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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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2년 (서기 1517년)

경기도 장단도호부 저포나루

「예서 임진강 건너가면 이제 파주 아니간」

「……」

여우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전우치는 아무 대꾸도 않았다. 옆에서는 사공이 여우에 홀리어 촛점 없는 눈으로 노를 젓고 있었다.

「한가지 물어나 봅시다」

「뭐를?」

「다 좋소. 다 좋다 치고. 꼭 사람을 잡아먹어야겠소? 그것만 아니라면 내 평생 임자 원하는 대로 같이 살던 어찌하던 다 하리이다. 돼지를 잡아먹든, 닭을 잡아먹든, 다 같은 고기이거늘 굳이 사람을 잡아먹어야 할 연유가 있소?」

여우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반대쪽으로 또 고개를 갸우뚱. 또 갸우뚱 하기를 세 번 하더니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가 마치 여자의 곡소리처럼 들려 전우치는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나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사람고기를 다른 고기와 달리 볼 연유가 없지 않으니? 오히려 네가 내게 사람고기를 먹어선 아니될 연유를 일러 보아라」

「내가 사람이니 그러하지요. 임자가 어찌되었든 나를 곁에 두길 원한다면, 사람 된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저 하는 내 바람도 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니오?」

「네 어미, 형제들 줄초상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 배려는 다 해주었다고 생각했다만. 그리고, 넌 이미 저 인간들보다 나하고 더 닮았는 걸. 너도 그걸 느끼고 있지 않아?」

「……」

전우치가 질린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여우가 헤실헤실 웃으며 다가와 전우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에휴. 뭐, 그래. 그깟 거 사람 간이나, 소 간이나 사람 간이 더 맛있다는 거 빼면 무슨 차이가 있겠니. 고작 그 정도로 네가 도망하지 않는다면야 기꺼이 양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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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내 양 팔을 각기 붙잡은 두 손들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아귀힘이 어찌나 강한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동시에 내 팔을 꺾어 들어오는 바람에 허리를 굽힌 채 고개를 처박은 자세가 되었다. 그 상태로 몇 초간 팔목에 힘이 들어왔고, 부르르 떨다 양 손에 든 무기들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놈들이 꺾었던 팔을 되돌리며 내 몸을 일으켜 주었다. 팔은 여전히 붙잡힌 채였다. 재차 뿌리치려 했지만 여전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씨발 좆같네 진짜! 좀 놓아, 이거!」

「뒤통수에 총 들이대는 대신 놓아줄까, 아니면 그냥 잡힌 채로 있을래?」

왼손을 붙잡고 있던 검은 가죽장갑 낀 자가 말했다. 목소리를 듣자하니 여자 목소리였다.

「어디 도망 안 갈 테니까 그냥 놓아주면 안 될까?」

「들입다 칼질부터 하려 한 게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합니까?」

오른손을 붙잡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물론 나도 할 말이 많으니 바로 반박했다.

「니들이 먼저 날 쫓아다녔잖아! 그러고 보니 한설하는 어떻게 했어?」

「한설하?」

이번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와는 다른 여자 목소리였다.

「그래. 한설하. 네들이 납치해 갔잖아. 방금 전에 한설하 집 앞에서 네들하고 격투 끝에 이리로 도망쳐 온 건데 뭘 모른 척이야?」

「……」

침묵이 깔렸다. 그 탓에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지? 우린 너만 마크하고 있었는데」

「그럼 나하고 치고받은 놈들은 누군데? 그리고 씨발 좀 놓으라고, 좀!」

팔을 재차 세차게 흔들자 오른팔이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방금 빼낸 오른팔을 왼손을 잡고 있는 여자를 향해 위협조로 들어올렸다. 하지만 여자는 눈도 깜짝 않았다.

「모리안. 놓아 줘요」

등 뒤의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검은 가죽장갑 낀 여자가 마지못한다는 듯 내 왼손을 놓아주었다. 뒤돌아보니 내가 떨어뜨린 삼단봉과 나이프를 등 뒤의 여자가 들고 있었다. 돌려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전에 우리 질문에 대답부터 좀 해줘야겠어」

「지랄 말고 내 질문에 네들이 먼저 대답해」

「걱정 마. 우리 이야기는 네가 듣기 싫어도 다 들려주게 되어 있으니까」

검은 가죽장갑 낀 여자가 말했다. 다시 보니, 한국인 또는 적어도 동양계로 보이는 다른 한 여자와 마스크를 착용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남자와 달리 그 여자는 녹색 눈에 높은 콧날, 뚜렷한 광대 윤곽과 창백한 피부색이 아무리 봐도 서양인이었다. 동양계 여자에게 서양계 여자가 삼단봉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돌연 내 턱에 삼단봉을 쓱 들이밀었다. 검은 엄지손가락이 삼단봉의 전기 스위치를 살포시 어루만졌다.

