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발을 들이다 1편

나는 남들과는 다른, 이상한… 그래, 초능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처음 안 건 당연하다면 당연히, 어릴 때였다. 나도 모르게 엄마의 말…이라기보단, 생각을 따라서 말했던 거였나. 그리곤 엄마가 어떤 식으로였나, 확인을 한 것 같은데, 그때 놀라던 모습이 참 장난도 아니었지. 그러니까 다른 어린 시절 기억은 전부 희끄무레한 안개같아도 그 순간만큼은 안개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등대 같다고 해야 하나. 그게 아마도 내 삶의 첫 전환점이었을 거다.

이윽고 엄마는 계속 관찰을 해서 내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읽을 수 있는지를 알아냈다. 정확히, 나 스스로만을 향한 생각.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든, 나에 대해서 떠올리는 무언가든, 나한테는 그걸 직접 말하거나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또 보니까 전자기기를 통하면 내 이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하루 종일 다른 사람 마음을 적당히 걸러서 받아들이는 방법, 악의를 거름 없이 받아들이고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방법 등등, 내가 이상한 존재임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줬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도 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아빠와 함께 한치의 거짓 없이 솔직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때는 그냥 하루 종일 부모와 함께 있으니 기분 좋기만 한 마음이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면 뭐, 어떤 기분일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여튼 내 부모의 진심어린 노력 덕분에, 나는 평범하게 자라날 수 있었다. 어, 지금도 평범하게 고2로서 살고 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세 번째 전환점인 것 같으니 딱 이 생각이 난다. 뭐 좋아, 일단 어쩌다 이리 됐는지를 되짚어 보자.


일단 오늘 아침은 평범했다. 어, 일단 일어날 때도 여느 때랑 전혀 다를 게 없었다.
"부영이는 아직 자나? 밥 다 됐는데."
"일어났어. 먹을게."
"그래- 우리 부영이, 잘 먹고 잘 다녀와야 해." 이렇게 언제나처럼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고,
"부영이 내려왔네." 아빠는 이렇게 내가 나왔을 때 이미 다 먹어서는 본인 몫 설거지를 준비하고 있었고.
"영일아- 일어나, 부영이는 이미 나와서 먹는다." 엄마가 내 동생 영일이를 깨웠고.

"알았어- 졸린데…" 영일이는 척 봐도 밤새 메신저나 한 몰골이었다.
"야, 너 또 밤새 애들이랑 게임 얘기 했어?"
그래서 가볍게 확인차 질문을 하니, 표정 몸짓 하나 바뀌지 않고 딱 한 마디. "했지."
"그러냐. 그냥 일찍 자고 학교에서 얘기하는 게 낫지 않나? 맨날 아침마다 아주 피곤해 죽을 상으로 나오던데."
"수업 시간에 자는데."
"그래… 그래라." 영일이는 어떻게 저렇게 생각을 간단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나랑 제일 많이 얘기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오늘도 평소처럼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간단히 씻고, 그렇게 등교하는 날일 뿐이었다.

"부영이 가네. 오늘에라도 한 번 놀래켜 보자!"
등굣길, 하루도 빠짐없이 듣는 그 익숙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뒤돌아봤다.
"정윤 하이."
"아 깜짝이야. 어떻게 내가 딱 놀래키려 할 때 뒤돌아보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렸나…"
김정윤, 초등학교 때부터 쭉 친하게 지내온 친구다. 아무리 부모님께 몇 년동안 교육을 받아서 대비했다고 해도, 정말 정제되지 않은 악의는 애한테는 너무 가혹했다. 그 영향으로 마음 속에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경계심이 박히게 됐다. 그리고 그때 진짜 순수하게 친해지자는, 그런 마음만 갖고 나한테 처음 다가온 게 정윤이였고 말이지. 그렇게 정윤이와 친해지다 보니 꼭 진짜 악의를 품었다는 게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같이 있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을 자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넓어졌다. 그렇다곤 해도, 여전히 제일 친한 건 정윤이다.

