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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기는 1000-KO 경연의 후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난 시간 동안 SCP 재단이라는 컨텐츠를 누리고 즐겼던 체험의 후기에 가깝습니다.
굳이 일련번호 뒤에 K, O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작가이자 독자로써 이번 작품 SCP-1800-KO, <퇴근 명령>을 수차례씩 읽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감상을 느끼셨을진 모르겠습니다만은, 저는 1800ko를 읽다 보면 재단 활동을 하며 쌓아진 제 내면의 상처. 그리고 그 홈을 불쾌로 메운듯한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 하는 욕구는 제 자신이 쓴 글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쓰여져 가면서 비틀리고 구부러지며 계속 바뀌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은 플롯부터 시작해서 틀을 정하고 채워나가는 글이 아니라 글을 써가며 세계관을 탐색해나가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문단 뒤에 일어날 일을 작가인 저도 모르는 채로 썼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뒤따라, 문단 하나하나가 쓰여질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지역사령부 산하 모든 기지 및 시설 직원들은 맡은 임무를 중단하고 퇴근하여야 한다.
어느 날, 노래마인이 직원 모두를 퇴근 보내고 남은 이사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정제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재단의 모든 게 그저 무의미하다는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해주는 심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SCP 재단은 실제로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고 게임, 단편 영화, 출판 도서 등 많은 업적을 달성했으니까요. 제가 느낀 허무감과 굴욕은…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한국어 위키에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왜 당신만 다르지? 외국인이라서?
그리고 그 분노는 영어 위키로 돌려진 것처럼 쓰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찌르고 싶었던 대상은 원래 영어 위키가 아니었단걸 깨달았습니다. 그 대상은 우리 한국에서 한국어 위키를 공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반쯤은 거짓말로 쓰여진 작품이란걸 막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와 '내 작품',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인정보다도 우리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인정을 더 가치있게 여기곤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타산지석이라 포장하기엔 불건강한 성질이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잃게 만드는 독한 성질입니다. 이런 성질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겉모습-외관-이미지에 집착하려는 흔하고도 기이한 성격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한국어 위키가 가진 멋짐과 가치는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너무 저평가되고 있습니다. 충분히 거대하고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대접 받아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제 아무리 내적 우상화를 해보아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제 열등감은 여기에서 옵니다.
벨트를 목에 묶은 채로 매달려있다.
공감을 바랬던 것인지, 내가 느낀 감정을 남들 모두도 똑같이 느끼길 바랬던 것인지, 글은 그렇게 쓰였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 제가 무얼 느끼며 활동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떨쳐내기 어려운 음습한 모욕감에 찌들어 있었단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SCP-KO 시리즈가 확실하게 깔봄 당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 관념은 제가 재단을 처음으로 접하던 2017년으로 돌아가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당시 저는 첫번째 투고작을 바로 영문으로 번역해서 SCP-6001이라는 일련번호로 투고하려고 준비했었던 것을요. 당시는 SCP-3000이 번역되지도 않았던 때이니 얼마나 일찍 준비하려는지 우스운 꼴이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레이스 이사관이라 부르는 자는 토종 한국인입니다.
제가 지금껏 써온 작품 중 이 글만큼 음습하고 불쾌한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적 데미지를 입었다고 호소하신 분도 계신 만큼 이것이 얼마나 못된 글인 줄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기에 뿌듯함을 느낄 만큼 막되어먹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주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죠. 오히려 불쾌를 느꼈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이 작품이 대체 무엇을 의도하고자 했던 것인지 조금은 밝혀지는 걸까요? 어쩌면 저는 제 마음 속의 불건강한 응어리를 만천하에 솔직하게 풀어 스스로 치유 받고자 쓴 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읽히지 않더라도 공개한다는 사실만으로, 읽어준다면 저에게 긁힌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면서… 제가 느낀 것과 비슷한 감상을 받을 독자를 보고 공감 받는다고 생각하며 위로를 얻기 위해 쓴 것일 겁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소비하는 만큼 저는 여러분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결국은 그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영어 위키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두고 미워하려던 것보다 더 미워하였습니다. 한껏 끼부린 반항심이 같잖은 생각 때문이었다는 걸 알고 제 스스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더불어 스스로 상처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미 썼던 후기를 <재단 후기>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또다시 위로 받으려는 거겠죠.
