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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ᄒᆞᆫ 뫼를 너머가더니 듁님이 무셩ᄒᆞᆫ 곳의 ᄒᆞᆫ 겨집이 소복을 단졍히 ᄒᆞ고 안져 울거ᄂᆞᆯ 우치 시이불견ᄒᆞ고 지니가셔 윤공ᄭᅠㅢ 글를 ᄇᆡ온 후의 집으로 도라올 졔 본즉 그 쳐ᄌᆡ 그져 울거ᄂᆞᆯ 우치 고히 녀겨 나아가 보니 년광이 삼오이팔은 ᄒᆞ고 용모ᄂᆞᆫ 옥갓ᄒᆞ여 아릿ㅅ다은 ᄐᆞ디ㅚ 남ᄌᆞ의 마음을 방탕케 ᄒᆞᄂᆞᆫ지라. 우치 나아가 위로ᄒᆞ며 문왈

「낭ᄌᆞᄂᆞᆫ 어늬 곳의 이스며 무ᄉᆞᆷ 일노 아ᄎᆞᆷ붓터 일즁이 되도록 슬피 우ᄂᆞ뇨」

그 녀ᄌᆡ 우름을 긋치고 붓그러믈 먹음고 답왈

「나ᄂᆞᆫ 이 뫼 아ᄅᆡ 잇더니 셜운 일이 이써 우노라」

ᄒᆞ며 즐겨 이르지 아니ᄒᆞ거ᄂᆞᆯ 우치 그 겻ᄒᆡ 나아가 간졀히 무르니 그 녀ᄌᆡ 강잉 ᄃᆡ왈

「나ᄂᆞᆫ ᄆᆡᆼ어ᄉᆞ의 ㅼㅏㄹ이러니 오셰의 모친을 일코 계뫼 드러운 후로 날를 부친ㅺㅢ 참소ᄒᆞ여 쥭이고져 ᄒᆞᄆᆡ 쥬야 셜워ᄒᆞ여 ᄌᆞ결코져 ᄒᆞ나 참아 못 ᄒᆞ고 이갓치 우노라」

ᄒᆞ거ᄂᆞᆯ 우치 ᄎᆞ언을 드르ᄆᆡ 가장 긍축히 녀겨 왈

「ᄉᆞ람의 ᄉᆞᄉᆡᆼ이 유명ᄒᆞ니 낭ᄌᆞᄂᆞᆫ 부모유쳬를 ᄉᆡᆼ각ᄒᆞ여 ᄉᆞᆯ기를 도모ᄒᆞ라」

ᄒᆞ고 인ᄒᆞ여 옥슈를 잡으되 그 녀ᄌᆡ 조곰도 ᄂᆡᆼ담ᄒᆞ미 업스ᄆᆡ 흔연히 교합ᄒᆞ여 냥졍이 환흡ᄒᆞᄃᆞ가 이윽고 셔로 ㅼㅓ날ᄉᆡ ᄌᆡ삼 견권ᄒᆞ며 도라가니라.

작자 미상, 『전우치전(田禹治傳)』 "일사문고본"에서 발췌

『전우치전田禹治傳』을 찾아서

by 샐리 렐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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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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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953이 SCP 재단과 처음 접촉한 것은 1945년 일이었다. 이 피에 굶주린 미친 여우 아가씨는 그 이후로 6번이나 재단에서 탈출했고, 그때마다 예외 없이 크건 작건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어느날 953 관련 기록을 하릴없이 톺아보던 클레프 박사는 의문을 갖는다.

— 왜 953은 인간을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일까?

동양 3국에 전해져 오는 구미호 전설을 비교해 보면, 거의 공무원처럼 일하는 하급신인 중국의 구미호는 953과는 전혀 닮은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미쳐 날뛰는 괴물이라는 점은 일본의 구미호와 같지만, 정작 본인은 키츠네라고 불리기만 해도 펄펄 뛰며 발광을 하는 애국심이 투철한(?) 한국계 구미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전해지는 구미호들은 거의 모두, 그 본성이 얼마나 악하건 선하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을 죽이고 간을 취하는 데 있어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인간이란 먹이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최종적으로 화하고자 하는 목표인 것이다.