"정윤이 너 좀 놀란 것 같은데?"
"아니, 내가 표정을 그리 대놓고 드러나게 짓는다고? 아닌데,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사했을 텐데?"
"그래? 그럼 됐고."
아무리 십년지기여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악의가 없더래도 꼭 본심하고 말이 일치하는 건 아니니, 그나마 정윤이 정도면 실제로 무슨 말을 했을지 유추가 되니 다행이지. 편할 때야 있지만 이런 일상에는 답답해 죽겠는 게, 에휴, 실제로 무슨 생각이 아니라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으면 좀 좋겠다. 이런 면에서는 방향이 정반대긴 해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하고 별다를 게 없을까.

어쨌든 그 다음에는 시답잖은 얘기나 하면서 평범하게 등교했고. 그러다 학교에서… 그래, 여기가 시작인 것 같다. 여기부터 되짚어 볼까. 그러니까 이유봉 얘였지, 평소에 조용하고 유독 겉돌던 애. 나랑 눈을 마주쳐도 말 그대로 아무 관심도 안 주던 애였고. 나도 평소 아는 애들 마음 속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러워서 굳이 아는 사람을 늘리려 하진 않았는데… 어쨌든, 걔가 이상하단 건 아마 급식 시간때쯤에 알았나 그랬을 거다. 평소 급식 시간에는 밥도 안 먹고 그렇다고 운동장에서 노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라지던 애였는데, 뭐 아무도 모르는 데서 대충 빵 같은 거로 때우나 하고 무시했지. 그리고 오늘 나는 간만에 시끄러운 운동장 대신 조용한 학교 밖 산책을 택했었다. 그러다 봐 버렸다, 은밀한 곳에서 이유봉 걔가 상자에 조그만 고기 조각을 담는 걸. 잠깐 뭔가 싶어서 말 없이 바라보는 새, 이유봉이 먼저 나를 알아봤다.

"씨발, 미친!"
"너- 그 우리 반 이유봉 맞지?"
"아, 얘가 누구더라? 같은 반 애였나? 미치겠네, 이름이…" 이유봉이 눈에 띄게 혼란스러워했다. 나한테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내 이름 몰라?"
"아 어쩌냐 진짜 썅… 같은 반 애 이름 모르는 것도 그렇고 이건 어떻게 둘러대고…"
아는 사람을 늘리는 건 귀찮긴 하지만, 간만에 호기심이 동했다. 일단 대화를 위해 통성명부터 시도했고. "그럼 이렇게 된 김에 통성명이나 할까? 난 정부영이라고 하는데, 진짜 그건 뭐야?"
그렇게 그 고기 조각이 든 상자를 가리키니 이유봉이 더 당황한 것 같았다. "씨발, 모르겠다. 대충 키우는 벌레 줄 거라고 둘러대야지. 밥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냐."
밥이라니. 저렇게 적게 먹을 수가 있나 싶었다. 무엇보다 쟤가 급식실에 들어온 적이 있었나 싶었고. 저 고기는 어떻게 봐도 오늘 반찬으로 나왔던 건데.
"그럼 그 고기는 누구한테 받은 거야? 급식실에서 밥 먹은 걸 본 적이 없어 가지고."
"애미, 진짜 어쩌냐. 급식실 아주머니한테 받았다고 둘러대 봐야 금세 아닌 거 들킬 텐데."
"아냐, 굳이 말하고 싶은 거 아니면 말하지 마. 그나저나, 대체 뭘 키우는데 사람 먹다 남긴 걸 주려는 거야?"
"내 밥이다. 씨발놈아. 진짜로 이리 말한들 믿을 리야 없지만. 제발 신경 좀 끊어라, 조용히 좀 살고 싶다고!" 이쯤 되니 감이 왔다. 나같은 부류는 아니겠지만, 쟤도 평범한 사람이랑은 다른 뭔가구나.
"그래- 잘 키우고, 혹시 여유 되면 언제 보여줄 수 있어? 나도 그런 벌레 좀 좋아해서."
"하… 이제 가는구나. 시발, 다음부턴 조심해야지. 아니면 아예 다른 학교로 가든가."
이렇게 경계를 좀 풀어서 방과후에 미행하려 했었고.


