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톱니바퀴2
평가: +5+x

내가 아내를 만난 것은 재단에 입사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미소'라는 것이 어째서 아름다운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전염병같았다. 치료할 수도 없고, 전염성도 매우 강한 전염병 같았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울고 있다. 당혹스럽다. 이전에 그녀에게 영구적인 불임 판정이 내려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그녀는 애써 웃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런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지금은 너무도 서럽게 울고 있다. 그걸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앞에는 15 mm 짜리 강화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의 앞에도.

"내 말 들려?"

스피커 너머로 약간은 변조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제대로 된 말을 꺼낸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 였다. 그녀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어느정도는 사그라든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는 울기 직전에 온 몸을 격하게 떠는 아이와도 같았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갑자기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문을 부수면서 들어오고, 그리고, 그리고…"

아내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지 몰랐다. 아내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어쩌면 처음이 맞을지도 모른다.
몇 번 말을 건네볼까 했지만 그럴 때 마다 그만 두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를테니까. 아니, 사실은 그저 해야 할 말을 모르는 것 뿐이었다. 그녀는 이후로도 한참을 더 울었고,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임시 격리소를 빠져나온 이후로, 대략 한시간 정도를 머리만 감싸쥐고 있었다. 빅터 박사가 내 옆에 털썩 앉았다. 그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가 내게 담배를 권했다. 아무런 언동도 취하지 않았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 지 모르겠군."

그는 담배를 태웠다.

"치료방법, 없습니까."

머리를 감싸쥔 채 물었다.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잿빛 연기를 연거푸 뿜어낼 뿐이었다.

"SCP-217."

빅터 박사가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 빌어먹을 저주가 이 곳까지 퍼졌어."

담배가 거의 다 타 버렸음에도, 그는 여전히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언제부터 였습니까, 전염이 시작 된 건."

"대충 한 달 전. 특이하게도 다른 구역에는 거의 전염되질 않았어. 원인은 조사중이고."

"그렇다는 건, 제 아내만…"

"안타깝게도."

소리를 질렀다. 통곡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어깨를 떨며 울기 시작했다. 아내의 슬픔이 나에게까지 옮은 것 같았다.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이렇게나 절실하게 느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째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다른 이들은 왜 나와 같은 고통을 받지 않게 되었느냐를 원망했다. 나는 내 생각보다도 더 이기적인 놈 이었다.


반 폐인이 되어 기지로 돌아온 것은 이미 해가 져물고 있을 때였다.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상사의 잔소리였다.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그는 내 면전에 대고 잔소리를 빙자한 폭언을 퍼부었다. 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상사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치듯 울렸다. 잔소리는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이봐, 내 말 알아 듣겠어?"

멍청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6개월이야."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듣지 못하고 지나친 것 이던가.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감염자를 격리하는 기간, 6개월이라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SCP-217의 감염자를 풀어줄리 없었다. 그렇다고 뚜렷한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기간이 지나면, 살처분이야."

순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치 컴퓨터가 다운 된 것 처럼. 정신을 차리면서 떠오른 것은 구슬프게 울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내의 모습이 내 뇌를 재부팅 시켜 주었다.

"잠깐, 치료법이나 그런 걸 연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일단은 재단 소속 연구원의 가족이 감염됐잖습니까. 하다 못해 변이를 늦추는 연구라도-"

"아, 알게 뭐야! 지금 케테르급 SCP가 어떻게 유출된건지 조사하기 바쁜 마당에, 그깟 사람 하나 죽는게 뭔 대수라고!"

이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기억하기 싫었다. 기억나는 것은, 상사는 코뼈가 부러진 채 바닥에 뻗어 있었고, 연구원 몇 명이 내 팔을 붙들며 말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에겐 징계가 내려졌다. 다만 주변 연구원들의 증언으로 더 큰 징계는 피할 수 있었다. 그가 맞아도 싼 놈이었다는 증언과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 결과로 아내의 살처분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격리가 이어진다는 것은, 아내 혼자 그 독방에 남은 평생을 갇혀 지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 이었다. 어쩌면 평생이 될 수 있을지 조차도 의심이 갔지만.


징계 조치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기에, 짬을 내서 집을 찾아왔다.
동네 입구 근처의 임시 기지는 철수되었다. 철책도 제거되었다. 그러나 동네는 이미 폐허촌이었다. 내 집 주변에는 미처 회수하지 못한 출입금지 테이프가 널려있었다. 대문은 흉측하게 부서져 있었다. 아내는 그 때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문을 부수며 들어왔다고 했다. 아내가 느낀 공포가 어떤 것 이었을지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집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책장은 엎어지고, 테이블과 의자는 굴러다니고 있었다. 집 전체에는 숨쉬기도 곤란 할 정도의 지독한 화학약품이 빈틈없이 뿌려져 있었다. 소독이 불필요한 잡동사니는 한데 모아 소각처리한 것 같았다.

"5년을 모아 산 집인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 나왔다. 깨가 쏟아지던 부부의 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돌아갈 장소도,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있던 장소도, 이제는 없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병마가 지옥도를 그리고 지나간 더러운 땅에 불과했다.

착 착 착 착

시계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에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