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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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0년 (서기 1515년)

어느 산 속

여우는 반 나체로 무덤 위에 엎어져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겨울 정도로 오래 살았지만 그동안 이런 황당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정기를 빨기 위해 교접을 하고 서로의 입 속에서 구슬을 굴린 것 까지는 예사 일이지만, 그 도중에 그만 이놈의 새끼가 구슬을 꿀꺽 삼켜버린 것이다. 사람이 여우구슬을 삼켰다는 얘기는 서너 번 들어 보았다만, 그때마다 일어난 일이 생판 다르기에 지금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야, 이놈아」

「무, 무무 무엇이요」

「바지나 줏어 쳐 솝어」

「아, 알겠소」

허둥지둥 바지를 입은 소년이 잽싸게 도망치려 하자 여우가 그보다 더 잽싸게 손을 뻗어 소년의 댕기머리를 낚아챘다.

「아코, 내 목아지야!」

「어델 도망 가? 죽을래?」

「왜 이러쇼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너, 이름이 무어랬냐?」

「우치, 전우치요」

여우가 우치의 댕기머리를 계속 잡은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눈으로 쭉 훑었다. 아무리 꿰뚫어 보아도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한자는?」

「이, 임금 이름 우(禹) 자에 다스릴 치(治) 자요」

「네 아까 무엇을 삼키었는지 아느냐」

「그것이 무엇이요. 내가 그것을 삼킨 것이 죄라면 그 죄를 갚을 만큼 그대에게 두터이 보답하리이다」

「그래? 무엇으로 보답하려고? 그냥 너의 배를 갈라 내 구슬을 찾고 마음을 시원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아이고 살콰만 주쇼. 무엇이든 다 할 터이니」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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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근데 컴퓨터는 왜 가지고 온 거야? 벌써 내용물이 싹 비워졌다고 내가 그랬잖아」

「혹시 모르지. 무슨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지. 그나저나 약속 시간 다 되어가는데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안 와?」

나와 설하는 장 교수의 컴퓨터를 갖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기선은 연결하지 않고 다만 연결할 준비만 마쳐둔 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인물은 약속시각에서 한 시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열심히 욕을 하는 도중, 부르르. 부르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야 이 새끼야 왜 이렇게 안 와? 내가 다섯시까지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지」

〔이, 시발년이 전화 받자마자 욕질이야〕

「지금 시간이 여섯시가 다 되어간다. 시계도 하나 없냐?」

〔좆같은 2호선 가축수송 때문에 내려야 할 역을 다섯 역이나 지나쳤다! 지금 겨우 내려서 되돌아가는 중이라고〕

「에이, 시팔 진짜……. 빨리 튀어와!」

「누구야?」

전화를 끊자 설하가 물었다.

「거, 얘기했잖아. 컴퓨터 공순이. 일단 전문가 불러서 뭐 남은 게 있나 털 수 있는 건 다 털어 봐야지. 나오는 게 없으면……. 뭐 애초에 출발선이었으니 밑져야 본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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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 ? ?

「뭐? 장 교수 연구실의 데스크톱 본체가 없어져?」

〔… … … …〕

「일 처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 … …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컴퓨터에 남은 게 없어도 지정된 제한 공간 안팎에 물품의 출입이 이루어진 것 자체가 규약에 위배되는 거라고! 이 빡대가리 새끼들, 교육 때 쳐 졸았냐?」

〔… … … …〕

「이 염병 멍청이 새끼들 같으니. 당장 CCTV 확인해서 제한 공간 침범한 민간인 신원 파악 해!」

〔… … … …〕

「벌써 했으면 빨리 수배를 돌려! 일일이 말을 해야 아나! 이번 건 끝나면 싸그리 시말서니까 각오해라」

〔… … … …〕

「뭐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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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의 얼굴을 확인한 뒤 현관 문을 열었다. 잠시 뒤 승강기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두들겨졌다. 나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문제의 인물이 늦은 주제에 해맑게 인사하자 내 얼굴은 두 배 세 배로 오만상 찌푸려졌다.

「여. 나 왔다. 늦어서 미안. 근데 이쪽은 누구……?」

「한설하. 과 다른 대학 동기. 국문과고 지금은 원생동물. 이쪽은 박하연. 우리 학교 컴공과 나왔고, 지금은 자칭 프리랜서 해커, 타칭 백수. 나이는 우리보다 두 살 많지만 야, 너, 개새끼, 시발년 등으로 불러도 반응하니 참고하길」

내가 통성명을 대신 해주자 설하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냥 반말 해. 존댓말 해줄 필요 없어」

「학번은 너희하고 같아. 고등학교 때 노는 언니들이랑 어울렸다가 1년 꿇고 대학은 재수해서. 흐흐」

「자랑이다. 아무튼 간에, 부른 건 다른 게 아니고 이거야」

내가 하연 쪽을 보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어깨너머 뒤를 가리켰다.

