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수렵담: 천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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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우리는 우리가 가진 화력이 예측할 수 없는 변칙 개체에게 있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처음은, ██산 근방의 동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강한 공격성과 흉포함을 가지게 되었다는 보고로 시작되었다. 보통의 보고였다면 조사 정도로 끝났겠지만 그 정도가 문제였다. 무려 살쾡이 무리들이 곰을 공격해 산 채로 뜯어먹었다는 증언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문제는 보고에 따르면 영향 범위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데, ██산이 기술실증 기동특무부대 Υ-23이 위치한 제51기지에 바로 인접하여 있다는 것이었다. 51기지가 외부로부터 고립된 지형에 있어, 다른 곳에 있는 특무부대를 개입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상부의 판단에 곧바로 Υ-23의 파견이 결정되었다.

Υ-23은 기본적으로 기술부대였지만, 다행히도 무기 운용 시험을 하던 대원들이 있었다. 개중에선 현장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활동한 요원도 있었고, 그리하여 간단한 내부 협의를 거친 결과 제1분대 분대장 리펄스 요원을 리더로 하고 나머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요원들을 차출하기로 하였다. 대원들은 모두 K2C 소총을 지급받았으며, 어드밴스드 코너샷 유닛은 대인전을 상정할 일이 없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특이사항이라면 대원 중 2명이 개발 단계인 EBSS를 지급받았다는 것이다. 작전 개시 직후, Υ-23의 대원들은 ██산 초입으로 진입했다.

리펄스는 차분히 걷던 중 그때까지 말이 없던 대원 하나의 질문을 들었다.
"이 엡스라는 거, 제대로 작동되는 거 맞아요? 아무리 들어도 영 믿을 수가 없는 기능인데."
"너, 여기 들어온지 얼마냐 됐냐?"
"어.. 한 20분쯤일 거에요."
"아니, 이 산 말고. 이 부대에 들어온 지 얼마냐 됐냐고."
잘 기억나지 않는지 저벅저벅 걸으며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 대원.
"왜요? 본부 소대 기지 경비 분대에서 재배치돼서 한..1개월쯤인데요. 그 전엔 현장에서 꽤 굴렀는데."
"그럼 그럴 만도 하지."
분대장 리펄스는 그 대원의 소총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지금 들고 있는 소총이 당장 폭발하거나 녹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아. 니 거든 내 거든 간에."
"정말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면 공학자 자식들 멱살 좀 잡아줘도 되겠군."
"만약 다치면요?"
"죽거나 어디 절단되거나 심하게 나가거나 하지만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방법이 있어. 사실, 이 부대가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곳이지만, 그건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고."
신입 대원이 신기하다는 듯 자신의 총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면서, 리펄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적어도 우리 목숨이 D계급 인원마냥 싼 건 아니잖아? 재단이 돈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인력은 그게 안되거든. 특히 과학자나 전투 인원에 대해선 더 그렇지. 니가 여기 들어온 것도 능력이 되니까 들어온 거기도 하고, 대원을 새로 뽑는 것보다 부상자를 치료하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거다. 전투 경험이란 것도 있잖아."
"그런가요? 제가 있었던 곳은 D계급 인원들이 무지하게 갈려나가던데."
"그건 그곳에 있는 놈 특성 때문에 그런 거고. 재단은 기본적으로 인력을 무의미하게 낭비하지 않아."

갑자기 무선 통신이 들어왔다.
[아아, 잘 들리나? 지금 자네들이 있는 지점부터가 위험 구역이야. 지금은 더 확산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게.]
[명령 받았습니다.]
"자네들도 들었나? 이제부터 전방에 움직임이 보이면 즉시 보고해라."
"예."
"알겠습니다."
말이 없는 대원도 있었지만 리펄스는 알아서 잘 들었겠거니 하고 무시했다. 이후 산의 중턱을 넘어 20분, 30분을 넘어가도록 별다른 이상 반응은 없었다.

