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 요원의 면담 분과 신입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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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요원은 국군정보사령부 때 쓰던 암호명이었다. 그때 쓰던 암호명을 그대로 들고 온 것은 단순히 행정적인 편의사항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청명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담은 것이었다. 비밀 속에서 그 무엇도 보장할 수 없었던 삶이었다. SCP 재단이라는 기관에서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받게 되더라도 본질적인 것은 달라질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 얘기 그, 그냥 적당한 소설이라고 치고 잊어버려. 정 속이 뒤집어질 것 같으면 내가 기억소거제라도 줄게?"

잊어버릴리가 없었다. 어떤 조직이라도 비밀을 잊어버리는 걸로 보안을 지키지는 않았다. 비밀은, 기억해야 하니까 비밀인 것이다. 잊어버려도 되는 것이라면 그런 건 비밀이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청명 요원의 상관이라는 자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잊어버리라고 하고 있다.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를 들어서 역겨운 것이 아니라 비밀을 그따위로 취급한다는 것을 깨닫자 역함이 올라와 버리고 말았다.

"….도넛에 커피도 가져와 주랴?"

청명 요원은 지친 목소리로 쓸데 없는 동정을 거절했다. 스완 요원이 방에서 나가자 청명 요원은 잠시 앉아서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하기 위해 잡념에 집중했다. 스완 요원의 면담 내용, 그녀가 면담한 대상, 이 모든 걸 가두는 시설들, 시설들을 관리하는 조직들…. 이런 터무니없는 것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잊혀야 했을까? 아니, 잊히는 것으로 끝났을까? 오히려 다시 울렁거림이 올라왔다.

"제 얘기해도 됩니까."

그래서 청명 요원은 다시 돌아온 스완 요원에게 제안했다. 사실 거절당할 것으로 생각했다. 스완 요원은 지금까지 청명 요원이 본 인간 중에서, 아니 됐다. 인간이라고 치기에도 미묘해 보인다. 아무튼, 그런 존재에게 거절당하는 건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원래 내 일이라고 생각해. 재주는 없지만."

"그렇습니까…. 아까 토해버리고 만 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스완 요원님은 아니신 거 같지만, 저는 군사정보를 다루는 기관에서 나왔습니다. 면담이라는 업무를 맡게 된 것도 그런 정보를 다루는….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치의학 전공하다가 그렇게 됐어."

청명 요원은 저렇게 사람 말을 끊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말을 이어붙여 나간다.

"아무튼, 짧은 평문 몇 단어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도 실제로 보았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봉사한다는 생각에 제 일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지만, 제 머릿속에 있던 정보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위해 계속 일을 했던 거 같습니다. 네, 그래서 처음 현기증이 난 건 그냥 눈앞에 보이는 여성이 괴물로 변하는 걸 인식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토까지 하고 만 것은…."

"기억소거제?"

"눈치는 빠르십니다."

"눈치 느리면 먹히니까. 아니,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진짜. 그런 헤드크랩이 된다고 해서 그 SCP가 나를 먹잇감으로 안 볼 리가 없잖아!"

다시 현기증이 덮쳐왔지만, 머리를 흔들어 털어냈다. 아직 청명 요원이 얘기할 것은 많았다.

"그냥, 처음부터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죽도록 외우던 코드들은 무기의 설계도나 누군가의 일정표였습니다. 그런데 그따위들은 여기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나도…."

"사는 세계가 다르시지 않습니까."

청명 요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끊고 말았다.

"재단이니 초상세계니 하는 것들이 당연한 세계에서 살아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장막 바깥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장막 안으로 들어오는 족족 지워버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정상성이라는 범주 안에 사람들을 추방해놓고서, 여기 재단이라는 요새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스완 요원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여기서 평범한 사람들을 지킨다는 감각을 어떻게 느낄 수 있습니까? 평범한 사람들은 초상세계에 존재하지 않은데 말입니다. 초상 세계라는 거, 사실은 정상 세계의 자원을 빨아먹으려고 만들어낸 거짓말 아닙니까? 거짓과 진실이 존재하고 있는데, 왜 초상세계라는 진실이 존재하는 동시에 정상세계를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나 때문에 재단에 온 게 아니거든. 너 민██라는 사람 알아?"

청명 요원은 갑자기 아는 이름이 나온 것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때 모른다고 거짓말 해야 했다.

"전설이셨습니다."

"원래 나도 고등학교까지는 이딴 거 모르고 살았는데, 오빠가 사실은 자기 이름이 민██라는 거야. 그러면서 나를 스리포틀랜즈로 보내버리더라고. 입양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형식이었는데 길길이 날뛰고 다니다 보니 사실 정상세계에 살았으면 '사고'로 죽었을 거라는 걸 알게 되서 원망은 못하겠더라. 대학교까지는 어떻게든 모른 척하고 지냈고. 그래, 니 말대로 정상 세계 따위 비웃으면서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

아무튼 다시….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다시 기억해냈다고 해야겠네. 그래서 그 오빠 새끼 패고 싶어서 고졸인 채로 재단에 들어와서 지금 이렇게 된 거야."

"그분이…. 재단 소속이셨습니까?"

"아마도? 웃긴 게 내가 살면서 가장 좆같았던 중고등학교 시절 때는 오빠를 자주 만났는데 대학교 들어가고 재단 들어가니까 한번도 만나보질 못했어."

스완 요원은 갑자기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설마 너 현장 뛰다가 우리 오빠 만난 거야? 혹시 너 거기 어깨에 총 맞을 때 우리 오빠가 일으켜주면서 '괜찮아, 너 아직 안 죽었어!' 그런 대사라도 쳐준 거야?"

청명 요원은 입을 다물었다.

"어께 다친 거야 잘 숨기긴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거든. 아, 너 아직도 눈치 못 채고 있었어? 나는 딱히 안 숨겼는데."

스완 요원은 웃으면서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청명 요원은 처음에는 이건 다리라고 할 수 없는 쇳덩어리라고 생각했지만, 그 직후 왜 자기에게 미안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알던 모르던 조심해야 했는데…."

"아아, 이 다리에 대해 말하는 건가. 왼쪽은 드래곤에게 잡아먹혔고 오른쪽은 마법사에게 뺏겼지…."

"네?"

스완 요원은 이번에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 정말 이걸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생각한 거야? 이거 전부 재단에서 바보짓 하다가 잘려나간 거야. 네 어깨처럼 훈장에 가까운 거라고."

청명 요원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첫 번째 이유는 스완 요원은 정말 자기 깊은 곳에 있던 비밀을 알려주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종류가 아닌 사람을 살게 하는 종류였다. 그런 것은 청명 요원의 세계에서도 서로 몰라야 하는 비밀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중에 죽을 때 도저히 못 견디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스완 요원은 정작 재단에 대해 아무런 정당화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청명 요원은 재단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면담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스완 요원은 민██을 걸고 한 도박에 성공하여 청명 요원의 마음속에 족쇄를 채워버렸다. 이제 청명 요원은 민██을 위해서 재단에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청명 요원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다치면 수당이 얼마 나옵니까?"

"에이, 그건 너무 심하다."

스완 요원도 커피를 홀짝이면서 대답을 해줬다.

"여기 재단이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직장이야. 통장에 찍히는 숫자 같은 건 상관 쓰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뭐, 그 정도면 재단에 있을 만한 거 같습니다."

"우와, 내가 본 재단 입사 이유 중 최악이야."

"스완 요원님 놀리는 재미는 있겠네요."

어느새 해가 져서 창문 정면으로 해가 걸쳐있었다. 커피는 이미 식었지만, 방 안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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