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키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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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一) 상기(想起)
자신의 집안의 광경.
당신에게 생각나는 최대한 선명한 것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던, 소위 본가라고 부르는 것이던 상관 없어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간이나 저녁 무렵, 설혹 밤이라 해도 형형히 전기불을 켠 밝은 광경을 상상하리라 생각되네요.
집이라는 것은, 특별히 떠오르는 추억은 남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봐가면서 기억에 남아가는 장소지요. 그러니 당신이 지금까지 지내온 생활의 가운데, 기억으로서 비중이 가장 많은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일 거여요.
그런데 제 경우에는, 그것이 항상 캄캄해요.
자신의 집이라는 말을 듣고 상상하는 저의 기억은, 전기도 켜져 있지 않고, 낮에도 어딘가 어둑하고.
그것이 제 집이고, 제가 일상적으로 보아온 풍경이었어요.

그것은, 다다미 네 첩 정도의 일본식 방 안에서의 기억이에요.
저녁 무렵이었을까요. 얇은 포단만 깔려 있는, 어둡고 살풍경한 방. 전기도 켜지 않고, 창문 너머로 살짝 스며들어오는 붉은 태양광만이 방 안을 비추고 있었어요. 저는 거기에 그저 앉아만 있었고요.
아무 소리도 없었어요. 다만 저는 어둑한 다다밋방에서, 외따로 앉아만 있었어요.
집안 광경이라는 말을 듣고 제게 떠오르는 것은, 주로 이런 장면이에요. 계절이 언제인지, 제가 몇 살 때 무렵인지, 그런 것들은 알 수 없지만, 왠지 이런 장면만 제 안에 새겨진 듯 남아 있어요.
아니, 그런 장면 뿐, 이라는 말은, 조금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뿐만은 아니다, 라고 말해도 좋으려나요.

그 어둑하고 협소한 다다밋방에, 여자애가 한 명 잠들어 있어요.
제가 다다밋방에, 아마 정좌한 자세로 앉아 있어요. 그리고 제 무릎 앞에 주먹 두 개 만큼 사이를 두고, 여자애의 얼굴 오른쪽이 앞쪽에 보이는 모양으로, 얄팍한 포단이 깔렸고, 그 아이가 누워 있었어요. 노을이 스며든 장지문을 그 여자애를 사이에 두고 저 쪽에 있어서, 역광처럼 되어가지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이 애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저는 전혀 생각해낼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뿐인 장면만이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이것이 제 집이었고, 깔려 있는 포단 속에 여자애가 재워지고 있는 것도 기억나는데, 그것이 누구이고, 목소리는 어떠했는가 같은 세부는,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해도 어디선가 트집잡히는 것처럼 기억이 떠오르지 않게 되어 버려요.

대저 그 기억에는, 목소리 같은 소리의 정보가 결여되어 있네요. 그야말로 한 장의 사진과 같이, 장면의 정보만 있고 그 전후의 모든 정보가 빠져 있는 거여요. 간단히 말하자면, 그런 한 장면의 기억만이 「자신의 집에 관한 기억」으로서 제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런 상태인 거죠.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불가사의한 기분이 되어요.
저는 무엇을 했던 걸까요.
무슨 말을 했을까요.
어슴푸레하지만, 무언가를 이야기했던 것 같은 기억은 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생각이 나지 않네요.
하지만 불가사의하게, 그것에 대해서 슬프거나 외롭거나 혹은 향수 같은, 그런 감정은 별로 들지 않아요.
굳이 말한다면, 그것은 공포겠네요.
공포라는 것에, 가장 가까운 감정이겠어요. 제 안에서 그 추억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서운 기억으로, 언제까지나 달라붙어 있어요.
.
그것은 너무 무서운 기억이어요. 너무 싫은 기억이어요.
그런, 「싫었다」라는 감촉 같은 것만이, 제 안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어요.

