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톱니바퀴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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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빅터 박사의 과제는 풀 수 없었다. 아내가 내게 느낀 감정이 미안함이 아닌, 슬픔이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빅터 박사는 약속했던 날이 다 되어도 어떠한 말도 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지부지 지나갔고, 약속했던 그 날이 다가왔다.
아내와 같이 기지에 도착했다. 아내의 신체 일부가 기계로 변해버린 것을 입구의 경비가 본 바람에 약간 실랑이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빅터 박사가 나타나 상황을 마무리 해 주었다.

"마지막 까지 신세를 지는군요."

"내가 내 준 과제는 풀었나?"

그는 대답 대신 과제 얘기를 꺼냈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3주 동안 이 날 만을 기다리며 참고 참았다. 후회 안 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후회 한다 해도, 이미 지나간 일 일텐데 어찌할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자신도 있었다.

"역시, 끝까지 그런 대답이군."

빅터 박사는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박사님도 끝까지 그런 태도시군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삭혀 두었다.


"자, 이제 작별이군."

빅터 박사가 말했다. 나와 아내는 커다란 문 앞에 서 있었다. 문 너머로 들어가는 건 내가 아니라 아내다. 내가 휠체어에서 손을 때려 하자, 빅터 박사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아내에게 할 말 없나?"

"엉-"

대답 하려고 했지만, 아내가 계속 잡아 끄는 바람에 말이 헛나왔다. 셔츠가 쭉쭉 늘어 날 정도였다.

"왜이래, 오늘따라."

아내는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는 손가락 관절을 움직여 소리를 냈다. 이번엔 소리가 두가지 뿐 이었다. 틱, 그리고 착.

틱착틱 착착 착착착 착착착

그녀는 손가락을 꺾었다 폈다 하며 그 소리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 아무튼 할 말 없습니다."

나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아내가 타고 있는 휠체어에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아내는 손을 휘적거리며 내 옷깃을 잡아채려했다. 휠체어 손잡이는 빅터 박사가 대신 잡았다. 나는 뒤를 돌아 가던 길을 돌아갔다. 아내가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네."

빅터 박사가 불렀다.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자넨 후회 할 거야."

아내가 앵앵대는 소리에 잘 들리진 않았으나, 분명 그런 말이었다. 솔직히 이 상황에 그가 할 말은 그게 전부일 테니까. 사실, 이제는 슬슬 짜증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등 뒤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톱니바퀴 소리가 들렸다. 낮고 불규칙적인,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소리가. 어깨가 뻐근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휴게실에서 대기한 지 두시간이 지났을 쯤, 이름 모를 직원 하나가 날 불렀다. 빅터 박사의 호출이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 향했다. 그는 개인 사무실에 있었다.

"이거 받게."

그의 손에 들린 건 원형 톱니바퀴 부품이었다. 대략 8 cm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게 뭡니까?"

"볼 일이 있어서 잠깐 자릴 비웠더니, 그새 다 치워버리고 그거 하나 남았더군. 잿가루 털어내고 식히느라 고생 좀 했지."

마음 같아선 버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노고를 생각해 별 말 없이 건네받았다. 톱니바퀴는 내 손을 거쳐 별 감흥 없이 주머니로 들어갔다. 쓰레기가 늘어난 기분이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집 정리 좀 하고, 내일부터 출근하도록 하지요. 내일 나와도 당분간은 뒷 정리로 바쁠 겁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빅터 박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또 무슨 말로 날 귀찮게 하려는지, 이젠 기대가 다 될 정도였다.

"처분 되기 전, 자네 아내가 냈던 소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의외의 질문이었다.

"그 착착 거리는 소리 말입니까?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잘은 몰라도, 그건 아마도 모스 부호였어."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아내가 냈던 소리를 떠올렸다. 틱착틱 착착 착착착 착착착. 분명 그거였다. 한 때 기지 내에서 시행되었던 긴급 대피 훈련 중에 모스 부호 교육 과정이 있었다. 아내가 냈던 소리와 모스 부호를 하나씩 짜 맞추었다. 잠깐의 시간 끝에 단어가 하나 만들어졌다.

"K…I…S…S… 키스? 입맞춤?"

"그게 자네 아내가 한 말인가?"

"예, 아마도. 하지만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한 건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어쩌면 제가 단순히 잊어버린 것 일지도 모르지만."

아내는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어쩌면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작별의 인사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아내 앞에서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안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내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자신이 소각 될 거라는 걸."

"글쎄, 모르지."

나와는 다르게, 빅터 박사는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했다.


