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톱니바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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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가고 있나?]

수화기 너머로 빅터 박사가 물었다. 조수석을 슬쩍 보았다. 조수석에는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길이 좀 막히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박사님 아니었다면-"

[됐네, 됐어. 그저께부터 고맙단 소리를 몇 번이나 하는건가.]

그가 말허리를 자르며 말했다.
며칠 전 아내에게 SCP-500의 사본을 먹인 후 재검사를 요청했다. 검사 결과는 음성. 너무 기뻐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더 이상 아내의 몸에서 SCP-217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재검사는 윤리위원회의 도움이 컸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아내의 변이 과정을 녹화한 영상을 윤리위원회로 보낸 것이다. 중간 과정은 알 수 없으나, O5는 돌연 태도를 바꿨다. 내가 받은 징계를 취소하고, 아내에 대한 격리를 해제하도록 했다. 그간의 고생을 한 번에 보상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좀 아쉬운 게 있군.]

그의 말마따나,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미 변이가 진행되어 버린 아내의 신체는 복구되지 못했다. SCP-500의 사본은 결국 신체 변이를 중단하는 것에 그쳤다. 아내의 몸은 여전히 기계 투성이였다. 아내가 숨을 쉴 때 마다 그녀의 흉부에서 약간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이미 진행된 두뇌의 변이까지 고정되어 정신적인 문제 역시 고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딥니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죠."

[큰 일을 겪으면 사람이 바뀐다는 게 맞나보군. 며칠 새에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하다니. 예전의 자네는 그야말로 잿더미였지. 부정적이고, 까칠하고, 그런 주제에 성격은 또 불같아서 자네 뒷감당은 내가 다 해야 하지 않았나.]

"이 기회에 새 사람이 되려 합니다. 휴가도 좀 내서 아내와 같이 있어야 겠군요. 아직 불편한 게 많을테니, 옆에서 잘 봐줘야 할 겁니다."

[그래, 그래. 휴가 신청서는 내 개인 이메일로 보내주게. 높으신 분들은 내가 잘 구슬려 보겠네.]

"매번 고맙-"

[그만, 거기까지. 상부상조가 아닌가.]

그는 그렇게 말하곤 이내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감사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찾아온 게 얼마만일까.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초점없는 눈으로 집을 보았다. 그녀는 규칙적으로 '집' 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나는 그녀를 부축해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기계 덩어리로 변한 아내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아내의 격리가 해제되기 전에 미리 치워두긴 했지만, 집안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미안. 아마도 난 청소에 소질이 없나 보다. 그렇지?"

"응."

농담으로 한 소리였는데 그대로 되돌아왔다. 지금의 아내는 너무도 딱딱했다. 마치 질문의 답을 그대로 도출하는 계산기처럼. 사실 뇌의 일부가 기계로 변형되었으니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정말 계산기나 컴퓨터 처럼 지능이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능이 상당히 낮아져 간단한 일도 한참을 쩔쩔매고, 습관적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게다가 전체적인 신경기능에 뭔가 이상이 생긴것인지, 감각 자체가 완전히 엉망이 된 것 같았다. 어떤 날은 계단에서 몇 바퀴를 굴러도 멀쩡하게 일어나는가 하면, 어떤 날은 책상에 발가락을 부딪힌 걸 가지고 한 시간 넘도록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좀 웃어 봐. 집에 왔잖아, 응?"

아내는 더이상 웃지 못했다. 사실 내가 바란 것은 아내가 아니라, 아내의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의 격리가 해제된 건 기뻤지만, 생각만큼 기쁘지는 않았다.

"배고파."

"어? 어, 응."

그녀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식탁에 앉히고 주방으로 향했다. 문득 내가 무슨 얼마나 끔찍한 생각을 한 것인지 후회가 되었다. 비록 완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내는 돌아왔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하며, 충분히 기뻐해야 할텐데. 아직은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아직은.

당분간은 자택 업무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빅터 박사의 공이 컸다. 재단에서 진땀을 빼고있을 빅터 박사를 생각하니 절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자택 업무라고 해 봐야 가능한 일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보안성 때문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문서를 작성 혹은 검토하거나, 사실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허위 정보를 작성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렇다보니 시간이 많이 남게 되었고, 그럴 땐 틈틈이 아내를 돌보았다. 아내의 신체 일부가 기계 조각으로 변한 이후, 그녀에겐 독특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그녀는 신체의 기계부품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활용했다.

  • 기쁠 때에는 규칙적이고 맑은 태엽소리를 들려준다. 주로 손가락 관절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 화가 날 때에는 불규칙적이고 '소름이 끼치는'소리를 들려준다. 주로 전신의 관절을 한계까지 뒤틀며 소리를 낸다.
  • 슬플 때에는 래칫 관절 소리를 낸다. 어디서 들리는 지는 알 수 없다.
  • 즐거울 때에는 기쁠때와 거의 비슷하지만, 비교적 속도가 빠르다. 이 때에는 전신에서 태엽소리를 낸다.

대충 이렇게 정리가 되었다. 특이하게도, 그녀가 기쁠 때 내는 소리는 내 손목시계에서 나오는 태엽시계와 비슷한 소리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아내가 나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그런 소리를 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가능하면 후자를 믿고 싶다.


밤이 찾아왔다. 아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그녀를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린 아이들보다 훨씬 더 아이 같았다. 순수하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그녀의 행동 양식이 그러했다. 예측하기 힘들고, 제멋대로에, 시끄럽기까지. 하지만 그래서 더 돌봐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정말로 어린아이가 되었다면,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이 부모로써 해야 할 일이니까.

착 착 착 착

시계소리가 들렸다. 그 고요하고, 규칙적인 음색이.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시계소리를 다시 듣게 된 것이 얼마만일까? 당분간은 힘들고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잠시뿐일 것이다. 내게 평화를 다시 되찾아준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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