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록 패란 담천전,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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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사월1.
맑은 하늘을 부정하기라도 하듯이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기는 조그만 사립문으로 한 청년이 다가갔다. 그 또한 흐릿한 인상을 가진 것이 그 문에 적이 어울렸기에, 누가 보았대도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으리라. 이 기척 적은 자는 그저 주변의 왁자함으로부터 조금의 주의도 받지 않고 건너편으로 향하였다.

청년은 조심스레 사립문짝을 걸어닫고 안을 둘러보았다. 밖에서 보이기와는 달리 크고 격조있는 기와채의 풍체에 그는 조금 놀란 듯 하였지만, 이내 미리 정해진 말을 꺼내었다.

"상령에 하인이 응하오니, 소인 담천이라 하옵니다."

조심스레 말하자 곧 문걸이 시원스레 열려젖혀졌다.

"이리 가까이 오게나."

울리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절도있는 목소리가 담천을 불러들였다. 웅비흉배 수놓인 단령을 갖춰입은 사내는 묵묵히 눈앞의 청년을 관찰했다. 수염도 거의 나지 않은 앳된 얼굴에서 그는 어떤 관록도 노련함도 찾을 수 없었다. 젊은 호기, 결연한 다짐,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과 긴장만이 청년의 됨됨이를 드러낼 뿐이었다.

그러는 그 역시도 늙었다곤 할 수 없는 자였지만 그의 기백은 오랜 세월동안 닦은 호랑이의 패기와도 견줄 수 있는 것이었다. 담천은 사내의 안광을 온몸으로 느끼며 대청 앞에 나아갔다.

그 강렬한 눈빛에 위압되기도 하였거니와, 앞으로 자신이 맞게 될 운명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들었기에 그는 떨리는 손을 맞잡아 진정시켜야했다.

그제서야 그는 위에 걸린 현판의 자가 눈에 들어왔다.

"異禁衛"

이금위…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얀 획 하나하나가 담천에게, 그가 어떤 인재인지를 묻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자신으로 말하자면 지난 무과에서 빼어난 솜씨를 보이며 당당히 급제한 고로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고 가슴을 내밀만 하였지만, 국경의 수비를 맡자마자 전사한 것으로 취급된 채 한양으로 내밀히 돌아온 차인지라 그는 내막을 듣고도 어리둥절하여 지금 보는 하나하나가 다 괴이케 여겨졌다. 후일 자세히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딱히 틀린 감상도 아니었기에 사내는 담천의 속을 무심히 넘기고 말을 꺼냈다.

"자네는 그리 기골이 장대한 것도 아니요, 병법에 통달한 서생도 아닌듯 헌데 어찌 이 일을 맡게 되었을꼬?"
"어릴제 병서를 벗삼아 자랐으나 부끄럽게도 눈이 훤히 틔었다 할 바는 못되옵니다. 그저 이 한몸, 종묘와 사직에 헌신코자…"
"그만 되었다."

신입을 맞을 때마다 듣던 비슷한 대답에 실망한 듯 그는 말허리를 잘랐다. 신경쓰지 않으려 했던 온갖 단점들이 갑자기 청년의 면상에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아마 본인은 모를 터이지만, 담천의 부친 역시 이금위의 일원이었던 것이 그는 못내 신경쓰였다. 혹여 위의 누군가가 옛정에 그 아들을 불러들인 것이라면 자신의 부대에는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할 요량이었으나, 대장 나으리와 기기감 부정 남씨의 간곡한 권유로 어떤 놈인지나 떠보고자 불렀더니 이모양인 것이다.

그러나 청년의 얼굴에 당황하거나 낙심하는 빛은 보이지 않았다. 저 역시 분명한 무신인지라 상당한 침착함을 갖추었기도 하였고, 나름의 각오 역시 그를 담대하고 평안케 하고 있었다.
관복의 사내는 그것을 눈여겨보았다.

"자를 담천이라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흠… 썩 좋은 이름은 아닌 것 같군 그래."
"송구스럽습니다."
"뭐, 좋다. 자네가 종묘와 사직을 지키고자 무과에 응했으리란 것은 능히 짐작하고 있네. 허나 이곳의 일은 남들 누구도 모르게 숨겨져 있는 터, 어떠한 공도 밖으로 알릴 수 없음을 알 것이야. 혹여 헛된 공명심으로 부름에 응하였다면 지금 이자리에서 꽁무니를 빼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었다면 감히 여기에 나아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여전히 마음에 안드는 혈기로 가득찬 애송이였다.

…그렇지만 이 정직한 앳됨은 분명 진실을 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장 나으리의 판단을 거스르면서까지 내쳐야 할 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환영하네. 자네는 지금부터 이금위 패란사의 일원일세.
이미 밖으로는 죽은 목숨이며, 안으로는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알되, 그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게."
"새겨듣겠습니다."
"나는 패란사 수장 제월이라 하네."

제월은 그렇게 미심쩍음을 속으로 감춘 채 담천을 병사로 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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