「어차피 피차 이야기는 다 털어놓아야 할 거, 누가 먼저 이야기하나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쉽게쉽게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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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 ? ?

「한설하 씨」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한설하가 책상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졸았는지 입가에는 침이 묻어 있었다.

「잘 잤어요?」

「그래 보여요?」

드르륵. ‘팀장’이 소리를 내며 의자를 끌어내 앉아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많이 쉬었으면, 다시 얘기 좀 해 볼까요?」

「뭘 하는지 몰라도, 그 망할 놈의 담배 좀 쳐 끄면 안 돼요? 이 밀폐된 공간에서……」

「허허허. 꼬우면 빨리 협조하고 집에 가세요」

한설하가 울그락불그락 치밀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데, ‘팀장’은 아랑곳않고 클립보드 종이만 훌훌 넘겼다.

「장하영. 장하영 교수. 누군지 알죠?」

「……」

「이런 시덥잖은 거에 일일이 묵비권 행사하지 맙시다. 지도교수잖아요」

「그런데요?」

「호야라는 여자는 일단 표면상 직업이 흥신소이고……. 그래서 사라진 교수님 찾겠다고 이 여자한테 일을 맡겼다. 맞나요?」

「그래서요?」

「예, 아니오로 대답합시다. 이 방 안에서. 질문은 나만 하고. 대답은 너만 합니다. 알겠어요?」

「……」

「알겠어, 모르겠어?」

‘팀장’이 담배연기를 한설하의 면전에 대고 끼얹었다. 며칠째 밤낮없이(시계와 휴대전화를 압수당해 시간을 알 수도 없었거니와) 계속되는 모욕에 한설하는 부들부들대다가 결국 체념한지 축 늘어졌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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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2년 (서기 1517년)

경기도 과천현 관악산중

「여기는 어디요?」

「네가 내 집을 홀라당 태워먹지 않았어?」

여우가 전우치를 이끌고 온 곳은 관악산은 관악산이되 예의 여우고개 토막집이 아니라, 어딘지 찾기도 힘든 골짜기 깊숙한 곳의 한 동굴이었다. 동굴 바깥의 겨울 칼바람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기가 가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계속 살 요량은 아니지요?」

「그럼. 태워먹은 집은 네가 다시 지어야지. 그동안 예서 지내고」

「불 피울 것 좀 없소?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구료」

「그딴 것 필요 없잖아? 날 바보로 아니?」

여우의 말에 전우치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전 토막집 근처에 불이 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네가 그걸 어찌 태워먹었겠어? 이미 다 아니까 업수이 여기지 말어라. 네가 내 천년 호정을 홀라당 집어삼켜 버렸지 않아? 아마 그 탓이겠지. 내 몇번이나 말하지만, 넌 이미 인간이 아니야. 너는 인간들보다 나와 더 닮았다 그러지 않니?」

전우치가 더 대꾸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겨 손바닥에 푸른 불꽃을 피워냈다. 여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동굴 안 여기저기를 불로 비춰보던 전우치의 눈에,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무엇들이 들어왔다. 전우치는 그 자리에 앉아 그것들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전우치가 숨을 삼켰다. 앉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여우가 무엇이 잘못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역광 때문에 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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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사형, 사형!」

이지함이 전우치를 흔들었다. 잠시 넋 나간 듯 앉아 있던 전우치가 졸다 깨어난 사람처럼 퍼뜩 놀랐다.

「음? 불렀나?」

「사형, 우셨소?」

「무슨 흰소리야」

그렇게 대꾸하고 전우치가 눈을 비볐다. 그러자 손에 짠물이 흥건히 묻어나왔다.

「많이 피로하신 것 같소. 좀 누워 계시오. 나는 나루터 것들 일 좀 도우러 갔다 올 터이니. 여보게, 이재! 자네가 옆에 붙어 있다 뭐라도 변고가 있으면 냉큼 날 부르게!」

이지함이 멀어지는 한편, 차식이 다가와 전우치를 부액했다.

