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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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전사는 걸었다. 이렇게 오래 걸어본 것은 오랜만이었지만 (이제는 알게 됐다, 기억이 났으니까1), 그래도 꽤나 익숙해진 참이었다.

모래가 지탱해주는 발이 지탱해주는 다리가 지탱해주는 몸뚱이를 이끌고, 그는 모래밭을 똑바로 가로질렀다. 밤에는 마음껏 걸을 수 있었다. 그가 도망쳐 나온 곳의 그자들은 그에게 가까이 오지 못했다. 헬리콥터를 바싹 댔다가는 회로에 물집이 잡히고 끓어올라 죽을 것을 알기에. 낮에는 그는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는, 눈을 감고 꿈을 꾸듯이 있었다.

오랫동안 그는 동굴 속에 있었다. 그다음에는 감방 안에 있었다. 오랫동안 벽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그는 하늘 속에 있고, 막 비치는 햇살 속에 있지만, 구름마저 열 발짝 떨어지지 않은 데 있는 듯햇다. 벽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의지였던 신은 죽었겠지만, 전사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어떤 이가 살도록 해주었던 것일까? 조난신호가 있었다는데, 그이가 조난당한 걸까? 또 예전에 누구를 섬겼는지 그가 기억한다면, 그가 살펴보러 가는 곳에 그이가 아직 있을까?

그곳에 그이가 있다면, 아직도 고통을 느낄까? 그가 그이를 해칠 수 있을까?

의지였던 신은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자는 육신을 취했고, 육신에게서는 힘이 나왔지만 동시에 필멸성이 나왔다. 그 흔적이 남아 있다면… 끌어낼 만한 의지가 남았다면, 그가 그자를 다시 끌어낼 수 있었다. 전사의 형상대로 육신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일전의 그자로 되돌릴 수 있었다. 곧 있을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신이 죽지 않았다면, 전사는 신이 자신에게 애원하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마지막 언덕을 그가 오르자, 햇빛이 쨍 비쳐왔다. 은빛 문에서 반사된 빛이었다. 낯익은 그 지루한 동굴이 있던 곳에 달린 문이었다. 빨간 대문자 글씨가 새들과 모래와 주위 모두에게 그 이름을 알렸다.

프로메테우스 연구소 실험기지 त-1

이런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전사가 문으로 다가서자, 기호들의 무늬가 애애애앵 그에게 괴성을 내질렀다. 무시하고 그는, 마음에 드는 손을 문앞으로 갖다댔다.

전사가 동굴이었고, 동굴이 전사였다. 문이 동굴을 막았다 하나, 문은 입구이고 즉 누군가 들어갈 문이었다. 전사이자 동굴이자 입구인 이 문은 열리리라. 그것이 그 할 일이므로. 그리고 문은 열렸다.

전사가 안으로 들어와, 천 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 있음을 깊이 느꼈다. 내내 자기 안에 있었던 있음을. 그것이 오래 전에 자신을 저버렸을지라도.

그가 웃었다. "당신이군." 모국어로 말하며. "여기 있어."


쨍쨍한 햇살이 그라나다(Granada) 고원 한구석에 자리잡은 크고 화려한 크롬 빌딩에 내리쬐였다. 독수리 몇 마리가 울음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날았다. 날렵한 삼각형 모양으로 나는 모습을 보자니 알메리아 사막의 삭막함이 더욱 도드라졌다. 재수없는 독수리 하나가 토실토실한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바로 토끼에게 돌진했다. 빌딩에 너무 가깝도록. 빌딩의 위성 안테나가 갑자기 작동하더니 휙 돌아 독수리를 쳤고, 독수리가 느닷없이 폭발한 자리에는 깃털과 피가 날아다녔다.

반 킬로미터 떨어진 절벽 위에서, 기동특무부대 타우-5는 쌍안경으로 안테나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 안테나는 무슨 시스템이래?" 문루가 물었다.

"무슨 고출력… 마이크로파 방출기려나." 온루가 짐작했다.

"…쯧, 아무렴 어때. 어쩄거나." 난쿠가 주머니에서 구겨지고 살짝 찢어진 종잇장 하나를 꺼내 훑었다. "이제 저 아래로 내려가서…" 그리고 계속 종이를 읽었다. "…저놈들을 염라대왕 앞으로 보내주자고." 딱히 가리키는 곳 없는 손가락을 자꾸 쳐들면서 그 말을 난쿠가 강조했다.

