다]

대상자: 기다려라! 부탁한다, 정말이다.

심문자: 계속은 꿈속에서 듣자고. 자아, 이게 한 눈금으로 하루, 두 눈금으로 일주일, 세 눈금으로

대상자: 선생님이다! 훌륭한 정치가 선생들이 우리 위에 있다고, 대장이.

심문자: 어떤 선생? 훌륭한 선생이라면 많이 있잖아.

대상자: 아아, 기다려 봐라. 그건, 그래, 저어, ㅈ, 쥬じ、じゅう──

[대상자의 두부가 파열하고, 태블릿의 뇌파가 두절된다]

심문자: 죽이 펀치라인인가, [욕설]


[재생종료]
[09:10:42]

 

「이 건을 내 실수라고 말하다니 정말 뜻밖이다」
 일단 우리는 이 심문관의 주장인지 뭔지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 남자도 어느 정도 사정을 들어 알고 있는 것 같고, 다른 영상들까지 보면 보고서에 필요한 증언은 거의 다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여기를 왔어야 했는데, 라는 사이토의 대사에 나도 모르게 동조해 버린다.
「그래서, 어떻게 심문관이 이 새끼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거지」
 폭탄 따위 없었잖아, 라고 사이토가 말을 계속한다. 야카는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으며, 책상 위에는 마치 병원 차트와 같은, 심문대상자의 병세의 기록자료가 산란해 있다. 거기에는 체내에 매설된 각종 『기기』에 대해서도 기재되어 있고, 위험ㅁ한 것들은 미리 외과적으로 적출했었다.
「당연히 그를 정리하기 위해 심어둔 시스템이 있었겠지」
 재단의 그것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감 수준이지만, 이라고 야카는 첨언한다. 그의 의사면허는 그런 상황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구만」
「그런데 이건 특정정보제어프로그램이다. 특정한 말을 떠올리고 발성하는 것이 스위치가 되어서 두부의 혈액이 일시에 증발하고, 머리가 그 팽창을 견디지 못해 터지는 거지」
「폭약 없이? 있을 수 없다」
「밈오염을 이용한 무기의 일종입니다. 대개 혈관확장이나 강심작용을 위해 약물이 원래부터 투여되는 패턴이 대부분. 하지만 시판약과 성분이 그다지 다르지 않기 떄문에, 검사로는 분간하기 어렵고」
 익숙한 듯 설명하는 쿠루스에게, 야카는 감탄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동업자의 냄새를 맡은 것 같다. 라이사에도 손을 더럽힐 것이 요구되는 요원이 있다니, 별 신기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뭐였더라」
 사이토는 목이 날아가는 영상을 보았을 때부터 질려서는, 이미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대조적으로 쿠루스는 9시간 분량의 녹취록을 10여 분이 걸려 다 읽어냈다. 보통이 아닌 결의를 품고 심문에 진지하게 임할 생각인 듯, 싫은 인간이라고 공언했던 야카에게도 질문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최후의──그 머리가 날아가는 원인이 된 질문은 보고서를 위한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는?」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만」
「그럼 왜 그런 질문을」
 내가 소박한 의문을 털어놓자, 야카는 기다렸다는 듯 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귀찮은 소리를 할까 우리가 방어태세를 갖추려는 순간, 심문관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직속인 너희가 모르면 어쩌자는 건데」
「라는 말은」
「그쪽의 상사가 끈질기게 징징대서 한 질문이라고」

 


 

 
 

〈오피서 닥터 솔저 스파이〉
Their Finest Hour

제3화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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