「전노사, 들어가십시다」

「내가 죄인일세. 내가 죄인이야」

「무슨 말씀이시요」

「딱 자네들 나이였는데, 죽지 않고 컸으면……. 그랬으면 딱 자네들 나이가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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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그러니까, 할 말 다 했다니까! 뭘 더 바래?」

「그것 말고 더 할 말은 없어요?」

「없어, 그러니까 씨바 그거 좀 치워!」

답답한 일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 동네에 살았고, 흥신소업을 하게 된 경위며 경력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목 아래 들이밀어진 전기 삼단봉은 아직도 치워지질 않았다. 모리안이라는 서양인 여자가 한 패인 두 명에게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건가?」

「역시 그거겠죠?」

따위의 뜻 모를 대화를 자기끼리 주고받더니 모리안이 삼단봉을 거두고 접어넣었다. 턱 밑 전깃줄이 닿았던 부분을 찝찝한 느낌을 지우고자 몇 번 문질렀다.

「이제 내가 좀 묻자. 한설하 어쨌어 정말?」

「이미 말했지만 그건 우리가 한 일이 아닙니다」

마스크남이 말했다.

「그 놈들은 우리하고도 적대 관계야」

이건 모리안의 보론이었다.

「그럼, 그 놈들이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인데? 어디 동네 조폭들이 할 일이 없어서 가난한 대학원생을 납치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너희가 그 놈들하고 한 패가 아니라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믿게 해줄게. 『전우치전』 알고 있지?」

「뭐?」

「『전우치전』」

서양인인 모리안이 한국어 고유명사를 물 흐르듯 깔끔하게 발음하자 놀라 처음에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다. 모리안이 재차 같은 말을 하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망할 책하고 이 모든 사단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사실, 널 찾게 된 건 순전히 부차적 성과였어. 원래 우리 목표는 그 책이었거든. 얼마 전에 그 책이 외부로 반출되어서 그 소재를 찾기 위해 추적을 했고……. 대구의 헌책방을 거쳐 한설하까지 닿게 되었지. 그런데 네가 한설하의 지인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지」

「그 책이 원래 너희 거라고? 그럼 한설하를 납치한 놈들은……. 잠깐만 잠깐만. 한 번에 하나씩만 물어볼 테니까, 이해하기 쉽게 대답 좀 해 달라고」

「사실 네 상태를 봐선, 지금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긴 어려울 거 같아」

「뭐?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다음주… 그러니까 3일 뒤 토요일 밤 10시에 경영대학 113동 앞에서 보지. 자하연에서 법대 끼고 큰길 따라 쭉 내려오면 되니까 찾긴 어렵지 않을 거야. 아, 너도 여기 학생이었나?」

「뭐?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고 3일을 기다려? 그동안 설하는 어떡하고? 그리고 네들은 내가 도망갈지 안 갈지 어떻게 알 건데?」

황당해진 나머지 저쪽 입장까지 생각해주는 주제넘는 소리를 했다. 그러자 모리안은 더더욱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 설하라는 친구는 걱정하지 마. 쓸데없이 사람 목숨 해치는 건 제일러스(jailors)… 너희 말로는 옥리들의 방식이 아니니까… 그걸 자기들 딴에는 무슨 "윤리"(이 말을 하면서 모리안은 양 팔을 들어 손가락 더블피스로 따옴표 제스처를 취했다)라고는 하는데, 우린 그걸 위선이라고 부르지… 우릴 안 믿어도 네가 달리 지금 할 수 있는 게 있어? 그러니 네가 안 나올 걱정 따윈 안 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걱정은 안 해도 돼. 3일동안 널 어디서든 계속 지켜볼 거니까. 어제하고 오늘 그랬듯이 말이야」

모리안이 내 코트 자락을 열어 삼단봉과 나이프를 꽂아주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마스크남과 동양인 여자는 돌연 나타났던 것처럼 어느새 돌연 사라져 있었다. 내 코트 자락 안으로 들어온 모리안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모리안은 가죽장갑만 내 품 속에 남겨놓은 채 자기 손만 쏙 빼갔다. 그리고 길도 없는 수풀 속으로 뛰어들더니 이내 모습도 소리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품 속에 남은 모리안의 왼손 장갑이 이것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음을 증거했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여전히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가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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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 ? ?

「……한설하씨. 장하영 교수를 그렇게 찾고 싶었어요?」

「네. 지도교수님이 갑자기 사라지면, 제 인생계획이 어떻게 꼬일지 모르니까요」

「그래요?」

‘팀장’이 빙긋 웃더니 탁자 구석의 스위치를 누르고 말했다.