"이제 잠시 쉬도록 한다."
대원들은 각자 수통을 꺼내들거나 주저앉거나 하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총기를 손질하는 대원도 있었다. 리펄스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동물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그거라면 역시 이곳의 이상 현상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상 현상이 관측된 게 사흘 전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실제 이상 현상의 발생 시각은 그보다 더 전이겠군."
"그리고 그동안 계속 확산되었을 거고요."
"생각해 봐라. 전투를 하는 데는 굉장히 많은 칼로리를 소비한다. 이 산의 동물들은 영향을 받았을 때부터 쭉 그 상태일 거란 말이야. 당연히 몸에 심한 부하가 걸리지 않겠나?"
"그래도 사냥해서 잡아먹는 걸로 균형이 유지되지 않으려나요? 그만큼 사냥의 효율도 중가할 거고요."
"문제는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결국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칼로리 소모가 증가할 거고, 사냥을 통한 칼로리 취득은 그걸 따라잡지 못하겠지."
"결국엔.."
"굶어죽게 된다는 거다. 희미하게 시체 썩는 냄새도 나는 것 같지 않나?"
"글쎄요. 전 잘 못 느끼겠는데요.."
"잠시만. 왼쪽에 무언가가 있다."

부대원들이 일제히 돌아본 방향에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쓰러져 몸부림치고 있었다.
"갑자기 달려들 지도 모른다. 조심해서 접근해라."
"아니, 그럴 것 같진 않군요. 숨이 끊어지기 직전입니다. 잠시.."
순간, 고통에 의해 부대원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하던 개가 갑자기 일어났다. 한쪽 다리가 너덜너덜하고 비틀거리면서도 얕게 으르렁대고 있었다.
"저 상태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겁니까? 설마 진짜로 달려들지도 모르는…"
그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개는 지친 울음을 내며 앞으로 몇 걸음 달리다 이내 쓰러졌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것 같다. 다가가서 조사해 봐라. 직접 만지지는 말고, 나이프로 건드려."
진한 피 냄새 속에 약 2분이 지났다.
"오른쪽 옆구리에 발톱으로 인한 치명적인 자상, 크기로 봐서 아마도 고양이과의 동물로 인한 것 같습니다. 왼쪽 뒷다리는 거의 절단된 상태고. 이빨은 몇개 부러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몸 전체에 찰과상, 자상이 넘쳐나는군요. 약 20개 정도."
시체를 뒤적거리던 대원이 다시 말을 꺼냈다.
"아,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뭔가?"
"몸의 이곳저곳에 검은색 분진이 묻어 있습니다. 특히 상처 주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 분진이 이 현상과 관계가 있다고 가정해도 좋겠다. 아마 주변의 다른 동물들도 이런 상태일 거라 추측된다. 표본은 시료병에 채취하고, 주변을 탐색한다."

대원들은 각자 짝을 지어 흩어졌다. 리펄스는 신입을 데려와서 올라가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쪽에 빈사 상태의 사슴이 있습니다. 검은 분진이 전신에 묻어 있습니다.]
[죽은 살쾡이를 발견했습니다. 상처가 검은 분진 투성이입니다.]
리펄스가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내 추측이 맞는 것 같군. 본부에서 감염성 물질을 원인으로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는데, 확산 속도를 고려해 봤을 때 공기감염은 확실히 아니라고 한다. 생화학 장비는 없어도 괜찮을 거다."
"그런 것 같네요. 그럼 이제 작전 종료인가요?"
"아니. 이 분진의 출처를 찾아야 한다."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왔다는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누군가가 살포했다거나."
"일단 내려가면서 말하겠다."
[전 대원은 탐색을 중지하고 원 장소로 귀환한다.]
[라져.]
[들었습니다.]

