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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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사형!」

머리에 갓 대신 쇠그릇을 뒤집어쓴, 수염이 덥수룩한 건장한 남자가 체면도 잊은 듯 백사장을 뛰어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본 전우치가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토정!」

「오면서 대강 이야기는 들었소. 이게 어인 일이시오 도대체. 아니, 이재 자네도 와 있었구먼」

「그간 강녕하셨는가?」

이지함과 전우치, 차식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이고, 말하자면 아주 길지……. 봉래도 불렀으니 봉래까지 오거들랑 이야기 보따리를 함 풀어봄세. 그나저나 자네가 왔으니 봉래도 머잖아 곧 오겠구먼」

「죽을 병이 났다던데, 그 무슨 망령된 말이란 말이오. 천년 호정을 지닌 사형이 아니시오」

「전년 호정?」

이런 쪽에 전혀 조예가 없는 책상물림 차식이 그게 뭐냐는 듯 물었지만 이지함은 정말 오늘내일 하는 노인처럼 지팡이를 짚고 떨고 있는 전우치에게 신경이 다 팔렸는지 차식의 말을 본의 아니게 무시하고 말았다.

「그 천년 호정의 원 주인에게 한 대 세게 맞았다네」

전우치가 옷고름을 풀고 무명목으로 칭칭 감은 흉부를 드러내 보였다. 그 꼴을 본 이지함이 놀란 숨을 삼켰다.

「이거 원. 또 피가 새어나오나. 이따 들어가선 갈아야 쓰겠구만」

「사형 정말 괜찮으신 거 맞소?」

「아니, 곧 죽는다고 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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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내 양 팔을 각기 붙잡은 두 손들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아귀힘이 어찌나 강한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동시에 내 팔을 꺾어 들어오는 바람에 허리를 굽힌 채 고개를 처박은 자세가 되었다. 그 상태로 몇 초간 팔목에 힘이 들어왔고, 부르르 떨다 양 손에 든 무기들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놈들이 꺾었던 팔을 되돌리며 내 몸을 일으켜 주었다. 팔은 여전히 붙잡힌 채였다. 재차 뿌리치려 했지만 여전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씨발 좆같네 진짜! 좀 놓아, 이거!」

「뒤통수에 총 들이대는 대신 놓아줄까, 아니면 그냥 잡힌 채로 있을래?」

왼손을 붙잡고 있던 검은 가죽장갑 낀 자가 말했다. 목소리를 듣자하니 여자 목소리였다.

「어디 도망 안 갈 테니까 그냥 놓아주면 안 될까?」

「들입다 칼질부터 하려 한 게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하나?」

오른손을 붙잡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물론 나도 할 말이 많으니 바로 반박했다.

「니들이 먼저 날 쫓아다녔잖아! 그러고 보니 한설하는 어떻게 했어?」

「한설하?」

이번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와는 다른 여자 목소리였다.

「그래. 한설하. 네들이 납치해 갔잖아. 방금 전에 한설하 집 앞에서 네들하고 격투 끝에 이리로 도망쳐 온 건데 뭘 모른 척이야?」

「……」

침묵이 깔렸다. 그 탓에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지? 우린 너만 마크하고 있었는데」

「그럼 나하고 치고받은 놈들은 누군데? 그리고 씨발 좀 놓으라고, 좀!」

팔을 재차 세차게 흔들자 오른팔이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방금 빼낸 오른팔을 왼손을 잡고 있는 여자를 향해 위협조로 들어올렸다. 하지만 여자는 눈도 깜짝 않았다.