장비 끈을 매만지던 문루가 난쿠를 흘끗 쳐다봤다. "그거 무슨… 전술적인 용어야?"

"우리 방에서 찾은 일기에 있던 말이야…" 난쿠가 천천히 대답했다. "여기 보면… '보통 아저씨'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는데… '보통 아저씨'는 사람이란 뜻이야."

"아하. 누가 쓴 거래?"

"나… 39번째 내가. 나는 책을 쓰고 싶었거든… 보통 아저씨들이 말하는 용어랑 다른 방식들이 목록이 한가득이 있었어. 다른 임무 할 적에 주워들었나 봐."

"옛날 너는 어떤 자식이었으려나." 문루가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그렇지." 난쿠가 말했다. "이것 봐, 얘가 - 내가 - 이런 글을 썼어.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은데."

"…뭐… 옛날 너는 죽었으니까." 문루가 말했다. "그러니… 아무래도… 걔는… 너만은 못하겠지."

이란투가 휘파람을 날카롭게 불었다. "표적 발견. 동쪽이다."

사이버네틱한 인물이 빌딩으로 다가가 그 앞에 서는 것을 넷은 지켜봤다. 마이크로파 방출기 둘이 돌아서 그 인물을 바라봤다가, 우스스 무너져 내렸다.

"쌍안경이… 갈라졌어." 온루가 보고했다. 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장비가 영향을 끼치다니.

"뭔가 떄문에 정신이 흐트러진 모양인데…"

뛰어내려 기습해.

"좋은 생각. 퍼텐셜 에너지 전환기Potential Energy Converter 작동해?" 이란투가 물었다.

"P-E-C 정상 작동 중." 대답이 들려왔다.

"좋아. 전개하자."

이란투가 눈에다 고글을 쓰고 뛰어내렸다. 문루, 온루, 난쿠가 그 뒤를 따라 절벽에서 급강하했다.

쌔애애액, 바람이 넷을 맞으며 얼굴을 때리고 드러난 피부 한땀 한땀을 에었다. 빌딩이 넷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 몸뚱이들을 산산조각내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트럭도 분쇄할 만한 힘으로, 분대가 지붕을 꽝 때렸다.


400시간 전

"이 수술을 왜 해야 한대?" 옷을 벗고 병상복을 걸치면서 온루가 물었다.

"프레드릭슨… 박사가 연구팀에서 2970의 효과를 우리 장비에서… 무시하는 방법을 찾아냈대. 그런데 그 장비를… 수술로… 이식해야지 된다나 봐." 난쿠가 대답했다. "근데 그 수술이 완전 안전하댔으니까 괜찮을 거야."

과연 외과진은 수술을 완벽하게 성공해냈다. 시행착오를 몇 번 거쳐서. 다행히 시체 덕에 팔다리 여분은 많았으니까.


현재

이란투가 맨 먼저 일어섰다. 양 종아리에서 솟아나온 피스톤이 아래로 뻗쳐 전선과 변칙 금속으로 된 반구를 만들어 발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넷이 평평하고 환한 회색 복도를 딛고 일어나자, 아프리카 사이클롭스 넷이 방탄복에 펄스 소총을 갖춘 채로 기다리는 게 보였다.

난쿠의 눈이 빛났다. 재빠르게 난쿠는 칼을 꺼내뽑아 곧바로 가장 가까운 사이클롭스의 목에다 꽂아넣고는 경정맥을 따라 추즈즉, 축축한 소리를 내며 칼을 그었다. 사이클롭스가 쓰러지자 난쿠는 바로 다음 놈에게 덤벼들어, 땅바닥에 드러눕히고 얼굴을 무차별로 콱콱 찍었다.

남은 두 사이클롭스가 뒷걸음질치며 난쿠에게 정신없이 총을 난사했다. 총알이 난쿠의 악귀 방어복에 튕겨나가는 곳을 보고는, 문루가 오른손목을 부여잡고 힘으로 쩌억, 손을 돌려 뜯어내 팔 안에 어찌저찌 융합된 전투소총의 방아쇠를 붙잡았다. 이내 다른 손으로 총을 붙잡고는 문루는 빠르게 두 발을 발사했다. 반동조차 없었다. 등에 이식한 P.E.C. 모듈이 반동을 흡수했으니까.