그래서 모두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이 지저분한 잡념 덩어리를 collapsible 구문 안에 고이 숨겨 담아 공개하고 있는 중입니다. '봐주세요'와 '보지 말아주세요'가 공존하는 심상으로 쓰인 후기였습니다.
이강수 이사관이 허리춤의 권총을 뽑으려 하나 만져지지 않는다.
김 빠지는 좌절적인 결말에 아쉬움을 느끼시는 독자분들이 몇 분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강윤상이 허리춤의 권총을 뽑으려 하나 만져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지금까지 저의 미적지근한 태도였습니다. 할 수만 있었다면 저도…
앞으로는 더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싶습니다. 그러기를 스스로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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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가득한 불쾌감이 의도였다 하더라도, 누구 혹은 어디를 위해서라도 그걸 긍정해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후기를 듣고 보니 애초에 이렇게 설익을 수밖에 없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1
퍼시 샐리의 오지만디아스와 장자에 나오는 호접지몽이 떠오르는군요. 화려하고 웅장하게 쌓아올린 성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곳에는 모래밭 위에 선 나만이 있었다. 그런 느낌입니다. +1 드리겠습니다.
단순한 흰색의 테마가 미스터리하고 마치 꿈 속인 것 같은 분위기를 잘 살린 듯 합니다.
대화문들도, 컨셉도 모두 맘에 들었습니다 (+1)
"SCP 재단이 가짜라면? 변칙 개체들이 실제로는 없다면?" 이런 류의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해볼 법 하지만, 이렇게 능숙하게 풀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쉴 틈 없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결말의 "이들에게도"가 큰 여운을 남기네요.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작품의 분위기와 그 안의 여러 흥미로운 요소들이 제 상상력을 자극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마음 속의 경연 1등작입니다. (+1)
처음에 이 SCP를 읽으면서 저는 -1을 주었습니다.
내용도 마음에 듭니다. 전개도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불쾌감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지부도 이제 탄탄한 설정과 충분한 양과 질의 SCP이 있는데 본가 SCP와 설정만 널리 알려지고 한국 지부 것은 무시받는 것에 대한 서러움이 폭발했던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불만이었는데 여기서 이런 취급까지 당해야 하나? 그래서 결국 -1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읽어보니 바로 그런 감정을 의도하신 것 같더라고요.
작가 본인도 그런 감정을 느꼈고 그렇기에 이런 작품을 쓰신 것. 사실은 이런 취급을 누구보다 받고 싶지 않아하신 것.
결국 제가 기분 나빠한 것은 바로 저 자신이 그 동안 느꼈던 감정을 작가가 썼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1로 바꾸었습니다. 한국 지부여 영원하라.
포스트모던 호러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언어, 민족, 국가적 주체성에서 피어난 공동 문학 창작 프로젝트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입니다. 함께 속한 비서구권 사회의 주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공동원들에게 호소하는 무기력한 분노라고도 느껴집니다.
더 넓게 보면 우리 사회의 국제적 열등감,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의 주체성이 부질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우러나오는 그 불편한 감정을 잘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작성하신 후기와 함께 더불어 한국어로 한국인이 썼기에 나올 수 있는 훌륭한 현대문학 작품입니다. 001-KO가 아닌게 아쉬울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주로 영어로 글을 쓰기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더 나아가 제가 타인과 타사회의 시선 속에서만 비추어져 살아가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 상당히 마음이 아파집니다. 마지막 사건 기록이 영문으로 작성됐으면 더 끔찍했을 것 같다는 잔인한 생각도 듭니다. 불쾌한 감정은 항상 나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1 드렸습니다.
하루아침에 한국사령부가 세계관 내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남은 이들은 어떻게 될까? 라는 상상을 글로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SCP을 읽는다기 보단 테일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꽤나 몰입하면서 읽었네요.
해당 작품이 1000-KO이어도 괜찮겠다 생각되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