"부영이 오늘도 피씨방으로? 오늘은 뭔 게임 힐래?"
"그게, 내가 저번에 좀 신기한 걸 봤거든? 그래서 오늘 다시 확인해 보려 하는데… 혹시 같이 가볼래?" 정윤이를 데리고 가면 미행하다 들켜도 대충 둘러댈 수 있겠지.
"지 아빠 일 돕는 날 아니면 피씨방 직행하던 애가 뭘 봤길래 저래? 뭐, 그런 네가 그러니까 좀 궁금해지긴 하네. 한 번 가볼까."

이유봉은 다른 애들과 전혀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하교했다. 나랑 정윤이가 뒤로 따라가는 걸 보고 당연히 의심스러워하긴 했는데, 적절하게 정윤이한테 지어낸 얘기를 대놓고 들리도록 하니 미행한다고 확신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어, 또 그거랑은 별개로, 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해야 하나, 그랬다. 애가 덩치가 좀 작아서 그런가, 시야에서 자주 사라져 가지고. 어쨌든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인적이 드문 산골까지 들어가게 됐다.
"봤단 거는 둘째 치고 너 그땐 여기까지 용케도 왔다? 에이, 드럽게 힘드네."
"좀만 참아 봐. 곧 다 가니까."

산에서는 이유봉을 진짜로 놓칠 뻔했다. 장애물을 피하는 솜씨가, 여기에 사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한두번 와본 솜씨는 아니다 싶었다. 그래도 여기선 다른 데 정신이 팔렸는지 우리를 의식하진 않아서 들키지 않고 미행할 수는 있었다.
"다 왔나?"
"얘가? 질문을 할 거면 내가 해야지 왜 안내하는 사람이 하고-"
"잠깐, 쉿."
"뭐,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 저기 이유봉이랑… 뭐지?"

이유봉은 뭔가랑 같이 있는 것 같았는데, 조금 멀어서 그런지 명확히 식별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말없이 몸을 숨기고 이를 바라봤다.
"정윤아, 미안한데 내가 구라를 좀 쳤거든."
"뭔 구라, 이 산골짜기까지 연약한 고등학생을 끌어와 놓고 갑자기? 진짜 별 시덥잖은 거면 뒤질 줄 알아…"
"사실 처음부터 이유봉 쟤 미행한 거였어. 정확히 뭐라 말은 못 하겠는데, 어… 내가 본 그 이상한 게 이유봉이라 해야 하나? 그래."
그렇게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려 했는데, 어떻게 설명해도 내가 이유봉 마음을 읽었단 사실을 빼면 어떻게 각색해도 이상해서 관뒀다. 당연히 정윤이는 미심쩍어했고.
"저건 좀 이상하긴 한데… 막 이렇게까지 미행하고 그럴 정도인가? 얜 평소엔 내가 뭐 신기한 거 보여줘도 콧방귀만 뀌던 애가 갑자기 이러냐."
그러던 중에, 이유봉이 같이 있던 그 무언가에게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야, 잠깐만. 일단 저거 한 번 봐 보자."
"그래."