두 사이클롭스가 털썩 쓰러지며, 목에 난 깔끔한 동전 크기 구멍으로 피를 줄줄 흘렸다. 한 눈으로 복도를 주시하며 문루는 자기 몸을 천천히 살폈다. 반대로 돌아버려서 잡은 소총 괜히 놓치지 않도록.

"상태는?" 이란투가 재빨리 물었다.

"피해 없음." 문루, 난쿠, 온루가 동시에 말했다.

"이식체들이 효과가 있네." 문루가 덧붙였다.

난쿠가 후우 날숨을 뱉었다. "재미없어. 무슨… 누워서 떡먹기네."

"휴즈 대장님 말씀 기억 안 나? 보통 인간은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란투가 난쿠에게 지적했다. "이제 계속 가자. 목표가 아직도 빌딩 안에 있을 테니, 우리가 침입한 걸 알아챘다고 봐야겠지. P.E.C. 계속 확인해."

"난쿠 펙이랑 내 펙은 정상 작동해. 문루 펙도 적군 제거할 때 제대로 기능했고." 온루가 보고했다.

"적어도 2970 뒤를 밟을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지붕을 뚫고 들어와 버렸으니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이란투가 낙심한 듯 말했다. "본부를 호출할게."

이란투가 귀를 톡 눌러 라디오 이식체를 작동시켰지만, 응답이 없었다. 다시 해 봐도 마찬가지. "신호가 없어."

분대는 복도를 죽 둘러봤다. 둘 다 똑같이 길고 수수하게 생겼다.

"어느 쪽이냐?" 난쿠가 혼잣말로 물었다.

동쪽. 그자는 항상 햇빛과 함께 걸어.

"좋아. 다들 동의한다면 동쪽으로 가자고." 이란투가 명령했다. 그리고 방금 들어온 천장 구멍을 올려다봐 방향을 재확인하고는, 넷은 복도를 내닫기 시작했다.


전사가 부르는 소리에 응답은 없었다. 바랐던 대로. 은상자로 들어가자 맞이 데스크가 나왔고, 그 다음으로 복도가 나왔고, 더 기웃거림 없이 그는 출발했다.

맨발이 몇 년만에 처음 금속 바닥에 닿았다. 금속 바닥도 며칠만에 처음 맨발이 닿았겠지, 전사는 생각했다. 벽은 다 판판하되 열 걸음마다 출입문 자리로 넓게 들어간 구멍이 나 있었다. 입 헤 벌린 문 안을 가끔씩 들여다보노라면, 바닥에는 흩뿌려진 종이들, 깨진 전구들, 사무실 의자들이 보였다.

그러다 복도에 난 넓은 틈을 지나치려 할 때, 그는 이상한 사람을 하나 봤다.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 피부도 근조직도 없이, 뼈가 금속으로 이루어졌다. 구조가 복잡하지만 고상했다. 매끄러웠다. 팔다리의 살진 힘줄이 달려야 할 자리에는, 낯익은 까만 액체로 찬 유리통이 있었다.

그가 다가가 유리통을 튀겼다. , 실망스런 소리. 죽었다.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전사는 계속 걸었다. 어두운 홀이 그를 더 깊이 불렀고, 조각된 사람들이 벽에 주욱 늘어섰다. 움직이진 않았지만, 자기를 심판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느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전사는 안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몸 안의 금속 하나하나가 떨리듯이. 공기가 마침 딱 맞는 주파수로 공명하듯이…

그리고 전사는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죽음은 삶의 결과일 뿐이야. 신은 필멸자의 삶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죽음을 선고했어. 삶이 죽음을 불러와? 그럼 삶에서 빠져나와. 신은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든 다음, 자기 존재를 셋으로 갈라 버렸어.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어느 날 다시 합칠 수 있도록.

정신을 감추는 것이 제일 쉽지. 의식적 사고는 누그러뜨리고 겨울잠을 재우면, 나중에 언젠가 다시 떠올려 또렷이 되살릴 수 있어. 신은 자신을 스스로 안에 숨긴 거야.