집 정리는 여전히 귀찮았다. 아내의 유품을 전부 정리 해야했다. 아내의 개인 정보에 관해선 빅터 박사가 말소 해 주겠다고 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건 아쉬웠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 했다. 집안이 조용해 진 것은 정말로 아쉬웠다. 이제 자주 오기도 힘들테니, 이 참에 집을 처분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방을 치우던 중, 안방의 장롱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살짝 열린 장롱 사이로 넣어둔 적 없는 물건들이 잔뜩 보였다. 아내가 넣어뒀던 잡동사니일 것이라 생각하고 장롱을 열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장롱 안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잔뜩 있었다. 몇 번이고 접혔다 펴진 포장지, 제멋대로 뭉쳐진 실뭉치, 부러진 대 여섯개의 코바늘, 그리고 노트 몇 권과 다 써서 잉크가 바닥난 펜 여러개.
노트 하나를 집어 펼쳤다. 거기엔 빈 틈도 없이 글자가 빼곡하게 쓰여져 있었다. 대부분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식으로 다섯 권이 넘는 노트가 꽉 채워져 있었다. 글자 연습이라도 한 것일까? 아무튼 이제 와서 그런 건 상관 없었다. 장롱 한 가득 채워져 있던 잡동사니를 하나 하나 끄집어냈다. 그렇게 치워 가는데, 마지막 하나 남은 잡동사니는 좀 달랐다. 무언가 종이에 포장되어 있었다. 사실 포장되었다기 보다는 잔뜩 구겨진 종이에 둘둘 말렸다고 보는 게 더 가까웠다. 내게 선물이라도 주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어 보았다.
포장지에는 목도리가 들어있었다. 목도리보다는 털실을 얼기설기 뭉쳐놓은 것에 더 가까웠다. 그나마 긴 직사각형을 하고 있어서 그것이 목도리로 쓰는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목도리 아래에는 종이 쪽지가 깔려 있었다. 쪽지를 펼쳐 보았다.

슬픔. 미안함. 고마움.

쪽지엔 그 세 단어가 가득했다. 손으로 쓴 건지, 아니면 입에 물고 쓴 건지, 삐뚤빼뚤하고 못난 글자 투성이였다. 그나마 공책에 쓰여있는 글자보다는 알아보기 쉬웠다.
이제야 깨달았다. 아내의 증세는 점차 호전되고 있었다. 반복적이던 행동이 점차 호전된 것도, 감정 표현이 다양해진 것도, 날씨 변화를 느끼고 목도리를 준비 한 것도, 스스로 공책을 꺼내어 글 연습을 할 수 있던 것도, 모두 그런 이유였다. 이전에 아내가 벽에 낙서 한 것을 들켰을 때, 아내는 슬퍼했다. 아마도 자신의 행동을 통제 할 수 없다는 것에서 그런 감정이 나온 것이 분명했다. 희미해졌던 기억이 하나 하나 돌아왔다.

만약 여기서 나가게 된다면, 그땐 꼭 입맞춤 해줘.

아내가 격리 되었을 때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그녀가 모스 부호로 전했던 마지막 말. 그녀는 그 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약속했었다. 꼭 입맞춤 해주겠다고. 그러나 난 약속을 어겼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제기랄."

그 말 외에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착 착 착 착

어디선가 시계 태엽 소리가 들렸다. 무거웠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왔다.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몸에는 힘이 없었고, 입은 바짝 말라 있었다. 바닥을 손으로 짚고, 벽에 기대고 나서야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확실한 것은 요 며칠 간 머리가 텅 빈 사람 처럼 행동했다. 집안의 모든 거울에는 내 자신의 모습이 아닌, 흉측하고 혐오스러운 태엽 투성이 괴물을 비추고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소리를 지르며 거울을 집어 던지거나, 맨 손으로 부숴버렸다. 생각해보니 양 손의 거죽이 이미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미친 사람 처럼 헛웃음만 나왔다.

착 착 착 착

나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 힘겹게 몸을 끌어당겼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주제에 의식만 뚜렷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질질 끄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 와중에도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만하라고 소리쳐도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착틱 틱 틱틱틱 틱착 착 틱틱 착 틱착 틱

A, T, O, N, M, E, N, T. 속죄. 시계는 내가 속죄 할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어떻게 속죄하면 되는 건데."

시계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해."

시계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하라고."

시계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하라고!"

시계는 대답이 없었다. 힘겹게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에는 내 낡은 시계가 있었다. 아내가 선물해 줬던, 내 인생 처음의 시계. 그래서 버릴 수 없는 낡은 시계. 그 시계가 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착 착 착 착

아니, 태엽 소리는 시계에서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착 착 착 착

태엽 소리는 내 심장에서 울렸다. 어쩌면 기계 괴물로 변해버린 건 인간성을 갉아먹은 내 자신에게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괴물은 나 자신 이었고, 아내는 그 괴물에게 죽은 무고한 민간인이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활동한다는 재단의 직원이, 눈 앞에서 벌어진 민간인의 죽음을 제 손으로 조장한 꼴이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내를 만날 때가 된 것 같다.


옷을 말끔하게 갈아입었다. 머리도 빗어서 가지런히 정리했다. 구두에도 광을 냈다. 그런 옷차림으로 소파에 가지런히 앉았다. 손목시계를 손에 들어 왼손목에 감쌌다. 그리고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시계를 찬 왼 손은 심장 부근에 올려두었다. 심장과 시계의 어긋났던 화음은 이내 하나가 되었다. 나의 심장 소리는 곧 시계의 태엽 소리가 되었고, 시계의 태엽 소리는 곧 나의 심장 소리가 되었다.
깔끔하게 치운 바닥에 파도가 밀려왔다. 따뜻하고, 검붉은 파도였다. 태엽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젠 어디서 들리는 지는 상관 없었다. 내 심장에서 울리던, 아니면 심장위에 올려 져 있는 시계에서 울리던.

착 착 착 착

역시 난 시계 태엽 소리가 마음에 든다. 태엽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 수 있다면 더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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