"…그래서 진짜 좆될 뻔했다니까?" 이유봉이 말했다. 아마 급식시간 나와 마주쳤던 때 이야기겠지.
"하여튼, 진짜… 그래서 내가 조심하라고 몇 번 말했냐? 밥벌이는 너 혼자서도 할 줄 알아야지." 이유봉과 같이 있던 무언가가 말을 했다…고 해야 하나? 그때는 잘 안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 파리 비스무리한 거였다. 어쨌든 아무리 봐도 사람이 아니란 게 중요한 거였으니까.
"정윤아."
그렇게 정윤이를 바라보니, 나보다 더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진짜 뭔 말을 해야 하지? 이유봉 쟤는 뭐한테 말을 하는 거고, 저건 뭔데 사람 말을 해?"
"그나저나, 이젠 어떡해?" 그러던 중, 이유봉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대충 넘어갔다 쳐. 그, 정부영이었나? 그 새끼도 키우는 동물 밥이라 하니까 넘어갔고. 근데 내가 봐도 따지고 보면 이상한 것 투성인데… 그래, 시발 걔 나랑 같은 방향으로 오기까지 했다니까? 뭐 다른 거 때문에 온 것 같고, 산 들어오고 나서는 확실히 다른 데로 가긴 했는데- 혹시란 게 모르잖아."
"그래… 그래서, 뭐 이제 어떻게 하려고?"
"하… 다른 학교로 가야 하나? 급식 좋았는데. 아니면 뭐, 걔 어떻게 해서 처리한다거나 막 그렇게 안 될까."
그러자 다시 정윤이와 내가 서로 마주봤다. "야 미친, 들었어? 처리? 너?" 나도 이건 못 예상했었다.
"그냥 조용히 갈까?"
"얜 충격 받아서 돌았나. 여기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저기 처리 같은 소릴 하고 앉아 있는데."
"보니까 지가 좀… 뭐래야 하나. 이상하다? 그것만 안 들키면 되는 것 같잖아. 어차피 이번에도 지 미행했단 건 모르고, 학교에서 모르는 척 하면 쟤도 신경 안 쓰려 하겠지. 너만 쟤 신경 안 쓰면 돼. 이번에도 너 연기 드럽게 못 해가지고 구라 치면서 데리고 온 거잖아."
최소한 내일 학교에서 쟤 마음 읽기 전까진 죽지야 않겠지 싶었지. 그러다… 어디였더라. 갑자기 큰 목소리가 났다.

"야, 병신 새끼들아! 사주경계도 똑바로 안 하냐!"
"뭐야, 미친?" 나랑 정윤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이유봉하고 그 파리같은 것도 우리 쪽을 알아챘다.
"야, 쟤네 너 따라온 거 맞잖아."
"시발."
"부영아, 우리 어쩌냐."
우선 정윤이와 같이 엉거주춤 일어나서 소리가 난 쪽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러더니 보인 거가… 어, 아무리 봐도 까치였다. 까치가 한숨 소리를 내면서 우리와 이유봉네를 보고 있었나? 좀 거리가 있어서 그런가, 잘 보이진 않았는데 어쨌든 까치긴 했다.
"정윤아, 저기 봐봐."
"뭐, 이런 상황에서 다른 거 볼 여유가- 하, 이젠 또 뭔데."
그 까치가 다시 입을 열었… 아니 말을 했었다. "잘 하는 짓이다 아주. 너희, 진짜, 하아… 어쩔 거냐?"
그러자 이유봉이 되게 당황했는지 벙어리처럼 어버버하기만 했었지. 그리고 이유봉이랑 대화하던 그 파리같은 것도 형상이 대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물론 방금 말하는 까치도 봤으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고. 그것도, 표정이야 볼 수 없지만은 적잖이 당황한 듯 이유봉에게 말을 건넸다.
"…야. 제대로 따돌리고 왔어야지. 지금 이게 뭔 꼬라지냐?"
"아니, 진짜- 이럴 줄은 몰랐는데… 진짜 개 썅…"
그러자 그 까치가 다시 소리치는 게 들렸다. "야, 됐고, 일단 튀고 봐."
"튀자고? 이미 들켰는데…"
"아, 답답하게시리 진짜. 아직 다 들킨 건 아니잖아! 일단 튄 다음에 어떻게 할지 정하자고!"

정윤이가 이 말을 듣고 의문스러운 듯 말했다. "뭐야, 잠깐. 쟤네 뭐 맘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듯이 말한 거 아니었나?"
"여기가 본거지라 여기서 고등학생 둘 시체 발견되면 떠나야 하니까 그런 거 아냐?"
"야, 이미 들켰잖아. 우리가 나중에 또 쫓아올지 어쩔지 모르는데, 어차피 옮기는 김에 다시는 못 쫓게 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처리가 그런 쪽 아닌 것 같다니까. 쟤네 한 번 쫓아 보자고!"
"어… 그래? 그럼 이유봉 쟤 붙잡으면 되는 거지?"
이유봉과 그 파리는 그땐 정신을 못 차린듯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정윤이가 신호를 했고…
"…자, 가자!"
우리 둘이 이유봉을 포위하듯이 달려나갔다.

