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톱니바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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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 착 착 착

낡은 손목 시계에서 울리는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착 착 착 착

소리에 집중했다. 그래봐야 얼마나 들리겠느냐만은, 오직 손목시계에서 울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다른 이들에겐 다소 이상한 취향 일 수도 있지만, 이 시계 태엽 소리가 마음에 든다. 기계적이고, 규칙적인 소리. 내 전공과는 거리가 다소 있지만, 아무렴 어떠랴. 어렸을 적 부터 기계쪽에 관심이 많았다. 다만 기계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기계와 헤어져야 했지만.

"박사님?"

눈을 떴다. 연구원 한 녀석이 날 불렀다.

"넌 정말이지 내 휴식시간을 방해하는 데 최적화 된 인재인 것 같단 말이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하품을 한 번 했다.

"이번엔 또 어떤 귀찮은 일을 들고 왔나 한 번 보자."

그는 종이 파일을 건넸다. 보나마나 뻔하다. 형식적으로 치뤄지는 검토할 서류이거나, 연구 혹은 실험을 승인해 달라는 문서일 것이 분명했다. 종이 파일을 열며 실험복 가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주머니에선 엉킨 실밥만이 만져졌다. 주머니에 넣어 둔 펜이 없었다.

"이런, 놓고 온 모양인데. 펜 좀 이리 건네우주겠소?"

"잠이 덜 깨신 모양입니다. 말도 꼬이시고."

그가 킥킥거리며 펜을 꺼내 건네주었다. 그를 뚱한 표정으로 한 번 쳐다보았다. 도대체가 농담이라는 걸 모르는 놈이다. 눈치도 없고. 대충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서를 휙 읽고 서명했다. 이번에도 별 시덥지않은 내용이었다. 이번에 들어온 변칙 물체에 대한 실험이란다. 매번 새로운 실험을 계획하는데, 결과야 뭐 뻔하겠지. 전에 한 번 케테르급 SCP를 잘못 건드렸다가 죽을 뻔 했다던데, 아직 정신 못 차린 것 같았다. 그러고도 강등 한 번 되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있는 게 더 용했지만.

"그 시계 아직도 차고 계십니까?"

그에게 문서를 건네자, 그가 물어보았다. 내 손목에 감겨있는 손목 시계에 대해 물어본 것이 뻔했다. 나는 그저 씩 웃어주었다. 다른 이들이 그것에 대해 물어보아도, 내 대답은 항상 웃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백마디 말보다 그것이 더 좋은 대답이 될 것이라는 게 내 의견이었다. 물론 열에 아홉은 재차 물어보았고, 재차 돌아온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다를 바 없긴 했다. 이번 역시 더 이상의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그가 돌아가자 기지개를 한 번 폈다. 그리고 다시금 의자에 기대어 누웠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착 착 착 착

태엽소리가 다시금 귀를 간질였다. 휴식이 되돌아왔다. 낡은 시계 태엽의 소리는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 같았다. 심신이 편안해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휴식은 처음 키웠던 작은 열대어 마냥 힘없이 죽고 말았다. 조금전의 그 연구원이 다시 되돌아왔다. 그는 뭔가 할 말이 있어보였다. 그러나 입만 계속 뻐끔거리는 걸 봐선, 함부로 꺼내선 안 될 말이 분명했다. 그런 행동은 정말 질색이다. 분명하게 할 말이 있으면 전하던지, 아니면 아예 내색이나 하지 말던지. 나는 인상을 약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인데. 할 말 있으면 똑바로 전해. 어물어물하지 말고."

무의식적으로 말투가 변하고 말았다. 정말 화가났을 때 외에는 보통 이러지 않는데, 무언가 내 기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 원인이 내 앞에 있는 연구원인지, 아니면 그가 전할 말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 그게…"

그는 한참을 더 어물거리다 말을 꺼냈다. 그는 곧 말을 마쳤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리고 나 역시 어두워졌다. 사실, 그가 말을 마쳤을 즈음, 나는 달리고 있었다. 구두가 반쯤 벗겨지는 것도 몰랐다. 그저 출구를 향해 달렸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휴대전화를 가운 주머니에 쑤셔박았다. 속도계의 바늘이 미친듯이 치솟아 있었다. 바꾸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던 이 고물 똥차가 이렇게나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느껴졌다. 도로에 있는 다른 차들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다른 차량의 경적소리가 고막을 울리다 못해 후려치는 것 같았다.

시속 80 km 제한입니다. 속도를 줄이십시오.