리펄스는 의아해하는 신입을 등 뒤에 두고 이야기를 재개했다.
"한번 들어 봐라. 아까 처음으로 개를 발견했을 때는 없었지만, 주변의 식물들을 보면 검은 색의 분진이 조금씩 묻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분진이 직접적으로 산 전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겠지. 이 검은 분진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데, 동물 사이의 감염일 뿐이라면 이런 경로는 근원 주변을 제외하고 선형이 되기 마련이야. 확실히 지금까지는 그랬어. 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지니 검은 분진이 사방에 퍼져 있다. 분진을 지속적으로 방출하는 근원이 있을 거라고 본다. 분명."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게다가, 아무래도 그 근원은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으으. 이젠 대장님의 추론을 더이상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 그냥 가만히 듣고 있을게요."
"그래도 좋고. 분진이 진한 순서를 보면 왼쪽, 오른쪽, 그리고 우리가 있는 곳이다. 그 근원이 어딘가에 짱박혀 있는 거였다면 이런 분포는 존재할 수 없어. 어쩌면…꽤 가까이에서 배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신입 대원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거 참 끔찍한 이야기네요. 단 두명으로는 위험할 수 있으니, 모두 불러모아 가기로 한거고요."
"합류. 좀 더 세련된 단어 있잖아. 무슨 놀이터에 몰려가는 아이들같은 어감이라고."
"그런 걸 왜 신경써요."
"뭐, 별로 신경쓸 필요 없는 주제긴 하다."
리펄스는 통신기를 꺼내 본부와 교신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리펄스와 신입 대원이 합류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외의 모든 대원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정상 부근을 탐색한 결과, 이 분진이 어떤 비고정형 개체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건 감이지만, 적대적인 개체일 것으로 추정된다. 교전 태세를 갖추고 이동한다."
"저기, 이 분진에 대한 대책은 없습니까? 인간에게 감염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현재는 마땅한 방호복을 지원받기 힘들다. 본부와도 상의해 봤는데, 최대한 직접 접촉을 피하라는 말만 하더군."
대원 하나가 힘빠진 소리로 말했다.
"뭡니까 그거. 완전 위험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방법이 있겠나. 일단 어떤 건지 보고 나서 대책을 세워 보겠다."
"…알겠습니다."

"긴장 상태를 유지해라."
부대가 정상으로 가면 갈수록 분진은 더욱 짙어졌다. 짙은 분진은 그다지 높은 고도가 아닌데도 내리고 있는 눈과 함께 햇빛을 가려 주변이 어둑어둑했다. 호흡이나 시야에 방해가 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칼날과도 같은 정적 속에서 무언가가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 산은 그리 높은 산도 아닌데 왜 눈이…?"
"눈이 이렇게 내리는 건, 응집원이 많아진 거다."
"그 분진 말이군요."
"그렇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름끼치는군. 어쩌면 사각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전방위를 경계하라."
"무언가 중압감이 몸을 짓누르는 느낌입니다."
"그런가. 일단 탐색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이윽고 부대는 정상 부근에 도달했다. 나무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흰색에 가까운 돌덩어리 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정상 부근은 햇빛의 광채가 유별나게 강했다. 몇몇 분대원들은 마치 분진의 농도가 옅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거..눈이 좀 부시는데요.."
신입 대원이 말을 끝내는 순간, 광채가 휘날렸다. 섬광과도 같이 눈부신 백색의 빛이 부대원들의 눈앞을 가렸다.

그리고 그 빛의 근원에는 표효하는 하나의 거대한 용이 있었다. 정확히는 동양의 용이 아니라 서양의 드래곤에 가까운 생김새였다. 가까운 모양새라는 말이 들어간 건 굉장히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발과 뒷발은 거의 동일한 크기였는데 그렇게 4개의 다리가 있었고, 앞발의 위에는 나비같이 얇은 날개와 억센 다리가 합쳐진 날개다리 한 쌍이 더 달려있었다. 개미와 같은 곤충의 6족 보행과는 또다른 형상의 6족 보행이었다. 바로 앞의 바위에 내려온 뿔은 불청객들을 축객이라도 하듯이 첨예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몸에서는 빛나는 갑각과 상반되어 더욱 더 새까맣게 보이는 검은 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흩날리고 있었다…바로 그 분진이었다.