「모리안. 놓아 줘」

등 뒤의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검은 가죽장갑 낀 여자가 마지못한다는 듯 내 왼손을 놓아주었다. 뒤돌아보니 내가 떨어뜨린 삼단봉과 나이프를 등 뒤의 여자가 들고 있었다. 돌려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전에 우리 질문에 대답부터 좀 해줘야겠어」

「지랄 말고 내 질문에 네들이 먼저 대답해」

「걱정 마. 우리 이야기는 네가 듣기 싫어도 다 들려주게 되어 있으니까」

검은 가죽장갑 낀 여자가 말했다. 다시 보니, 한국인 또는 적어도 동양계로 보이는 다른 한 여자와 마스크를 착용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남자와 달리 그 여자는 녹색 눈에 높은 콧날, 뚜렷한 광대 윤곽과 창백한 피부색이 아무리 봐도 서양인이었다. 동양계 여자에게 서양계 여자가 삼단봉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돌연 내 턱에 삼단봉을 쓱 들이밀었다. 검은 엄지손가락이 삼단봉의 전기 스위치를 살포시 어루만졌다.

「어차피 피차 이야기는 다 털어놓아야 할 거, 누가 먼저 이야기하나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쉽게쉽게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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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 ? ?

「한설하 씨」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한설하가 책상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졸았는지 입가에는 침이 묻어 있었다.

「잘 잤어요?」

「그래 보여요?」

드르륵. ‘팀장’이 소리를 내며 의자를 끌어내 앉아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많이 쉬었으면, 다시 얘기 좀 해 볼까요?」

「뭘 하는지 몰라도, 그 망할 놈의 담배 좀 쳐 끄면 안 돼요? 이 밀폐된 공간에서……」

「허허허. 꼬우면 빨리 협조하고 집에 가세요」

한설하가 울그락불그락 치밀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데, ‘팀장’은 아랑곳않고 클립보드 종이만 훌훌 넘겼다.

「장하영. 장하영 교수. 누군지 알죠?」

「……」

「이런 시덥잖은 거에 일일이 묵비권 행사하지 맙시다. 지도교수잖아요」

「그런데요?」

「호야라는 여자는 일단 표면상 직업이 흥신소이고……. 그래서 사라진 교수님 찾겠다고 이 여자한테 일을 맡겼다. 맞나요?」

「그래서요?」

「예, 아니오로 대답합시다. 이 방 안에서. 질문은 나만 하고. 대답은 너만 합니다. 알겠어요?」

「……」

「알겠어, 모르겠어?」

‘팀장’이 담배연기를 한설하의 면전에 대고 끼얹었다. 며칠째 밤낮없이(시계와 휴대전화를 압수당해 시간을 알 수도 없었거니와) 계속되는 모욕에 한설하는 부들부들대다가 결국 체념한지 축 늘어졌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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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2년 (서기 1517년)

경기도 개성부

「어머니! 형님들!」

조용했다. 전우치가 박차고 들어온 사립문이 박살난 채 그 등 뒤에서 나뒹굴었다.

「우치냐?」

둘째 형 전우선(田禹先)이 뒷마당에서 초가삼간 옆간을 끼고 나오고 있었다. 우치가 벌떡 일어나 우선에게 달려가 그 손을 잡았다.

「우선 형! 어머니는? 우성(禹性) 형은? 가만, 형님은 형님 맞소? 정말 형님이시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어머니께선 방에 계신다. 형수는 빨래 하러 갔고, 형님은 나무하고 와선 잠시 쉬신다. 난 형님이 어제 해온 나무를 장작으로 패고 있었고. 우치 너는 공부한다고 산에 들어간 녀석이 연통도 없이 별안간 여긴 웬 일이냐?」

전우치가 맥이 탁 풀린 듯 무릎을 바닥에 꿇고 쓰러지며 땅이 꺼져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늦지 않아 감사합니다」

「아아니, 정말 왜 이런다니?」

「말해줘도 도저히 믿지 못할 거요. 정말, 정말 무섭기 그지없는 일을 겪었소. 아, 이 집도 위험할지 모르오. 속히 다른 데로 피하던지 해야 해요」

「느닷없이 그런 소릴 한다 해도 어딜 간다는 말이니? 그리고 위험하다니?」

전우치가 무엇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고 있자, 전우선이 웃으며 전우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숨 좀 고르고 천천히 얘기하려무나. 어서 들어가 어머니께 문안부터 올려야지」

우선은 그렇게 이야기하곤 뒷마당으로 돌아갔다. 전우치가 지게문을 열어젖혔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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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사형, 사형!」

「응?」

볕 드는 곳에서 멍하니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전우치를 이지함이 흔들어 깨웠다.

