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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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기가 맞소?"

"참말이래두."

걸립의 발치에 곡물 비스킷 다섯 개째의 껍질이 떨어졌다. 김철현은 비스킷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걸립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대체 몇 개나 얻어먹고 있는 건지. 걸립의 요구 사항은 '곡물 그 자체' 내지 '곡물로 만들어진 식품'이었고, 때문에 철현은 그를 데리고 인근 편의점에서 곡물 과자 한 무더기를 사줄 수밖에 없었다.

불필요한 다툼을 벌이고 싶지 않아서 한 일이었지만, 철현은 지금 그런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문안로5가길에 서서 한 상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가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세워진 번화한 건물이었다. 그 모퉁이 조그맣게, 낡고 오래된 가게가 하나 있었다. 철현은 멀찍이서도 보이는 간판의 더러움에 미간을 찌푸렸다. 가게의 이름은 ‘김가네 김밥천국’이었다.

"햐, 상표란 상표는 그냥 고대로 갖다박았구마이. 쟈 소송 안 당할라나 모르겄네. 기는 긴데, 여는 왜 찾수?"

철현은 턱을 긁적였다.

"본디 가택신을 찾을 방도를 가진 자가 날 공항서 맞이한다 하였는데, 당자(當者)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오지 못한다 하여, 이에 직접 찾아온 거요."

"허어…" 걸립은 무얼 생각하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우선 길을 건너봅시다."

둘은 횡단보도를 지나 거닐기 시작하였다. 걸립의 표정은 줄곧 멍해 있었다. 이는 보도를 건너 맞은편, 이내 가게의 앞까지 다다를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철현은 그런 걸립을 무시하고 가게 문 앞으로 다가섰다. 유리문 안으로 몇 명의 손님이 식사하는 것과 종업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꼴이 보였다. 저녁 타임이 아니라 그런지 손님은 적은 편이었다. 가게 내부는 밖에서 가늠했을 때보다 큰 듯했다.

별안간 걸립이 뭔가를 깨달은 듯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으, 으아악!"

"아니, 또 웬일이오."

"여, 여기…!"

철현은 몸을 틀어 걸립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여기…! 김서방네 아뇨! 아이, 아이그머니나 내가 미친 게로지!"

철현은 김서방네, 라는 말에 문득 놀라 다시 문 안을 바라보았다. 종업원들. 주방은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테이블을 오가는 젊은 남녀의 모습에서 어딘가 이물감이 들었다. 마치 뭔가를 가장한 듯한 기이한 느낌.

"나, 나, 나는 이만 가봐야겠소. 데, 데려다 줬으면은 된 것 아뇨! 가, 가오!"

걸립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친 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 달아나려고 했다. 뒤에서 다가오던 한 여자를 보지 못한 채.

여자가 걸립의 목덜미를 쥐어채고 내던졌다.

철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로 신음하는 걸립과 허리춤에 손을 얹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여자의 광경은 현실적이라기보단 마치 우스꽝스러운 콩트의 한 장면 같았다. 여자가 짝다리를 풀더니 그에게로 걸어왔다.

"손님이시죠?"

"그렇…소만. 뉘시오?"

여자가 팔짱을 끼더니 시건방진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집 딸내미. 어여 들어가요."


베이지색 탁자에 도자기 사발이 턱하고 놓였다. 사발 위에는 청포묵과 도토리묵이 뭉텅이로 잘려있었고, 그 위에 간장이 흩뿌려졌다. 철현은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도합 다섯의 도깨비가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철현은 조용히 말했다.

"참치김밥 시켰는데…"

"허우대 멀쩡한 아가 뭐시 그리 말이 많아싸! 후딱 무 봐라 좀!"

주방에서 성난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철현은 멍하니 묵을 바라보았다. 묵은 맛있게 윤기가 흘렀으나 그는 선뜻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방금까지 앉아 있었던 손님 하나가 묵을 먹더니 속이 메슥거린답시고 후다닥 계산을 치르고 화장실로 도피한 광경을 봤기 때문이었다. 묵을 가져다준 종업원이 킥킥대는 꼴도 봤고.

철현의 시야가 자기 앞에 앉은 셋, 옆에 서서 그의 의자에 기대어 있는 하나, 맞은편 테이블 위에 앉아 실실대고 있는 하나를 쓱 훑고 지나갔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옅게 비어져 나왔다. 입맛을 다셨지만 이는 배고파서가 아니라 당황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철현은 다시 모두를 바라보았고,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김서방네들 특유의 거리감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들은 '김가네 김밥천국' 안에 있었다. 철현을 이끌고 들어온 여자는 제일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걸립을 내던졌다. 버둥거리던 걸립은 이내 다른 종업원에 의해 꽁꽁 묶였다.

