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록 패란 담천전, 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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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축월1 초하루.
섣달이 되었건만 눈구름은 몰려오지 않고 안개만이 음울하게 도성을 뒤덮고 있었다. 싸늘한 새벽 공기 속에서 전령의 발소리가 이금위 둔영을 걸었다.

"중군 나리께서 부르십니다, 영감."

제월은 흘낏 전령을 쳐다보고는 홍철릭을 갖춰 입었다. 얼굴에선 격무의 피로가 묻어나왔지만 날카로운 눈매는 전혀 처지지 않았다. 작은 탁자 위의 두루마리들을 정리하고는 대청 밖으로 걸음을 옮기니, 당당한 기백으로 허리를 곧추세운 모습에는 뭇 병사들의 선망을 받는 지휘관다운 풍채가 있었다.

곧 사령청에 당도하니 본대의 종사관이 그를 맞았다. 의례적인 암구호의 확인을 마치고 제월은 이금위 중군 서현의 앞으로 나아가 목례하였다. 의자에 앉아 서찰을 읽고 있던 서현이 눈을 둘어 제월을 보았다.

"보전원에서 알리기를, 짐조가 국내에 들어올 조짐이 확실하다 하는구려."

서현은 인사치레 없이 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제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짐조의 독은 강력하면서도 발각하기 어려운 탓에 독살에 있어선 최고로 치는 맹독이니, 그런 독조가 조선에 들어온다는 것은 곧 누군가 암살 모의를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나 다름 없었다. 단순한 암살범이 짐독까지 구할 리가 없으니 필시 거사를 꾸미는 것이리라. 제월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국을 통한 것입니까."
"동래라 하니 그런 모양이오. 포초 병력을 차출하여 보내도록 하시오."
"밀수자를 추포하고 새는 죽이겠습니다."
"아니, 전부 살려오라는 령의 지시요."

제월은 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중군은 더 묻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자료는 미리 보내 놓았소. 가보시오."
"…명 받들겠나이다."

다시 목을 숙여 예를 갖춘 제월은 조용히 사령청을 나섰다. 묘시, 차가운 안개에 가렸지만 곧 동이 터올 터였다. 제월은 옷깃을 여기며 발을 내딛었다. 즉시 출발하여도 동래에 이르려면 족히 나흘은 걸릴 터, 한시바삐 대응해야 하였다.

둔영에 돌아와 제월은 포초로 향했다. 출동의 채비를 하던 초관 진운이 즉시 수령을 맞이하였다.

"서찰이 왔을 것이다. 읽어보라."
"예. 왜인들이 진기한 새를 들여올 것이라는 소문이 왜관 근처에 돌고 있다 합니다. 보전원 감찰관의 보고에 의하면 왜인 몇몇이 떠들기를 조선 상인이 비싼 값을 치르고 새를 사들일 것이라 하였다는데, 그들의 신원은 곧 알 수 있을 것이라 합니다.
"과거의 기록은 없는가?"
"경종대왕 치세에 누군가 짐조를 밀수했다는 기록이 실려있으나 큰 연관은 없어 보입니다. 그 외 달리 짐조와 관련된 정보는 찾지 못했습니다."

진운은 자료를 정리하며 아뢰었다.

"알았다…. 금번 대기 부대가 전포기였던가."
"그렇습니다."
"기총 휘하에 열명을 보내어 탐문케 하라. 발견하거든 사살치 말고 압송해오도록. 사람, 새 모두."
"압송…입니까?"
"상부의 분부이니라."
"그리하겠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제월의 표정은 개운치 못하였다.
 



 
축월 넷째 날.
동래 부산포에 길게 새 우는 소리가 끌렸다.

그 아래로 푸른 깃발 하나만 내건 채 달리던 마차 둘이 속도를 늦췄다. 푸르륵, 말들이 멈춰서자 마차 안에서 장정 여럿이 내려섰다. 각기 군복과 철모를 갖추고 조총을 받쳐 든 군사들이 즉시 도열하니 곧 패란대 포초의 병사들이다.

푸른 철릭에 검은 답호를 입은 전포기총 담천은 어색하게 입을 다물고는 병사들 앞에 섰다. 긴장하고 있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이니, 수행대총 양문이 괜찮냐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걱정 말라며 손을 들고 이마를 훔친다. 첫 출동, 첫 작전. 담천의 긴장은 당연한 것이리라.

교육과 보조를 겸하여 함께 내려온 우포기총 이정이 담천의 어깨를 툭툭 돋워주며 격려했다.