「몇 번을 불렀는데 답이 없소」

「아이고, 옛날 생각 좀 하였으이. 봉래까지 다 오거든 어디서부터 어찌 이야기를 해야 하누 생각도 계속 하고 있고……」

전우치가 대답했다. 그러자 옆에 섰던 차식이 말하길,

「그러고 보니 토정 자네는 어찌 전노사를 사형이라 부르는가? 화담 션생님 밑에서 수학한 이들 중에 전노사를 그리 부르는 이는 자네밖에 없으이」

「그것도 이야기하자면 길지」

전우치가 그렇게 말하고 낄낄댔다. 그러자 이지함이 말하길,

「길 것이 무어 있소. 사형이 허암(虛庵) 션생께 도술을 배웠는데 나는 허암 션생께 점복(占卜)을 배웠으니, 그런 전차로 그리 부르는 것이라」

「허면 두 사람은 화담 션생 외에도 같은 분을 스승으로 뫼셨다는 것이구료. 나는 오늘 처음 듣소」

「뭐 정확히 하자면은 내가 허암 션생 밑에 붙어서 오래도록 도술을 배운 건 아니고, 그 양반에게 청한자(淸寒子)의 술법서만 받아 그걸 익혔지. 그때 단 한 번 보고 그 뒤로는 생사를 알 수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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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그러니까, 할 말 다 했다니까! 뭘 더 바래?」

「그것 말고 더 할 말은 없나?」

「없어, 그러니까 씨바 그거 좀 치워!」

답답한 일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 동네에 살았고, 흥신소업을 하게 된 경위며 경력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목 아래 들이밀어진 전기 삼단봉은 아직도 치워지질 않았다. 모리안이라는 서양인 여자가 한 패인 두 명에게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건가?」

「역시 그거겠지?」

따위의 뜻 모를 대화를 자기끼리 주고받더니 모리안이 삼단봉을 거두고 접어넣었다. 턱 밑 전깃줄이 닿았던 부분을 찝찝한 느낌을 지우고자 몇 번 문질렀다.

「이제 내가 좀 묻자. 한설하 어쩄어 정말?」

「이미 말했지만 그건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다」

마스크남이 말했다.

「그 놈들은 우리하고도 적대 관계야」

이건 모리안의 보론이었다.

「그럼, 그 놈들이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인데? 어디 동네 조폭들이 할 일이 없어서 가난한 대학원생을 납치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너희가 그 놈들하고 한 패가 아니라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믿게 해줄게. 『전우치전』 알고 있지?」

「뭐?」

「『전우치전』」

서양인인 모리안이 한국어 고유명사를 물 흐르듯 깔끔하게 발음하자 놀라 처음에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다. 모리안이 재차 같은 말을 하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망할 책하고 이 모든 사단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사실, 널 찾게 된 건 순전히 부차적 성과였어. 원래 우리 목표는 그 책이었거든. 얼마 전에 그 책이 외부로 반출되어서 그 소재를 찾기 위해 추적을 했고……. 대구의 헌책방을 거쳐 한설하까지 닿게 되었지. 그런데 네가 한설하의 지인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지」

「그 책이 원래 너희 거라고? 그럼 한설하를 납치한 놈들은……. 잠깐만 잠깐만. 한 번에 하나씩만 물어볼 테니까, 이해하기 쉽게 대답 좀 해 달라고」

「사실 네 상태를 봐선, 지금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긴 어려울 거 같아」

「뭐?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다음주… 그러니까 3일 뒤 토요일 밤 10시에 경영대학 113동 앞에서 보지. 자하연에서 법대 끼고 큰길 따라 쭉 내려오면 되니까 찾긴 어렵지 않을 거야. 아, 너도 여기 학생이었나?」