저의 집은, 미야자키현의 산간의 작은 촌에 있어요. 낡아 찌들어 거무스름해진 색감의 목조 평옥이고, 기와지붕 위에는 곳곳에 큰 돌을 올려놓았어요.
이것은 제 집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집들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던 것이어요.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빠져 버린 기와의 자리에, 적당한 크기의 돌을 눌러 대처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응급처치적 의미가 강했던 것이지만, 이 고장에서는 일부러 지붕을 새로 시공하는 집이 드물었다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길게 보자면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불편한 점이 많지요. 실제로 저의 집에서도 지붕이 돌을 놓은 부분부터 상하기 시작해서, 천장을 보면 사람 머리통만한 크기의 거뭇한 점이 여러 개 생겨나 있어요. 누수가 발생하면 나무로 된 천장은 그 부분부터 헙신헙신 썩어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의 집 안은, 항상 습해요. 눅눅한 공기가 항상 충만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요. 일본가옥이니 본래는 흡방습성도 나름대로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옷은 피부에 달라붙고, 누우면 다다미나 때 따위의 끈적한 감촉이 들러붙는 듯한, 그런 눅눅한 습기를 언제나 느끼고 있어요.
아마도, 습기를 조절하거나, 공기를 교환하거나 하는, 집이 집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그런 기능을, 이 집은 이제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비유하자면, 죽어버린 사람이 더이상 대사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썩어가는 느낌일까요. 아마도 집으로서 죽어 있다고 봐야겠죠. 어둡고, 습하고, 냄새나. 다다밋방의 다다미의 골풀의 향기 같은 것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요. 흙이나 나무가 죽어 썩는 내와, 뭐라 말할 수 없는 인간의 생활취가 박혀서, 걸쭉하게 발효된 냄새요.

현관 앞에 설까요. 문은 미닫이문이고, 나무 틀 가운데 아지랑이처럼 몽롱한 간유리가 끼워져 있어요. 손잡이, 라기보다는 손가락만 끼울 수 있을 정도의 홈이 문 오른쪽에 파여 있어, 그것을 왼쪽으로 끌어내어요. 드르륵 하면서 기분 좋게 열리는 것부터 일단 없고요. 어딘가 걸려 있는 느낌이 들어서, 힘을 주어 반 강제로 열지 않으면 안 되어요.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거기는 좁은 현관이어요. 곳곳에 거미줄이 붙어 있고, 모래나 솜먼지가 구석에 쌓여 있어요. 마루 귀틀의 모서리는 한 부분만 깎인 듯 피여 있고, 차색으로 낡아 찌든 가운데 그 부분만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네요.
신발장 따위도 없어서 신이 언제나 엉망으로 흩어져 있어요. 현관으로 들어서서 왼쪽 구석에는 메마른 진흙이 붙은 검은 장화가 세워져 있는데요, 사용되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틀림없이 저 장화 속에는 거미줄이나 모래 같은 갖은 더러운 것들이 축축히 퇴적해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기분나쁜 벌레 등도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집안의 먼지나 머리카락 사이에 섞여서, 장님거미의 다리나 검은 벌레의 사체가 떨어져 있곤 하니까요.

구두를 벗고 현관에서 낭하로 올라설까요.
낭하는 판자를 대었는데, 어째서인지 곳곳에 울퉁불퉁 요철이 많아요. 청소 따위 되어 있을 리도 없으니, 맨발로 걸으면 지분지분한 감촉이 들어요. 옛날에는 나름대로 예뻤을 텐데. 어두워 발밑 주변은 잘 보이지 않지만, 만일 불을 밝히고 낭하를 본다면 얼마나 더러울까요. 걸레받이 위에는 먼지가 쌓였고, 벽 등은 손때가 묻어 변색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낭하를 곧장 걷는 도중, 좌측 벽에 목제 문짝이 하나 붙어 있고, 그쪽은 부엌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뭐랄까, 너무 꺼림칙한 장소였어요. 제가 취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부엌을 쓸 일도 없었는데, 거기서는 요리 같은 것은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알 일이었지요.

