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톱니바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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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더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힘드시다면 2주, 아니, 일주일 만이라도 어떻게-"

통화가 끊어졌다. 그만 둔 가정부만 벌써 네명을 넘어섰다. 이유는 거의 똑같았다. 아내가 심하게 말썽을 피운다는 것이다. 웬만한 궃은일은 거의 다 했을 법한 가정부들이 그만 둘 정도면, 지금의 아내는 이미 말썽을 넘어서 집에 찾아온 가정부들을 일부러 괴롭히는 수준에 더 가까웠다. 아니면, 아내의 끔찍한 외모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떤 질환 때문에 이것저것 박아 넣었다고 거짓말 했지만, 솔직히 믿을 수 있을리가 없다. 아내의 외모는 사람의 신체에 기계 장치를 부착한 게 아니라, 기계 인간을 사람처럼 꾸미려다 만 것처럼 보일테니까.

"후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내가 날 불렀다. 불렀으니 또 가야했다. 다 큰 어른을 달래는 건 갓난아기를 보살피는 것 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었다. 사실, 아이를 달래본 적이 없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른이 징징대는 걸 달래는 것 보다는 덜 힘들 것이다.

"아주머니들 괴롭히면 안 된다고 했잖아."

조용히 타일렀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싫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움직일 때 마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기계소리가 들렸다.
지금의 아내는 아이와도 다를 바 없다. 익숙한 얼굴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을텐데, 어쩌면 내가 자리를 비울 때 마다 그 난리를 피우는 것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나 이제 회사도 다녀야 하잖아. 매일 집에서만 할 수는 없다고. 다른 아주머니 부르면 안 될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지 마' 라는 말을 반복했다. 알았다고, 가지 않겠다고 달래주고 나서야 그 반복적인 말이 멈추었다. 규칙적인 태엽 소리가 들렸다. 기쁘다는 뜻 이었다. 물론 그건 그녀만 그럴 뿐,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아내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릴테니까. 조금은 편해지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오늘로 그만둔 가정부만 여섯명 째.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는 일부러 이상행동을 하는 것 같았고, 사실상 확정이었다. 가정부가 아내에게 다가가면 아내는 그 튼튼하고 딱딱한 기계팔로 집에 찾아온 가정부를 때리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건 기본이었고, 신체 내부의 기계 장치를 뒤틀어 고막을 긁어대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를 울려대는 건 옵션이었다. 이쯤되니 이 집에서 버티는 건 이미 가정부가 아니라 성녀에 가까울 것 같았다.
업무 효율은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잔뜩 쌓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질까,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진 않았다. 하루하루가 고생이었다. 스트레스는 계속해서 누적되었다. 하루 종일 술만 들이키는 날이 생기게 되었다. 단 하루라도 의미있게 보내는 날이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아내를 돌보고, 틈틈이 업무를 보며, 아내를 돌보다가 술에 취해 잠자리에 드는 게 전부였다. 이젠 내가 기계인간이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 나오는 그 우스꽝스러운 노동자가 떠올랐다. 어렸을 땐 그가 바보같아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내가 그 바보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과. 지겹고, 지겨운 일과.

"힘들어."

또다시 말이 새어나왔다. 스트레스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속으로 생각만 하던 것이 자꾸만 몸 밖으로 토해져 나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어지는 날 찾는 목소리. 기계소리가 섞인 목소리. 스트레스를 부르는 빌어먹을 목소리.

"제발, 나 힘들다고."

날 애타게 찾는 목소리. 널 괴롭게 할 거야, 힘들게 할 거야, 온 힘을 다해 널 엿먹일거야, 그런 뉘앙스의 목소리.

"제발, 제발, 제발."

내 간절한 부탁 따위는 가볍게 씹어먹는 목소리.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목소리.

"그만 좀 해!"

쌓이고 쌓였던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정적이 찾아왔다.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내는 날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낮으면서도 불규칙적인 소리를 울렸다. 처음 듣는 기분 나쁜 소리였다. 고막을 관통해 심장을 후벼파는 듯한 소리였다. 아마도 그것은 공포감을 나타내는 소리 일 것이다.

"미, 미안해. 내가-"

아내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는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작은 동물처럼 떨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어떤 감정이 떠올라야 정답이 될까? 아마도 미안함이 가장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내가 떠올린 것은 분노였다. 아내에게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더 이상 그녀를 달래는 일은 하기도 싫었다.

"마음대로 해."

그대로 집을 나와버렸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 버리고 싶었다. 극단적이건, 빙 돌아가건, 그런 건 상관없었다. 과정이 어떻던 간에 다시금 예전의 조용하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자네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빅터 박사가 반문했다. 내 대답은 '그렇다'였다. 수화기 너머로 헛웃음이 들렸다.

[좋다고 승낙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그런 결정을 내리는 이유가 뭔가?]

낸들 알 수 있었을까? 재단에서 일하는 것 보다 더 큰 지옥이 될지.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은 입 밖으로 여과없이 튀어나왔다. 빅터 박사는 잠시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자네 와이프 살리려고 내가 얼마나 굴렀는지 알기나 하고 그런 얘길 꺼내는건지 모르겠군. 와이프가 집으로 돌아간 이후는 또 어떻고. 사실상 모가지 날아갈 뻔 한 것을 가택 근무로까지 돌려가면서 살려줬더니, 이런 식으로 뒷통수를 맞을 줄이야.]

"솔직히 죄송한 마음이 더 큽니다. 그 만큼 해주셨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더 힘들어서 그런 겁니다. 겪어보시지 않는다면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다시 침묵. 급한 건 내 쪽 인지라 그의 대답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좋아, 후회 안 할 자신 있나?]

"이대로라면 저도 아내도 모두 힘듭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는 게 최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무모한 녀석인줄은 몰랐다. 언젠가는 후회하겠지만, 상관없다. 모두 내 선택이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문제 없다. 후회에 빠져도,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자네는 지금 너무 성급한 것 같단 말이야. 조만간 다시 연락하지. 그때까지 잘 생각했으면 좋겠군.]

통화가 끊어졌다. 그는 재고(再考)해 볼 것을 권했지만, 결정이 바뀌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지옥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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