대원들은 울려퍼지는 굉음에 경직되었다. 다리가 풀려 넘어진 대원도 있었다. 표효가 끝나고 대원들은 일제히 총을 들었다. 찰나의 대치 상태는-원래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 같지만-용 측의 선공으로 깨졌다. 용이 휘둘러친 꼬리에 대원 하나가 튕겨나갔고, 곧이어 뒤로 낮게 뛰면서 토해낸 검은색 덩어리에 얻어맞았다.
"젠장할, 모두 후퇴! 부상당한 대원은 내가 짊어질 테니, 되는 대로 엄호사격 쏟아부어!"
리펄스는 쓰러진 대원을 들쳐업고 한 손으로는 권총으로 사격하며 물러났다. 대원들도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화력을 쏟아내었다.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신입의 말 그대로, 5.56mm 탄환은 용에 대해 저지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저공비행으로 낮게 날아들어온 용을 리펄스는 간신히 굴러 피했다. 게다가 갑자기 주변에서 검은 분진이 폭발하듯 솟구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대원들이 필사적으로 회피하는 동안 용은 거리를 계속 좁히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시작된 전투로 인해 뒤늦게 활성화를 마친 신입 대원의 EBSS 소총이 있지도 않은 탄창을 모두 비울 기세로 발사되기 시작했다. 중기관총에 비견될 속도로 총열을 떠난 에너지 탄환은 상당수가 위로 빗나가면서도 거체에 부딪혀 빛과 불꽃을 뿌려댔다. 순백의 갑각에 어지럽게 난반사된 탄환의 섬광은 마치 조명탄처럼 어두워진 주변을 밝혔다. 그러자 갑자기 용은 울부짖으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신입 대원을 짓누르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공격 대상을 바꾼 듯 했다.
"윽, 총열이 과열된 것 같습니다! 이건..!"
"알겠으니까 공격을 피하기나 해! 그리고 총은 절대 놓치지 마!"
"알겠습니다아! 크핫!"
내려쳐진 날개다리를 신입 대원은 몸을 앞으로 내던져 간신히 피했다. 총을 놓치지 않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저리 뛰고 이리 구르며 시간을 버는 동안 다른 대원들은 부상당한 대원을 이끌고 어느 정도 물러났다.
리펄스도 다시 앞으로 뛰어가 지급된 EBSS 소총을 들고 엄호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공방전이 지속된 후, 그 용은 질렸다는 듯이 날개를 크게 휘둘러 날아오른 후, 이내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저 놈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는 모양이다. 일단 안전한 장소로 이동한다."
대원들은 개를 발견한 그 장소까지 내려왔다. 상부와의 연락을 마친 리펄스는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부상병을 살피던 대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현재 상태는 어떤가?"
"일단 치명상은 면한 건 같습니다만, 피가 잘 멈추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분진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광증이나 그런 증상은 없나?"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 건 다행이군요. 그리고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뭔가?"
"상처가 나고 한 15분 쯤은 출혈이 점점 멈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 후 상처가, 아니 그 주변을 지나는 혈액이 싸늘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하더니, 이후 출혈이 멈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분진의 영향인건가.."
리펄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안 좋은 소식을 하나 전하지. 상부와 연락을 했는데, 분진의 영향 범위가 갑자기 넓어져 51기지 근처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아까의 전투가 영향을 끼친 걸까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냐. 기지에 있는 인원들은 확산을 막고 외부 유출을 방지하는 일로 여력이 없다, 그런데 그 분진에 영향을 받은 동물들이 곳곳에서 날뛰어서 어느 정도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은 전부 다 나와서 막고 있는 난장판이라고 한다. 즉, 우리에게 적절한 지원이 오기 힘들어졌다는 거다."
"설마 그 말은.."
"그래. 우리가 저 놈을 날뛰지 못하도록 제거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무력화라도 시켜야 한다는 거다. 최대한 빨리. 다행인 점이라면, 본부에서 급히 드론을 띄웠는데 전투 후로 별다른 움직임은 관측되지 않는다는군. 정상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다고 한다."
"와우."
"이의있나?"
"아뇨. 까라면 까야죠."