"어, 어? 쟤네 뭐야!"
그리곤 이유봉을… 어떻게 잡았더라? 분명 내가 잡긴 했는데 제대로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잡힌 이유봉이 힘은 약한 게 벗어나려고 막 난동을 부리면서, 손을 막 물고 찌르고 해서 지금도 좀 얼얼한 것 같다.
"악 시발, 이거 놔!"
"너 같으면 놓겠냐? 너희 보면 볼수록 존나 이상하거든. 진짜 뭐야?"
그러자 까치가 놀란 듯 말했다. "하… 미친,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놓고 얘기하자 좀!"
"대놓고 수상한데 놓으면 안 튄다고 어떻게 확신해? 궁금증만 풀리면 풀어줄 테니까, 말이나 해봐."
"에휴, 이게 뭔 꼴이냐 시발… 알았어. 그럼 천천히 말할 테니까 어디 앉아 봐."


그렇게 돌을 가운데에 두고 모두 둘러앉은 상태에서 까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맞다, 정윤이가 그보다 먼저 조심스레 질문했었지. "너희, 뭐 처리 어쩌고 하는 거 들었는데… 그거 뭐 아무도 모르게 막…" 이러면서 목을 슥 긋는 손짓을 했고. "이런 건 아닌 거지?"
그러자 아직도 내 손아귀에 붙들려 있던 이유봉이 말했다. "못 해. 기껏해야 안 좋은 소문 내 가지고 우리한테 신경 쓸 새 없게 한다거나 잘 하면 너흴 다른 데로 쫓아낸다거나 하는 정도였겠지."
긴 침묵이 이어진 끝에, 정윤이가 다시 말을 꺼냈다. "…어쨌든 비밀은 확실히 지켜줄 테니까 말해 봐."
다시 까치가 말을 시작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너희 뭐가 제일 궁금하냐?"
"당연히 말하는 까치랑 파리에다 그 둘이 사람하고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게 제일 궁금하지."
"이건 어차피 말해도 이해 못 할 텐데… 일단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좀 이따 설명할 거고, 대충 우리가 본질적으로 같다? 뭐 그렇게 생각하든가."
"뭔 소리야 그게." 마음을 읽기 위해서 내가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셋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대충 '내가 사람/까치/파리가 아니라고 해도 받아들일 방법이 없을 텐데.' 이렇게. 뭔 소리인지 더 모르겠어서 대충 알아들은 척 하고 다음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자… 너희, 지리산 근처 살잖아. 지리산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알지?"
"모르지. 애초에 지리산 간 적도 별로 없는데."
"뭐, 몰라도 상관은 없지. 대충 몇억 년도 더 됐다고만 알아 두면 되니까."
"어쨌든 세상에는 너희가 모르는 엄청난 힘 같은 게 있다 이 말이야. 그리고 막, 산에는 정기가 있다 신령이 산다 어쩌고 그런 소리 있지? 그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니거든. 지리산도 그 긴 시간 동안 힘이 축적돼 온 거고. 내가 여기서 그리 멀리 벗어난 적은 없어서 모르는데, 아마 지리산은 좀 특이한 경우였나 봐. 그러니까 보통, 산의 기운은 퍼지듯이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더라? 근데 지리산은 어느 시점에 그 기운이 한 곳에 뭉쳤나? 그랬대."