"처음이라고 너무 무리하려 하지 않아도 되네. 자네도 부하들도 실력이 출중하니 잘 해낼 수 있을 게야."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 요량인가?"
"우선 정보를 올린 보전원 감찰관을 만날 생각입니다. 나흘 간 모인 정보를 취합해야지요… 양문, 연락은 되어 있나?"
"예! 왜관 옆의 초가에서 만나기로 약조해 두었습니다."
"좋다. 각 대원은 이 곳에 막사를 펴고 병장기를 정비하며 대기하라. 연무는 나와 같이 간다."
"알겄슴다."

이정은 퍽 훌륭하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천의 상황 파악과 역할 배정이 제법 그럴싸한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실감하며 그도 담천과 연무의 뒤를 쫓았다.
 


 
한양에서 군사들이 내려왔다는 소문은 금세 동래 곳곳에 퍼져나갔다. 왜관 뒷골목을 조용히 걷고 있는 두 사내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손에 하나씩 쥔 목제 새장 안에는 암록과 주황의 깃털을 가진 특이한 새가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어수선한 장날의 인파 속에서 그들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왜관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매물들을 한가득 들고 거리를 오갔다. 시간이야 막 묘시로 넘어가는 와중으로 아직 이른 참이지만, 이 날은 왜국의 상선단이 들어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삼포의 난이 있은 후에 잠시 제포로 합쳐졌던 시기와 임란의 와중에 왜군의 손에 떨어졌던 시기를 제하면 부산포는 고려 시절부터 왜관이 자리했던 고장이었고, 어부와 상인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삶에는 이러한 무역선과의 거래가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다. 노략질과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나 그것이 당장 들어오는 상인들을 내쫓을 이유는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저자는 일찍부터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시끌시끌하게 수다를 떨며 주막으로 가는 좌수영 수군들을 멀찌감치 돌아 피하면서 사내들은 발을 재촉했다. 약조한 시간이 거의 다 되었기 때문이다. 왜관 주위에 무질서하게 늘어선 양국 상인의 처소들은 사내들의 자취를 금세 감추어 버리고, 어느새 골목에는 스산한 바닷내음과 음울한 발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시장의 왁자함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담천의 부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변복을 한 채 태연히 골목을 쑤시고 다녔다. 웬만한 주민들은 저자에 나가있을 터, 그들은 제 혼자 사람이 북적이고 있을 수상쩍은 집을 물색했다. 보전원 비사대부는 그들에게 거래 장소를 알려주지 못하였고, 대원들은 서둘러 찾지 못하면 목표들이 거래를 끝마치고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갈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새장을 든 사내 중 하나가 그런 움직임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코를 한 번 쓱 닦고는 고개를 치켜들고 입을 열었다. 왜말이었다.

"관아에서 움직이는 모양이다."

뒤따르던 사내가 멈춰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 둘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고는 갈라져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약조한 것은 아직인가?"
"옮겨오는 중이다. 눈을 따돌리느라 늦어지는 모양이지."

거래 상대의 말을 듣고서 다과상 앞에 앉은 노인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찻잔을 갖다 대었다. 그 뒤에 도열하여 앉아있던 상인패가 험악하게 눈을 부라리자, 노인과 마주앉은 사내도 썩 기분이 좋지 않은지 손가락을 상에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거래 장소에 장정을 저렇게 모아두다니, 조선의 풍습은 원래 이런 식인가?"

노인이 잔을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그쪽이 부주의한 탓에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 아닌가. 값은 제대로 치를 것이니 괜한 걱정 마시게."

사내는 무안해져서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는 왜국 방식대로 촌마게를 튼 이마를 쓱 훑어올렸다. 방에 모여 앉은 이들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이어서 들려온 문 두드리는 소리에 노인의 메기수염이 씰룩였다.

"들여보내게."

대문이 열리자 과연 왜인들이 새장 두 개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노인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은 부하에게 손을 까닥였다. 장정 하나가 궤짝을 들고 상 옆으로 다가왔다. 왜인의 우두머리가 궤짝을 열자, 그 안에는 금괴와 인삼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대가는 확실히 치르는군. 잘 받았다."

그렇게 말하고서 그는 부하에게 턱을 까닥였다. 왜인들은 두 새장을 대청에 내려놓았다. 왜인의 우두머리는 웃음을 옅게 흘리며 새장을 가져가라 손짓했다.

"이쪽도 어렵게 구한 것이다."
"호오. 과연 진귀하게 생긴 새로군… 하지만, 그리 쉬이 믿고 넘어갈 수야 없지."

노인의 뒤에 앉아있던 상인 하나가 개를 한 마리 끌고 나오며 노인을 보았다. 독의 진위를 가릴 심산이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인은 두꺼운 면 장갑을 끼고 새장 하나에 손을 들이밀어 깃털 하나를 잽싸게 뽑았다. 뽑은 깃털을 개에게 먹이자, 얼마 가지 못하여 개는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며 고꾸라졌다. 노인은 비뚤어진 미소를 짓더니 크게 웃기 시작했다. 부하 상인들도 저들끼리 수근거리며 웃어 제꼈다. 촌마게 머리의 사내는 번뜩 불길함을 느끼고 궤짝을 들고 일어나려 했다.