"그래서, 우리가 저 놈을 물리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지."
리펄스는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일단 기존 5.56mm 탄환은 저 놈에게 먹히지 않는다. 갑각의 방어력이 방탄조끼 수준 또는 그 이상이라는 거지. 대물 저격총 같은 거면 관통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에겐 저격총이 없다. 다행히도 EBSS 탄환은 효과가 있는 듯 하다. 운동에너지가 아니라, 열과 화염에 피해를 입는 것 같다. 반응을 보면 확실히 그래. 그렇다면 유탄도 어느 정도는 먹히겠지. 따라서 우리가 유효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화기는 EBSS 소총 두 정, 유탄발사기 한 정밖에 없다."
"저기, 수류탄은 안 되나요?"
"일단 파편탄은 안 돼. 비산된 파편은 총알도 못 뚫는 갑각엔 씨알도 안 먹힌다. 고폭 수류탄이라면 충분히 유효하다고 보지만, 우리에겐 2개밖에 없다. 섬광탄은 사용하기에 따라 제압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임무에 왜 섬광탄이 지금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있는 건 최대한 써먹어야 한다."
대원들이 장비를 뒤적거리는 것을 보고 리펄스는 다시 말했다.
"그래서 EBSS 소총 두 명, 유탄발사기 한 명, 척탄 한 명. 4명으로밖에 상대할 수 없다는 거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EBSS 소총을 든 두 명이 잘 피해다니면서 교전하고, 나머지가 유탄과 척탄으로 지원하는 거다. 저 놈은 그 분진을 능동적으로 공격에 사용하는 것 같으니, 최대한 회피하는 게 좋을거고."
"재밌겠군요 그 용사냥."
"수렵이라는 건가."

리펄스는 총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신입 대원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아까 탄환이 위로 빗나갔었지?"
"네? 아..그랬죠."
"기술자문팀 녀석들, 제대로 이야기를 안 해준 건가… 돌아가면 뭐라고 좀 해줘야 하는 건가. 에너지 탄환이라는 특성 상 탄도가 직선이다. 그러니까 평소 쏘던 것보다 아래로 쏘라고. 영점도 다시 맞추고."
"어쩐지 위로 좀 튀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 잡을 땐 나도 적응 안 됐다고. 어쨌든 그 점을 의식해 두라는 거다."

"출발하자고 이제. 저 아래 녀석들도, 저 위에 놈도 얼마나 기다리고 있겠냐."
총기를 점검하며 리펄스는 싸우기로 한 3명의 대원들에게 말했다. 나머지 대원들에게는 일단 아래로 내려가 있으라고 알린 상태였다. 잘못해서 전투 장소가 이곳으로 옮겨지면 낭패기도 하고, 분진의 분석 작업이 조금이라도 빨리 진행되는 편이 이로울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격발 속도가 조절이 안되는 것 같으면 3점사 하듯이 끊어서 쏘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아까 EBSS 소총을 하나 잃기라도 했으면 지금 상당히 불리해졌겠지. 잘 해 주었다."
"사실 저도 그놈이 물러나는 거 봤을 때 그 생각 했어요."
"상관없는 이야기었나.."

