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톱니바퀴-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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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박사는 기지 내 동료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자신과 대화를 나눴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에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닌 듯 보였다. 게다가 그의 죽음이 자살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했다.

"멍청한 친구 같으니."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과 동시에 잿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빅터 박사님, 맞으십니까?"

담배를 태우던 그에게 또다른 누군가가 찾아왔다. 낯선 얼굴이지만, 예사롭지는 않았다. 소문에만 돌던, 기지 내부에 상주하는 공작 요원인 듯 보였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요원들과는 달리, 기지 내 직원들의 이상 징후를 감시하는 이들. 빅터 박사는 올 게 왔다고 생각했을 뿐, 당황하지 않았다.

"맞는데, 무슨 일 인가?"

"이전의 일부 사건에 대해 몇 가지 질문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런 요청에 양해 부탁드리며, 보는 눈이 많으니 잠시 자리를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그들은 빅터 박사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빅터 박사는 젊은 요원에게 싸구려 커피를 대접했다. 그는 거절했다. 빅터 박사는 인상을 살짝 구기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래, 무슨 일 이라고?"

"SCP-500의 복제품 유출 사건, 기지 내 D계급 처리를 위한 소각로를 민간인을 소각하는 데 사용한 것, 그리고 이 기지의 연구원이 개인 소유의 자택에서 자살한 상태로 발견된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공통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혹시 알고 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공통점은 알고 있지. 전부 내가 연루되었다는 것 정도는."

빅터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요원이 허리춤에 슬쩍 손을 가져갔다.

"허, 진정하게. 총은 꺼내지 말고. 난 자네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을 거야. 내가 미쳤다고? 난 여기서 좀 더 오래도록 일하고 싶은데? 내가 설마 무기도 없이 자네에게 덤벼들 거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일단은 자네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나?"

요원은 허리춤에서 손을 떼었다.

"박사님께서 하신 행동은 이 기지의 보안을 위협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거 말고.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그게 전부인가?"

요원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좋습니다. 거두절미 하고 바로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셨습니까?"

"흠, 그건 좀 괜찮은 질문이군."

빅터 박사는 책상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 요원에게 건냈다. 잔뜩 긴장해 움츠려 있던 요원이 문서를 건네 받으며 긴장을 늦추었다.

"이번에 죽은 연구원과 그 아내에 대한 문서일세. 당시 그의 아내는 SCP-217에 감염되어 있었네. 그 연구원은 내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그를 도와주었지. 그게 SCP-500의 복제품을 가져간 이유야."

빅터 박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연구원은 SCP-217의 영향을 받은 아내를 감당하기 힘들어 했지. 그는 다시 내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그를 도와주었네. 그게 민간인을 소각로에 집어 넣은 이유야."

빅터 박사는 빈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아마 천천히 회복되어가고 있었을 거야. 그는 그걸 알아챘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겠지. 그의 연대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네. 질문 있나?"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를 도와주는 게 재단의 수칙을 어겨야 할 정도로 중요했습니까?"

"하하, 그건 아니지. 난 그저 그에게 선택 할 기회를 준 것 뿐이야. 그런 기회를 별다른 퇴고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건 바로 그 자신이고. 뭐,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요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수갑을 꺼냈다.

"빅터 박사님, 보안 구역까지 동행해 주셔야 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 곳에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빅터 박사는 피식 웃으며 얌전히 양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크롬으로 도금된 수갑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였다.

"자네, 이 곳에 들어온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모양이군."

요원이 그를 돌아보았다.

"아, 아. 너무 그렇게 겁먹지 말게. 손바닥에 굳은살도 채 잡히지 않아서 말이야. 여기서 요원 노릇 한 달 쯤 하다보면 손바닥에 물집이나 굳은살은 기본 옵션으로 달고 다니더군. 게다가 이 수갑, 너무 깨끗해. 한 주에만 몇 번씩 D계급이 말썽을 피우거나 내부 배반자가 생기는데, 그런 것 치곤 수갑을 쓴 흔적이 없어."

요원은 한 쪽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곧 전화가 올 거야. 하나, 둘, 셋."

그리고 그의 말 마따나, 요원의 무전기가 울렸다. 빅터 박사는 짜잔, 이라고 할 뿐이었다.

"예, 무슨 일 이십니까."

무전기 너머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쏟아졌다. 요원은 빅터 박사를 힐끔 힐끔 쳐다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무전기 너머의 상대에게 몇 번이고 말을 꺼내려 했지만, 그럴 때 마다 그 누군가에게 무시되곤 했다.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요원은 빅터 박사의 수갑을 풀어줬다. 수갑을 푸는 와중에도 요원의 눈은 빅터 박사를 의심하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한 겁니까."

"글쎄올시다. 다만 확실한 건, 높으신 분들도 중요한 걸 알고 있는 거 뿐이야."

요원이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태엽 시계가 하나 있다고 치자고. 그 시계는 톱니바퀴 하나가 부서져 작동이 되질 않지. 시계를 다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고 있나?"

"그거야, 부서진 부품을 고치거나, 새 걸로 갈아끼우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지?"

"부서진 톱니바퀴를 뽑아낸다?"

빅터 박사는 박수를 쳐 주었다.

"정답이네. 그걸 잘 안다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빅터 박사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방금 전 까지 성격 좋은 아저씨 같던 사람이 그런 표정을 지으니, 요원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자네에겐 기름칠이 필요하겠군. '융통성' 메이커의 기름이 말이야. 아니면 자네도 부서진 톱니바퀴가 되고 싶나?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고 당장 내 사무실에서 꺼져 주게."

요원은 몇 마디 하려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터덜터덜 사무실을 나갔다. 빅터 박사는 한숨을 쑥 내쉬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는 책상위에 있던 문서를 집어들었다. 자살했던 그 연구원에 대한 정보였다. 빅터 박사는 문서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멍청한 친구 같으니. 자네는 그래서 쓸모가 없었어. 예전부터."

빅터 박사는 문서를 분쇄기에 밀어 넣었다. 문서는 갈갈이 찢겨져 조각조각 떨어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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