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의 강의 녹취록: 응용기적학 편.

좋은 저녁이군요. 다들 앉으세요. 방 뒤에 술, 물, 빵, 소금이 있으니 드시고 싶으면 드시고. 커피하고 도넛, 기타 등등도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술은 적당이 마셔요. 공짜 술 앞에서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는 피직스 기관원을 본 적이 드물어서 말입니다.

주전부리 줏어와서 착석했으면, 의례에 대해 먼저 한 마디 하도록 하겠습니다.

빵과 소금은 동유럽에서 특별한 손님을 대접하는 전통적 수단이었다고 하지요. 놀랍지 않게도, 빵이야 먹어야 산다는 걸 의미하고, 소금은 그 당시에는 비쌌지만 역시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니까요. 그래서 그걸 받은 손님은 빵을 한 조각 찢어서 소금에 푹 찍어 먹는 게 전통이었습니다. 이 의례가 어쩐지 익숙한 무언가와 비슷하게 들리지 않나요? 아, 개신교도들은 바로 알아듣는 것 같군요. 맞아요, 적심(intinction)이라는 영성체 방식하고 비슷하지요. 빵을 덩어리에서 찢어내고, 성작에 담갔다가, 한꺼번에 먹는 그거 말입니다. 천주교도들은 좀 혼란스러운 것 같군요. 그쪽의 영성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테니 그럴 만도 하지요. 아무튼 그거나 이거나, 의례의 핵심은 단순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고, 동료의식을 상징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빵을 찢는’ 걸 동료됨의 행위로 생각하는 거지요. 데이트가 왜 밥 한끼 하는 걸로 시작하겠어요.

그리고, 물. 살라딘이 하틴에서 십자군 지도자들을 붙잡았을 때, 그들 가운데 르노 드 샤티용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살라딘이 그 무엇보다 증오하던 자였지요. 샤티용은, 뭐 살라딘의 관점이지만, 맹세들을 숱하게 어기고, 알라를 믿는 신앙인들을 배신한, 잔인하고 못 빋을 놈이었어요. 십자군 귀족들이 살라딘의 천막으로 끌려오자, 살라딘은 십자군들의 왕 기 드 뤼지냥에게 물을 주었지요. 왕은 당연하다는 듯 그 물을 자기 동료 르노 드 샤티용에게 주었고…, 그 순간 살라딘이 아주 단호하게 지적했지요. 자신이 증오하는 적에게 기가 자기 허락도 없이 물을 주었다고. 건조한 지역에서 손님에게 물을 준다는 것은, 손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여겨졌으니까요. 르노를 꼭 죽이고 싶었던 살라딘으로서는, 자기가 르노를 죽이는 것이 그 신성한 맹세를 어기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는 겁니다.

요즘에는 이런 세미나에 오면서 아침을 거르고 오는 손님들을 위해 도넛과 커피를 주전부리로 제공하지요. 그래서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고 세미나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모양 빠지는 이유로 제공하는 주전부리에서, 역사 속의 신성한 의례들과의 공통점을 찾아내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다들 자리에 앉았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 길고도 구불구불한 말의 길을 지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환영합니다.


제 소개부터 하도록 할까요. 제 이름은 ████████████. 그냥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국제통일기적학연구센터, 약칭 ICSUT 매사추세츠분캠에서 명예교수를 지내고 있지요. 주전공은 구성지능학이고. 이 고양이는 제 말동무인 미드나이트. 이 강의는 여러분, 신참 피직스 기관원들에게 통일기적학의 기본원리에 대해 쓸만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만 듣고서 바로 일을 할 수 있거나 바깥 세상의 지성체를 소환하거나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마시고요. 다만 제가 기대하는 건, 이 짧은 강의가 여러분에게 우리들 타입 블루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하는 것인지 조금이라도 이해를 제공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니까요.

첫 번째 원리부터 시작해 볼까요. 기적학은 실천적 과학으로서 마법의 원리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물리학과 비슷하지만, 그 태어난 원리들이 전혀 다르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근대물리학은 뉴턴의 세 가지 운동법칙에서 시작되었다고들 그러지요. 기적학에도 그에 해당하는 기초법칙들이 있는데, 전염의 법칙과 유사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그 두 법칙을 요약하자면,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비슷함이 비슷함을 낳는다.’