「왜? 컴퓨터 고장났어?」

「해커인지 바이러스인지 뭔지가 드라이브를 깔끔하게 날려 버렸는데, 혹시 복구할 수 있는가 해서. 일단 아무 선도 안 꽂아 놨어」

「그런 사소한 일로 날 부른 거라면 시중 소매점 가격보다 비싸게 받습니다~」

하연이 배낭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꺼내며 느물거렸다.

「열 장 꽂아 줄 테니까 닥치고 일이나 시작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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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0년 (서기 1515년)

어느 산 속

우치는 피바다 가운데서 부들부들 떨었다. 불과 어제까지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나누고 공양밥도 같이 먹은 중들이 모두 육편이 되어 흩어져 있었다. 눈 앞의 여자는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태연스럽게 피 묻은 오른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여자의 왼손에는 아직도 꿈틀거리는 중의 생간이 쥐여져 있었다.

「무얼 그리 떨고 앉았냐. 아직 입추도 아니 지난 여름철이구만」

여자가 흰 이빨을 드러내고 씨익 웃었다. 입 주변이 피칠갑이 되어서 마치 입이 귀까지 찢어진 것처럼 보였다. 여자가 절간에 나뒹굴던 붓들 중 가장 굵은 것 한 자루를 줏어들고 피웅덩이에 몇 번 담가 붓털에 피를 흠뻑 먹였다. 그리고 절간 벽에다가 이렇게 휘갈겼다.

禹治是殺人子也

우치가 살인자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오!」

「왜, 싫으냐?」

「그걸 말이라고…….」

「싫으면 없애 버려야지?」

좀전까지 들고 있던 간을 와작와작 씹어 삼킨 여자가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그러자 여자의 왼손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휩싸였다. 여자가 모래를 뿌리듯 왼손을 털어내자 그 빛, 아니 불이 가볍게 떨어져 나갔다. 절의 대들보에 붙은 불이 서서히 연기를 내기 시작했다.

「너도 해 보아」

우치가 황망하여 여자를 바라만 보고 있자 여자는 두세 번 소리없이 손가락을 튕기는 시늉을 했다. 우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붙였다. 그리고 소리나게 튕겼다. 우치의 손에도 푸르스름한 불이 맺히기 시작했다. 기겁한 우치는 피웅덩이가 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다. 그 통에 불은 우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 절간 방 바닥에 들러붙었다. 그 모습을 본 여자가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다」

「이, 이게 무엇이오? 왜 내 손에……」

「저 벽에 쓰인 우치시살인자야 안 태울 거냐?」

「이게 뭐냐고 묻지 않소!」

여자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역시 육편이 된 다른 중의 시체를 뒤져 간을 꺼냈다. 그리고 우치에게 다가와 내밀었다.

「먹어」

우치가 도리질했다. 여자가 빈 손으로 우치의 뺨을 갈겼다. 그 뺨에 피로 손바닥 자국이 났다.

「너도 저 중들 따라 황천 가고 싶냐?」

「모, 못 하오. 사람이 사람을 먹다니 엇지 천륜을……」

「아직도 모르겠냐? 넌 이미 사람이 아니야. 닥치고 처 먹어, 이 새끼야」

「읍, 읍 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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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전우치가 눈을 떴다.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영원히 잊어버리고자 했지만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 벗어날 수 없는 굴레요 뿌리치려 할수록 조여드는 올무였다. 한낱 사람으로서 압도될 수밖에 없는 미친 괴물. 사람의 말을 흉내내지만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 세상 어느 여인보다 아름답지만 사람의 심신을 먹잇감과 놀잇감으로밖에 삼지 않는 끔찍한 흉물. 그런 무지막지한 존재의 호정을 습득한 그 날 부로 자신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지워졌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방황이 너무 길었다.

