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전』을 찾아서 - 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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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0년 (서기 1515년)

어느 산 속

여우는 반 나체로 무덤 위에 엎어져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겨울 정도로 오래 살았지만 그동안 이런 황당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정기를 빨기 위해 교접을 하고 서로의 입 속에서 구슬을 굴린 것 까지는 예사 일이지만, 그 도중에 그만 이놈의 새끼가 구슬을 꿀꺽 삼켜버린 것이다. 사람이 여우구슬을 삼켰다는 얘기는 서너 번 들어 보았다만, 그때마다 일어난 일이 생판 다르기에 지금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야, 이놈아」

「무, 무무 무엇이요」

「바지나 줏어 쳐 솝어」

「아, 알겠소」

허둥지둥 바지를 입은 소년이 잽싸게 도망치려 하자 여우가 그보다 더 잽싸게 손을 뻗어 소년의 댕기머리를 낚아챘다.

「아코, 내 목아지야!」

「어델 도망 가? 죽을래?」

「왜 이러쇼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너, 이름이 무어랬냐?」

「우치, 전우치요」

여우가 우치의 댕기머리를 계속 잡은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눈으로 쭉 훑었다. 아무리 꿰뚫어 보아도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한자는?」

「이, 임금 이름 우(禹) 자에 다스릴 치(治) 자요」

「네 아까 무엇을 삼키었는지 아느냐」

「그것이 무엇이요. 내가 그것을 삼킨 것이 죄라면 그 죄를 갚을 만큼 그대에게 두터이 보답하리이다」

「그래? 무엇으로 보답하려고? 그냥 너의 배를 갈라 내 구슬을 찾고 마음을 시원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아이고 살콰만 주쇼. 무엇이든 다 할 터이니」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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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근데 컴퓨터는 왜 가지고 온 거야? 벌써 내용물이 싹 비워졌다고 내가 그랬잖아」

「혹시 모르지. 무슨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지. 그나저나 약속 시간 다 되어가는데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안 와?」

나와 설하는 장 교수의 컴퓨터를 갖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기선은 연결하지 않고 다만 연결할 준비만 마쳐둔 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인물은 약속시각에서 한 시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열심히 욕을 하는 도중, 부르르. 부르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야 이 새끼야 왜 이렇게 안 와? 내가 다섯시까지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지」

〔이, 시발년이 전화 받자마자 욕질이야〕

「지금 시간이 여섯시가 다 되어간다. 시계도 하나 없냐?」

〔좆같은 2호선 가축수송 때문에 내려야 할 역을 다섯 역이나 지나쳤다! 지금 겨우 내려서 되돌아가는 중이라고〕

「에이, 시팔 진짜……. 빨리 튀어와!」

「누구야?」

전화를 끊자 설하가 물었다.

「거, 얘기했잖아. 컴퓨터 공순이. 일단 전문가 불러서 뭐 남은 게 있나 털 수 있는 건 다 털어 봐야지. 나오는 게 없으면……. 뭐 애초에 출발선이었으니 밑져야 본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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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 ? ?

「뭐? 장 교수 연구실의 데스크톱 본체가 없어져?」

〔… … … …〕

「일 처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 … …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컴퓨터에 남은 게 없어도 지정된 제한 공간 안팎에 물품의 출입이 이루어진 것 자체가 규약에 위배되는 거라고! 이 빡대가리 새끼들, 교육 때 쳐 졸았냐?」

〔… … … …〕

「이 염병 멍청이 새끼들 같으니. 당장 CCTV 확인해서 제한 공간 침범한 민간인 신원 파악 해!」

〔… … … …〕

「벌써 했으면 빨리 수배를 돌려! 일일이 말을 해야 아나! 이번 건 끝나면 싸그리 시말서니까 각오해라」

〔… … … …〕

「뭐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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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의 얼굴을 확인한 뒤 현관 문을 열었다. 잠시 뒤 승강기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두들겨졌다. 나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문제의 인물이 늦은 주제에 해맑게 인사하자 내 얼굴은 두 배 세 배로 오만상 찌푸려졌다.

