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톱니바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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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죄다 안 된다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사실 수화기를 내리 꽂은것에 더 가까웠다. 부서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으니까.

"망할!"

양 손으로 책상이 쩡쩡 울리도록 두들겼다. 욕이 절로 튀어 나왔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빅터 박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나도 좀 걱정이 되긴 했네. 애초에 치료 계통의 SCP는 사용하기 쉽지 않으니 말이야. 게다가 자네는, 어, 그러니까, 징계 받는 중이지 않나. 뭐, 그것이 이유가 되진 않겠지만. 음, 아닌가?"

그의 말마따나, 치료 기능이 있는 여러 격리 물체들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사용이 거부되었다.
SCP-006은 최소 3명 이상의 O5의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사용에 찬성한 O5는 한 명에 불과했다. 당연히 기각되었다.
SCP-049는… 젠장, 차라리 아내를 잃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몰랐다. 내 선에서 기각했다.
SCP-208은 대상에게 바이러스가 전염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SCP-269는 D계급 인원을 대상으로만 사용이 가능했다. 게다가 현재 아내의 팔에 혈관이 있을지 조차 확신이 없었다. 역시 내 선에서 기각되었다.
SCP-427은 의료요원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사용이 거부되었다. 망할 것들.
SCP-500은 재단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민간인에게 사용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이것들 외에도 사용이 거부된 변칙 물체는 더 많았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핑계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말이 됩니까? 그 물 웅덩이만 해도 한 컵 떠다 쓴다고 샘이 마르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재단 관계자가 직접 쓰는 것인데, 그걸 못쓰게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입니다! 그 빌어먹을 로켓도 못 쓰게 하고, 만병통치약은… 젠장, 생각할 수록 열 뻗치네."

책상에 놓여있던 물을 들이켰다. 미적지근 한데다가 쓴맛마저 돌았다. 몇 모금 마시고는 도로 내려놓았다.

"이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눈으로 보고 있어도 쓰지 못한다뇨. 이게 말이나 됩니까?"

격리구역을 비추는 화면을 돌아보았다. 아내는 격리구역 한 쪽 구석에 찌그러진 채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이틀. 오늘밤을 넘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게 되면, 아마도 그녀는 이미 사람의 범주를 훨씬 넘어선 꼴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방법은 없는겁니까?"

빅터 박사를 돌아보았다. 그때 난 울고 있었다. 질질 짜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박사님은 항상 길을 찾아주셨잖습니까. 이번에도, 어떻게, 안 됩니까?"

그는 말이 없었다. 뭐라도 좋았다. 아니, 사실은 그가 해답을 주길 바라고 있었다.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어도 내가 이기적인 놈 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정말, 정말 안 됩니까?"

"없지는, 않지. 방법이."

그는 길을 알고 있었다.

"만병통치약, 그러니까, SCP-500 있지 않나?"

"그건 이미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했지 않았습니까. 재단 외 인원에게는 사용이 불가능 하답니다."

"원본은 그렇겠지. 하지만 사본이라면?"

그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CP-038. 무엇이든 복제하는 그 나무를 이용한다면, SCP-500의 복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SCP-038로 만들어진 SCP-500은, 병을 제대로 치료할 확률이 30%에 불과했다. 60%의 확률로는 신체에 영구적으로 장애가 남을 수 있었고, 10%의 확률로는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조차 몰랐다. 그야말로 도박이었다. 내 목숨도 아니고, 타인의 목숨, 그것도 아내의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

"조언이 필요한가 본데."

빅터 박사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본이라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네. 내 일 아니라고 막 말하는게 아니야. 비록 60%의 확률로 신체에 장애가 남긴 하겠지만, 적어도 자네 와이프가 고통에 신음하면서 몸을 뒤틀어대는 상황은 없지 않겠나. 운이 좋다면 완치도 가능할지도 모르지. 10%의 확률은 신경쓰지 않는 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이로울 거야."

그의 말이 맞았다. 치료는 나중의 일이다. 우선은 신체의 변이를 멈추고 아내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박사님은 항상 제게 도움을 주시는 군요."

"늘 그러지 않았나. 자네가 사고를 치면 내가 뒤처리를 하고. 하지만 나쁘진 않아. 나 역시 똑같은 길을 밟아 왔으니까."

빅터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사는 내가 처리 하지."

그가 감시실 문을 열며 말했다. 물론 그의 도움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것은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내 아내의 일이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잠깐만요, 굳이 박사님이 하실 필요는-"

그는 오만상 다 찌푸리며 내 말허리를 잘랐다.

"거, 참. 왜, 내가 멋진 척 좀 부리려니까 그게 그렇게 셈이 나나? 자네 지금 징계 받고 있는 중이야. 다른 SCP들과 접촉하려고 시도 한 것도 내가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알고는 있는겐가? 내가 O5에게 얼마나 후빨을… 아니, 아니, 얼마나 부탁을 했는지 알고는 있느냐, 그 말 일세."