「아이고, 도사님이 눈을 뜨셨다」

「괜찮으십니까? 열이 끓는 듯 하여 참으로 걱뎡했습니다요」

「내가……, 어드록 정신을 놓고 있었나?」

「보롬입니다, 보롬간. 저희는 정말 초상 치르는 줄 알았습니다」

「토정은… 토정과 봉래는 샹긔 아니 왔는가?」

「예에……」

「그래……. 고맙네. 자네들이 수고가 많으이. 내 꼭 보답함세」

「어셔 쾌차하시는 것이 보답이지요. 도사님께서 예서 이리 돌아가시면 저희가 토정 션생께 면목이 없어집니다요」

「흐흐흐. 토정이 오기 전까진 아니 죽도록 힘써 볼 터이니 걱뎡일랑 말게」

전우치가 그렇게 말하고 몸을 꿈틀거렸다. 오른팔로 방바닥을 짚고 모로 일어서려 했으나 영 힘든 모양인지 결국 끙끙거리다 말았다.

「슬슬 좀 움직이려는데, 지팡이로 쓸 만한 것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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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그럼 어디 한번 보실까……」

컴퓨터에 파워,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를 연결한 하연이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와, 바탕화면이 아주 깨끗하구먼」

「싹 다 날아갔대니깐」

키보드를 두들기는 하연을 남겨둔 채 나는 찬장에서 인스턴트 아이스티 스틱를 세 개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곳곳에 더미로 쌓여 있는 책들 때문에 좁아 보이는 집이, 사람 세 명에 컴퓨터까지 하나 더해지자 정말로 좁아져 버렸다. 할 일이 없어진 설하는 그런 책더미들 중 하나에 앉아서 내 책들을 살펴보았다.

「새삼 느끼는 건데 너 책 엄청 많다. 게다가 이것들은 몇 십년 전 책 아냐?」

「나도 너 못잖게 헌책 매니아라서」

「이건 장준하의 『돌베개』아냐? 와, 세로쓰기. 와아」

「속표지 보고 더 놀라지 마라」

「헐, 대박. 이거 설마 사인이야?」

「저자양반은 아니고, 문익환 목사 사인. 그거 좀 비싸게 치렀다」

내가 종이컵에 가루 아이스티를 태우면서 설하에게 말하자 이번에는 컴퓨터를 잡고 있던 하연이 물어왔다.

「넌 저런 걸 어쩌다 모았냐?」

「내가 반권이었잖아. 반대할 반(反) 말고 절반 반(半). 반 건달 반 민간인은 반달이고, 반 운동권 반 민간인은 반권. 그건 그렇고, 컴퓨터는 뭐 소득 없어?」

「있어 봐. 재촉한다고 쌀이 밥이 되나……. 어?」

「왜 그래?」

아이스티가 든 종이컵들을 올린 쟁반을 들고 하연 쪽으로 가는 길에 설하에게 아이스티를 먼저 건넸다. 컴퓨터를 올려놓은 커피테이블을 짚고 엉거주춤 일어난 하연은 몹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모니터는 암전되어 있었다.

「뭐야, 꺼진 거야?」

「삭제 내용 좀 들여다보려 했더니 암호화가 되어 있어서 복호화 시도를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나갔어. 왜 이러지?」

하연이 전원 스위치를 다시 넣었다. 잠시 윙 하고 팬 돌아가는 소리와 바이오스 화면이 지나가더니 시커먼 화면에 하드디스크가 인식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만 흰 글자로 떠 있었다.

「뭘 잘못 건드린 거야?」

「잘못 건드리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애당초 아무 것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는걸. 드라이버 좀 갖다 줘 봐」

공구함에서 내가 찾아낸 십자드라이버를 받은 하연이 일단 컴퓨터 전원을 끄고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어쩌구 저쩌구 중얼중얼거리면서 본체 케이스를 열었다.

「으아, 미친 이럴 수가」

「왜?」

「냄새 좀 맡아 봐. 케이스 닫은 상태에선 못 맡았는데, 탄 내가……」

「뭐야, 하드가 탄 거야? 지금 벼락 같은 게 친 것도 아니고, 설사 벼락 맞아도 이 건물 접지되어 있어서 괜찮을텐데, 그럴 리가?」

「소프트웨어를 건드려서 과전류를 유발할 수도 있어」

「그게 가능해? 오버클락으로 과열을 일으킨다는 얘긴 들어봤지만 과전류를 소프트웨어로 일으킨다고?」

「이론적으론 가능해. 아마 암호화된 걸 풀려고 하면 작동하게 킬체인이 되어 있었나 봐. 학교 다닐 때 재미 삼아 관련 코드 만들어 본 적은 있는데, 실제 사례는 오늘 여기서 처음 본다 야. 진짜 악질적인 새끼한테 걸렸나 본데. 만약 과전류가 맞다면 손상 정도를 알기 위해서 하드 열어야 하는데 하드라는 게 물리충격에 쥐약이다 보니 그 지경이면 중요 데이터만 살려서 새 하드로 옮기는 게 당연히 전제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 하드는 그냥 망한 거지」