"처, 철현 도령! 날 좀 살리어주게!"

"이놈이 입만 살아선."

걸립을 묶던 종업원이 씩씩대며 서슬 퍼런 청테이프로 입을 봉해버렸다. 철현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붙였다.

"저… 이자가 무슨 잘못을 하였소?"

"아니, 이 새끼가 무전취식을 하고 나른 적이 한두 번이어야죠! 마침 오빠가 오시면서 이 개자식도 함께 데리고 와서 얼마나 다행이게요."

종업원이 씨익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욱욱대는 소리가 걸립의 테이프에서 비어져 나왔다. 오빠, 에 철현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 부르기엔 자신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겸연쩍음과 어색함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러한 것까지 일일이 고쳐주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철현은 걸립의 팔을 꺾고 밧줄로 묶는 소녀를 지나쳐 여자를 따라갔다.

손님들은 이따금 흘끗거리기만 할 뿐 달리 나서지 않았다. 익숙한 풍경인 듯했다. 철현은 그러한 손님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손님들의 구성은 특이했다. 총 다섯 명의 손님 중 범인(凡人)이 둘이었고 나머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철현과 김서방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자들이었다. 철현은 한 남자가 손대지 않고 국그릇을 공중에 떠올리는 것을 보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여자는 철현을 한 테이블로 안내하고는 주방 문가에서 유니폼을 꺼내 몸에 둘렀다.

"…예서 일하오?"

"보면 몰라요? 울 엄니가 사장인데. 지금 일하고 있는 녀석들은 내 동생들이고."

철현은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날 만났었던 김서방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대송방(大松房)을 하나 경영하더니만.

이윽고 인간 손님들이 전부 나가자 철현의 식탁으로 묵사발이 전달되었고, 현재에 이르렀다.

"먹어봐요. 엄마 솜씨 최고예요."

철현의 앞에 앉아 유니폼을 대충 걸친 남자가 말을 붙였다. 유니폼 앞에 ‘김한무’라고 적힌 명찰이 적혀 있었다. 한무는 부드럽게 웃음 짓고 있었다.

"…김밥집이 아녔소?"

"우린 김밥 안 좋아해서…"

한무의 옆에 앉은 여자가 조용히 대답했다. 짧은 머리에 제 형제와는 달리 유니폼을 꼼꼼히 갖춰 입고 있었다. ‘김마리아’라는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헌데 어찌 김밥집을 하는 거요."

"잘 팔리니까?"

한무와 판에 박은 듯 닮았으나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가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남자의 명찰에는 ‘김한수’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동조하듯 마리아의 옆에 앉아있던 소녀가 킥킥댔다. 아까 그 아이였다. ‘김선희’라고 적힌 명찰이 흔들렸다.

철현은 대꾸할 말을 찾질 못해 그저 시선을 떨구었다. 묵은 여전히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그 윤기에서 주체할 수 없는 장난기를 느끼고 한숨을 내뱉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만이 지체 없이 흘러갈 뿐. 철현은 시계를 흘끗 쳐다봤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여섯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만 드셔 보죠. 아, 원래 친분 있는 도토리였어요? 왜 이리 쳐다만 보고 있어!"

철현을 이끌고 왔던 여자가 귀에다 대고 소리쳤다. 철현은 그저 눈을 감고 침대에 쓰러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 이제야 그 뜻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철현은 상황을 타파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서 있던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여자의 명찰에는 ‘김선화’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선화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으나, 이내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외부인을 경계하며 기세를 꺾으려 시도하는 눈빛이었다.

철현은 그런 눈빛이 익숙했다.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 시간을 버릴 여유가 없으니 이해해 주시오. 난 여길 온 목적이 있소. 김세경 교수가 말하길 이곳에 내게 가택신에 대한 정보를 줄 길잡이가 있다 하더이다."

"없으면, 어쩌시려고?"

선화가 예의 그 시건방진 어투로 말했다. 도전적인 웃음이 그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등 뒤에서 야유 섞인 환호가 들려왔다. 필경 한수와 선희의 목소리일 '싸워라! 싸워라!'하는 소리도 작게 울려 퍼졌다. 철현은 다시금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여긴 묵밖엔 없어요, 아저씨."