눈이 내리고 있는 정상에 도달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찾아온 불청객들을 노려보는 용이 있었다. 용이 머리를 들자마자, 미리 논의해두었던 대로 리펄스와 신입 대원은 좌우로 흩어졌고, 나머지 둘은 후방으로 빠졌다. 저번처럼 대원들을 제압하려 표효했지만 미리 뒤로 빠진 덕에 큰 영향은 없었고, 이윽고 좌우에서 날아드는 탄환에 몸부림치더니 왼쪽으로 머리를 틀어 검은 덩어리를 토해냈다. 검은 덩어리는 세 갈래로 나뉘어 지면을 활주했고, 리펄스는 이를 간신히 피했다.
그 동안 신입 대원은 후방에서 열심히 사격을 퍼부어댔다. 처음에는 좀 거리를 두고 사격하려 했지만 도저히 유효타가 아닌 것 같아 상당히 접근하여 사격을 하고 있었다. 용은 이를 쫓아내려 꼬리를 세차게 휘둘렀으나, 신입 대원은 예상했다는 듯이 여유롭게 피했다. 좌우에서의 공격에 비틀거리는 듯 하던 용은 이내 거칠게 몸을 비틀며 다시 포효했다.
그러자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주변을 감쌌다. 분진으로 인해 어두웠던 주변이 더 어두워진 듯 했다. 용의 몸에서도 검은 분진이 전보다 더 거칠게 몰아쳤다. 한 쌍의 뿔이 그 속에서도 예리하게 밝은 빛을 내보이고 있었다. 마치 분진에 영향을 받은 동물들과도 같이 움직임도 전보다 더 빠르고 거칠어졌다. 그리고 바로 앞에 대량의 검은 분진을 내뿜었다. 이 분진은 좌우로 확산되며 사나운 기세로 폭발했고, 리펄스가 이를 피한 자리에는..역시 검은 분진이 아래에서 솟아올라 폭발하고 있었다.
이 공격에 리펄스는 다리를 얻어맞았다.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출혈이 있었다. 이 분진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살짝 스친 것 뿐이다! 아직 15분 정도 시간은 있어!"

주변에서 무작위로 솟구쳐 오르는 폭발은 확실히 교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를 내버려 두면 계속 불리해질 뿐이라는 판단을 한 리펄스는 섬광탄의 투척을 지시했다. 기회가 되면 유탄도 쏟아부으라는 지시도 함께 말이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터진 섬광탄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왼쪽 날개다리에 유탄과 EBSS 사격이 일제히 가해졌고, 발톱이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용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날개를 마구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들어올려서는 분진으로 이루어졌다고는 믿기 힘든 크기의 검은 덩어리를 토해냈다. 아까 좌우로 폭발했던 덩어리와 같은 종류의 공격인 듯 했다.
"앞으로 온다! 옆으로 회피해!"
리펄스의 말대로 분진은 옆이 아니라 앞으로 거의 10m가량 터져나왔고, 정면에서 공격을 퍼붓던 분대원들은 황급히 피했다. 분진을 다루는 방법을 거의 완벽히 터득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묵직한 공격을 피하면서도 공격은 계속되어 용의 날개에는 피해가 누적되었고, 날아든 유탄 한 발에 오른쪽 날개발톱이 터져나갔다, 용은 쓰러져 몸부림쳤다. 동시에 주변에서 터져나오던 분진 폭발이 멈췄고, 대원들은 무방비한 상태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발사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최대한으로 피해를 입히던 리펄스는 한순간 상처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주변의 혈관까지도 혈류를 따라 열기가 전해져, 한순간 몸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영향은 시야 또한 또렷하게 만들었다. 리펄스는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최대한 갑각 사이를 조준해 사격했다. 상당한 수의 탄환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이 보였다.
"괜찮겠습니까? 지금쯤이면..!"
"아니, 전투 속행은 가능하다! 최대한 쏟아부어!"
용은 쏟아지는 탄환에도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 반격을 개시했다. 주변에서는 분진이 무수히 솟구쳐오르고 있었다. 대원들은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필사적으로 공격을 피하며 사격했다. 이따금 날아드는 유탄은 공격의 템포를 용에게서 빼앗아갔다. 이에 용 또한 맹렬하게 분진을 퍼트려가며 반격을 가했다.
"조준 시에도 주변을 경계해라! 회피를 우선해!"
그 말이 맞았다. 확실히 조금 공격을 더 하려다 공격당하고 다시 공격 태세로 전환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동안 적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반격하기까지의 시간은 더 길어지고, 적의 공세가 지속되는 시간 또한 길어진다.