「응. 대질 준비시켜」

스위치에서 손가락을 뗀 ‘팀장’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참 일이 묘해요. 설하씨가 못해도 사흘, 아니, 한 이틀만 꾹 참고 기다렸어도, 교수님은 아무렇지 않게 교단으로 돌아갔을 텐데」

「뭐라구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근데 오히려 설하씨가 그렇게 얌전히 기다렸으면, 우린 설하씨 존재를 계속 캐치하지 못했을 테고, 『전우치전』 최고본을 찾아낸 장본인이 설하씨인 것도 몰랐을 테고, 그 호야라는 여자의 존재도 몰랐을 테니. 사실 설하씨한테 고마워해야 할려나?」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구요! 설마, 교수님도 여기 계시는 거예요? 아니면, 교수님 실종이 당신들 때문인 거예요?」

한설하가 탁자를 짚고 일어나 소리쳤다. ‘팀장’이 재떨이를 들어 그런 한설하에게 던지려는 듯 어깨너머로 들어올렸다. 그 제스처에 한설하가 반사적으로 머리를 가리면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재떨이는 날아오지 않았다. 딸그락. 소리나게 재떨이를 내려놓은 ‘팀장’이 한설하의 옆으로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질문은 나만 한다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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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6년 (서기 1527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토막집에 소금이 떨어져 전우치는 마포나루까지 행시를 나왔다. 소금이며 젓갈이며 필요한 것을 이것저것 사서 지게에 싣고 나루를 벗어나려 하는데, 누군가 전우치의 소매를 붙잡았다. 돌아보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무슨 일이시요?」

「젊은이가 팔자가 아주 사납구먼. 관상 한번 보고 가지 않으시겠나?」

「난 또 무어라고. 필요 없으니 이거 놓으시구랴」

「자네 얼굴에 살이 잔뜩 끼어서 그러하이. 복채는 아니 받음세」

전우치가 무시하고 갈 길을 가려 하자 노인이 어느새 옆까지 다가와, 전우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자네, 사람고기 먹어본 적 있지 않나?」

전우치가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는 바람에, 지게에 실었던 소금이며 젓갈이 모두 떨어져 내렸다. 섬에 포장된 소금은 그래도 조금 새어나오고 말았지만, 젓갈은 나무그릇이 열리는 바람에 몽땅 땅에 엎지르고 말았다. 전우치가 노인을 붙잡고 으슥한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노형은 누구요」

「이거 놓고 말하시게」

「누구냐 묻지 않소!」

「어디 가서 자네 치부를 떠들고 다닐 일 없으니 놓으시게나. 나도 도망자 신세가 스무 해를 족히 넘은 몸이니. 어디 통성명이나 할까? 나는 이천년(李千年)이라 하네.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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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경기도 과천시


소맷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관악산 줄기를 타고 시-도 경계를 넘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악구와 과천시의 경계선상에서 과천시쪽에 한 발짝을 걸친 그런 위치였다. 이 부근에 들개들이 출몰하곤 하지만, 전기 삼단봉만 있으면 몸에 절연체를 두르지 않은 모든 진핵생물은 두려울 게 없다. 다만 걱정은 야간의 기온인데, 가방에 들어 있는 방수포로 밖을 두르고 그 사이에 과자와 빵 포장지들을 구겨 채워넣은 채 비박을 하기로 했다.

산중 비박이 처음도 아니고, 그렇게 힘들 것도 없다. 예전에 조폭 딸과 원나잇을 했다가 일 주일 넘게 도피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3일쯤이야.

그런 것보다도, 간밤에 만났던 놈들의 정체와 의도가 정말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피차 어차피 다 털어놓게 되어 있다더니, 자기들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 그 생각을 하니 또 엿 먹은 기분이 들어서 욕을 내뱉었다.

「염병 우라질 거……」

낌새도 없이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놈들의 행태는 일단 그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부터 의심케 만들었다. 3일간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뜻 모를 말 역시 수수께끼였다. 여전히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모리안의 장갑이 그 만남이 현실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어디서 주운 장갑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나 혼자 꾸며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물론 곧 세차게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나는 중2병에 걸리기에는 너무 늙었고, 망령이 들기에는 아직 너무 젊다.

「그런데 왜 하필 경영대에서 보자는 거지? 거기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 놨나」

구체적으로 건물 동 번호까지 대가면서 약속을 잡는 행태는 흡사 학교 학생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수상한 행색으로 다니는 대학생이 (적어도 요즘) 세상에 어디 있어. 그리고, 한설하를 납치하고 날 공격한 놈들은, 어제 그 놈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슨 의도로 움직이는 걸까? 그쪽도 『전우치전』인가? 그럼 장하영 교수도 한설하처럼 놈들에게 납치당했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의문만 넘쳐났다.

까악―까악―. 머리 위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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