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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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있던 곳과 대조되는 밝은 조명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복도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양면의 벽은 흰색으로 조명을 난반사해 더욱 눈부시다. 바닥은 반질반질한 검은색의 대리석인 듯한데, 발자국이나 물웅덩이 따위의 오염을 거부하는 듯 먼지 한 점 없이 조명을 반사한다. 메아리도 누군가 입술 앞에 집게손가락을 갖다 댄 듯, 신발이 바닥과 맞닿는 소음은 조금의 반향도 없이 공기 중에서 멈춘다.
사진들은 액자 없이 틀에 씌워져서 건너편의 벽을 초점 없이 바라보고 있다. 벽 위에 연병장의 병사들처럼 나란히 서 있는-혹은 부검실의 시체처럼 나란히 누워 있는 사진들 옆을 지나가며, 사진들에 눈길을 주다가 그 중 하나의 앞에 멈춰 섰다.

격자로 배열된 직사각형의 창틀이 정면을 채운 화강석 재질의 복층건물이 건너다보이는 거리의 모습이다. 벽 안쪽으로 푹 들어간 창들은 하나같이 불빛 없이 새카만 그림자로 가득해 무뚝뚝한 화강석의 단색 색조를 배경으로, 마치 살점이 깨끗이 떨어져 나간 두개골의 퀭한 눈구멍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가로등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아 먹구름 아래처럼 어둑한 거리 위로, 짙은 잿빛의 눈송이 비슷한 것이 날려 발자국 하나 없이 소복하니 쌓여 간다.

“화산재라오.”

옆을 보니 엷은 회색 중절모를 쓰고 그보다 짙은 색의 코트를 입은 노인이 서 있다. 가래 한 점 끼지 않은 듯 맑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점잖은 생김새의, 엷은 미소를 띤 육십 중반대의 노인이다.

“그 사진 속에서 눈처럼 날리는 것 말이오. 눈이 아니라 화산재 날리는 것이지.”

분명히 눈은 아닌 것 같아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걸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곳 관리인이십니까?”
“그렇다오. 아, 카메라는 잠시 맡겨 주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 카메라 가방을 벗어서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출입구 쪽으로 돌아가, 그 앞의 작은 목제 책상 위에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았다. 읽다 만 듯 펼친 페이지에 가름끈이 놓인 책이 있는데, 카메라 가방에서 떨어진 물에 젖지 않을까. 노인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다시 옆으로 돌아왔다.
“음, 그래서, 괜찮다면 잠시 이야기해도 되려나?”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예, 하고 대답하자 노인은 헛기침을 한두 번 해서 목을 가다듬었다.
“음, 이 사진들은 멸망한 세계를 담고 있는 사진들이라오. 말하자면 영정 사진 모음이랄까. 좀 꺼림칙한 말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다른 사진들도 하나씩 살펴보았다. 영정사진이라기에는 너무 노골적인 느낌이다. 차라리
영안실에 누운 시체들을 보는 것 같다. 사진을 응시하고 있는 노인에게 그렇게 말하자 노인은 쿡 하고 웃었다.
“그쪽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군. 그렇지만 더 꺼림칙하구려.”

노인을 따라 잠시 멈추어 서서 그 사진을 잠시 바라보았다.
잔잔한 만의 전경이다. 수면을 내달아 뭍을 후려치는 성난 파도는커녕 자갈 해변을 희롱하는 잔물결조차 잠잠할뿐더러 하늘도 그림자를 드리우는 구름 한 점 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해변에 깔린 자갈의 빛은 너무나도 맑다. 짙은 녹색이나 그보다 더 투명한 옅은 녹색, 혹은 아무런 색도 없는 무색투명함이 자갈에 입혀져 있다. 맑은 단색이지만 자연적인 광물질의 빛깔은 아니다.

“유리조각들이지.” 이 노인은 남의 생각을 읽는 것 같다. 아니면 단순히 사진을 너무 오래 쳐다봐서 그런 건가.
“그 만 밑에 도시 하나가 가라앉아 있지만, 사진만으로는 아름다운 풍경 아니오.” 노인이 앞서가면서 말했다.
“굳이 그런 평화로운 풍경이 아니어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진들이 많이 있지. 종말을 주제로 하는 사진들치고는 역설적이지 않소. 그렇다면 어떠한 맥락이 주어져야 수많은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주제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일순 침묵이 흘렀다. 노인은 답을 기다리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진을 찍은 시점이 제한적이기 때문 아닐까요? 사진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으니까 말입니다.”
노인은 처음과 같이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흠, 이 사진을 보시오.”
일출 사진. 그림자에 젖은 지평선 위로 하늘이 붉게 번진다. 지나치게 붉고 넓게 번져 피에 젖은 천처럼 보인다. 적색거성이 되어 불타고 있는 태양 탓이다. 누런 태양의 표면에 거뭇한 쌀알무늬가 저승꽃처럼 얼룩져 있다.
“저 사진 배경에 서 있다면 일출을 감상할 여유는 없을 테요. 당장 닥쳐올 자신의 죽음도 포함한 시점이니까.
그런데, 우리는 사진을 보고는 있지만 그 사진이 담는 세계 안에 서 있지는 않소. 그러면 사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맥락에는 사진 밖에 있다는 사실도 포함될까?“
“그렇다면, 그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는 어떻습니까?”
노인의 미소가 한층 선명해졌다. “한 발 앞서 가셨군.”
“그렇소. 사진작가가 남아 있지. 사진작가는 사진의 관람자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의도했을 테니 말이오.
그렇지만,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의도했다고, 그 자신도 아름다움을 느꼈을까?
어떻소, 아름다움을 느끼시오?“

잠시 멈췄다.
마지막 사진. 짙다 못해 장막처럼 하늘을 차단해버린 적란운의 아래에서 상어처럼 날뛰는 파도 위로 우그러진 철탑 하나가 우뚝 서 있다. 해수면 못지않게 갈기갈기 찢어진 먹구름에서 철탑의 꼭대기에 내리쳐 불꽃을 튀기는 번개가 사진의 유일한 광원이다. 철탑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구도가 타로 카드의 ‘탑’ 삽화를 연상시킨다.

나는 어떤가?

갤러리는 어느새 끝나고, 작은 목제 책상이 출입구 앞에 오도카니 서 있다. 노인은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책상에서 카메라 가방을 집어서 내게 돌려주었다.
“이야기 들어 주어서 고맙소. 살펴 가시오.” 책을 집어 들며 노인이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나갈 채비를 했다.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질긴 방수포 우비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옷깃을 여몄다. 신발끈은 묶여 있을 테지만, 다시 확인해 보았다. 여느 때처럼 튼튼하게 묶여 있다. 카메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며 출입구 밖으로 한 발짝 옮겼다.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눈을 감았다가

셔터가 열렸다가


다시 떴다

다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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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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