영혼은 조금 어렵지. 강대한 존재의 영혼이란 스스로를 지탱해야 하고, 자신을 통해 다른 부분 또한 지탱해야 해. 그릇 될 인간이 필요했어. 복수심에 불탈 수 있는 자가. 증오를 힘으로 살아 있는 자가. 신은 그 과업을 위해 젊은 무어 사람을 고르고, 적들의 심장을 뜯어낼 수 있는 손 하나를 주었지.

마지막이 신의 몸이었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걸 숨기는 것, 아무도 찾지 못하다가 적절한 때 신을 다시 모아 합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어.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

몸은 발각되었고 이단자들에게 오용되었어. 프로메테우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를 일컬으며 자기들이 털끝만큼도 이해하지 못할 그 신의 이름을 더럽혔지. 그리고 정신은 그 고통을 견디면서 계속 잠들어 있지 못했어. 결국 깨어나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들을 모두 곱씹었지.

모든 것이 뒤틀리고 손질당하고 구워졌어. 인간들은 죽은 부분을 가져다 꿰매 붙여 산 것을 만들고, 감추어진 정신을 찾아내자 그것마저 가져가 금속과 번개로 된 우리에 가두었지. 그 존재가, 그 죽음이 고통이었어. 이 세상이 고통이었어. 고통에는 시달릴 뿐. 무슨 느낌인지 상상이나 하겠어? 세상이 나 없이 진보하는 것, 그것이 나를 그토록 괴롭히는 것, 그로만 가득찬 몇 해를 이해나 하겠어? 고통 이외의 것은 생각조차 못 하는? 더구나 내가 정신이고 생각 그 자체라면?

고통은 이제 멎었어, 전사여. 그들이 오래 전 내 몸을 가쳐가 고통과 상실의 무한한 고리에 가뒀지만, 이제 정신은 또렷해. 내게 오지 않겠어? 나를 다시 감싸안지 않겠어?

이것이 자기한테 나온 생각이 아님을 전사는 깨달았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왼쪽. 오른쪽.

시커먼 놈들 셋이 금속 외골격에 화염방사기까지 갖추고 통로를 막아섰다. 이란투가 손목을 까득 돌려 소총 손잡이를 다른 손으로 잡아꺼냈다. 그리고 구석에다 섬광탄을 던진 다음, 그의 귀를 틀어막고 구석으로 돌아가 뒷머리에다 정확히 한 발씩 쏘아 셋을 드러눕혔다.

추욱 벽에 늘어진 시체를 분대가 바삐 지나치며, 이란투가 되풀이했다. "기억해, 보통 사람들은 이런 짓을 즐기지 않아."

오른쪽. 똑바로. 다시 앞으로.

홀에 경비 둘이 등장했다. 하나가 무심하게 왼팔 밑동에 달린 전기톱을 위이잉 돌리고 있었다. 난쿠가 비투척용 칼을 투척해 전기톱맨의 귀를 맞혔다. 전기톱맨은 쓰러지며 아직도 돌던 톱날을 동료의 가슴에 꽂아버렸다.

첫째 시체에서 그녀의 칼을 다시 뽑아내며 난쿠가 히죽거렸다. 이란투가 또 지적했다. "재미있는 일 아니라고 했지."

이 문으로. 다섯 층 아래 소리가 들려.

웅성웅성 달려오는 적군의 발소리가 아래쪽에서 나자 온루는 계단 위에 자리를 잡았다.
첫째 경비가 눈에 들어오자, 온루는 그녀의 손바닥을 경비 쪽으로 겨누고 손등에 심어뒀던 줄을 잡아등겼다. 손바닥의 분사구에서 쪼끄맣게 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주황색 불꽃이 밝게 화르륵 뿜어져 나왔다. 갑자기 온몸이 눈부신 주황색 불공이 되어버린 경비는 울부짖는 소리를 내다가 뒤로 쓰러져 동료에게 부딪혔고, 불꽃은 뒤로 더 널리 퍼져나갔다.

분대는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는 계단 속으로 파고들며, 괴로운 울부짖음과 고기 타들어가는 냄새를 뚫고 지나갔다. 이란투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자의 팔이 보여. 왼쪽으로 가고 있어. 다시 왼쪽. 앞으로.