네비게이션이 과속을 알리며 삑삑거렸다. 평소에는 남들이 답답하다 할 정도로 신호를 지키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길이 막힌다 싶으면 갓길로 들어섰고, 여의치 않으면 중앙선을 넘어버렸다. 조만간 벌금 한 번 거하게 나오겠군, 이라는 생각도 아주 잠깐이었다.

시속 80 km 제한입니다. 속도를 줄이십시오.

속도계의 바늘이 더 올라갔다. 네비게이션의 경고 따위가 들어 먹힐리 없었다.

시속 80 km 제한입니다. 속도를 줄이십시오.

반쯤 벗겨진 구둣발이 엑셀을 짓누르고 있었다. 슬슬 기계 따위의 명령에 짜증이 나려 했다.

시속 80 km 제한입니다. 속도를-

아마 그쯤 되었을 때 네비게이션을 후려쳐 조수석 바닥에 쳐박았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네비게이션 안내양은 죽어가는 목소리를 내었다.

시속… 제한… 줄이…

안내양의 목소리가 늘어지더니 결국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직 할부가 3개월이나 남은 내비게이션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얼마간을 달렸을까? 휴대전화가 울렸다. 불행하게도 전화가 온 곳은 집이 아니었다. 조금 전 그 망할 연구원이었다.

[박사님, 지금 어디십니까? 박사님 무단 이탈 했다고 난리가 났어요. 돌아오세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구겼다.

"너, 임- 젠장,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그런 말 듣고 안 쳐나갈 놈이 어디있는데? 나 못 돌아가. 사태 확인하기 전까지 못 돌아가니까, 그렇게 전해. 알겠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으니 차가 절로 비틀거렸다. 살짝 덜컹거린 것을 보니 아마 다른 차와 살짝 스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속도계의 바늘은 내려갈 줄 몰랐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입구 철책을 다 박살내고 가시는 건 좀 너무하신 것…]

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놈은 이런 놈이었다. 눈치라고는 발톱의 때 만큼도 없는 놈이다. 내가 휴게실 의자에서 휴식을 취할 때 마다 서류를 가져와서는 서명을 받아가는 놈이다. 그가 실실 웃은 직후, 수화기 너머로 내가 아는 모든 욕을 그에게 선사해주었다. 그가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 때 까지.


거진 반년만에 돌아온 집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사실, 애초에 집은 근처도 가지 못했다. 동네 입구부터 어깨 넓은 군인들이 꽉 틀어막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철책이 튼튼하게 세워져 있고, 입구 주변으로 흰 천막들이 세워져 있었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철제 가스통이 몇 개 씩 굴러다니는 것도 보였다. 동네 주민들은 차례로 불려나와서 서로를 붙잡고 징징대고 있었으며, 몇 명은 어깨 넓은 군인들을 상대로 진상을 피우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허탈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 때문에 자주 찾아오지 못했다곤 해도, 아주 가끔이나마 들리던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확 바뀔줄은 예기치 못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는데, 반년만에 동네에 철책이 세워지고 도로를 막아버리다니.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변화였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군복을 입은 덩치들은 내가 마을로 진입하는 것을 막았다. 그 덩치들은 도대체 말이 통하질 않았다. 재단의 출입증을 몇 번이고 들이밀어도, 그들은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재차 거부했다. 심지어는 -그래서도 안 되지만- 내 소속까지 전부 털어놓아도 답은 마찬가지였다. 이래서 덩치 큰 놈들하고는 대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나는 출입증을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경비 한 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래서, 여기까지 직접 찾아 온 건가?"

빅터 박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음 주머니를 받아 오른쪽 뺨에 가져다 대었다. 내 머리는 내가 그들에게 몇 대를 맞았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몸은 끔찍한 통증으로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네 성깔은 여전하구만. 경비 한 놈에게 죽빵을 먹이다니. 그나마 소란스러워서 구경 왔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군화로 밟혀 죽을 뻔 했다고. 그 와중에도 우렁찬 목소리로 관계자 불러오라고 얼마나 소리를 질러대던지."

그가 킥킥대며 말했다. 제멋대로 자란 콧수염이 흔들거렸다. 그는 곧 웃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물론 그가 한 말은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그는 눈치가 있었다. 빌어먹을 누군가와는 달리.

"자, 이만 일어나게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뺨에서 얼음주머니를 떼었다.

"자네 와이프, 만나러 왔잖나."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닥에 떨어진 얼음 주머니가 천천히 형체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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