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악몽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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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이 악몽이었다.

끔찍하고, 무섭고, 외롭고, 싸늘하며, 끝나지 않는 악몽.

나는 일어나서 울었고, 잠들면서 울었다. 카우벨의 연주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탁하고 혼탁했으며, 조화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내 카우벨이 울리는 소리가 내 머리를 아프게 했고, 그럴수록 나는 신경질적으로 카우벨을 내리칠 뿐이었다.

그리고, 카우벨이 깨어졌다.

카우벨이 차례차례 깨어지고, 나는 그 빈자리를 채울 의의를 느끼지 못했다. 공허한 빈자리를 채워도 어차피 머리 아픈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채우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카우벨을 쳤다. 그저 매일 그랬으니까, 매일 그러할 것이기에. 한 마을을 떠나서 다음 마을로, 그다음, 그다음.

더 이상 관객들은 내 공연에 환호를 보내지 않았다.

가끔 몇 명이 잠시 구경하다가도 귀가 아프고 머리가 아픈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날도 결국 카우벨이 하나 깨어져 나갔다.
이제 하나 남은 카우벨을 보며 나는 아련한 기억 속 내 변칙능력을 떠올렸다. 예술 감독님이 말하던, 나와 악기를 발전시키는 변칙능력. 사실은 그러한 능력이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악기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내가 속에서부터 곪아 나가고 깨어져 나갔듯이 카우벨도 깨어져 나갔다. 마지막 카우벨은 그때처럼 반짝이고 있지 않았다, 언젠가처럼 흉하게 우그러지고 칠이 벗겨져 있었다.


꿈을 꿨다.

메이와 함께하던 날의 꿈이었다. 메이의 품에서 어리광을 피우고, 메이와 함께 여행하던 시절의 꿈.

그리고 일순간 풍경이 변하고 지금의 내가 보였다.

메이를 찾아 헤매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난 메이를 부르며 울었다.


그날, 더 이상 공연이라고 부르기도 슬픈 그 엉망진창의 연주에서, 마지막 남았던 카우벨이 깨져버렸다. 금이 가는 듯싶더니, 산산조각 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엉망으로 부서져,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조자 없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슬픔이 밀려왔다.

그 카우벨은 마지막 남은 카우벨이기도 했지만, 내가 처음으로 잡았던 카우벨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는. 아니, 산산조각 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더 이상 카우벨을 연주하지도 못한다. 아니 음악도, 카우벨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럼, 나는… 벨이 맞는가?

메이가 나에게 붙여준 이름, 카우벨을 사랑하기에, 카우벨은 연주하며 행복하기에 붙여준 이름.
벨.

더 이상 그게 가 맞기는 한 걸까.

이제는 더 이상 유랑극단이 아니었다.

가지에 소식을 전달하지도 않았고, 떡갈나무의 날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새 악기를 구하지도 않았고, 연주하지도 않았다.

그저, 떠돌 뿐이었다.

나 스스로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조차 못 한 채로.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있던 곳은 예전에 종종 오고는 하던 평원이었다. 넓고 따뜻하면서도 주변에 먹을 게 많아서 야영지로 자주 쓰고는 했던 곳.
내가 메이의 품에 안겨서 은하수를 보고는 하던 곳.

그리고 거기서 만난 건 누군가가 남겨 놓은 소식이었다.

캐시의 떨리는 글씨체로 남겨져 있는 소식에,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몇 달 만에 목적지라는 것을 가지고 걸어 도착한 곳은, 한의 장례식이었다.

캐시의 원망과, 모나의 토닥거림, 제이콥의 시선 가운데 나는 그저 무너졌을 뿐이었다.

있잖아, 메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뜰 무렵, 나는 말 없이 한의 장례식을 떠났다. 장례식을 떠났으며, 캐시를 떠났고, 모나를 떠났으며, 제이콥을 떠났다.

내 가족을 떠났다.

더 이상은 유량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쳤지만, 그래도 조금은 걸었다. 어느 숲에 멈춰서 적당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거기에 적당히 몸을 뉘었다.

나는 벨이었다.

그럼 지금은 누구인 걸까.

아니,
누군가이기는 한 걸까.

벨이었던 누군가의 빈 껍데기만 남아서, 그렇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빈 껍데기를 다시 깨운 건 어느 피리 소리였다.

여느 날과 같이 일어났을 때, 여느 날과 같이 숲속의 그림자가 내 잠자리를 서늘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새벽과도 같은 그 공기였지만 새벽이 아닌 그 서늘하지만 상쾌하지만은 않은 아침이 나를 깨웠다.

또다시 삶을 살아가야 했다. 빈 껍데기를 채우는 것은 결국 매일의 같은 삶이었다. 일어났기에 걷고, 매일 가는 작은 개울에 가서 얼굴을 씻었고, 매일 가는 길을 걸었다.

발은 움직였고, 고개는 돌아갔지만, 그저 그래야 하기에 그리하였을 뿐이다. 숨을 들이쉬고, 또한 내쉬었지만, 그저 그래야 하기에 그리하였을 뿐이다. 물을 마시고, 허기를 달래도, 그저 그래야 하기에 그리하였을 뿐이다.