격해진 전투로 리펄스는 자신의 출혈이 더 심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상태는 지혈되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그 분진이 그에게 이로운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투는 최대한 빨리 끝내야 했다. 앞으로 분진의 영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용의 상처는 계속 누적되고 있었고, 움직임이 느려진 것이 보였다. 유탄이 날아드는 순간, 용은 또다시 포효했다. 남은 기력을 모두 짜낸, 광폭화 상태였다.
"젠장할! 유탄이 다 떨어졌습니다!"
"고폭 수류탄은? 얼마 남았나!"
"1개 남아 있습니다! 섬광탄도 1개입니다!"
"최악이군.."
상황은 점점 처절하게 치닫고 있었다. 검은 분진은 사방에서 격렬하게 터져나와 흙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폭발하는 반경 또한 커졌다. 필사적으로 이를 피하느라 공세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척탄을 담당하던 부대원이 폭발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유탄을 담당하던 대원이 중상당한 대원을 끌고 뒤로 빠졌다. 그동안 공격은 리펄스와 신입 대원에게 집중되었고, 그들은 공격을 회피하느라 방아쇠를 거의 당겨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수류탄과 섬광탄을 중상당한 대원에게서 넘겨받은 다른 대원이 외쳤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습니다!"
"내가 신호한다! 섬광탄, 수류탄을 동시에 던져라!"
"알겠습니다!"
"머리가 약점이다! 되도록이면 머리를 노려라!"
검은 브레스를 토해내려 용이 머리를 치켜드는 순간, 신호에 맞춰 던져진 섬광탄이 터지고, 수류탄이 정확하게 뿔에 맞아 터졌다. 용은 크게 휘청거렸고, 리펄스와 신입 대원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이 기회를 놓치면 그대로 끝이라는 생각에 풀 오토로 뿔에 사격을 가했다.
뿔이 부러지는 것과 동시에 용은 마지막으로 울부짖더니, 이내 쓰러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해치웠나?"
"그런말 하면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많던데."
다행히도 그런 클리셰는 창작물 속에만 있는 모양이었다. 숨쉬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고, 대원들은 그제서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천운을 기대하긴 힘들겠군. 아래에서 지원이 오기 힘들다는 건 알지만 이러니까 좀 원망스러워지는구만."

[본부, 근원을 제거했다. 그쪽 상황은?]
[그럭저럭. 일단 더 확산되진 않았어.]
[왜 너가 받는 거냐.]
[지금 기지는 연구원들 빼고 거의 비어있는 상태야. 그런데, 진짜 해치웠다고? 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멀쩡한 사람 죽일 생각 하지 마라. 이제 돌아간다.]
[야야 잠깐만 리펄스. 그 개체 있잖아. 갑각 같은 거 좀 떼어올 수 있어? 흥미가 가서 말이지.]
[대신 밥 사라.]
[아무려면.]
리펄스는 컴뱃 나이프로 갑각 한 조각을 어렵사리 떼어냈다.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데도 불구하고, 그 강도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이제 돌아간다."
잠시 휴식을 취한 사이에, 눈은 어느새 그쳐 있었다. 분진이 잦아들고 있는 것이었다. 검은 분진과 눈으로 새까매진 전투복을 입은 채로, 대원들은 용의 시체를 뒤로 하고 하산했다.


