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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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한 마리 부나방에 불과하다


숨이 찼다. 기동특무부대 오메가-9 "종말 지연자"의 부대원인 숀Sean은 입이 바싹바싹 말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전에 투입되는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훈련은 많이 받아봤다. 재단 직원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현장에서 몸을 쓰는 요원이든, 실험실에서 연구원에 몰두하는 연구원이든 언제나 훈련을 받는다. 원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바로 재단이기에, 높으신 분들은 어떻게든 사고를 줄이려고 애쓴다. 물적 자원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도 상당한 돈을 쓰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연습은 실전과 달랐다. 재단에서 주시하는 단체들과의 교전에 대한 훈련도 당연히 있었다. 숀은 언제나 그런 훈련들을 웃으며 받았다.

현실에서는 웃음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나오면 미친놈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이런 일을 수없이 겪고도 살아남은 완전한 베테랑이거나. 당장에라도 돌아가 아늑한 침대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당장에라도 뒤에 있는 사람을 전부 밀치고, 도망쳐 나가면 된다. 신입이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런다면 어느 정도 이해해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임무라는 그 작은 사실 하나가 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망갈 수 없었다. 숀은 마음을 다잡았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마음이 안정된다거나 그런 효능은 없었지만, 쓰러지지 않고 몸은 가눌 수 있게 되었다.

부대장이 수신호를 보냈다. 진입하라는 뜻이었다. 숀은 다시 한번 손에 든 총을 점검하고, 손잡이를 꽉 쥔 뒤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부대원들을 제외하고는 뭔가 움직이는 게 보이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당. 타다당. 탕. 한 번 쏠 때마다 거의 한 명씩은 쓰러졌다. 저항 따위는 없었다. 숀은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이 광신도라는 사실은 그 의심마저 덮었다. 방아쇠를 당기다 더 나오는 것이 없으면 탄창을 갈고 다시 쏘았다. 숀은 시체가 짓는 미소를 보았다. 발걸음을 멈출 시간은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긁어대는 기괴한 삐걱거리는 금속성 소리. 녹슨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 철커덕 째깍 철커덕 째깍 철커덕 째각. 그 모든 소리가 일종의 화음을 이루어, 감미로운 소리로 변해 건물 전체를 휘감았다. 숀은 한순간 황홀함을 느꼈다. 단순히 소리를 들은 것 뿐인데도 그랬다. 이 소리에 무언가 있었다. 다른 부대원들도 같은 것을 느꼈다는 것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부대장이 다급하게 신호를 보내왔다. 수 십 명의 무장한 요원들이 달려나갔다. 건물의 최상층에는 강철 문이 용접된 방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감미로운 악기의 선율이다. 부대장이 소리쳤다. 대원 하나가 급히 계단으로 내려간다. 플라스틱 폭약을 사용할 일이 없으리라 판단하여 차량에 두고 왔다. 대원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요원들이 총을 쏴보지만, 강철 문은 굳건히 서서 침입자를 막고 있었다. 노래는 계속되었다. 서서히 머리가 아파졌다.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고작 몇 초가 지난 것인지, 아니면 몇 시간 동안 총을 부여잡고 서 있는 것이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영원이 찰나와 뒤섞여 뇌에 쑤셔박혔다. 1층으로 내려갔었던 대원이 돌아왔다. 숀은 그 얼굴을 몇백 년 만에 본 것 같았다. 물러나 있으라는 부대장의 말에 숀은 자리를 옮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굳건히 서 있던 문이 산산이 조각났다.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사라지니 음악 소리가 한순간에 커졌다. 숀은 넘어질 뻔한 것을 가까스로 버티고 섰다.

예배당 안에는 한 여성이 기괴한 기계 앞에 앉아있었다. 여자의 손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건반이 눌릴 때마다 공포의 독주곡이 진행되어갔다. 숀의 눈앞에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시간의 산맥 위로 공간의 바람이 불며, 이성의 괴물이 광기의 바다에서 익사하고 있었다. 위는 아래가 되고, 아래가 옆이 되며, 모든 진실이 거짓이 되고 빛이 어둠이 되었다. 안이 밖이 되고, 밖은 안이 되는 비논리의 상황에서 숀은 쓰러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다른 부대원들도 그렇게 다른 상황은 아니었다.

그 사이로 광소가 비집고 들어왔다. 비웃음일까. 아니면 감정에 휩쓸려 나오는 것일까. 연주자의 미칠듯한 광소가 예배당 안을 휩쓸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졌다. 이게 인지재해라는 것인가. 인지재해에 대해서는 여러 번 배운 바가 있고, 아예 직접 인지재해에 노출되는 훈련도 있었지만 이처럼 강렬한 것을 직접 경험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손과 발이 덜덜 떨려왔다. 숀은 버둥거리면서 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간이 찢어지고 있었다. 팔, 팔이 허공을 헤집으며 현실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기계장치의 팔이었다. 째깍째깍째깍째깍 톱니바퀴와 나사와 피스톤으로 이루어진 팔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탕, 하는 날카로운 폭음이 들렸다. 얼얼한 반동에 숀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권총의 총구에서 약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총을 쏘긴 쏜 것이었다. 털썩하고 무언가 묵직한 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계를 연주하고 있던 여성이 그대로 의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팔도 다시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걸로 끝인가. 사건이 해결된 것일까. 숀은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대원들은 어딘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날카로운 금속성이 허공에서 터져 나오며, 팔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끝이 아니었다. 무슨 상황인지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두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계장치의 신은째깍째깍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현실로 나오려는 의식이 방해를 받았다. 한낱 부나방이 위대한 존재의 행차를 가로막았다. 그에 신은 화를 내고 있었다.

거대한 손이 휘둘러졌다. 그 풍압에 숀은 뒤로 튕겨 나갔다. 무언가 그 손의 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창문이 깨지고, 금속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안개는 예배당 안을 메우면서 바깥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안개를 들이마신 순간 숀은 알 수 있었다.

금속으로 된 죽음이다. 순식간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안개를 들이마신 순간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숀은 마지막까지 의식을 붙잡으며째깍째깍 신이 팔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벌은 끝이 났다. 모든 것의 죽음이 찾아왔다. 느닷없이 나타난 것처럼 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째깍째깍. 예배당 한구석에 놓인 시계에서 규칙적인 톱니바퀴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숀은 영원의 잠에 빠져들었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째깍째-

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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