기름 찌끼가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설거지통이나 냄비 주위도 지드럭지드럭 더럽혀져 있고요. 도마 주위에는 작은 야채 쓰레기가 닦아내지도 않고 쌓여 있어서, 항상 싫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어요. 생선도 야채도, 무엇을 잘라도 그 시큼한 부패취와 생취가 섞인 뭐라 말 못할 냄새가 나요.
작은 꼬마전구가 도마 위에 하나 붙어 있지만, 요리중의 광원 치고는 매우 못 미더운 것이겠지요. 벽에 오도카니 설치된 황토색 돌기를 짤까닥 누르면 몇 초 사이를 두고 전깃불이 켜지는데, 그것도 왠지 흐리멍텅했어요. 계란 노른자가 상한 것 같은, 힘없는 등색 불빛이, 냄새나는 조리장 위에 걸쭉하게 퍼져나가는 것이어요.
식칼이나 도마에도 분명히, 그 냄새가 배어 있어요. 저런 부엌에 쭉 방치되어 있으니까요. 비록 단단한 금속 따위로 만들어져 있다고 해도, 조금씩 그 공기가 서서히 안에 배고 발 거여요. 아무리 정중하게 씻어도, 거기에 찌들어 가라앉은 공기는, 떨어질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엄마의 베인 상처도 낫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부엌의 끝에는 변소 겸 욕실이 있어요.
이 변소는, 뭐랄지 냄새가 나지요.
저의 집의 그것은 푸세식이라서, 흘려보내는 배관 처리 같은 것도 없어요. 그저 내보내는 것을 받아내는 그릇 역할만 할 뿐이지요. 그 그릇은 저의 집에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대변도 소변도 다 섞어 내보내게 되어요.
좁고 검은 구멍 속에서, 나도 모르게 어지러워질 정도의 악취가 올라와서, 그 일대에 충만해 있어요. 환기를 위한 작은 창이 열려 있지만, 그깟 것으로는 위안도 되지 않네요.
먹고 마신 뒤, 맛이나 영양 같은 좋은 것들을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들을 배설하는 것일까요. 그런 찌꺼기가 질벅질벅 어두운 구멍 가운데 퇴적되어 발효하고, 그리고 또 퇴적되는 것이지요.
그런 것, 두려워서 어쩔 수가 없어요.

예전에 할아버지가 들려준 얘기여요.
이 세계에 아귀로 태어나게 된 자들 가운데는, 아무리 주려飢: かつ 있어도 분변밖에 먹지 못하는 아귀가 있다고 해요. 기아와 고통에 허덕이고, 냄새 나 냄새 나 울부짖으면서, 구더기가 굼실대는 변을 씹으며, 소변이나 설사가 섞인 것을 불컥불컥 홀짝인다. 그러니까 변소란, 아귀의 신주단지禰: かたしろ가 되는 것이라고, 주름 많은 얼굴을 슬픈 듯이 일그러뜨리며 이야기해 주셨어요.
혹시 그 구멍 속에, 그런 아귀가 산다면. 어둡고 어두운, 꽉 막힌 구멍의 바닥에, 피골이 상접해서 배만 부자연스럽게 부풀어오른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드니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어요.
그래서 어린 저는 변을 볼 때마다 항상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 기억나요.
그저 숨기고 자기 마음 밖으로 쫓아낸다. 두려운 것에 대해 그 때의 제가 떠올린 대처법은 그것 밖에는 없었어요.

그런 변소, 그리고 부엌으로 이어지는 문짝의 건너편에도, 아까의 낭하를 사이에 두고 하나의 문짝이 또 있어요. 즉 현관에서 낭하를 바라보면 양측 벽에 문짝이 하나씩 마주보고 달려 있는 것이지요. 좌측 문짝은 부엌이었지만, 우측 문짝은 불간으로 통해요.
문을 열면, 바로 정면에 초라한 불단이 보여요. 그리고 불간에 들어서 오른쪽 벽에는 맹장지가 있는데, 거기는 열어본 적이 없네요.
별로 불간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불간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계셨어요. 할머니는 언제나, 너덜너덜하게 해진 헌 옷裂織: ふるぎぬ을 입으셨어요. 이 주변에서는 싯고敷布: しっご라고 부르는, 솜 없는 방석을 부처님 앞에 깔고, 낮이고 밤이고 굽은 등으로 거기에 앉아 계셨어요.
가끔씩, 할머니는 문득 생각나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셔요.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로, 무엇을 부르는지 거의 들리지 않는데, 아마도 어떤 동요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락이 맞지 않는데, 솔직히 물어 볼 수도 없었고요.
할머니는 매일매일 그렇게 마구 노래를 부르다가, 밤새도록 거기서 울며 지새우는 것이어요.
피부에도 머리에도 기름기는 없고 바싹 말라 있는데, 눈물은 마르지 않는 것일까요.
목소리도 혀도 이미 다 망가졌는데, 할머니는 마치 응석부리는 아기처럼, 오오, 오오, 그렇게 울부짖고 있어요.
왠지 그 목소리를 듣자니 이쪽도 슬퍼져서, 항상 불간 문짝 앞을 지나갈 때는 빠른걸음으로 걸어요. 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도, 그 울음소리와 외치는 소리는 이쪽에 들려오는 것이어요.

