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살리는 칼, 사람을 죽이는 칼.

삼대천의 회장, 임한영은 한 팔로 물구나무를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면 그는 팔을 정말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은 단 한번도 속도가 느려지거나 빨라지지도 않았다.

1시간이 지나고 팔이 완전히 펴지자 임한영은 운동을 멈췄다. 그는 전화기로 백태양을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백태양을 불렀으나, 오늘은 아니다. 그는 오랜만에 홀로 걸어갔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몸. 그러나 임한영은 잠을 청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땀은 나지 않는다. 더이상 아무리 격렬히 운동을 해도 땀이 흐르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이 운동이 그에게 있어 무의미하다는 것 역시 의미했다.

산은 정상에 오르면 내려갈 일밖에 남지 않는다. 임한영은 그저 내려가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육체는 지금까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임한영은 자신의 육체를 가꾸기 위해 극한까지 노력해 왔고, 그의 육체는 묵묵히 그것을 따라 주었다. 임한영은 육체만으로는 모두의 위에 군림했고, 그 육체는 인간의 다른 분야에서도 그를 군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바로 어제까지는.


"뇌종양입니다."

마스터의 첫 음성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왔지만, 임한영의 담담한 반응에 조금씩 본래의 사무적인 어조로 바뀌었다.

"늑대꽃을 추천한 이유도 그러면 마취 때문이었나."

"그렇습니다. 당연하게도 통하지 않았지만요."

"그렇군."

마스터는 임한영에 육신에 중독이라는 말 따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치도 않은 일이다.

"만독불침. 금강불괴. 회장님께서는 무협소설에서나 나올 경지를 실제로 이루신 유일무이한 인간이실 겁니다."

임한영은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모든 약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금강불괴 역시…"

"내 몸에 외과적 수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것이군."

마스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방법은 없는가?"

마스터는 한참동안 뜸을 들였다. 그답지 않은 태도였다.

"방법을 말씀드리기 전에…우선 회장님의 뇌에 생긴 종양은 결코 회장님을 죽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더욱 두렵네."

마스터는 침을 삼켰다.

"예. 예상하시는 대로입니다. 이성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삶보다 중요한 것이니까요."

임한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치매라…터지면 끝장이겠군. 그 어떤 폭탄보다 심각한 게 내 머리속에 있군 그래."

마스터는 임한영이 이성을 잃고 그 육체로 날뛰는 것을 상상했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자네가 나를 불러 말을 하는 것은 대책이 있기 때문이겠지."

마스터는 뜸을 들였다.

"아시겠지만, 내과 의학은 오랜 기간 미신과 주술의 영역에 그쳤습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의학 역시 마찬가지로 엉터리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의약학이 급속도로 발전한 것은 통계학이 발전한 이유입니다. 통계와 신체의 반응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 덕에 많은 약들이 그저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가능해 졌습니다."

"그렇겠지."

"허나 회장님께서는 통계에 바깥에 계신 아웃라이너입니다. 약이 통하지 않는 분이시니까요. 회장님께 맞는 마취제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취제는 필요 없네. 뇌에는 통증 수용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 회장님이시라면 두개골을 여는 고통을 마취제 없이 참아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제가 하려던 이야기를 계속 해도 되겠습니까?"

임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내과의학의 발전은 회장님께만은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과술은 다릅니다. 외과술은 통계의 영역 바깥에 있을 수 있는 기술과 재능의 영역입니다. 삼국시대의 화타도, 이집트와 고대 인도의 의사들도 뼈를 깍는 대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낸 적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회장님의 내구도라면, 재활도 분명 성공적일 것입니다."

"단순히 종양을 긁어내는 작업이라면…"

"어려운 작업이지만, 저라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어보겠네."

"문제는 회장님의 두개골을 열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회장님의 그 육체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는 뼈가 얼마나 강골일지는…"

"내 육체를 가를 칼이 필요하다는 거로군."

마스터는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방법이 아니라면 새로운 육신을 알아보는 방법도 있습니다만…어떤 육체도 회장님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사료됩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점의 육신에 비교라도 할 수 있는 육신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신이 아니고서야…

"그런 태도는 자네답지 않아. 소문에 불과한 물건이지만…내 알아보겠네. 기한은 언제까지면 되겠는가?"

마스터는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 역시 가늠할 순 없습니다. 일반인이었다면 길어야 1년이겠지만…제 예상으로는 3년간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군."

임한영이 떠나고, 마스터는 웃었다. 삼대천에 오기를 잘했다. 신과 같은 육체를 조작하고, 자신에 손길을 통해 살린다. 그런 존재라면 그것이야말로 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장 날카로운 칼'의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필요한 건 순간의 틈이다. 0.001초도 안되는 찰나의 순간에 목숨을 끊어야 한다."

"…"

"물론 그걸 행하는 존재는 목숨을 걸어야겠지. 개죽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건 내가 한다."

정철민은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비루한 삶을 너무나 오래 살았다.

이성재가 손을 들었다.

"그 검의 확보는 어떻게 합니까?"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그 검이야말로 첫 단추라는 거지. 그게 없다면 내 계획은 성립조차 하지 않으니까. 그게 없다면 우리는 모두 평생 회장의 뒤치더꺼리나 하며 살겠지."

이성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살짝 불만인 듯 말했다.

"임한영도 결국 사람 아닙니까?"

정철민은 순간 부정하려 했다가 자신이 깜짝 놀랐다. 맞다. 임한영은 결국 사람이다. 신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자신부터가 그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이 문제가 아니다…이런 정신머리라면 결코 회장의 목숨을 취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죽을 각오만큼이나, 진심으로 죽일 각오가 필요하다는 걸 이성재라는 꼬맹이가 정철민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준 것이었다.

"…말 잘했다. 임한영도 결국 사람이지.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거다. 원래 많이 했던 것처럼."

이성재는 그 말에 웃었다.

"그럼 칼이나 찾아보죠. 사람 하나 죽이러."


신을 살리는 칼이자, 사람을 죽이는 칼. 모두 목적은 다르나 한 칼을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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