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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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서해안의 어염상선들이 바쁘게 드나드는 양화도 마포나루엔 오늘도 마포인들이 대대로 그래왔듯 경강에서 고기를 잡고 지방에서 올라온 선상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생선, 소금, 젓갈들이 그득그득 쌓이고, 그것들을 사고 파는 소리가 왁자왁자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무언가 큼직한 것이 이제 막 들어오려는 나룻배 좌현의 경강 물 속으로 내리꽂히며 풍덩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물보라를 튀겼다. 뱃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순간 얼이 빠졌지만 하늘에서 돌연 떨어진 그것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자 재빨리 그물을 던져 그를 끌어올렸다.

「아니, 무엇이 이렇게 므거워」

낑낑대며 끌어올린 그물을 걷고 뒤집어 보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은 수염에 서리가 앉기 시작한 초로의 남자였다.

「이보오. 이보오. 정신 차리시오」

아무 대답이 없었다. 뱃사람 하나가 피투성이 늙은이의 코 밑에 손을 대 보았다. 미약하지만 숨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뱃사람들이 노꾼에게 빨리 정박하라 재촉하며 늙은이의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몇 차례 등을 두드리자 늙은이는 끄어억 소리를 내더니 피 섞인 물을 토해냈다. 그리고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

「뭐요? 좀 더 크게 말해 보오」

「……토…정…」

그리고 앞으로 푹 쓰러지며 까무라쳤다. 배가 정박하자, 뱃사람들 중 가장 건장한 이가 늙은이를 업고 내렸다. 하지만 늙은이는 왜소한 체구와 달리 쇳덩어리처럼 묵직했다. 결국 늙은이의 양 팔을 두 뱃사람이 어깨에 메어 부액했다. 그리고 가야 할 곳을 향해 잰걸음으로 뛰었다. 늙은이의 가죽신 신은 두 발은 양화도 백사장에 마치 뱀 같은 자국을 남기며 질질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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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그래서, 나한테 뭘 어떻게 해 달라는 거야?」

「교수님 찾는 거 좀 도와 줘. 네가 이런 거 전문이잖아」

살풍경하고 좁은 내 방 안에 나와 설하가 커피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길게 기른 검은 머리를 붉은 밴드로 목께에서 하나로 묶은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파고 있는 반면,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숏컷으로 친 설하 쪽은 손까지 모아가며 비는 꼴이 매우 절박해 보였다.

「느이 지도교수가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건 들어서 알고, 그래서 대학원생인 네 신세가 붕 떠버렸다는 것도 알지. 참 딱하게 됐다만, 난 집 나간 고양이 찾아주는 거나 바람피는 남편 마누라 미행해서 도촬해 주는 거 전문이지, 밑도끝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 찾는 건 경찰공무원 님들의 전문 분야야. 나 같은 탐정조무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경찰들이 수사를 제대로 하려는 열의가 전혀 없단 말이야!」

「네가 그걸 어떻게 판단해?」

「내가 수사는 어떻게 되어가냐고 몇 번을 물어도 아무 대답도 없고」

「그거야 네가 민간인이니까 함부로 얘길 못 해주는 거지. 네가 실종자 직계 가족도 아니고」

「경찰이 대답만 안 하는 게 아니라 질문도 안 해. 학교 사람들 중에 경찰하고 제대로 된 면담을 했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교수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나인데, 나한테도 아무 것도 안 물어 봤다고. 이게 지금 수사를 할 의지가 있는 거야? 제발, 믿고 부탁할 사람이 호야 너밖에 없어」

「하……. 그렇게 얘길 해 봤자……」

나는 팔짱을 풀고 커피를 홀짝이며 친구의 간곡한 시선을 피했다.

「경찰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비협조적인데, 그러다 실종자 본인이 원해서 잠적 같은 결론 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야. 정말 이거 내 인생이 걸린 문제야. 이렇게 빌게, 응?」

「……에휴. 내가 어쩌다 널 알고 지내서」

「해 줄 거야? 해 줄 거지?」

「설하 너 돈 모아둔 거 얼마쯤 있어?」

「돈? 돈은 왜?」

「설마 맨 입으로 일하게 해달란 건 아니겠지? 니 인생이 걸렸다며? 200만 원」

「이, 이백 만원?」

「니 인생이 200만 원 짜리도 안 돼?」

「지금 당장은 그런 거 같은데……. 아니, 아니 물론 앞으로 학위 받고! 취직 하고! 그러면 200만 원 따위가 내 몸값이겠냐, 응」

「그럼 그때 가서 다시 오세요 설하 양」

「아니, 그렇게 되려면 내가 박사학위를 받아야 하고, 그럴려면 교수님을 찾아야 한다니까」

「200만 원. 그 이하는 안 돼. 흥신소 레벨이 아닌 경찰 레벨의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거 질색이야. 내가 개인적으로 싫어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니까. 그 200만 원 안에 위험수당도 포함해서 최대한 싸게 견적 뽑아 준 거야. 싫으면 말아」

단호한 내 말에 설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안경을 벗고 얼굴을 손바닥에 묻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남은 커피를 원샷하고 한숨을 쉬었다.