그리고, 이들 부엌과 불간으로 통하는 두 개의 문을 지나친 끝. 낭하의 맨 끝에는, 네 개의 꾀죄죄한 맹장지들이 서 있어요. 두 장씩의 맹장지가 가운데의 굵은 기둥으로 나눠져 있는 듯한 형태여요. 이것들은 모두 거처방으로 통하는 것인데, 이 거처방이 저의 집 안에서 가장 넓은 장소여요.
다만 넓다고 해 봤자 뻔하지요. 벽에 찬장이 몇 개 나란히 서 있고, 옷궤들이 쌓여 있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협소한 것 같은 압박감마저 들 정도여요.
저 옷궤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어린 저는 무척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어요. 어린이가 보기에는, 목제의 묵직한 옷궤는, 그만큼 흥미를 끄는 것이겠지요. 몇 번인가 아빠에게 물었던 적이 있는데, 결국 알려주시지 않더라고요. 그 안을 보려고 하면, 어디서 보고 계셨는지 아빠가 안색을 바꾸고 날아와서는, 저를 때리고 꾸짖었어요.
어째서인지, 항상 얼마 남지 않은 부분에서 들켜 버리곤 하더라고요.

거처방에 있는 가구는, 그 장롱과 옷궤들, 그리고는 방 중앙 부근에 놓인 각로 뿐이었어요. 각로는 계절을 불문하고 꺼내놓은 채였어요. 각로 이불도 계속 그대로였고요. 원래는 무슨 수가 놓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색깔도 빠지고 손때와 더러움이 배여, 무엇인지 모를 피부색과 황토색의 얼룩무늬가 되어 있어요.
인간의 기름과, 토사물과, 이 집이라는 시체가 썩는 냄새, 너무 싫은 냄새가 나요. 토사물이 들러붙은 채 굳어서 이불 곳곳에 까칠까칠한 감촉이 느껴져요. 좀 빨면 좋겠는데, 라고 언제나 생각하는데, 이 각로는 언제나 엉거주춤 거처방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에요.

옛날에는, 이 거처방에서 잘 놀곤 했어요. 세련된 놀잇감 같은 것은 예로부터 없었지만, 그저 뛰어다니는 것만으로 매우 즐거웠던 것이지요.
저에게는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어요. 저보다 연하인 가족은 그 동생밖에 없었기 때문에, 제가 특별히 동생을 신경썼던 것이 막연하게 기억나요. 동생은 저와 달리 운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무타기라던가, 넨가라우치根木打: ねんがらうち라던가,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하면 푹 빠져서, 어디론가 쌩하니 가버리곤 했지요. 산을 나누어 들어가고, 저녁 숲 속을 찾아다니고 한 적이 수없이 많았어요.
이제는 그런 볼품은 찾아볼 수도 없지요.
몸을 움직이기는 커녕, 뭘 먹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동생을 위해 특별히 요리를 했었어요. 나물과 , 약간의 보리된장을 잡탕죽처럼 끓여 지어서, 그것을 불컥불컥 찌부러뜨린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그것을 한 술씩 덜어서 동생의 입에 넣어주는 것이어요. 엄마는 식사 때가 되면, 토란이나 쌀가루 죽을 달게 배불리 먹던 예전의 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리며 웃어요.
저는 항상 눈을 피하고 있었지요.
할머니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어요.
다만, 역시 제게도 동생은 소중은 존재였을 것이어요. 동생을 제외하면, 저의 가족은 조부모님과 양친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저는 어딘가 막연하게 느껴지는 외로움 같은 것을, 동생과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달래왔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저의.
저의 가족은.