하지만 953에게 인간이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도시락, 또는 홀려서(전문용어로는 "정신조작") 갖고 놀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지금까지 먹은 인간의 간을 카운트해보면 천 개는 커녕 만 개도 족히 넘길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인간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고, 그녀 역시 그것을 전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다.

— 또, 왜 953에게는 소위 여우구슬이란 것이 없을까?

그냥 없으니 없는 것일 수 있지만, 여우구슬이란 건 한국의 구미호에게서 나타나는 특유의 요소인데, 원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어쩌다 없어진 걸까.

골똘히 생각하던 클레프 박사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털고 의문을 머릿속 한 구석에 치워 버렸다. 어차피 접근할 구실도 없어 면담조차 할 수 없는 케테르급 SCP에 대해 이런 걸 궁금해 해서 뭐 하겠는가. 알아낼 방법도 없을 뿐더러, 행정직에 있는 자신이 그걸 궁금해 봤자 좋은 꼴 볼 일도 없다. 이런 걸 궁금해 하고 밝혀내는 건 연구원들의 일이고, 자신을 비롯한 행정직들의 일은 그 연구원들이 사고를 치지 않도록 제지하는 것이다. 현장을 떠나 억지춘향으로 승진당한 뒤로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역시 이 일은 적성에 안 맞는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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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 식사다.”

윙 철커덕 윙 철커덕 하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몇 겹짜리 해치가 착착착 순서대로 열리고 커다란 보온병을 닮은 깡통로봇이 배식카트를 밀면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불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암여우는 발딱 일어나서 로봇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깡통에 달린 두 쌍의 로봇팔이 격리실 한가운데의 탁자 위에 배급품을 늘어놓았다. 지난주 살처분된 D계급 인원들에게서 적출한 싱싱한 간, 물수건 몇 장, 1리터 들이의 스테인리스 병 하나. 그리고 로봇은 탁자에서 멀어진 뒤 벽에 내장된 정수기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구미호는 식사로 나온 간이 사람의 간이라는 데 한 번 놀랐고(대개 돼지나 소의 간이 배급되었기에 이건 꽤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예정에 없던 병이 있는 데 또 놀랐다. 뚜껑을 열고 킁킁 냄새를 맡았더니 귀가 쫑긋 섰다. 알싸한 매실향이 20도짜리 알코올과 어우러져 나왔다.

“이봐, 나 이거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천장 구석의 마이크로폰을 바라보고 소리치자 귀찮다는 듯한 심드렁한 목소리가 대꾸했다.

“나도 모른다. 위에서 주라고 하길래 주는 거야. 싫으면 변기에 부어버리던가.”

구미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매실주가 들어있는 스댕 병을 짤랑짤랑 흔들었다. 그러자 병의 레이블이 흐느적거리면서 벗겨져 내렸다. 보아하니 이미 벗겨둔 것을 물에 적셔서 발라둔 것이었다. 아직 촉촉한 종이에는 뭐라 씨부린 것인지 이러쿵저러쿵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레이블을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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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개수작이냐?】

스댕 병에 손톱으로 새긴 글자가 날카롭게 새겨져 있었다, 아니 새겨진 정도가 아니라 거의 병을 찢어 놓았다고 해야 할 터였다.

“박사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규정상의 고급 물품을 특별 지급해 줬더니 술만 홀랑 다 마시고 병을 이렇게 만든 뒤 우리 로봇의 팔을 죄다 부러뜨려 보냈습니다. 병은 로봇 머리통에 올려져 있더군요.”

“거 참 못 쓸 성질머리군.”

“왜 괜한 일을 하셔서……”

“잘 보이고 싶어서.”

“에?”

“섹시하고 매력적지 않나?”

“…….”

“아, 농담이야 농담! 거 전화기 내려놔!”

“…아무튼, 나중에 회계 감사 때 수리 사유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하죠?”

“나보고 책임져 달라 이건가?”

“아니, 딱히…….”

“그럼 책임져 주지. 가세.”

클레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하러 온 격리 담당자는 클레프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자 깜짝 놀랐다.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아, 닥치고 953 격리실로 앞장서기나 해.”

“거긴 왜 가시려구요?”

“왜 또 지랄을 쳤는지 이유를 들어야 그걸 기본으로 핑계를 대든지 아니면 새로 핑계를 만들든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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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레이디.”