그리고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가 쭉 이어졌다. 대충 그 기운 뭉친 곳이 외부랑은 완전히 격리된 상태를 유지했고, 그 안쪽 생명체들은 보통 경우보다 기운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서 대부분 그, '초현실적'인? 그런 상태가 됐고. 엄청 긴 시간동안 서로 죽고 죽이고 나서야 겨우 안정화됐고. 그 셋도 그 안쪽에 있던 놈들 후손이라 그런 특이한 상태인 것이랬다.
"…그 상태가 깨진지는 얼마 안 됐어. 아, 물론 지리산 기준으로. 그… 맞지. 사람이 거기 존재를 알게 된 거야. 그러면서 무슨 마법 지식을 얻는다, 마을 수호신으로 삼는다 어쩐다며 경계를 지탱하는 나무들을 멋대로 가져갔어. 반항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마구 베어가지고는 마법 도구로 가공한다나 그랬단 것 같고."
"와, 같은 사람이지만 그건 좀 너무했다. 그 나무들도 너희처럼 사람 말 할 수 있던 거 아냐?"
"그렇지."
"나 같으면 찝찝해서라도 못 그럴 텐데."
"뭐, 어쨌든 그러면서 경계가 약해지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던 녀석들이 나갈 수 있게 되고, 이게 반복되면서 아예 그 지역이 사라진 거지."
그때 정윤이가 뭔가 궁금해졌는지 질문을 했다. "그럼 그 힘은 어디 간 거야? 다른 데처럼 퍼졌나?"
"그게, 그냥 사라졌어. 어, 그래. 이상하지? 그 중심에 있던, 기운이 뭉친… 뭐라 해야 하나. 어쨌든 그런 게 있었는데 그게 경계가 사라지면서 같이 슥 사라져버렸다는 거야. 아,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지리산 힘이 아예 소멸했다거나 그건 아닐 거야. 그도 그럴게 그 경계 안에 있던 애들 대부분은 그 힘으로 이런 상태를 유지한 건데, 더 이상 남은 게 없었으면 우리 세대쯤에는 말하자면 평범한 생물로 되돌아왔을 테니까. 그렇다고 그게 또 다른 데처럼 퍼진 건 아닌데… 뭐라 해야 하나, 힘이 다시 산으로 묶여 가지고 가끔씩 풀려 나온다 해야 하나? 지금도, 어, 되게 드물긴 해도 새로 영향받는 경우가 좀 있거든."

그 말을 들은 순간 느낌이 딱 왔다. 내 이 능력의 근원도 지리산이겠다고.
"그럼, 너희 혹시 그런 사례 직접 보고들은 거 있어? 사람도 그렇게 영향받은 거 있는지 궁금한데." 제아무리 드물대도, 여기까지도 지리산 영향권인 거면 나 말고도 충분히 다른… 그런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겠지. 내 이 능력을 없애는 것까진 아니라도, 나보다 오래 능력을 숨기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다른 조언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들떴다.
"부영이 얜 웬일이래. 평소에 내가 뭐 신기한 거 보여줘도 그냥 시큰둥해하던 애가."
정윤이의 생각은 못 들은 척 하고, 까치의 말에 집중했다.
"아- 그거, 본 적 있긴 한데, 좀 이상하다 해야 하나, 그래."
"뭐가."
"아, 그게. 뭔가 사람답지 않다 해야 하나. 거 시방, 내 눈이 틀릴 리는 없으니까 분명 사람일 텐데, 묘하게 사람 같지가 않아. 다른 것들은 안 그러는데, 유독 사람만 그러던 것 같다?"
"그 사람 같지 않다는 게 뭔데? 한 번 말해 봐."
"아, 몰라. 그냥 느낌이야, 느낌! 지리산 영향을 받았으니까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 아냐. 대충 그래서 그런 거겠지."
까치가 그렇게 애매하게 말을 끊고는 생각하는 것이 들려왔다. "제비꽃이 간섭하는 것 같다고 말을 한다 쳐도, 얘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리도 없으니까 뭐,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제비꽃? 간섭한다? 척 들어도 좋은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듣고는 싶었지만, 이 상태에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으며 제비꽃인지 뭔지로 이을 화두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삶에서 세 번째 전환점을 지나기로 결심했다.
"너 방금 지리산에 영향받은 사람이 그냥 사람 같지가 않다고 했지. 그럼, 지금 난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단 거야? 그럼 왜?"

숲에 발을 들이다 1편 | 숲에 발을 들이다 2편 »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