"거래는 끝났으니, 우리는 이만 가보겠다."
"이런, 이렇게 아쉽게 헤어져서야 쓰나.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하지 않으면 이쪽이 섭하지 않나… 안 그런가?"

노인이 입가를 일그러트리듯이 웃으며 말하자, 부하 다섯이 칼을 꺼내 쥐고 왜인들을 둘러쌌고, 한 놈은 조총을 꺼내어 심지에 불을 붙였다. 일어서려던 사내는 당황해서 궤짝을 엎고 말았다.

"아니지. 기껏 얻은 짐독을 이런데 쓰긴 아까우니, 총칼이라도 좋다면 들겠나?"
"…애초부터 이럴 심산이었군!"

왜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이를 갈았다. 새장을 가져온 부하 둘은 짧은 날붙이를 꼬나 들었다. 엄심갑을 걸친 병사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일제히 총을 겨눈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전원 무기를 버리고 그 자리에 멈추어라!"

담천이 허리에 찬 환도를 빼어들고 안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앞문과 뒷문에서 각기 들이친 전포기 병사들이 사랑채를 빙 둘러싸고 조총을 겨누자 노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무, 무슨 짓이냐! 군사가 사대부의 집에 멋대로 들어오다니, 썩 나가지 못할까!"
"댁이 짐조를 들여왔다는 첩보는 이미 입수했소. 바로 저기에 증거가 있는 것 같군."

이정이 새장을 가리키면서 비웃듯이 말하자 노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왜의 상인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그도 질세라 노기어린 눈으로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 꼴을 유심히 살펴보던 부관 양문이 엎어진 궤짝을 보며 빈정거렸다.

"보아하니 그나마도 상대를 등쳐먹으려고 한 모양인데. 서로 이야기는 한양에서 마저 하시구려."
"뭣들 하고 있나. 당장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긴장한 채 담천이 재차 외치자 상인들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제대로 훈련받은 무장 부대를 해치우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양 쪽은 조심스럽게 조총과 단도를 바닥에 떨구었다. 담천은 그제야 숨을 약간 내쉴 수 있었다. 포수 관도가 현장의 사람 수를 세어 아뢰었다.

"조선 사람이 아홉, 왜인이 셋으로 도합 열 두 명입네다."
"후… 알았다. 저들을 모두 포박하라. 짐조도 죽이지 말고 챙겨라."
"알갔습네다, 나리!"

관도와 경휘가 오랏줄을 챙겨들고 다가가자 노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채 이를 갈며 말을 뱉었다.

"이놈들, 감히 내가 누구라 생각하고 이러는 것이냐! 감히 판병조사에게 총을 들이대고 무사할 줄 아느냐?"
"송구하오나 대감, 우리는 병조 휘하의 병력이 아니올시다. 병판 나으리가 오셔도 우리에게 명령할 수는 없소."

이정의 대답에 노인은 파랗게 질려서 물었다.

"아니, 그것은 말이 안되지 않는가? 그러면 네놈들은 도대체 누구의 부대란 말이냐?"
"당신이 알 일이 아니외다. 그만하고 순순히 오라를 받으시오."

한편 옆에서 궤짝을 부여잡고 있던 촌마게의 사내는 분노로 이성을 잃은 채였다. 전 재산을 들여 어렵게 성사시킨 거래는 사기와 적발로 파투가 났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급여도 치러 줄 수 없는 한 줌의 똘마니와 쓸모없는 새 두 마리 뿐이었다. 작금의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자 그는 왜말로 절규를 토해내고 있었다.

"말도 안된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내가 어떤 고생을 했는데 여기서 이런 꼴을 당하느냔 말이다!"

그렇게 주절이던 촌마게 사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새장을 움켜쥐고는 하늘로 집어던져버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길이 공중에 뜬 새장으로 쏠렸다. 사내는 그 틈을 타서 봐두었던 뒷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노인의 행동은 사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노인은 버선발로 마당에 뛰쳐나가 떨어지는 새장을 받은 것이었다. 노인이 자기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구르자, 전포기의 포수 경휘와 풍재가 달려들어 노인의 품에서 새장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한 발 늦은 것이었다.

"으, 으, 으아아악!"