몇 마디 하려다 그만 두었다. 실제로 그는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번에도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일하게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었다. 다만 그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지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별 일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 거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만! 내가 어디 지옥문이라도 두드리러 가는 줄 알아? 내가 여기서 먹은 짬밥이 몇 트럭인데. 걱정은 그만 두고, 아내나 잘 보고 있으라고. 지금 누굴 걱정하고 있는건지, 원. 나 진짜 간다. 입 닫고, 여기 얌전히 있으라고. 밖에 나오지 말고!"

그는 감시실 문을 닫았다. 나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아내를 비추고 있는 화면을 한 번 매만졌다. 원래 기도같은 건 잘 하지 않지만, 오늘은 왠지 기도가 고팠다. 조용히 손을 모으고 중얼거렸다.

"그녀가 다시 웃을 수 있길 도와주소서."

신이 있다면 그 말을 들어주길 간절히 바랐다.


누군가 감시실을 찾아온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 였다. 찾아온 사람은 빅터 박사가 아니었다. 이름을 모르는 1등급 요원이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슨 일로?"

다소 퉁명스럽게 물었다. 요원은 하드 커버로 제본 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언젠간 당신에게도 죽음이 온다' 라는 제목의 책 이었다. 보나마나 엉터리 철학을 알차게 눌러 담은 책일 것이 분명했다. 빅터 박사가 좋아할 부류였다. 그는 그런 종류의 책을 유난히도 재미있어 했다. 그런 엉터리 책을 읽으면 자신이 얼마나 지적인 사람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나 뭐라나.

"빅터 박사님께서 전해 달라고 하십니다."

역시나. 아마 재단에서 그런 책을 사비로 살 사람은 그 밖에 없을 것이다. 별 이유없이 요원의 눈치를 살피며 책을 건네 받았다. 그런데 왜 빅터 박사가 직접 오지 않은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빅터 박사님은 어디 가시고?"

요원은 어깨만 한 번 으쓱 하고는 감시실에서 멀어졌다. 보통 같았으면 신입놈이 예의가 없다고 잔소리를 구구절절 늘어 놓았을 테지만, 어쩐지 아무런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요원이 건네 준 책을 열어보았다. 딱딱한 책 표지를 넘기자, 흰 종이에 싼 알약과 카드키가 하나 보였다. 빅터 박사는 책 내부를 칼로 후벼 파고, 거기에 SCP-500의 복제품을 넣은 것이다. 더불어 아내가 갇혀있는 격리실의 문을 열 카드키도. 그는 매사에 꼼꼼한 성격이었다.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칼로 후벼 판 흠 속에 끼어있는 알약을 꺼내고, 손에 꾹 쥐었다.


한참 동안 시계만 바라 보았다. 오전 2시 57분. 생물 방호복을 챙겨 입었다.

착 착 착 착

꾹 쥐고 있던 손을 폈다. 붉은색 알약이 하나 있었다. 갑자기 사라지진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다시금 손에 쥐었다. 몇 번이고 재차 확인했다. 알약은 그대로였다.

착 착 착 착

시계소리. 간만에 들어보는 시계 태엽 소리였다. 아내가 낫기만 한다면, 맑은 태엽 소리를 여유있기 들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찾아 오리라.

착 착 착 착

오전 2시 59분. 그 붉은색 알약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착 착 착 착

오전 3시. 감시실 문을 조용히 닫았다. 빠르게 격리구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내가 보였다. 변이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였다. 감각이 둔해진 탓인지, 아내는 더 이상 고통에 신음하지 않았다. 그저 반복적으로 몸을 조금씩 떨고 있을 뿐이었다.
격리구역의 문을 잠궜다. 그리고, 아내가 있는 격리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내 카드키는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빅터 박사가 알약과 같이 동봉해 준 카드키를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카드키를 긁었다.

맑은 소리가 들렸다. 첫번째 에어락이 열렸다. 약간의 공간을 두고 두번째 에어락이 보였다. 몇 발자국 걸었다. 첫 번째 에어락이 닫혔다. 두 에어락 사이의 공간에는 독한 살균제와 고압의 물이 뿜어져 나오는 배출구가 양 옆과 천장, 그리고 바닥에 까지 잔뜩 있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두번째 문으로 가 카드키를 긁었다.

두번째 에어락이 열렸다. 아내가 보였다. 아내는 날 인지한 듯 보였다.

"아, 아, 아, 아."

그녀는 모스 부호처럼 같은 빠르기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불렀다. 그녀는 한참 동안을 내 이름만 반복해서 불렀다. SCP-217의 영향으로 지능이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두번째 에어락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몇 번 어루만져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녀가 그러했듯이, 이번엔 내가 그녀를 진정시켜 주었다. 왼 손을 펼쳤다. 붉은색 알약이 있었다. 그것을 아내의 입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약간의 물도 같이 흘려넣어 주었다. 그녀가 입을 살짝 다물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선 더이상 붉은 알약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손을 만져주었다. 그녀의 손은 날카롭고 투박한 기계 손이고, 내 손은 두터운 방호복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그럼에도 아내의 손은 더 없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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