저 여자애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따져볼수록 불가사의네요. 제 가족 구성원은 전술한 대로, 조부모와 양친, 그리고 저와 남동생. 이렇게 여섯 식구이고. 제가 철이 들었던 시절부터 그것은 변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그 노을이 장지문으로 새어 나오던 어둑한 다다밋방의. 포단만 깔린 살풍경한 방의, 그 기억을. 저의 집의 기억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그렇다면요. 저의 집에 깔려 있던 포단에 재워져 있던 그 아이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적어도, 친척은 아니어요. 제가 아는 한에서, 친척들 가운데 여아라고 할 만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을 거여요. 친척 가운데에서는 저와 제 남동생이 가장 젊어요. 그 다음으로 연령이 가까운 사람은, 아마 띠동갑 정도로 위라고 생각되네요.
그러면 근처 사는 누군가인가. 아니, 그것도 아마 틀릴 거여요. 애초부터 저의 집에 친족 이외에 누군가 초대되거나 그런 일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 누군가 다른 집의 사람이 왔다면, 그것을 잊어버릴 일은 없었겠지요.
그 기억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기억의 어긋남이겠지요. 친척인지, 혹은 친구인지. 아무튼 제가 만난 적이 있었던 누군가의 모습을 재구성한, 제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환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치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기억이 지나치게 선명한 것이어요. 한 장면 기억에 지나지 않는 것에도 불구하고, 제 속에 기묘할 정도로 생생한 질감을 가지고, 그 광겅이 들어앉아 있어요.
다다미와 다다미 사이에 끼어 있던 솜먼지. 포단 너머로 보이는 장지문 위 상인방 주위에 늘어져 있는 거미줄의 그림자. 이불 끝에 박힌 파리.
보통의 추억이라도 좀처럼 기억하지 못할, 노골적으로 상세한 부분까지, 저는 선명하게 떠올릴 수가 있는 것이어요.

그리고. 기억 속에 저는, 분명히 그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어요.
아니, 처음에 썼던 대로, 목소리나 소리에 관한 정보는, 이 기억에서 쏙 빠져 있어요. 제 안에서 그 장면은 너무너무 조용한 것이에요. 하지만 뭔가를 말했다는 기억 또는 실감은, 지며리 남아 있어요.
그리고 그 감촉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 두려운 것이어요.

예로 들자면, 꿈의 기억이랄까요.
무언가 무서운 꿈을 꾼 직후에 눈을 떴다고 해 보죠. 마음 속에는, 방금 전까지 꾸었던 꿈의 뒷맛이 남아 있지요. 그런 때에, 이런 일이 있어서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인과는, 많은 경우 누락되어 버리는 것이어요.
오직 두렵다는 감정만이, 하나의 체감으로서 남아 있어요. 소위 악몽을 꾼 후 같은, 그런 느낌에 가까워요.
선명하지만, 어디인가 희미한 것.
저것들은 바로, 저에게는, 먼 꿈 같은 기억이어요.

그 아이는, 누구일까.
그 아이와,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나는, 무엇을 말했을까.
그리고, 그 장소는.
장지문에서 붉은 석양이 새어나오는, 어둑하고 협소한 다다밋방. 언제까지나 조용한, 그 방은.

불간.
그러고 보니, 저 불간에 있는 맹장지 너머의 방은 어떤 방이었을까.
거기에 생각이 미친 곳에서, 저는 제 생각을 부정해요.
애초에, 저는 그 방에 간 적도 없었으니까요. 할머니가 언제나 앉아서 울부짖는 것이 싫었고. 게다가 그 방이 불간에 인접해 있다면, 얄팍하고 더러운 맹장지 너머로, 그 우는 소리가 다 새어나와 들렸을 테지요. 그렇게 조용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리가 없어요.
거기서,
저는 생각이 났어요.
저는, 딱 한 번, 그 맹장지 너머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조금씩, 저편에 있던 기억들을 끌어당겨 보아요.
저것은.
제가 소학교 육학년 때의, 우란분 때였어요.
여름의 끝물이고, 입고 있던 마부리小衣: まぶり가 등에 들러붙을 정도로 습한 날이여요.
서쪽의 숲을 넘어간 곳에 있는, 온보의青癩: おんぼ 당집에서 돌아온 저는, 집의 현관 앞에 서요.
이(二) 공유(共有)
저의 집은, 미야자키현의 산간의 작은 촌에 있어요. 낡아 찌들어 거무스름해진 색감의 목조 평옥이고, 기와지붕 위에는 곳곳에 큰 돌을 올려놓았어요.
이것은 제 집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집들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던 것이어요.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빠져 버린 기와의 자리에, 적당한 크기의 돌을 눌러 대처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응급처치적 의미가 강했던 것이지만, 이 고장에서는 일부러 지붕을 새로 시공하는 집이 드물었다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지붕을 고쳐서는 아니 되어요.

몽롱한 간유리가 끼워진 현관문은, 어딘가 잘못 되었는지 강하게 힘을 주어 당겨야 열려요. 손잡이 용도로 문 오른쪽에 파 놓은 홈에 손가락을 걸어, 힘을 주어 왼쪽으로 끌어내는 것이어요.
덜걱덜걱 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려요.