"진짜냐. 브레스도 뿜고 폭발도 일으키는 놈을 때려잡았다고?"
"변칙 개체인데 평범한 경우를 못 봤다 나는."
리펄스는 부상당한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입사 동기이자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연구원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갑각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갑각 굉장하더라. 웬만한 강철보다 강하던데."
"그 정도였냐?"
"그래. 지금 연구팀이 시체를 여기로 끌고 와서 조사하고 있는데, 정말로 연구할 거리가 넘쳐난다고. 이상한 성질을 가진 구슬도 있다고 하더라."
"그 분진도?"
"그건 내 쪽 소관이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생물 관련 연구팀으로 보내졌을 듯."
"으음…"
리펄스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네가 낸 보고서 한번 읽어봤다. 그런 데에 소양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커허헉!"
리펄스는 친구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를 보고 목에 사레가 들려 컥컥댔다.
"야 진정해."
"그거 전투 보고서일 텐데. 너…너가 왜 그걸 읽어본 거냐."
"무기 연구부에서 새 프로젝트를 발족했더라고. 네 보고서로. 꽤나 획기적인 프로젝트라, 평소라면 관련이 없을 곳 같은 부서에도 읽어 보라고 던져주던데."
"아 진짜…"
"너 밀덕이지?"
"군인이 무기에 관심 없는 것이 이상한 거다."
"뭐래는 거야."

리펄스는 자신이 낸 보고서를 친구에게서 뺏어 다시 읽어보았다.

….따라서 일반적인 전투에서 가정되는 전투력을 훨씬 상회하는 변칙 개체가 출현할 경우 현재 화기로는 효과적인 제압이 불가능하며 본인 또한 이를 경험한 바 있다. 그렇기에 본인은 변칙개체와의 전투를 상정한 고화력 고관통 무기의 개발을 제안하고자 한다. 골자는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크기로 대전차 소총을 상회하는 관통력을 얻는 것이다. 관통력과 위력의 향상을 최우선으로 하고, 연사력은 그 이후의 사항으로 한다. 즉 반자동 방식이 아닌 봍트액션 방식을 도입하는 것 또한 고려해 볼 만 하다….

"괜찮은 아이디어래. 왜 우리가 이런 경우를 생각 못했지 난리를 치고 있던데."
"걔네들은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볼 리가 없잖냐."
"그렇겠지."
"그런데 네 쪽에는 왜?"
친구는 갑각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거 말이야 이거. 생각해보면 엄청 레어한 소재 아니겠냐. 웬만한 금속보다 가볍고 튼튼하고."
"그걸로?"
"어. 강도 문제로 불가능한 구조도 시험해 볼 수 있대."
"그것 참 기쁜 일이네. 내가 꼭 시험해 보고야 만다."
"거봐 밀덕 맞잖아."
"아니래도."

각자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신 후 이야기가 이어졌다.
"보고서 하니까 우리도 보고서 때문에 죽을 맛인데."
"왜 갑자기 말 돌리냐."
"상관없잖냐. 어쨌든, 그게 SCP로 지정되었다던데. 것도 유클리드 등급으로."
"그럴 만도 하지. 케테르급이면 최소 나는 확실히 죽었을 거고. 근데 별칭이 뭐냐?"
"어딘가에서 전승된 용에 대한 기록이 있었는데, 아마 그 용을 가리키는 것 같더라. 읽어보던가."
리펄스는 자신의 앞으로 툭 던져진 종이를 들여다 보았다.
"이게 뭐야… 샤가르마가라?"
"기록에 있는 명칭이라고 하더라. 천회룡이라고도 하고."
"음…"
"그런데 진짜 용이란 말이냐… 그럼 넌 이제 드래곤 슬레이어 되는 거냐?"
"…"
"뭐 그렇다면, 헌터 정도는 어떨까."
"헌터? 별다른 게 없다면. 어차피 넌 내가 거절해도 그런 별명 만들어 내잖냐. 그럼 그나마 무난한게 낫지."
"그래. 헌터로 하자고. 몬스터 헌터."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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