「여. 나 왔다. 늦어서 미안. 근데 이쪽은 누구……?」

「한설하. 과 다른 대학 동기. 국문과고 지금은 원생동물. 이쪽은 박하연. 우리 학교 컴공과 나왔고, 지금은 자칭 프리랜서 해커, 타칭 백수. 나이는 우리보다 두 살 많지만 야, 너, 개새끼, 시발년 등으로 불러도 반응하니 참고하길」

내가 통성명을 대신 해주자 설하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냥 반말 해. 존댓말 해줄 필요 없어」

「학번은 너희하고 같아. 고등학교 때 노는 언니들이랑 어울렸다가 1년 꿇고 대학은 재수해서. 흐흐」

「자랑이다. 아무튼 간에, 부른 건 다른 게 아니고 이거야」

내가 하연 쪽을 보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어깨너머 뒤를 가리켰다.

「왜? 컴퓨터 고장났어?」

「해커인지 바이러스인지 뭔지가 드라이브를 깔끔하게 날려 버렸는데, 혹시 복구할 수 있는가 해서. 일단 아무 선도 안 꽂아 놨어」

「그런 사소한 일로 날 부른 거라면 시중 소매점 가격보다 비싸게 받습니다~」

화연이 배낭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꺼내며 느물거렸다.

「열 장 꽂아 줄 테니까 닥치고 일이나 시작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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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0년 (서기 1515년)

어느 산 속

우치는 피바다 가운데서 부들부들 떨었다. 불과 어제까지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나누고 공양밥도 같이 먹은 중들이 모두 육편이 되어 흩어져 있었다. 눈 앞의 여자는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태연스럽게 피 묻은 오른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여자의 왼손에는 아직도 꿈틀거리는 중의 생간이 쥐여져 있었다.

「무얼 그리 떨고 앉았냐. 아직 입추도 아니 지난 여름철이구만」

여자가 흰 이빨을 드러내고 씨익 웃었다. 입 주변이 피칠갑이 되어서 마치 입이 귀까지 찢어진 것처럼 보였다. 여자가 절간에 나뒹굴던 붓들 중 가장 굵은 것 한 자루를 줏어들고 피웅덩이에 몇 번 담가 붓털에 피를 흠뻑 먹였다. 그리고 절간 벽에다가 이렇게 휘갈겼다.

南陽田家禹治是殺人子也

남양 전가 우치가 살인자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오!」

「왜, 싫으냐?」

「그걸 말이라고…….」

「싫으면 없애 버려야지?」

좀전까지 들고 있던 간을 와작와작 씹어 삼킨 여자가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그러자 여자의 왼손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휩싸였다. 여자가 모래를 뿌리듯 왼손을 털어내자 그 빛, 아니 불이 가볍게 떨어져 나갔다. 절의 대들보에 붙은 불이 서서히 연기를 내기 시작했다.

「너도 해 보아」

우치가 황망하여 여자를 바라만 보고 있자 여자는 두세 번 소리없이 손가락을 튕기는 시늉을 했다. 우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붙였다. 그리고 소리나게 튕겼다. 우치의 손에도 푸르스름한 불이 맺히기 시작했다. 기겁한 우치는 피웅덩이가 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다. 그 통에 불은 우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 절간 방 바닥에 들러붙었다. 그 모습을 본 여자가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다」

「이, 이게 무엇이오? 왜 내 손에……」

「저 벽에 쓰인 우치시살인자야 안 태울 거냐?」

「이게 뭐냐고 묻지 않소!」

여자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역시 육편이 된 다른 중의 시체를 뒤져 간을 꺼냈다. 그리고 우치에게 다가와 내밀었다.

「먹어」

우치가 도리질했다. 여자가 빈 손으로 우치의 뺨을 갈겼다. 그 뺨에 피로 손바닥 자국이 났다.

「너도 저 중들 따라 황천 가고 싶냐?」

「모, 못 하오. 사람이 사람을 먹다니 엇지 천륜을……」

「아직도 모르겠냐? 넌 이미 사람이 아니야. 닥치고 처 먹어, 이 새끼야」

「읍, 읍 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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