"묵 말고도 많은 것 같은데." 철현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김서방 당신들이 도합 다섯이요. 아무것도 모르기보단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겠소."

선화는 씨익 웃고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철현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담배 생각이 극심했다.

"야 이 화상들아 식탁 안 치워!"

예의 그 무시무시한 호통이 주방에서 들려왔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제들은 새파랗게 질려 달아났다. 철현은 얼떨떨한 얼굴로 주방에서 나오고 있는 중년 외양의 여인을 보았다. 그는 다른 도깨비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얼굴엔 주방의 열기와 자식들로 인한 짜증이 서려 있었다. 철현의 눈이 점차로 커졌다. 그리고는 외쳤다.

"김순미… 낭자?"

"낭자?!"

외침은 형제들의 입에서 제각기 다른 속도로 터져 나왔다. 대부분 경악이 서린 얼굴이었으며 유일하게 즐거워하는 사람은 선희뿐이었다. 선희의 웃음소리를 듣자 철현은 다시 두통을 느꼈다. 여인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철현이 서 있는 자리로 걸어왔다.

"누군가 했더만 철현 도령이셨구만. 아들놈 딸년들이 매 장난만 치고 있길래 난 별 볼 일 없는 양반인 줄 알았네?"

"자, 잠깐만, 엄마 친구였어?!"

한수의 목소리에는 당황이 깃들어 있었다. 철현은 굳이 살피지 않아도 형제들 대부분이 그런 상황에 부닥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친구는 아니고, 지인이었다 지인."

여인은 쥐고 있던 행주를 식탁에 턱 내던진 후 그릇에 담긴 묵 하나를 낼름 주워 먹었다.

"어."

"와요?"

"아, 아니오."

"이것들아, 이 양반이 뉜 줄 알고 나댔어, 으응?"

"아니이… 걸립 새끼랑 같이 왔길래 도사나 끽해야 잡신인 줄 알았지…"

선화는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흘끗 대며 철현의 눈치를 살피는 품이, 마치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 같았다. 여인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기임철현이 많이 죽었다! 여튼 거, 용서하슈. 이놈의 자식들이 죄 경술년, 1970년 이후로 난 녀석들이라, 철현 도령 모습은 고사하고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야! 니들 빨리 사과 안 허냐? 니들 아부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거든!"

"괜찮습니다."

철현은 재빨리 만류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녔다. 쭈뼛거리며 죄송하다고 웅얼거리는 형제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그는 말을 이었다.

"중세경신 자청비, 김세경 교수가 여기서 날 도울 길잡이를 택하였다 들었는데, 그가 누구요? 시간이 얼마 없소. 찾아야 할 이들이 있소."

여인은 여유로이 미소 지었다. "기다려보슈. 곧 올 테니까."


김가네 김밥천국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자기 가설의 중심 개념 중 하나를 '도전과 응전'으로 설정했다. 그에 의하면 환경의 도전, 다시 말해 역경도전이 발발할 때 성공적으로 응전하는 집단이 문명을 발생 및 성장시킨다. 인간의 창의적 행동은 역경을 이겨내려는 투쟁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류원시의 옷차림 틈새로 파고드는 냉기는 그야말로 환경이 제공하는 역경에 해당했으며, 이로 볼 때 제대로 응전하기만 한다면 스스로를 창의적이라고 자부해도 될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는 결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게 될 것 역시 자명했다.

류원시는 아직 거기 있었다. 노을이 뉘엿뉘엿 지평선으로 넘어갈 시기였고, 원시는 참다못한 편의점 알바생에 의해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클럽용 패션이고 뭐고 따습게 입고 오는 건데.

클럽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 있었다.

원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근처 벤치에 앉아 몸을 기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날아와 꽂혔다. 분명 클럽에 미쳐서 개장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죽치고 앉아 있는 여자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그게… 사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시는 휴대폰을 꺼내 들어 시각을 확인했다. 시간은 오후 6시 32분. 아직 개장 시간이 다가오려면 멀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게 무슨 고생인지.

그가 ‘세라믹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한창 한국의 메카네교 내지 그와 준하는 종교에 대한 자료를 미친 듯이 조사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기계 숭배 정황을 추적하다가 모종의 조직 폭력 집단의 정체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불법 신체 개조 사건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원시는 추운 와중에도 씨익 웃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원시의 정보는 오직 이들이 기계를 숭앙하고 있다는 것, 서울 근교와 대전, 무진에 터를 잡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정도로 미미했다. 그러나 오늘, 이들 세라믹파가 점거하고 있다는 이 클럽에 진입하기만 해도 더욱 많은 정보를 알아가게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되어도 한국산 메카네교의 실체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되리라.