「그럼, 데이터 못 살리는 거에요? 다른 방법 없어요?」

뒤에서 듣고만 있던 설하가 물었다. 하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가내수공업 환경에선 100프로 불가능이라고 보면 되고, 공장 수준 설비를 이용해도 100프로 가능을 장담 못 해. 왜, 중요한 데이터라도 있었어?」

「됐어, 신경쓰지 마. 어차피 못 살린다며」

설하가 뭐라 대답하려는 것을 내가 가로채 대신 대답했다. 하연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도대체 공격자 놈들이 뭐하는 놈들이기에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처리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으로 크래킹하는 것 치고는 정도가 너무 악질적인데. 에휴, 아무튼 미안하다. 도움이 못 됐으니 돈은 안 받을게」

「잠깐만. 네가 하드 태워먹었으니 오히려 네가 수리비 뱉어야 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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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1년 (서기 1516년)

경기도 과천현 남태령

전우치는 그 날 이후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구미호에게 붙잡힌 이래로 먹을 것이라고는 구미호가 어디선가 구해온 간밖에 먹지 못했다. 처음에는 죽어라 거부했지만 이곳 남태령 숲속 토막집 들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몇 날 며칠을 굶기니 굴복하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었다. 도망쳤다간 구미호가 세상 끝까지 찾아가서 우치 자신 뿐 아니라 고향의 어머니까지 죽여버릴 것이라 협박한 데다, 이미 인육을 입에 대고 더러워진 몸으로 어찌 사람 사는 세상에 다시 나갈 수 있으랴 두려움까지 치밀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토막집에 틀어박혀 매일 돌아올 구미호를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여자는 자신을 천년호(千年狐)라 자칭했다. 저 옛날 백제가 망했을 적 사비성 궐내를 헤집었던 여우떼 중에 자신이 있었노라 했다.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뭇 사람에 비해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요물임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런 요물이 왜 자기를 죽이지 않고 옆에 두고만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들은 가장 괴이한 사실, 바로 아무리 여우와 살을 섞어도 자신의 몸이 전혀 쇠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냥 잊고 치워버려도 될 정도로 사소한 문제였다. 여우에게 홀린 사내는 양기를 모조리 빨려 산송장처럼 되어 버린다고 들었는데, 자신은 몇 달이 지나도록 산송장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몸이 가볍고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구미호에게 두려움 뿐 아니라 성욕도 분명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저 여우년의 말이 맞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각설하고 요약하자면, 전우치는 지금 또 토막집에서 구미호에게 깔려 살을 섞고 있었다. 멀리 어딘가에서 요호가 아닌 그냥 여우들이 캥캥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우가 많다고 호령(狐嶺)이라고도 불리는 남태령 고개의 별명은 허투루 지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 집중 아니하고」

「저 밖에서 지금 울고 있는 여우들도 기백 년 나이만 먹으면 임자처럼 되는지, 아니면 달리 무엇이 필요한 바가 있는지 궁금하다 생각을 했소」

「글쎄다. 그건 나도 잘 모라겠구나」

「임자도 모르는 것도 있으셨구료」

「알았었지만, 지금은 잊은 게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긔디할 필요가 없으니까」

「허면 긔디할 필요가 있는 것은 무어요?」

「흐음……. 뭇 즁생들의 간 중에 사람 간이 안직 맛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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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그럼 넌 인제 집에 들어가는 거냐?」

하연을 배웅하려 나와 설하가 지하철역까지 따라 나왔다. 설하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나도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야 하니 다같이 나온 것이다.

「아니, 수원의 지인이 앞으로 3일 일본에 다녀온다고 그동안 고양이 좀 봐 달라고 해서 그리로 간다. 그 3일 동안 그 집에서 먹고잘 거야」

「아, 난 그쪽으로 참 가기가 싫더라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하연이 반문했다.

「왜?」

「4호선이 남태령 밑 지나갈 때 불이 잠깐 나갔다 들어오잖아. 그게 기분 나빠서」

「기분 나쁠 게 뭐 있냐. 그거 그냥 교류에서 직류로 바뀌면서 데드섹션 있는 건데」

「몰라. 기분 탓인지 뭔진 모르겠는데 거기 지나갈 때마다 그 정전구간에서 소름이 싹 끼치더라고.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별 일이야. 아무튼 난 간다. 나중에 보자」

「조심해서 가라」

그렇게 하연을 먼저 보냈다. 나와 설하는 지하철역을 나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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