클레프가 마이크로폰에 대고 까불거렸다. 모니터로 베개가 날아왔다.

“술 잘 먹어놓고 웬 앙탈인가. 술에 이상한 장난 친 것도 아니고, 의심스러우면 샘플 분석도 해줄 수 있네. 자네가 현대 화학을 알아먹는지는 둘째 문제지만―”

[무슨 연유가 있어 내 구슬은 들먹이느냐!]

953이 빽 소리를 질렀다. 원격이지만 정신조작의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인지, 모니터 화면이 떨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내 구슬’이라고 했지, 분명히.

클레프가 말을 이었다.

“거 궁금하니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좀 물어본다고 있지도 않은 게 닳나?”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느냐!]

“재단에서 그것과 유사한 물체를 발견했다면, 이제 좀 대답할 마음이 드나?”

“네? 박사님 그게 무…….”

클레프가 격리 담당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

“……….”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거짓말인 게 들통난 건가? 애초에 구슬 같은 건 없었는데 저년이 오히려 날 갖고 논 건가? 이리저리 짱구를 굴려보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평소같지 않은 나지막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거짓부렁 말아라.]

“아니, 왜 다짜고짜 거짓말이라는 건가? 그 물체와 자네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나? 아니면 애초에 구슬이 없었는데 자네가 거짓말을 한 —”

[……거짓부렁 말고 썩 꺼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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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남문시장 네거리.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한 여자가 먼지에 콜록거리며 책더미를 뒤적거렸다.

“영 소득이 없네. 아무래도 여기서 살 만한 건 다 샀나. 이제 다른 데로 옮겨야 하나.”

그녀는 헌책 애호가였다. 지금은 절판된 책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판이 나와 있는 책이라도 굳이 헌책방에 와서 사 갔다. 거 유명한 『태백산맥』도 그런식으로 하여 한길사에서 출판한 구판으로 열 권 한 질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뜻밖의 장소에서 귀한 책을 건지는 일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다. 귀하다는 기준은 객관적인 것일 수도 있고, 주관적인 것일 수도 있었지만. 산더미 같은 책더미 속에서 가치 있는 책을 찾아내는 건 마치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얼마 전에는 또 서울문화사판 『은하영웅전설』 한 질을 찾아내서 취하기도 하였다.

서고를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모두 훑어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자, 그녀는 마지막으로 여태껏 한 번도 뒤져보지 않았던, 서고 위에 쌓여 천장까지의 공간을 채운 고서들을 꺼내보기 위해 플라스틱 스툴을 아래 받쳤다.

『田禹治傳』 이라는 제목이 박힌 책이 손에 들어왔다.

“전…… 우치전.”

책의 앞뒤를 뒤집어 보았다. 오래되다 못해 바싹 말라 담배불똥이라도 튀었다가는 금방 재로 화할 것 같았다. 나풀나풀 펼쳐보자 먼지와 함께 한자와 옛한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거 진짜 골동품인가??”

그녀는 잠시 턱을 손으로 짚고 눈쌀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만약 이게 진짜 골동품이라면 한두푼에 팔 리는 없고. 헌책방이란 게 원래 그런 데서 마진이 나오는 거니까. 하지만 내 수중엔 지금 5만원밖에 없단 말이지. 이젠 눈까지 감고 생각을 거듭하던 그녀는, 책을 들고 가장 구석 서가로 향했다. 백년쯤 지나도 안 팔릴 것 같은 철지난 자기계발서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 책들을 빼낸 뒤, 전우치전을 책장 벽 안쪽으로 밀어넣고 책을 다시 꽂아 넣었다. 여기라면 다음 주에 다시 올 때까지 아무도 안 건드리겠지. 그녀는 바지 무릎에 묻은 먼지를 떨고 계산을 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향했다.

이 헌책방은 과거 SCP-724-KO가 있던 곳이기도 했지만, 재단과는 무관한 민간인인 그녀가 그런 것을 알 도리는 없었다.


"『전우치전』을 찾아서"는 SCP-953의 과거를 톺고 현재와 연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클레프 박사는 향후 본 프로젝트의 설정을 953 관련 공식 설정으로 채용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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