「뭐?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고 3일을 기다려? 그동안 설하는 어떡하고? 그리고 네들은 내가 도망갈지 안 갈지 어떻게 알 건데?」

황당해진 나머지 저쪽 입장까지 생각해주는 주제넘는 소리를 했다. 그러자 모리안은 더더욱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 설하라는 친구는 걱정하지 마. 쓸데없이 사람 목숨 해치는 건 제일러스(jailors)… 너희 말로는 옥리들의 방식이 아니니까… 그걸 자기들 딴에는 무슨 "윤리"(이 말을 하면서 모리안은 양 팔을 들어 손가락 더블피스로 따옴표 제스처를 취했다)라고는 하는데, 우린 그걸 위선이라고 부르지… 우릴 안 믿어도 네가 달리 지금 할 수 있는 게 있어? 그러니 네가 안 나올 걱정 따윈 안 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걱정은 안 해도 돼. 3일동안 널 어디서든 계속 지켜볼 거니까. 어제하고 오늘 그랬듯이 말이야」

모리안이 내 코트 자락을 열어 삼단봉과 나이프를 꽂아주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마스크남과 동양인 여자는 돌연 나타났던 것처럼 어느새 돌연 사라져 있었다. 내 코트 자락 안으로 들어온 모리안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모리안은 가죽장갑만 내 품 속에 남겨놓은 채 자기 손만 쏙 빼갔다. 그리고 길도 없는 수풀 속으로 뛰어들더니 이내 모습도 소리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품 속에 남은 모리안의 왼손 장갑이 이것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음을 증거했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여전히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가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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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 ? ?

「……한설하씨. 장하영 교수를 그렇게 찾고 싶었어요?」

「네. 지도교수님이 갑자기 사라지면, 제 인생계획이 어떻게 꼬일지 모르니까요」

「그래요?」

‘팀장’이 빙긋 웃더니 탁자 구석의 스위치를 누르고 말했다.

「응. 대질 준비시켜」

스위치에서 손가락을 뗀 ‘팀장’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참 일이 묘해요. 설하씨가 못해도 사흘, 아니, 한 이틀만 꾹 참고 기다렸어도, 교수님은 아무렇지 않게 교단으로 돌아갔을 텐데」

「뭐라구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근데 오히려 설하씨가 그렇게 얌전히 기다렸으면, 우린 설하씨 존재를 계속 캐치하지 못했을 테고, 『전우치전』 최고본을 찾아낸 장본인이 설하씨인 것도 몰랐을 테고, 그 호야라는 여자의 존재도 몰랐을 테니. 사실 설하씨한테 고마워해야 할려나?」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구요! 설마, 교수님도 여기 계시는 거예요? 아니면, 교수님 실종이 당신들 때문인 거예요?」

한설하가 탁자를 짚고 일어나 소리쳤다. ‘팀장’이 재떨이를 들어 그런 한설하에게 던지려는 듯 어깨너머로 들어올렸다. 그 제스처에 한설하가 반사적으로 머리를 가리면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재떨이는 날아오지 않았다. 딸그락. 소리나게 재떨이를 내려놓은 ‘팀장’이 한설하의 옆으로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질문은 나만 한다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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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2년 (서기 1517년)

경기도 개성부

「총각은 뉘시오?」

「어머니,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접니다. 어머니 셋째 아들 우치에요」

「우리 집안에 아들은 둘 뿐이 없는데……」

드문드문 백발이 나기 시작한 모친의 말에 전우치는 뒤통수에 쇠뭉치를 맞은 듯 얼어붙었다. 그리고 건너방으로 뛰어가 큰형을 찾았다.

「큰형님! 우성 형님! 어머니께서 왜 저러시오. 내가 없는 사이에 망령이 나신 겁니까. 날 못 알아보십니다」

피로에 찌들어 지게문을 열고 나온 우성의 말은 우치의 앞통수에까지 쇠뭉치를 날렸다.