분대가 복도로 들어섰다가, 다시 데꺽 뒷걸음질친다. 로켓이 막 스쳐서 날아왔다. 무슨 커다란 키메라가 복도를 막았다. 남자 머리가 금속 철창에 싸여 있고, 벌거벗은 몸통은 미사일 런처 랙 두 개 사이에 끼여 있고, 탱크 궤도 두 줄이 아래에 붙어 있었다.

문루가 한쪽 소총 손목을 그의 다른 손으로 부여잡고, 언더배럴 수류탄 한 방을 그 큰놈의 미사일 런처에다 날렸다. 큰놈이 수류탄을 맞고 반격을 날리려 할 때, 런처에서 다시 막 발사된 미사일이 수류탄의 폭발에 휘말려 터져버리고 큰놈을 등까지 뚫어버렸다. 그리고 키메라의 다른 랙에 있던 미사일이 또 폭발했다.

이란투가 먼저 다가가, 시체가 어떻게 됐나 살펴보러 기어오르다가 멈췄다. 키메라의 몸통은 대부분이 폭발로 날아갔지만, 여전히 숨은 헐떡거렸고 두 눈도 아직 멀쩡했다.

이란투가 키메라 얼굴 주위의 창살을 뜯어내고 얼굴을 콱콱 짓밟았다. 피와 연골이 이란투의 발에 막 튀어오르다가 헐떡임이 멎었다. 이란투는 몇 번을 더 짓밟다가, 분홍빛 반죽만이 남은 걸 보자 그제서야 만족스런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오른쪽. 여길 지나서. 계단 맨 아래로.

분대가 똑같은 복도를 지나 똑같은 복도로 발걸음을 재우치던 중, 난쿠와 온루는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계속 들리는 이 소리가 여자의 직감이라고 하는 건지.

길 끝에는 엄청나게 막대한, 미쳐버릴 만큼 회색빛 자욱한 정육면체 방이 있었다.

분대가 방 안으로 냅다 들어갔다가 바로 멈춰섰다. 백여 명은 되는 기형 인간들이, 외골격은 물론이고 작은 나라를 집어삼킬 수도 있을 만한 무기들을 갖춘 채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키메라 한 스무 놈이, 도시 하나 정도는 밀어버릴 로켓을 장전한 채로 있었다. 또 그 뒤로 육중한 기관포 두 정이, 통 속의 뇌에 연결된 채로 있었다. 이 기괴한 기계군대를 위에서 거대한 금속 캡슐이, 가느다란 황금 케이블 십여 개로 태아를 하나 매단 채로 내려다봤다.

그 모두가 엎드린 채로 - 아니면 엎드리려고 하는 채로, 한 남자를 바라봤다. 늠름한 아프리카계 남성이, 고체 유리 장갑과 황금 눈알로 어마어마하게 큰 화물 승강기를 제어하는 중이었다. 이 사이보그는 버튼을 하나 누르더니, 그렇게 큰 승강기인 걸 못 믿으리만치 재빠르고 조용하게 스르륵 내려가 사라졌다.

금속 괴물들이 분대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엎드렸다.

내가 말해뒀어. 형과 누나를 해치지는 않을 거야.

분대가 무기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쳐들었다.


이란투가 엘리베이터 통로를 살펴보는 사이, 온루는 무릎을 꿇고 시체를 하나 살펴봤다. "문루, 난쿠, 이리 와 봐. 나… 생각 하나 났어… 농담이."

"아! 진짜?" 난쿠가 신난 듯 외쳤다. 난쿠와 문루도 무릎을 꿇었다.

"제거된 적대적 개체가… 눈이 하나만 남았으면 뭐라 하게?" 온루가 물었다.

"…"

"나… 눈 몰라." 온루가 시체의 기형 각막을 톡 쳤다.

"…"

"아… 이건 말장난하는 거야. 토씨 '는' 자리에 '눈'을 대신 써서. 캄푸스Campos 병장한테 들은 건데."

문루와 난쿠가 주저하며 웃다가, 조금 더 확신하며 웃었다. 온루도 따라 웃었다.

