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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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2일
제724K관측소 및 안전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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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세검은 슬며시 눈을 떠 보았다. 희미한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어우…"

세검은 발사된 검은색의 X26 테이저건 하나가 자신을 맞춘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몸에 꽂힌 전극을 빼내었다. 배터리가 없는지, 더 이상 전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딱히 고통 때문은 아니었지만, 세검은 바닥에 주저않은 채 허탈한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21K기지로 귀환해야 하나?"

세검이 머릿속을 정리하며 고민하던 그 순간, 세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뭐야?" 세검은 핸드폰을 켜 알림을 확인했다.

"2주간 근무 정지…" 세검은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알림을 지워 버렸다.

"에라이,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지." 세검은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2022년 7월 19일
제21K기지 부속 특무 인력 주둔 시설 지하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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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등 아래의 슈판다우는 오늘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융통성 있게 행동해. 지금 네 상태를 좀 보라고."

"융통성은 이런 데서 발휘하는 게 아니야." 청테이프로 몸이 결박된 로레인이 핼쓱한 얼굴로 받아쳤다.

"'2021년 람다-92의 내부 감찰 결과는 정상적으로 처리되었음.' 한 문장 말하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인지 모르겠군. 나는 너에게 악감정이 있거나, 원한이 있거나 한 게 아니야. 그냥 자백이 필요할 뿐이라고."

"자백 받아서 어따 쓰려고. 그래봤자 현실을 바꾸진 못 해."

"현실을 바꾸려는 게 아니야. 기록을 바꾸려는 거지. 그 이상은 원하지 않아."

"기록이 바뀌어서 네가 한 일을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과 현실을 바꾸는 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로레인이 비꼬며 말했다.

"… 그래. 그리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람다-92의 모든 인원들을 위한 일이었어. 큰 선행을 위한 작은 악행일 뿐이야."

"작은? 작다고? 횡령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그 나이 처먹고도 몰라? 이 상도덕 없는 —" 로레인이 발광하자, 슈판다우는 전기 충격기로 그녀의 오른쪽 뺨을 지져 말을 끊었다. "넌 이해 못 해. 정 타협을 하지 못하겠다면, 타협을 당하시던가."

"타협 못 해. 기본적인 옳고 그름도 못 가리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그런 인간하고는 타협할 수 없어." 로레인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 로레인의 말을 들은 슈판다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문을 닫지도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 버렸다.

"저 새끼 진짜 나를 죽이려는 거 아냐?" 그동안 큰 소리를 쳐 왔지만, 막상 광원이라고는 백열등 몇 개뿐인 어두운 심문실에 혼자 남게 되자 로레인은 밀려오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이거 진짜 어떻게 하지?"

그 순간, 천장의 환풍구 덮개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에?" 로레인은 소리를 조금이나마 더 잘 듣기 위해 고개를 환풍구 쪽으로 뻗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상한 소리를 내던 환풍구 덮개는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으악!" 환풍구 덮개와 함께, 세검이 드라이버를 든 채로 외마디 비명을 내며 바닥에 널부러졌다.

"여기 환풍구는 왜 수직으로 나 있는 거냐…" 세검이 혼잣말로 중얼댔다.

"뭐야, 너 어떻게 알고 여길 온 거야? 아니, 그보다 왜 온 거야?" 로레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원래 조금 감정적이라서,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겠더라고." 세검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기 위해선 너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래서 온 거야." 대답을 들은 로레인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특별한 계획 있어?"

"어, 음…"

"…난 있거든." 말끝을 흐리는 세검을 대신해, 로레인이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했다.

"정말? 뭔데 그래?"

"일단 따라와 봐." 로레인은 세검의 손을 잡고 문을 박차고 나가 복도를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야?"

"실내 사격장."

"왜?"

"일단 따라와 봐."

세검은 21K기지를 나가야 한다면서 점점 지하 깊숙한 곳을 향하는 로레인을 영 못 미더워 하면서도 꾸역꾸역 잘도 따라가고 있었다. 이내, 지하 6층의 실내 사격장에 이른 로레인과 세검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등장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둘의 앞에는 슈판다우가 꽤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너 도대체 걔를 데리고 뭘…" 슈판다우는 세검을 향해 뭐라고 말을 하려다, 이내 그만두고 브렌 텐 자동권총을 꺼내들었다.

"저 새끼 권총 뺏어!" 로레인이 소리치곤 슈판다우에게 달려들어 권총을 붙들고 늘어졌다. 첫 번째 총알이 빗나가고, 슈판다우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으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거 당장 놔!" 슈판다우가 화를 내며 다른 손으로 로레인의 멱살을 잡아채며 말했다.

"나 지금 총 없는데, 어떻게 할까?" 세검이 말하자, 슈판다우의 완력에 휘둘리고 있던 로레인이 말했다. "재량껏 도와 봐!"

로레인의 말을 들은 세검은 바로 슈판다우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걸었다. 멱살을 잡은 슈판다우의 손에 이끌려 로레인도 같이 넘어졌다. "이 망할 자식들이… 두 명이서 한 명을 노리고 벌떼같이 달려들어…" 슈판다우는 목을 조르는 세검의 손목을 잡고 안간힘을 쓰는 동시에 마구 발길질을 하며 말했다.

"빨리 기절을 시키든 죽이든 어떻게 좀 해 봐!" 목을 조르는 세검도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알았어." 슈판다우에게 얼굴을 걷어차인 로레인은 권총의 탄창을 뽑아 저 멀리 던져 버린 후, 안주머니에서 주머니 부피보다 훨씬 큰 르벨 M1886 소총을 꺼내어 노리쇠를 연거푸 두 번 당겼다. "이봐 사령관, 이제 그만 퇴근하지 그래?." 총구를 슈판다우의 관자놀이에 겨눈 채, 로레인은 안경을 고쳐 쓰며 협박조로 말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았어." 슈판다우는 대답과 동시에 세검의 손을 풀고 총열을 강하게 잡아당겨 소총을 빼앗았다. 그러곤 곧바로 개머리판을 휘둘러 로레인의 왼쪽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으학!" 로레인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한 일의 뒷처리는 내가 할 거야. 그 방식이 다를 뿐이지." 슈판다우는 소총을 바르게 고쳐 쥐고 총구를 로레인에게 겨누며 말했다. 그 때, 전기충격기가 슈판다우의 왼눈을 지졌다.

"끄으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슈판다우를 뒤로하고, 세검은 전기충격기를 그의 주머니에 다시 돌려놓은 후 로레인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괜찮냐?"

"그래. 걷기엔 문제 없다." 로레인이 세검의 부축을 거절하며 말했다.

"그런데 왜 사격장으로 온 거야?" 세검이 물었다.

"이걸 쓰려고." 소총을 챙긴 로레인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그게 뭔데?"

"잘 봐." 로레인은 문의 디지털 도어락에 열쇠를 밀어넣었다. 열쇠가 도어락의 키패드에 닿자, 열쇠는 마치 점도 높은 액체를 통과하는 것처럼 키패드를 통과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로레인이 문고리를 잡자, 안에서 누가 밀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문이 스르륵 열렸다.

"따라와, 방랑자의 도서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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