원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짝 온도가 내려간 바람에 발을 동동 굴렀다. 겉옷이라도 챙겨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클럽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목격한 것은 그때였다.

원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의 뒤를 쫓았다. 남자들에게서는 소위 말하는 '조직'의 향취가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두런거리며 클럽의 문을 활짝 개방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원시는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에 발을 디뎠다. 마냥 이대로 따라가 안에 숨어 있기만 한다면, 그리하여 사람이 물밀듯 들어올 때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면 잠입에 성공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되면—

누군가 팔목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원시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며 옆을 바라보았다. 집채만 한 덩치가 그의 팔목을 믹서기만 한 주먹으로 쥐고 있었다.

"이봐, 아가씨. 지금 영업시간 아냐!"

원시의 얼굴이 일순간 창백해졌다. 하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이럴 때일수록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 쪽에서는 되려 더 의심한다.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는 피식 웃으며 온화한 어투로 대꾸했다.

"그랬구려, 아니, 그랬어요? 몰랐네. 그럼… 이따가 다시 올게요."

의심을 사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저 드러내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덩치는 더 잡지 않았다. 원시는 재빨리 통로에서 빠져나왔다.

설마 지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원시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괜찮다. 원래 계획대로 가면 되니까. 원시는 멀찍이서 클럽 입구를 노려보며 팔짱을 꼈다. 기필코 안으로 진입하겠다는 투지가 그의 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게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엄니! 온다던 사람은!"

"왔다 이 녀석아! 한참 전에 왔다! 어딜 그리 싸돌아댕겨!"

"아니 엄니가 묵집 갔다 오라고 했음서 뭘 그리 혼을 내셔!"

남자는 안경을 쓰고 밤색 코트에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있었다. 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남자도 철현을 발견했고,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철현 씨, 맞으시죠?"

"그렇소만, 그대가 길잡이요?"

"네! 김한규라고 합니다. 자청비께서 제게 철현 씨를 인도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좋소. 되도록 빨리합시다."

한규는 재빨리 코트를 벗어들고 테이블 위로 던졌다. 코트 자락이 그 옆에 있던 걸립의 눈을 강타했다. 걸립이 나뒹굴었다.

"아이고, 이놈 잡혔구나!"

"여기 이분이 붙들어 오셨어. 마침 잘 됐지 뭐."

한무가 서글서글하게 대꾸했다. 한규는 약간 놀라는 표정이더니 철현에게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철현은 단지 고개만 까닥였다. 지금은 이런 일로 딱히 칭사(稱辭)를 듣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6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도사도 아니다, 잡신도 아니다 그러면… 오빠는 누구세요?"

선희가 대뜸 물었다. 가게 내의 모든 이가 잠시 말을 멈추고 철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겸연쩍게 헛기침을 했다. 그놈의 오빠란 소리는 어떻게 떼어지질 않나. 그가 미적대던 찰나에 여인이 대신 대답했다.

"아유, 우리 선희. 궁금한 건 많아가지구 그냥. 이 양반? 신라 때부터 살아온 천년 묵은, 거 뭐시냐, 그래. 천년 묵은 병신이잖아!"

"……병신?"

철현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일순간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가, 킥킥대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한수가 낄낄대다가 테이블에 배를 부딪쳐 콜록댔다. 마리아와 선희는 거진 호흡곤란의 전 단계를 겪고 있는 듯했고, 선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까지 짜내면서 웃고 있었다.

"…게 역신이란 말은 두었다 어디에 쓰오?"

"에이 뭐 역신이나 병신이나 그게 그거지."

철현은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고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진심으로 집이 그립다는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는 이내 조그맣게 킬킬대고 있는 한규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규는 황급히 웃음의 기척을 지우려고 했지만, 철현은 개의치 않았다.

"…갑시다."

"큽, 네, 네네. 가야죠. 그럼요."

"허면 그대가 가택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거요?"

"저요? 당연히 모릅니다. 몇십 년 전에 사라지신 분들인데요."

철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을 알죠. 전국 팔도서 유일하게 그분들의 현황을 알고 계신 분. 우리 할매를 소개해 드려야겠네요. 절 따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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