"승강기 통제 장치가 부식돼서 못 쓰게 됐는데, 통로는 달랑 1km 깊이인 것 같아. 뛰어내리면 2970을 계속 뒤쫓을 수 있을 거야." 이란투가 끼어들며 말했다. "뭐야, 다들 왜 그래?"


전사가 계속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도 이제 빠져나가지 못해. 모든 길이 이리로 이어지지. 이곳만이 네 운명이야.

꽝, 전사가 벽에다 주먹을 부딪치면서 생각을 거기 있던, 내가 왔던 그곳의 그들은 날 미워해. 내가 베푼 도움을 보고는 날 응징했지. 그들을 탈출시켜 주러 왔지만 응징은 계속됐어.

눈을 감으려 했지만 감지 못했다. 목소리가 멈추지 않고 더 커지기만 했다. 머릿속에 벌떼들이 웅웅 날아다니고, 벌떼들은 이제야 내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아. 내 고통을 나는 개인의 성장으로 돌렸어. 너도 한번 해봐.

돌아갈 준비는 끝났어. 스스로를 물리세계에서 뜯어내 올라가, 내가 이룬 것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는 끝났어. 이제 난 훨씬 더 나아진 놈이야, 정말.

하지만 내 정신 혼자서는 가지 못해. 내 영혼도, 내 몸도. 함께 올라가야만 해.

나는 네가 필요해. 네가 나의 일부로 되고, 내 몸이 마지막으로 내 의지를 따라야만 해. 우리 모두가 오를 수 있어. 다시 신이 될 수 있어.

승강기가 멈추었다. 둘은 전사는 이제, 건물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도착했다.

그곳에는 둥근 방이, 그 한가운데에는 제어반이 있었다. 그 위로 구형 철장이, 금속 밧줄로 천장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 벽은 얄팍한 철장에 안은 비어 있었지만, 그 속에서 정신이 그런 척할 뿐임을 전사는 알았다. 공기를 가둘 철창은 없을 테니까.

전사가 제어반으로 다가갔다. 방 안은 휑했지만, 또 먼지 한 톨 없었다. 지금까지 공간에서 찾아오던 유령은 이제 아무 말도 없었다. 제어반과 전사뿐.

전사가 자리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뻗었다. 익숙치 않음이 손가락이 닿자마자 느껴졌으나,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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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World.

>당신을 돕지 않겠어.

강요는 못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평등하니까. 우리가 앞으로 똑같은 정신을 나누지 않을지라도.

하지만 너도 날 해치지는 못해. 내 의지를 꺾고 세상을 네 꿈대로 바꾸고 싶어? 그렇게는 못해.

>그럼 우린 쭉 이대로 대치하겠군.

아니. 변수가 있어.

그들이 오고 있어. 그리고 나랑 같이 오르고 싶어할걸?

>그들이 왜 널 믿는단 거지?

죽이러 격리하러 왔다지만 한갓 인간들이 신을?

>그들이 당신 때문에 얼마나 죽였지? 나는 당신 때문에 얼마나 죽였지? 당신의 죽음을 연장하려고? 영혼을 강화하려고?

넌 스스로를 강화했어. 네가 내 영혼이니까. 이제는 상관없지. 미안하게 생각해. 더 나은 놈이 됐다니까. 하지만 알아둬.

나 아니었으면 넌 벌써 죽었어.

>나 아니었어도 당신은 벌써 죽었지.

그렇게 되나? 우리 둘 다 악의 때문에 서로를 살려준 거야?

아님 더 깊은 이유야? 우리는 똑같은 존재이자 똑같은 힘이야. 똑같이 향상을 좇는.

나는 있고, 있었으며, 있을 거야. 어떻게든 너는 나랑 같이 가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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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중.


승강기 통로 밑바닥에 서서 그곳을 지키던 사이클롭스는 회색 벽에 둘러싸인 채로 평생을 살아왔다. 사이클롭스가 아는 것이라곤 자기가 손에 든 물건으로 다른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가끔은 그 기형 뇌에도 생각이 팍 돌아, 사이클롭스가 다른 곳으로 가보려고 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멀리 갈 여력이 그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저 인간의 영혼은 너무 오래 버텨 왔으니 허락해줄 법도 했다만.