노인은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팔뚝은 땅바닥에 구르며 쓸린 흉과 짐조의 깃털이 스친 상처로 끔찍한 몰골이었다. 상처로 새어들어간 짐독은 노인을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죽여가고 있었다. 대원들이 당황하는 사이 왜인들과 상인패는 뒷문으로 달려나가려 했지만, 뒷문을 막아선 설작의 위협 사격에 곧 멈춰섰다. 촌마게 사내 역시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담천이 어쩔 줄 모르고 서있자, 이정은 앞으로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새장 전부 이리로 가져오게. 당장! 한 명 죽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나리."
"짐조는 두 마리가 전부인 듯 합니다."
"그런 것 같군. 놈들을 전부 포박해라. …담천, 자네 괜찮은가?"
"아, 그렇습니다. 제대로 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됐네.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

이정은 담천의 등을 툭툭 치며 허리를 펴주며 마당 가운데로 걸어갔다. 최선을 다해 응급 조치를 취한 보람도 없이 판병조사 노인은 급속히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평연은 치료를 계속하면서 노인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요?"
"큭, 짐조를… 놓칠까봐…! 그렇지만, 커헉, 설마… 이렇게, 되리라곤…"
"안되겠군, 대답하지 마시오. 상태가 악화되겠어."
"평연, 상태는 어떤가?"
"한양까지 살려서 데려가기는 글렀습니다. 오늘을 넘길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흠… 물론 그대로 떨어졌으면야 새장은 깨졌겠지만, 그렇게까지 건질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겠군. 뭐, 덕분에 짐조는 무사히 회수했지만…"

의문을 표하는 이정의 목소리를 들으며 노인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뭐라 말하려는 듯이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비명을 뱉으며 다시 뒤로 누워버렸다.

"가만히 있으시오. 목숨 재촉하기 싫으면…"
"나리! 관련자를 모두 포박했습니다. 이들 외에 일당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담천, 그렇다는군."
"아, 네. 상황 종료다! 막사로 귀환한다."

담천은 들고 있던 환도를 칼집에 도로 꽂아넣으면서 선언했다. 대총 양문이 아뢰었다.

"역마를 불러놓으면 되겠습니까?"
"알았다. 곧장 한양으로 올라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양문이 답했다. 노을이 음산한 핏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판병조사 대감께서 운명하신 것을 제외하면 모든 관련자를 압송하여 왔습니다."
"이물을 들여오려 한 자를 굳이 높일 필요는 없소. 그래서 짐조는 모두 가져 온게요?"
"그러하옵니다. 총 두 마리를 모두 회수하였습니다."
"그럼 되었소. 현장 부대에게 수고하였다 전하시오."
"짐조는 금제소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아니, 본대로 가져오시오. 관련자도 모두 이리로 후송하고. 문초는 내가 직접 할 테니."
"그리…하겠습니다."
"음. 이만 돌아가도 좋소."

제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현 앞에 고개를 숙여보이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제월은 눈을 살짝 감았다. 령들께서 짐조를 직접 올리라 하였다는 것은 필시 기록에 남기지 않겠다는 것,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월은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었다. 궐 안팎에서 벌어지는 암투에 짐조가 쓰일 것이라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이윽고 제월은 가만히 눈을 뜨고 대청을 걸어나갔다. 짐조가 어떻게 쓰일 것인지 그는 결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쓰이는 지 확실히 알아낼 방법도 없었다. 더이상 복잡하게 고민해도, 별 수가 없는 것이다.

"우포기총, 잠시 이리 오게."

패란대 둔영에 돌아온 제월은 이정을 불렀다. 이정이 곧 달려와 수령을 맞았다.

"부르셨습니까, 나리."
"이번 출동을 보조한 것이 자네였지? 전포기총 담천에 대해 말해보게."
"하, 하오나 나리, 판병조사 대감의 죽음은 담천 때문이 아닙니다. 확신컨데 그것은 누구라도 도저히 막을 정황이 아니었습니다."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 아니야. 그에 대한 자네의 평가를 말하라는 것이네."
"아… 송구하옵니다. …물론 첫 출동이니만큼 상당히 긴장한 듯 했으나, 생각보다 침착히 방향을 잡아나갔습니다. 막사를 치고 비사대부에게 정보를 받아 바로 수색에 들어갔는데, 얼마 걸리지 않아 밀수 현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운도 좋았으나 일처리가 꽤나 훌륭했습니다."
"계속하게."
"다만 현장에서 많이 당황하고 긴장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약간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처음치고는 굉장히 우수한 활약이었습니다."

제월은 턱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정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고했다며 이정을 돌려보낸 뒤 제월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공공연히 알려진 일이지만, 그는 담천의 입대를 내심 꺼리고 있었다. 담천의 죽은 아비는 제월의 친우인 고로, 사심을 일에 개입시키는 것을 혐오하는 그로서는 사실 그를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허나 이번 일을 보아하니 담천은 그렇게 함부로 내쳐도 될 법한 자는 아닌 듯 하였다. 굳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사심을 가지고서 사람을 대한 건 오히려 내 쪽일지도 모르겠군."

제월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중군 나리의 치하를, 전포기 장병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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