「아니, 그대가 뉘기에 남의 집에 들어와 이러는 거요?」

「형님……」

전우치는 이번에는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반겨 주었던 둘째 형을 찾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뉘시오?」

「형님, 저 우치입니다! 형님 아우 우치요! 방금 전까지 절 반겨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우선은 하소연하는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우치를 따라 뒷마당으로 돌아나온 우성을 바라보았다. 두 형제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오간 뒤, 우성이 우치의 왼팔을, 우선이 오른팔을 붙잡았다.

「왜 이러시오, 형님들? 나 우치라구요! 남양 전씨 11대손 전우치! 정사좌명원종공신 전흥(田興)의 증손이요 공주목사 전가생(田稼生)의 손자라!」

하지만 두 형은 전우치가 무슨 말을 하든 전혀 듣지 않고 그를 박살난 사립문 밖으로 내쫓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 집 막내 우치는 여러 해 전에 앓다 죽었소. 어느 댁의 뉘신지는 모르겠다만, 그런 못된 장난 하면 못 쓰오」

황망해진 전우치가 흙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토담벽에 기대 있던 이가 전우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우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보면 모르나?」

「왜,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데, 왜!」

여우가 전우치의 눈높이에 맞추어 몸을 숙였다. 그리고 전우치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넌 나한테서 못 벗어나. 벗어나면 아니 돼. 내 옆에 계속 있어. 그러라고 달리 갈 데를 없애 준 것이니」

「……」

「넌 이제 죽은 사람야. 인간 세상에 네 발 붙일 곳은 없다 이 말이지. 난 네 일가를 도륙낼 수도 있었어. 지금도 마음만 내키면 그렇게 할 수 있고. 다만 그리하였다가 네 마음이 돌아서 다시 도망쳐 영영 돌아오지 못할까 저어하여 이 정도로 한 거야. 알아 듣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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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경기도 과천시


소맷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관악산 줄기를 타고 시-도 경계를 넘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악구와 과천시의 경계선상에서 과천시쪽에 한 발짝을 걸친 그런 위치였다. 이 부근에 들개들이 출몰하곤 하지만, 전기 삼단봉만 있으면 몸에 절연체를 두르지 않은 모든 진핵생물은 두려울 게 없다. 다만 걱정은 야간의 기온인데, 가방에 들어 있는 방수포로 밖을 두르고 그 사이에 과자와 빵 포장지들을 구겨 채워넣은 채 비박을 하기로 했다.

산중 비박이 처음도 아니고, 그렇게 힘들 것도 없다. 예전에 조폭 딸과 원나잇을 했다가 일 주일 넘게 도피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3일쯤이야.

그런 것보다도, 간밤에 만났던 놈들의 정체와 의도가 정말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피차 어차피 다 털어놓게 되어 있다더니, 자기들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 그 생각을 하니 또 엿 먹은 기분이 들어서 욕을 내뱉었다.

「염병 우라질 거……」

낌새도 없이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놈들의 행태는 일단 그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부터 의심케 만들었다. 3일간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뜻 모를 말 역시 수수께끼였다. 여전히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모리안의 장갑이 그 만남이 현실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어디서 주운 장갑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나 혼자 꾸며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물론 곧 세차게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나는 중2병에 걸리기에는 너무 늙었고, 망령이 들기에는 아직 너무 젊다.

「그런데 왜 하필 경영대에서 보자는 거지? 거기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 놨나」

구체적으로 건물 동 번호까지 대가면서 약속을 잡는 행태는 흡사 학교 학생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수상한 행색으로 다니는 대학생이 (적어도 요즘) 세상에 어디 있어. 그리고, 한설하를 납치하고 날 공격한 놈들은, 어제 그 놈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슨 의도로 움직이는 걸까? 그쪽도 『전우치전』인가? 그럼 장하영 교수도 한설하처럼 놈들에게 납치당했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의문만 넘쳐났다.

「그래, 오냐. 내일 모레 만나선 아주 질문에 파묻혀 죽게 만들어 주마」

까악―까악―. 머리 위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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