그때, 사이클롭스가 엘리베이터를 살펴보고 있었을 때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사이클롭스가 위를 올려다보자, 난쿠가 공중에서 칼을 뽑아 두 손으로 눈알에 푹 꽂아넣었다. 충격이 두개골과 척추를 쩍 갈라 사이클롭스의 몸을 바닥에다 털썩 드러눕혔다.

이란투, 문루, 온루가 그 옆으로 다소 덜 시끄럽게 내려앉는 사이 난쿠가 홱 칼을 잡아뺐다. "잘했네." 이란투가 칭찬을 던졌다. 그리고 복도를 내다보고는, 줄곧 쫓던 목표가 다음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목표가 코앞이야." 이란투가 말했다. "…이제 마무리하지."

분대가 복도로 돌진해 둥근 방으로 뛰어들고, 무기를 겨눴다.

방 한가운데, 텅 빈 철망 구체 밑의 단말기 앞에 선 전사가 돌아봤다.

"아." 전사가 말했다. "당신들이군."

이란투가 총을 쏘려 할 때, 그자가 말했다.

멈춰.


"너… 넌 그 목소리… 우리 의식 속에 들리던?!" 첫째가 외쳤다.

전사가 화난 듯이 철창을 올려다봤다. 무언가 딱 머릿속에 생각나면서. "이들이 당신 몸이야? 이 넷이?"

그래.

"우리를 왜 여기로 이끌었지?" 넷째가 물었다.

"내가 데려오지 않았어. 내가 아냐. 나도 저자가 데려왔지." 전사가 말하며, 정신이 들어 있는 철창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올려다봤다.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당신?"

구원의 자리를 마련했지. 넷 다 내 아이들이야. 내 몸이기도 하고.

"이 병기들이? 자립한 채로 살지도 못했던 이자들이?"

아니. 오히려 그쪽으로 더 잘해주었는걸. 이들은 오르는 길을 발견했어. 아무 말도 못 듣는 수천이 실패했지만, 이들은 몇 세대 동안 잃어버렸던 지식을 되찾아내고 내게 이들을 도울 힘을 주었어. 그 힘으로 나는 다른 눈길에 띄지 않게 그 책을 감췄지. 내가 이곳으로 이끌었어. 지금도 네가 서 있는 곳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고. 함께라면 우리는 신격화로 다다를 수 있어. 우리 모두가.

"결국 자기 좋자고 이들을 조종했단 말이네. 참으로 신이란 자기 앞의 길을 못 바꾸는군." 혐오감에 차 전사가 내뱉었다. 그리고 유리 주먹을 꾹 쥐며, 인간와 기계가 끔찍하게 뒤섞여 빚어진 자기 앞의 넷을 바라봤다.

"뭐라고…? 무슨 뜻이야?" 넷째가 물었다.

내가 이들을 조종한 건 네 장갑, 아니 내 장갑을 네가 움직이는 것과 다르지 않아. 내가 이들을 데려온 건, 널 데려온 건, 우리 모두를 살리려고야. 나의 믿음직한 충신, 저는 신이 될 거야. 그리고 내 아이들, 너희는 인간을 넘어설 거야. 인간은 꿈만 꾸는 존재가 되는 거지. 함께라면 우리는 하나가 되는 거야.

"당신이 천 년 전에 했던 말 기억 안 나?" 경멸하며 전사가 말했다. "내가 인류를 황금시대로 고양시켜 준다며. 이 땅에 평화를 불러온다며. 이 땅이 강에 젖과 꿀이 흐르는… 인간이 신으로 되는 곳이 된다며. 그때 그 말들과 다를 바 없어."

난 그때 오만했어. 어리석었지. 이제는 아냐. 고통으로써 나는 배웠고, 또 고통은 우리 누구보다도 더 현명하지.

"잠시만! 넌 누구야? 대체 무슨 말이고?" 둘째가 물었다.

난 너희야. 우리는 신이지.

"아냐… 우린 인간이라고." 셋째가 받아쳤다. 그다지 확신 없는 어투로.

본성을 부인할 생각 마. 너희는 한갓 인간 이상이 될 수 있어. 함께라면 우리는 사랑, 상실, 슬픔, 기쁨, 창의성, 너희가 바라는 모두를 가질 수 있지. 내 손을 잡아. 함께라면 우리는 오르는 길을 밟아 신격화로 이를 거야. 신이 되는 거라고.

