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

우리가 '예술가'와 처음 만났을 때는 표준 절차를 따랐습니다. 총부터 쏘고, 질문은 나중에. 그다음에는 생일 파티에서 사탕 돌리듯이 기억 소거제를 돌린다 이거죠.

이 방법은 그다지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용하는 전통적이면서도 교과서적인 전략은 조직화한 집단을 상대할 때에 맞춰져 있습니다. GOC, 혼돈의 반란, MC&D와 교단처럼 총알을 주고받는 대다수의 단체에 대한 정책을 보면, 전부 책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 합니다. 나 참, 그놈의 책을 쓸 수 있던 게 상대를 해서였단 말입니다. 이 모든 사람을 데리고 소모전이나 치르고 있다 이거죠. 이 단체들이 크다 하더라도 우리는 더 큰 단체이기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대표하는 상징이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계속 쏴댈 것이고요. 하지만 이런 전략은 '예술가'들에게는 먹히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큰 단체라서가 아닙니다. 크지도 않아요. 소모전이라는 것은 양쪽 모두 집권관리 체제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일어납니다. 하나의 제어 지점이 있어서, 상대에 계속해서 대항하죠. 하지만 '예술가'들은 이렇지 않습니다. '예술가'들에게는 중심이라는 게 없어요. '예술가'들은 통합되어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은 응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처럼 우린 다른 ‘플레이어’들을 대하듯이 이들을 대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가'와의 전쟁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출장 경기입니다. '예술가'들이 때때로 스킵skip을 던져댄다 해도, 그 대다수는 우릴 향한 것이 아닙니다. 바깥세상으로 나가 ‘예술’로 내보여진 뒤, 즉석에서 잊히죠. 이 ‘예술’을 확보하고, 가능하다면 '예술가'까지도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들은 문화지, 기업이 아니에요. 최고의 경우는 '예술가'들이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하여, 운이 좋다면 오늘까지 쿨했던 것이 내일은 밋밋해져 버리는 경우겠죠. 언제나 아주 극소수는 남아있겠지만, 당장은 어찌할 수가 없어요.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활동 반경을 조절하는 것뿐이며, 그마저도 지는 게임을 하는 겁니다.

이 게임의 이름은 "'예술가'들을 붙잡아 가두자"가 아닙니다. 가둬놓을 수도 없어요. 하지만 이 게임을 하려면 '예술가'들이 어디에 있을지를 알아야 하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디에 있을지 전혀 감이 안 잡힐 겁니다. 현재 우리가 취하는 전략은 기회가 된다면 혼자 있는 예술가를 낚아채, 약이란 약은 다 먹여 잠재우고, 인근 ‘전시회’에 대해 아는 대로 불게 한 다음, 표준 기억 소거제를 투여하는 겁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원래 생활로 돌려보내야 하죠. 만약 일을 제대로 했다면 예술가에게는 애초에 붙잡혔다는 기억이 없을 것이고, 우린 눈에 띄지 않은 채 군중을 통제할 방법을 마련할 장소와 시간을 벌게 될 겁니다.

절대로 예술가를 기지로 데려오지 마세요. 존나 중요한 말이니까 잊지 말고요. 만약 탈출하려고 한다면 예술가에게는 계획이 있을 것이며, 그 계획이라는 녀석에는 잡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잡고 놔줄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놔주는 게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요. 정 예술가를 보관해둘 장소가 필요하다면, 안전 가옥에다가 놔두세요. 우린 파일 어디에다가도 안전 가옥의 위치를 적어놓지 않습니다. 일단 배정이 끝나면 당신의 구역에 있는 안전 가옥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줄 겁니다. 그 위치를 어딘가에 적어두지 말고 기억해놓으세요. 그 뒤 이 방 바깥에서는 그 위치에 대해 입도 뻥끗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 방 밖의 누군가가 위치를 알게 된다면, 그 ‘안전 가옥’은 더는 재단의 건물이 아니게 될 것이며 그런 채로 남게 될 겁니다.

제가 말했듯이, '예술가'들은 구심점이 없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예술가'와의 전쟁은 문화 전쟁이죠. 문제가 뭐냐 하면, 조직이 느슨한 만큼 더 유대가 강한 ‘세포 조직’으로 뭉치려는 경향이 있단 겁니다. 이 세포 조직들이야말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장소를 고르고, 입에서 입으로 그 정보를 퍼뜨리는 이들이죠. 그러므로 두 번째 전략이 필요한 겁니다. 조금 논란이 되는 전략이죠. 바로 장기 잠입입니다.

네, 몇몇은 예술가로 행동하게 될 겁니다. 전시회에 가게 될 거고, 대마초를 피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위장하는 데 필요만 하다면, 예술 행위도 해야 할 겁니다. 맞습니다. 재단의 절대 법칙을 하나 어기게 될 거에요. 스킵을 만들게 될 겁니다. 물론, 당신들 중 그 누구도 마술처럼 변칙 개체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없을 것이기에, 도움을 조금 받아야 할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점심 이후에 새뮤얼즈 박사가 다룰 겁니다. 당신이 만든 건 당신이 부수세요.

다른 한편으로는 재단의 또 다른 절대 법칙을 어기게 될 겁니다. 스킵을 파괴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무엇을 상대하는지 모르던 시절에는, 그들이 던지던 모든 것을 격리했습니다. 무지막지한 인력과 자원 낭비였죠.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 대다수는 옮길 수 없게 교외 지역에 영구적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에 저지선을 치고 격리하려 달려들면, 뉴욕의 절반을 폐쇄해야 할 겁니다. 네, 네, 네. 무슨 생각하고 계시는지 다 압니다. 교본에 적힌 규칙을 모조리 어기고 있죠. 하지만 이게 상대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방법이 표준 절차보다 월등하게 낫다는 건 시간이 증명해주고 있죠. 이게 먹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우린 결과를 더 중시하거든요.

자, 그렇다고 보이는 족족 모든 것을 부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건 GOC네가 하는 짓이죠. 일차적인 목표는 여전히 격리입니다. 일단 머리를 굴려 이성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것인가부터 판단하고, 불가능할 경우에만 부수는 겁니다. 집어 들어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렇게 하세요. 열기구 한 면에 대문짝만하게 도배된 밈적재해라면, 일단 열기구부터 터트리고 회수할 수 있는지 보세요. 만약 옮길 수는 없는데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사상자를 일으킬 물건이라면, 산산조각내세요. 또한, 꼭 어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살아있다면 죽이지 마세요. 네, 살아있는 전시물을 보게 될 겁니다. 아뇨,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보다 더 끔찍하죠.

마지막 하나. 우리가 아는 가장 큰 세포 조직은 '비평가'라는 인간이 이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으니, 만약 아무 정보라도 얻는다면 바로 알려주세요. 당장 아는 것이라고는 존재한다는 것 뿐이니까요.

제 강의는 여기까지입니다. 베이글은 문 쪽에 있고, 새뮤얼즈 박사의 강의는 열 시에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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