어디에도, 하고 싶다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깊이깊이 가라앉아 그 침묵 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이 검붉은색의 무거움으로 심장 박동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리하였고, 그리하고 있으며, 그럴 것이었는데. 왜인지 그 침묵에 미세한 소리가 끼어들었다. 악몽에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언제나 걷던 그 길을 걸을지언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언데, 감정 같은 건 없을 지언데. 그 연약한 음색은 내 귀까지 내달려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렸고, 발걸음을 돌렸다. 걷지 않는 길을 걸었고, 그래야 하기에 그러지도 않았다. 그 음색은, 내 세상에 한 방울의 색소를 떨어뜨렸다. 검은색도, 검붉은색도 아닌 색을.

그리고 그 연약한 음색을 발하던 아이는, 그 음색만큼이나 작고 약했다. 그러나 그게 그 아이가 나에게 준 변화를 부정할 이유는 아니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나는, 음악이 필요했다. 내 절망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로하는 음악이.
그 아이는 내게 음악을 선물했다. 오랜 시간을 내가 멀리했던 음악을. 그 위로를 선물했다.


루첼은, 작은 아이였다.
본인이 말하기로는 12살이었지만, 모든 길거리 아이들이 그렇듯이 보이기에는 그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그러나 그 겉보기 나이가 루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15살이라고 해도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없었을것이다. 그렇게 음악에 애정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음악에 매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반짝이는 눈은, 12살의 특권이었다.

루첼은 서투를지언정 열심이었고, 나 또한 그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메이가 나에게 가르쳐 주던 악보를 보는 법, 사람답게 사는 법.
모나가 나에게 가르쳐 주던 요리를 하는 법.
캐시가 나에게 가르쳐 주던 즐거움을 쫓는 법.
제이콥이 나에게 가르쳐 주던 노래를 함께 만드는 법.
한이 나에게 가르쳐 주던 세상의 넓음.

아니 사실은 그런 단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배운 것.
내가 배워왔지만 뒤돌아선 것.
그리고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던 것.

그건 함께 사는 법이고, 가족으로써 사는 법이었다.

메이가 내게 가르쳐주던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이었다.


"루첼, 너는 아직 떡갈나무의 날을 본 적이 없을 테지만, 굉장한 날이란다.
온 세계에서 떡갈나무 단원들이 모이고, 온 세계에서 음악이 모이고 예술이 모이는 날이란다."
내가 기억을 아련히 더듬어 길고 긴 설명을 하는 동안, 루첼은 언제나처럼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 잊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추억들에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지만, 이제는 떠올렸기에 울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다.

아픈 이야기를 잠시 뇌리 구석으로 밀어두고, 나는 다시 즐거운 이야기들을 회상했다. 수많은 사람들, 다채로운 악기들, 놀라운 음악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을 해본다 하더라도, 결국 내 추억이 내게 가져다준 기억은 모두와의 기억이었다.

나는 결국 얕게 숨을 내쉬고 그 말을 꺼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을 거란다, 모나, 캐시, 제이콥. 언젠가 이야기해준 그런 사람들을"

가슴 언저리에 묻힌 돌덩어리는, 힘겹게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더 무거워진 채 혀끝을 맴돌았지만, 입 밖을 나간 그 돌덩어리는 어느새 솜털이 되어 루첼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벨은 그 사람들 다시 보는 게 기대돼?"
루첼이 툭 내뱉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가득 담긴 말, 아마 내 반짝이는 눈을 보고 그리 생각했으리라. 왜냐하면 나 스스로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메이의 악단에서 카우벨을 친 날처럼, 그날처럼, 내 눈이 반짝이고 있으리라는 것을.

한때는 아니었다. 그 행복한 한때가 깨져 구멍이 나버린 유리창 같아서, 그 청명한 유리가 금 간 흔적만 같아 피하고 피해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래"

기대한다, 기대 될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가 연약해서, 도망칠 줄밖에 몰라 지금껏 밀어내던 사람들을 다시 보는 거다. 기대된다. 그러나 기대되기만 하지는 않는다. 기대되며 두렵고, 아직도 상처는 아려온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기대하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메이와 함께 보던 것과 같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아마 저 어딘가의 반짝이는 빛 속에서, 메이가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단원들을 보는 것도 기대되지만, 루첼과 함께라서 더 기대되네."
저 반짝이는 하늘을 향해 나는 웃었다.


아직도 메이의 무덤 앞에 설 자신은 없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아직도 종종 악몽을 꾼다. 그러나 루첼은 아닐것이다.

분명 루첼은 웃으며 인사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앞에 앉아 길고 긴 이야기를 하겠지.

루첼이 무엇을 배웠는지,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그리고 당신의 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우리들의 잃어버린 시간만큼, 그리 이야기 할 거다.

오늘따라 당신이 더 그립습니다.

보고 싶네요 메이.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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