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세계이다
벽에 등을 기대어 앉는다. 딱딱한 벽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침대는 여전히 불편함과 편안함의 미묘한 경계에 놓여있는 상태고, 방을 비추는 등불은 여전히 침침하다. 이 방에서는 시간은 의미가 없다. 창문이 없기에 낮인지 밤인지, 밖이 여름인지 겨울인지도 알 수 없다.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며, 타인이 정해준 대로 살아야 한다.
물끄러미 앞을 바라본다. 비어있는 침대 세 개. 제레미, 킴, 제임스. 주인 잃은 침대를 응시하다가 시선을 천장으로 돌린다. 아마 나까지 없어지고 나서야 주인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저 이 방에 넣을 사람이 아직 없는 것이거나. 어느 쪽이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언제나 듣는 알림 소리가 천장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소리만이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어쩌면 바깥은 밤인데 점심시간이라 속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알 방법은 없다. 알 이유도 없다. 이미 단절된 세상과는 연결짓는 것이 더 고통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걸어나간다. 이렇게 걸으면 뭔가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말을 함께 방을 쓰던 이들에게 말했을 때 모두가 웃었다. 이젠 웃을 사람도 남아있지 않다. 계속해서 걷는다. 아직은 살아있다. 조금만 더 살아보자.
거창한 식사는 아니다. 오늘의 메뉴는 페퍼로니 피자와 콜라다. 두 달 만에 먹어보는 피자다. 이곳에서 직접 만든 피자겠지. 나쁘지는 않다. 수제 피자는, 그만의 맛이 있다. 요리사의 솜씨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 한입 베어 무니 치즈가 쭉 늘어난다. 슬쩍 웃고 말았다.
기다리는 일은 지치는 일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것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괜히 신경만 곤두선다. 혼자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침대 위에 앉아서 어둠만 들여다보는지도 어느덧 3주가 되어간다. 취침 시간이 되어 불이 꺼지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진다. 아주 조금의 빛도 없기에, 고요한 어둠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감정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온다.
그러다가 옆으로 쓰러지듯이 누워져 잠자리에 들었다. 언제나 꿈은 꾼다. 예전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어렸을 때 형과 함께 놀던 장면이 머리 위로 재생된다. 놀이터에서 딸이 그네를 탈 때 밀어주는 모습이 발밑에서 보인다.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릴 때 잠에서 깬다. 언제나 보는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복도를 물걸레질하다가 보면 주황색 제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보인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같은 인간이나, 나와는 다른 인간들. 정신 나간 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드는 인간들. 나는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 내 상식 밖의 것들이다. 그저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흰 가운에 안경을 쓴 남자가 내게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나도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인다. 곧 내 얼굴은 잊어버리리라. 다시 바닥을 닦는 데에 집중한다. 흰색에 내 주황색 제복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어째서인지 모를 착잡함을 느끼며 팔을 움직였다.
실험 도중에 큰 폭발이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죽었다. 토미. 그게 그 남자의 이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식당이나 다른 실험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목뼈가 부러지며 죽었다고 한다. 적어도 고통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난 팔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고통이 상당했지만, 살아남았다. 차라리 토미가 부러웠다. 아직 내 차례는 아니었다. 다시 한번 방에서 내 차례를 기다린다.
잠에서 깨어나니 눈가가 축축하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기를 소매로 훔쳐내고는 침대 위에 걸터앉는다. 여전히 나 혼자다. 경비에게 말이라도 해볼까. 슬슬 혼자 있는 것도 질려가는 참이다. 외로움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멍하니 벤치에 앉았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볼을 간질이며 지나간다. 하늘은 파랗다. 짙은 파랑. 거기에 흰 구름이 한 조각 떠다닌다. 자유롭구나. 까마귀 한 마리가 지붕 위에 앉았다. 눈이 마주쳤다, 라고 생각한 순간 큰 소리로 울더니 날아가 버렸다. 어쩐지 내가 쫓아 보낸 것 같은 기분에 머쓱해졌다.
경비가 날 불러낸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나간다. 또 다른 실험이 있다. 대기실에서 주황색 제복을 입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례를 기다린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 있다. 한 명은 이미 실험실에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이다. 열고 들어간 문을 다시 열고 나오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그런 구조가 아니다.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면 다른 문으로 나간다. 위험한 실험인지 아닌지를 알 방법은 없다. 내가 직접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다.
곧 내 차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는 지쳤기 때문일까. 옆에 있던 경비가 문을 열어준다. 나는 언제나의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들어간다.
등불이 눈을 비춘다. 미소를 짓는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때가 왔다.
나의 세계가 끝날 때다.
두번째 세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