「……24개월 할부로 받을게. 이자 없이」

「역시 그렇지? 정말 고마워. 너밖에 없다, 정말!」

「떨어져. 더워……」

나를 와락 껴안아 온 설하가 내가 짜증을 내자 냉큼 떨어져 다시 커피테이블 너머로 돌아갔다.

「그래서, 사건이 어떻게 된 거고 현재 상황은 어떤데? 마지막 목격자로서 한번 썰을 풀어 봐」

「일단은, 지난 달에 내가 대구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헌책방에 갔다가 진짜 골동품 수준인 고서 하나를 사게 된 얘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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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여기가 어딘가?」

「정신이 드십니까요?」

「여기가 어디냐 물었어」

「마포의 토정(土亭) 션생 핡집입니다요. 노사께서는 무얼 하시는 분이기에 하낧서 뚝 허니 츳드를시었습니까요?」

「마포……. 그래, 올하게 왔구먼…….」

늙은이가 몸을 일으키려다 왈칵 피를 토해내고는 고만 다시 풀썩 드러누웠다.

「토정……. 토정은 어디 있나?」

「보령 종가에 나려가신 지 졈 다배었는데, 토정 션생을 아로매십니까요?」

「같한 션생을 뫼삽은 사형제 지간일세. 옷은 자네가 갈아솝히었나?」

「도포는 믈논하고 저고리에 적삼까지 핏물이 아니 든 것이 없어 벗겨낼 수밖에 없었습니다요. 몸에 묻은 피도 닧아야 하고 상처도 보아야 했으니. 그리고 웬 쇳덩어리를 껴솝고 계시던데……」

「쇄자갑(鎖子甲)이란 거야. 그래서 그 옷들 다 어찌했나?」

「옷들은 경강에 빨아 널어 놓았고, 그 쇄자갑인지 하는 것은 저기 방구석에 두었습니다요」

뱃사람이 가리킨 곳으로 늙은이가 고개를 힘겹게 돌렸다. 쇠사슬을 엮어 만든 쇄자갑은 그 재질이 무색하게도 곳곳이 무언가에 찢겨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다.

「시혹 내 짐은 아니 보이던가」

「모르겠습니다요. 노사께서 강에 풍덩 떨어진지라 무슨 짐이 따로 있었던들 가라앉아 못 찾지 싶은데, 토정 션생과 아시는 분이라면 한 번 그믈을 훑어 찾아 봅지요. 다만 옷을 갈아솝히던 중 이런 것은 나왔사온데」

뱃사람이 걸레가 된 쇄자갑 곁에 놓인 길쭉한 것을 들어 보였다. 그림을 붙여 거는 족자였다. 늙은이는 그것을 보더니 안심이라도 한 양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남은 건 그 족자 뿐이던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 두 개 하고 칼 두 자루는 없던가」

「그런 건 없었습죠」

「알았네. 그 족자만 있으면 됐어. 고마우이. 내 이 신세는 꼭 갚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은 당연 해야 할 바라, 속히 일어나시기나 하십시요」

「허면 내 한 가지 부탁 좀 더 해도 되겠나」

「무엇입니까요」

「보령에, 자네가 가든, 다른 사람을 보내든. 좌우간에 기별을 보내서. 토정을 더러 속히 좀 오라 해 주게.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함세. 시급한 일일세」

「그쪽으로 가는 등짐장수가 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요. 하온데, 송구하옵지만 노사께오서 뉘신지 알아야 토정 션생께 말씀을 올릴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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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내가 거기서,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전우치전』의 판본을 찾아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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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전우치(田禹治). 송도 사람 우사(羽士) 전우치. 그리 얘기하면 알 걸세. 아, 그리고. 강원도 쪽으로 가는 부보상이 있다면 그 편에 회양군수 양사언(楊士彦)이라는 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전해달라 하시게. 임지 밖으로 함부로 나갈 수 없다 하면 내가, 전우치가 죽게 생겼다고 말하라 허게! 그리고 양사언이는, 오는 길에 송도에 들러 차식(車軾)이도 좀 같이 데려오라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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