벌써 뭐가 문제인지 보이겠지요. 물리학에서 이미 이 두 원리가 말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이 빵에서 조각을 찢어내서, 그 조각을 불태운다고, 나머지 빵덩어리까지 숯이 되어버리지는 않잖아요. 코뿔소 뿔이 아무리 좆대가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도, 그 뿔을 빻은 가루가 발기부전을 치료해 주지도 않고요. 그래서 마법의 세 번째 원리가 나오는 거지요. ‘마법은 재능 있는 술자(術者)practitioner를 필요로 한다.’ 특정한 타입의 사람들만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이 소리입니다. 어떻게 그렇고 왜 그런지 설명은 확립된 적이 없었고요. 그리고 실용기적학은 이 상태로 수백 년을…, 20세기 초까지 머무르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 때가 되기까지 기적학…, 내지 마법은, 뭐 그 시절에는 마법이라고 했으니까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말입니다. 마법이 먹고살던 회색 영역으로 과학, 특히 물리학의 발전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술자들은 유효성을 상실하기 시작했지요. 인구의 폭증이 세계의 마나 흐름을 바꿨다는 둥, 과학이 너무 진보해서 현실성을 보다 안정된 상태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둥, 온갖 이론들이 난무했고. 어떤 술자들은 절박한 나머지 스스로를 근대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과학적 발견으로 정신이 오염되는 것을 막으려 애썼지요…. 위기의 시대는 하이젠베르크라는 사람이 벼락맞을 제안을 내놓은 1927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한 입자를 다룰 때, 운동량을 정밀하게 알면 알수록, 그 위치에 대한 정밀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역도 성립한다고 합니다. 기적학 세계를 살려내는 충격요법이 된 건 불확정성 원리 그 자체는 아니었고, 거기에 따라 나오는 원리, 즉 관찰이 세계를 바꾼다는 원리였어요. 그 순간 마법의 세 번째 원리가 ‘마법은 재능 있는 술자를 필요로 한다’로부터, ‘관찰이 현실을 변화시킨다’로 개정된 겁니다.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해 볼까요…. 어떤 정신들은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타입 그린 현실개변능력자들은 이 변화시키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현재 생각되고 있지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외부의 관찰자’를 제안하기도 하고. 타입 그린 현실개변능력자와 타입 블루 기적사를 단일한 범주로 재분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던데.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타입 청록? 타입 아쿠아? 뭐 결과가 나와 보면 알겠지요.

아무튼 간에,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양자역학에서 새로운 이론들이 부상하고, 세상에 회색영역이 자기들이 예상하던 것보다도 많았다는 것을 마법사magician 공동체는 깨닫게 되었지요. 거의 하룻밤 사이에 마법사들은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린 은둔자로부터, 세상을 적극적으로 탐험하는 젊은 과학자가 된 겁니다. 그 때부터 연구분야의 이름도 고루하고 미신적인 ‘마법’이 아닌, 보다 과학적인 ‘기적학’으로 바뀌었고.

…그 뒤 제7차 오컬트 대전이 터졌고…, 나머지 세상이 원자시대의 도래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우리도 이 새로운 과학의 결과를 직면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세계 오컬트 연합의 결성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하지만 그에 관해선 따로 강의할 시간이 있을 거 같군요.


그래서, 나같은 늙다리 마법사wizard가 기적학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아까 그 세 가지 기본원리를 다시 떠올려 볼까요. 비슷함이 비슷함을 낳는다.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관찰이 현실을 변화시킨다. 이 중 세 번째 원리가 근대 기적학에서 집중하는 주안점이라고 하겠어요. 생명에너지의 근본 단위인 EVE 양자를 분리함으로써 우리는 관찰이 어떻게 현실을 변화시키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COLLICULUS 화상시스템 뒤에 숨은 지도원리입니다. 그리고 그 원리 덕분에 백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신기술들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 여러분 모두 몸 어딘가 은밀한 곳에 교질 은(銀)으로 패턴 있는 문신을 새겨넣었을 텐데요. 그 문신이 바로 기적학적 공격에 대한 필수적 방어수단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는 곳마다 우리의 일부를 흘리고 다니잖습니까. 피부세포부터 머리카락까지. 만일 방어수단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여러분의 몸에서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이 여러분에게 엄청난 해를 끼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살아있는 신체와, 거기서 떨어져 나간 죽은 부분들 사이의 양자연결을 끊어 버리는 결계를 문신으로 새긴 거지요. 덕분에 여러분은 저주인형 공격에 면역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같은 원리를 우리도 이용할 수 있지요. 표적의 머리카락 한 올이나 DNA 시료를 얻기만 하면, GOC 소속 기적사들은 기술적 수단으로는 불가능한 데까지 그 사람을 추적할 수 있지요. 현장에 나가면 이런 부분에 우선사항을 두게 될 겁니다.

좀 더 스펙터클한 예를 들어 볼까요. 이건 소환진입니다. 기본적으로 커다란 마법 양자 순간이동장치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분 몸의 모든 입자들에게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있을 무한소에 가까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설득하는 게 이 소환진의 원리야.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요구하고…. 또 그렇게 있음직하지 않은 상태가 일어난다고 우주에 강제하는 과정은 또다른 있음직하지 않은 것들이 일어나도록 유발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반발(backlash)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소환진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고. 쓸 때 마다 괴기한 일들이 일어나거든요. 우리의 직업은 대체로 괴기한 것들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지, 그것들을 만들고 다니는 게 아니니까 말이지요.

알았으니까 손들 내려요.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에 나오는 질 나쁜 농담 같다는 건 나도 아니까요. 그런데 애덤스가 양자역학에 영감을 받았다는 거 알고 있나요? 생각해봄직한 일입니다.

고려해 볼 만한 실천적 응용이 여기 하나 더 있습니다. 미드나이트한테 안녕 하세요. 여기 있는 미드나이트는 흔히 ‘사역마’라 부르는 존재인데, 요즘은 구성지능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요. 순수한 지능 한 조각이 고양이의 형상을 뒤집어쓴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지능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거 참 궁금하지요, 안 그런가요? 그게 바로 우리가 대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이게 다 기적학이 신생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연구된 역사 자체야 오래 되었지만, 신화나 미신으로서 연구된 세월이 긴 거고. 제대로 된 연구가 시작된 지는 고작 50년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새로 알아가야 할 게 한참 많아요.

어쨌든 간에, 제가 여러분의 기적학에 대한 오개념들을 타파하고, 그래서 여러분 같은 문외한들이 그걸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깨우쳐 줬다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제 질문을 받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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