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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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k기지. 기지 이사관보 이대훈은 기지에 비치된 믹스커피를 천천히 타고 있었다.

일견 느긋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 미간에 패인 깊은 주름과 바로 앞에 온 몸이 묶인 남자를 보면 상황이 그리 평화롭지는 않아 보였다.

"이사관보님! 전 이사관보님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삼대천과도, 이상교화국과도 제가 따로 챙겨먹은 건 없습니다! 어째서…"

"너무 잘 한게 문제지. 좀 지저분하게 해야 특정되지 않을거 아닌가. 너무 깔끔하니 횡령의 꼬리가 잡히는 거지."

"이사관님이…?

대훈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입에 마개를 채웠다. 사실상 동의의 뜻이었다.

"예상하진 못했지만. 전화위복인가."

곧 남자의 움직임은 멎었다. 기절의 신호였다. 이대훈은 남자를 관에 집어넣고 엘레베이터에 향했다.

-이대훈 이사관보님. 확인되셨습니다. 몇 층으로 가시겠습니까?

"지하 3층."

3층으로 향한 이대훈은 관에서 남자를 꺼낸 뒤 다른 관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발을 굴렀다.

그러자 바닥은 먼지를 일으키며 갈라졌다.

지하 4층이 보였다. 04k기지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이대훈은 은밀하게 격리소로 다가갔다. 그리고 품 안에서 방독면을 꺼냈다.

곧이어 기지를 지키던 보안요원들이 줄지어 쓰러졌다.

이대훈은 유유히 격리소로 향했다. 지하 4층에서 가장 거대한 격리소엔 거대한 크기의 괴물이 웅크린 채 앉아있었다.

[SCP-442-KO]

스스로를 치우라 칭하는 괴물은 이대훈의 등장에 고개를 들었다.

"먹이다."

대훈이 기절한 남자를 치우에게 던져주자, 치우는 얼굴을 찌푸렸다.

"치우는 식인 취미는 없어. 그냥 나가서 축구 경기나 보게 해줘."

"바라는 대로 해 줄테니 먹게. 취미가 아닌 일이라 생각해."

"…넌 치우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인간이다. 약속은 꼭 지켜."

곧이어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대훈은 고개를 돌리고 방독면을 벗어던진 채 담배를 피웠다.

치우는 말과 달리 순식간에 남자를 먹어치웠다. 오직 옷 일부와 보안 목걸이만 남아있었다.

"보안 요원은 잠들었고, 보안 시스템은 망가트려 놓았다. 네게 주어진 시간은 대충 3분이다. 탈출하고 싶으면 지금뿐이지."

"원하는 게 뭐지?"

"너의 목적과 같다. 한가지 조건이 있다면, 다시 붙잡혔을 경우, 널 풀어준 건 강현희라고 말 해야 한다."

치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우는 이해가 안돼. 너는 이 기지에 제일. 음…제일은 아닌가? 아무튼 높으신 분이고, 치우 같은 괴물들을 잡아넣는 위치잖아. 그 강현희는 너보다 낮은 사람이고. 왜 치우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이대훈은 씁쓸하게 말했다.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니까."

"치우는 이해 못하겠다. 넌 충분히 특별한 놈이다."

이대훈은 그 말에 몇몇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들. 죽이고 싶은 자들. 그리고, 오늘 죽일 그 자를.

"…자, 시간이 없다."

"알겠다. 치우는 네 행동을 기억할께. 축복을 원한다면 상암으로 찾아와."

치우는 철장을 부순 뒤 기지 밖을 향해 맹렬히 뛰쳐나갔다. 곧이어 큰 소란이 들려왔다. 이대훈은 그 소리를 들으며 더 깊은 곳을 향해 걸어나갔다.


"대체 무슨 일이야?"

"보안 시스템이 다 망가져 있습니다! SCP-442-KO의 격리 실패가 원인으로 보입니다."

강현희는 이를 갈았다.

"젠장. 즉시 기동특무부대 투입해! 나도 현장으로 간다."

"군부대의 개입을 요청할까요?"

"아니. SCP-442-KO의 위치 정보를 계속 보고해."

"단독으로 가시려고요?"

"그놈이 갑자기 격리 파기 사태를 일으킬 이유가 뭔지 확인해야 해. 우선은 연쇄 격리 파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율하는게 우선이야."

강현희는 보고에 따라 04k기지 내부를 추적했다. 기지의 상태는 격리 파기 사태가 일어났더고 하기에는 기이할 정도로 깔끔했다.

그리고 이대훈이 걸어나왔다. 강현희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대훈. 네가 이 사태를 일으켰나?"

"부정할 순 없군."

"내가 혼자 올거라는 걸 예측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어."

"강현희. 난 너만큼 똑똑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 기지에서 일어니는 일은 너의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

이대훈은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괴물과 너가 거래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건 격리 이사관보가 특수 격리 절차를 어기고 SCP를 개인적 이득을 위해 유용했다는 중대사항이지. 그렇기에 넌 이번 사태를 최대한 조용히,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대…"

이대훈은 강현희의 미간에 총을 박았다. 강현희는 쓰러졌다. 이대훈은 손을 떨면서도 피가 흥건한 강현희를 어루만졌다.

"이 순간을 얼마다 기다려 왔는지…"

이대훈은 강현희를 업고 비밀 통로로 향했다. 군 감시부만이 통행 가능한 길로, 04k기지에서 유일하게 cctv가 없는 구역이었다.

총상을 당한 강현희의 시체는 발견되서는 안되었다.

강현희가 치우와 거래를 했다는 증거는 불완전했다. 격리파기 사태는 강현희가 거래를 한 뒤 약속을 어겨, 분노한 치우가 일으킨 일이 되어야 했다. 사망보다는 실종 처리가 더 나았다.

물론 강현희의 시체는 넘기면 엄청난 값을 가질 것이다. 구만큼 증오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삼대천에게 넘기면 개밥으로 갈가리 찢기거나 임상 실험체가 될 테고, 이상교화국에 넘기면 한 요상한 계획의 일부로 사용될 터였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이 사태에서 이대훈 자신은 완전한 피해자여야 하니까.

다행히 강원도는 계곡이 많았다.


"강현희는 거래 현장이 발복을 잡히려 하자 SCP-442-KO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였고, 결국 격리 파기 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강윤상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강현희가 SCP-442-KO의 격리 파기 사태를 방조했다는 겁니까?"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방조가 아닌 적극적 가담일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기지의 cctv, 구조 등을 완벽히 파악한 인물을 특정하면,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모든 일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강윤상은 이대훈을 노려보았다.

"대훈 이사관보님의 논리대로라면, 이사관보님도 용의 선상에 들어갑니다."

대훈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럴 동기가 없지 않습니까? 모든 증거는 강현희를 가르키고 있고 그녀는 실종되었습니다. 사망이 아닌 실종입니다. SCP-442-KO가 처음으로 기지 밖 탈주를 감행한 것 역시, 그가 강현희를 죽이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라면 납득이 갑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훈 기지 이사관보님께서 임시로 격리 이사관보 대행을 맡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번 안건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국가초상방재원과 국방부와의 연계를 통해…"

강현희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이 법정은 검사만 있고 변호사는 없는 싸움이었다.

붉은 악마는 기지를 탈출했지만, 가장 평범한 한 악마는 04K기지를 조금씩 장악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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