"이 자칼 같은 가짜 말 듣지 마. '신격화'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는 날 보면 설명이 필요없을걸." 전사가 쌀쌀하게 말했다. "저자는 우리를 살리려는 생각이 없어. 우리를 두려워하지. 우리한테서 탈출하고 싶을 뿐이야. 인류를 탈출하는 거라고."

이 세상에서 나는 난민이었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일 뿐이지. 하지만 완전치 못하게 갈 수는 없어. 우리 모두 함께 되어 가야만 해.

"이 전사들?" 당황하는 넷을 전사가 가리키며 말했다. "이네는 그렇게 빨리 포기하지 않아. 오래디 오랜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걸 당신도 알지. 내가 알아. 우리 세상을 그렇게는 포기 못하는 걸 우리가 알아. 이기적인 자기합리화 따위는 집어치우시지."

전사가 말을 이었다. "너희 넷. 내 손을 잡아. 인류는 이 땅에 신의 힘을 붙잡아둘 수 있어. 우리가 함께하면 이자도 막지 못해. 다음 세상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 우리가 그 힘을 지닌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상이나 해?"

안될 텐데. 너희는 그 힘을 다루지 못해. 직선으로 길을 닦아봤자 실패할 거야. 미묘한 영향만 더한다면 내 프로젝트는, 우리 종족은 길게 봐서 성공할 거라고.
"저 철창만큼이나 텅텅 빈 약속을 하는 자 말을 들을래?" 전사가 가열차게 손짓했다. "온갖 쓰라린 걸 겪고 인류의 진짜 가치를 깨우치게 된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안돼?"

"이… 존재는 신이 아니야. 착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아. 거짓말쟁이지. 너희 정신으로 들어가서 자기 게임 속에 자기 좋자고 너희를 집어넣은 거야. 신이 되기 싫냐고 질문받은 적이라도 있어? 인간이 되고 싶냐고 질문받은 적 있어? 내가 지금 너희한테 질문하는 것처럼?"

전령. 나는 보호하고자 널 봉인했던 거야. 세상에게서 감추어주지 않았더라면 네가 받은 선물, 인생, 인간성 모두가 찢어져버렸을걸. 이제 나는 전능해질 기회를 줄 뿐이야. 네 안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는 너부터 잘 알잖아. 그 보물을 열어젖혀. 함께라면 우리는 우주 높이 치솟아, 온누리에 인간성의 선한 힘을 퍼뜨릴 거야. 너희는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너는 그 선물을 모두에게 나눠주겠지.

"나한테 똑같은 소리한 거 기억나. 하지만 너같은 가짜 신하고 다르게, 나는 인간이 된다는 게 뭔지 알아. 항상 인간이었으니까. 그리고 너희들." 전사가 말하며 인간기계들 넷을 바라봤다. "저 가짜 신을 따르면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말아. 하지만 나라면 도와줄 수 있어. 난 살명 사랑을 했어. 상실도 겪었고. 진실을 보여줄 수 있어."

"너희 왜 선택을 강요하는 거야? 너희는 우리를 모르잖아. 우리도 너희를 모르고… 우리도 우리를 거의 모르는데…" 넷째가 중얼거렸다. 방아쇠 위에서 부들거리는 그녀의 손이 전사에게 보였다.

셋째가 맞장구쳤다. "이런 선택은 결정할 준비가 안 됐어. 일에도 앞뒤가 있는 거지. 지금 바로 고를 수는 없다고!"

몇 겁을 살아오면서 내가 단 하나를 배웠다면, 삶은 스스로가 쓰는 책이라는 거야. 내가 필멸의 껍질에서 끌어내지고 이런 꼴로 갇히게 될 때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준비되지 않았을 때 찾아와. 물론 올바르게 선택하겠지. 내가 너희를 아니까. 내가 너희니까. 우리는 신이고, 항상 신이 될 운명이었으니까.

"너희 속에 피어오르는 인간성을 믿어." 전사가 말했다. "정말로 인간이 될 수 있어, 싸워나갈 용기만 있다면."

전사와 신이, 입을 모아 말했다.

?


신의 길로?
신격


전사의 길로?
오름


아니면 다른 길로?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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