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헤드카논은 다른 법입니다. 특히 재단이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고, 어떤 구조를 취하는지, 또 연구자들에게 어떠한 방식의 상하구조가 있는지는 다 다른 설정이 있습니다.
지금 본사에 정신간섭을 잘 하는 SCP가 많으므로 고위 인원이 그에 대한 훈련을 받을 것이 분명한데, 왜 여기서는 기지 이사관이 정신간섭에 넘어가느냐라고 비평하셨습니다. 분명히 고위 인원은 약한 정신간섭에 당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고요. 그리고 설세명을 "찬양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씀들과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작품 내적으로, SCP-953-KO의 지효성 정신간섭은 주변 연구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작중에서 격리 총괄자로 보이는 인물마저 영향을 미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간섭은 전혀 인지된 바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연구진이 SCP-953-KO의 행동을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 반응으로 판단하게끔"한 이유입니다. Mirodu님께서 본사 SCP를 많이 읽으셨다니 아시겠지만, 많은 본사 SCP가 인간형 SCP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 반응을 보일 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취하는 서술이 있습니다. 그 적절한 대응은 이 작품에서 나온 것처럼 산책이 될 수도 있고, 심리 면담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조치가 설정적인 오류가 되기엔 어렵다고 봅니다. 재단은 확보, 격리뿐만 아니라 보호도 하니까요. 그것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재단의 기치에 많은 행위이기도 합니다. 비록 비극으로 이어졌지만, 연구원들과 이사관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겁니다. 다른 부서의 연구원들이 이상하다고 여길 일도 아니고요. 게다가 본문에서 언급된 산책이 "반출"로까지 묘사할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지적하신 부분이 전혀 작위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또한 설세명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씀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전반적으로 이 SCP가 설세명의 등장을 담당하는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는 서술들이 SCP-953-KO의 스토리를 마무리 짓고 미스터리한 설세명에게 포커스를 맞추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게 "찬양한다"는 워딩을 쓸 정도로 설세명에게 치우친 SCP였는가는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봅니다. 작법 가운데 복합 플롯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복합 플롯에는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함께 엮인 종류도 있고, 동등한 n개의 플롯이 교묘히 엮이는 종류도 있습니다. 이 SCP는 SCP-953-KO라는 메인 플롯과 설세명의 정체에 대한 서브 플롯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복합 플롯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결이 서브 플롯에서 났다고 해서, 그 서브 플롯을 "찬양"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 아닐까요.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한국 SCP를 쓰는 작가들도 본사 SCP라면 닳도록 읽은 사람들이고, 자기가 쓸 SCP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쓰는 사람들입니다. 헤드카논은 다 다른 법이지만, 다른 이의 헤드카논 측면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논증과 논거, 그리고 존중이 필요합니다. 포럼에서의 발언에 존중이 필요한 것처럼요. 자의적인 해석은 재단 유저로써의 필수 덕목이지만, 다른 유저와 이를 이야기할 때는 이러한 점을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