거미줄이 쳐져 있고, 먼지를 뒤집어쓴 현관이 보였어요. 신고 있던 짚신을 벗고 낭하에 오르자, 부드득거리는 마룻바닥의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지분지분한 감촉을 맨발에 느껴요.
낭하의 양측 벽에는 목제 문짝이 하나씩 붙어 있고, 왼쪽은 부엌 및 변소로, 오른쪽은 불간으로 통해요. 그 문짝들 앞까지 걸어가고, 오른쪽을 향해요. 눈앞에는, 불간으로 통하는 문이 보여요.
어째서인지, 너무 조용하네요. 할머니의 쉰 울음 소리도, 가래 끓는 노랫소리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요. 불간에 사람이 있는 기색조차 없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어도 할머니의 모습은 없었어요.
얇은 방석만 불단 앞에 남아 있는데, 항상 구부정한 등으로 그 위에 앉아 있을 터인 할머니는, 거기 계시지 않았어요.

불간에 들어가, 등 뒤로 문을 닫아요.
문을 닫고 바로 앞.
부엌 및 변소로 통하는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할머니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요,
문을 닫으니, 다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요.

불간에 들어서 오른편 벽에는, 맹장지가 달려 있어요.
정면에 있는 불단이나 방석에는 눈을 감고, 오른쪽을 향해, 저는 맹장지 앞에 서요.
그 맹장지는 거처방으로 통하는 맹장지들과는 다르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깔끔했어요.
더럽혀졌다거나, 빛바랜 인상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저는.
손잡이에 손가락을 열고, 스르르, 맹장지를 열어요.
현관 미닫이문과 다르게, 그것은 맥 빠질 정도로 쉽게 열렸어요.
맹장지 너머에는.
다다미 네 첩 정도의, 어둑한 다다밋방이 있었어요. 건너편 벽에는, 장지문이 되어 있어요. 전기는 켜져 있지 않은데, 섬뜩할 정도로 붉은 햇빛이, 아련하게 장지문 너머로 들이비치고 있었어요. 그 어둑한 검붉은 다다밋방 중심에는, 색 바랜 더럽고 얇은 포단이 깔려 있고.
그 안에, 작은 여자애가 재워져 있었어요.

저는, 다다밋방 안에 들어가서, 맹장지를 닫고, 그 포단 앞에 앉았어요.
정좌한 무릎 앞, 주먹 두 개 만큼 사이를 두고, 여자애의 얼굴 오른쪽이 앞쪽에 보여요. 노을이 스며든 장지문이 역광처럼 되어가지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저도, 그 아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한동안, 저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만 있었어요. 여자애는 이쪽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혹은 개의치를 않았는지, 제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네요.
아주, 조용했지요.
아마도 몇 분, 길어봤자 십 분 정도였겠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간 것처럼, 제게는 생각되었어요. 그러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는데, 그 어둠 속에서 보인 여자애의 얼굴은, 제가 아는 누구와도 다른 얼굴이었어요.
기억이 틀린 것이 아니었네요.
다섯 살, 여섯 살 정도일까요. 저나 제 남동생보다 훨씬 작았네요.
그녀는 줄곧 눈을 감고 있었어요.
잠들어 있을까요.
아니면.

저는.
너무, 너무 긴 침묵 끝에.
그 여자애에게, 말을 걸었어요.
너, 어디에서 왔어.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머리만 이 쪽으로 돌려서.
저를 보았어요.
먼 꿈 같은 기억 속에 있던, 줄곧 열렸던 적이 없던 맹장지 너머에 있던, 어둑한 방 한가운데 깔린 포단에 뉘어 있던, 저나 남동생보다 훨씬 어리고, 제가 아는 누구와도 다른 얼굴의, 그 여자애는.
하얗게 짓무른 입을 벌리고.

「너도 데려갈까」

라고 말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서, 두려워서.
일어서서 뒤의 맹장지를 열고, 다다밋방을 나와서.
그 기억을, 멀리 숨겨두고, 잊어 왔어요.
그저 숨기기만 하고, 제 마음의 밖으로 내몬 셈이지요.
어린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밖에 없었어요.
이제 그 아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는 거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자면, 조금 쓸쓸한 것 같기도 하네요.
삼(三) 빙의(憑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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