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 안에서 쇠공이 울려대는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멀리 희뿌연 안개 너머로 높은 종탑의 그림자가 보였다. 마지막 종소리의 메아리가 사방에 어렴풋하게 퍼지고 있는 중이었다. 항상 이때부터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이 기억을 잃기 직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낼 수 없었다.
콧잔등이 간지러웠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그곳을 긁었지만 별로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그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정신이 들면서 어둑했던 시야가 밝아졌다. 주변에 묘지가 가지런히 줄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일과를 행하듯 익숙하게 무덤 사이를 지나며 묘석을 훑었다. 오른쪽 귀퉁이가 부서진 것, 멀쩡한 것, 멀쩡한 것, 반토막 난 것, 묘석이 없는 것, 그다음. 네 번째 줄 일곱 째. 그 무덤 앞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이번엔 파란 꽃이었다. 물망초일까? 꽃말은 아마도 '나를 잊지 말아요'였다고 생각한다. 저번엔 노란 꽃, 그리고 예전엔 하얀 꽃이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빨간 꽃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는 움찔했다. 눈앞의 묘석 위에 어느샌가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녀석은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다가 날아올라 그의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다시 묘석 위에 앉아서는 그와 마주 보고 한 번 울었다. 그는 그 까마귀를 불편하게 노려보며 인상을 썼다. 이번에도 이 까마귀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올 것이었다.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는 까마귀의 눈을 응시하면서 그것이 가장 소름 끼치는 매개체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저 눈이 무수히 모인다면 그것은 아마 저승과 현실 세계를 가르는 암흑의 강물일 것이다.
그가 까마귀에게서 관심을 떼기로 한 뒤 무덤에서 돌아서자, 공동묘지를 빽빽이 메우는 망자의 보금자리들 사이로 검은 조문객들이 나타났다. 그는 제자리에서 잠시 동안 그 검은 덩어리들을 관찰해보았지만, 그들은 단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서 미동도 않고 있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여자 조문객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조각상처럼 가만히 정지해있었다. 그가 계속해서 그녀를 보고 있자, 그녀는 자신이 장식용 조형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손수건을 쥔 오른손을 얼굴을 향해 가져갔다가 다시 내렸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흥미를 잃은 그는 안개를 헤치며 회색 하늘을 향해 걸어갔다. 공동묘지 끝자락에 심한 비탈길이 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아마 수직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뒤에서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몸을 돌리고 팔을 내젓자, 까마귀가 항의하듯 울며 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시체를 발견한 독수리가 그런 식으로 날던 것 같았다. 이 까마귀는 그가 죽어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는 비탈길 아래에서 예상하던 삽질 소리 대신 투둑거리는 걸음을 들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선 그는 아래쪽에서 한 남자가 기분 좋게 비탈길을 오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외로 꽤 이른 시점이었다. 남자는 급한 비탈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뿐히 걸어 오르며 자기 발소리에 들떠있는 것 같았다. 그는 머리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내려온 비탈길 위쪽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가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을 때, 남자는 이미 그 무언가를 맞고 비탈길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빨간 꽃잎들이 남자를 뒤따라 지면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다시 조심조심 길을 내려갔다.
남자는 철근 몇 가닥에 몸이 꿰뚫린 채 빨간 꽃잎에 둘러싸여 반듯이 누워있었다. 그중 하나는 얼굴 한가운데를 짧게 관통하고 있었는데, 그 위로 귀여운 곰 캐릭터 '버저스'가 수놓아진 손수건이 덮여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이 남자의 취향은 아니었겠지, 그는 차라리 그것이 딸을 위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어쨌든 어른들이 쓸 만한 것은 아니었는데 테디 베어가 그려진 것보다야 아류작인 편이 값쌀 것이기 때문이다. 손수건을 들춰보았지만 이번에도 남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철근이 빨간 꽃잎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흉측하게 휘저어놓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콧속을 가렵게 만드는 형상이었다. 그는 손수건을 도로 덮었다.
까마귀가 그의 왼쪽 어깨 위에 앉았다. 그가 까마귀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까마귀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볼 뿐 어깨에서 비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시체가 있는데 이 까마귀는 먹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계속 시선을 맞대고 있자니 까마귀의 부리가 눈을 찌를 것 같아 그는 다시 시체에게 눈을 돌렸다. 저번엔 공구상자였는데, 다시 철근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남자가 맞아죽는 물건에 뭔가 규칙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에 맞았다는 점 말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삽 소리가 들렸다. 그가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깎아지른 듯한 비탈길 면과 딱 붙어있는 지점에 흙더미가 있었다. 그는 흙더미 뒤편의 구덩이로 다가갔다. 얼굴 없는 묘지기가 땅을 파고 있었다. 묘지기가 파낸 양은 저번에 본 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보였다. 그는 한쪽에 만들어진 경사면을 통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묘지기가 흙을 파내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묘지기는 아무런 반응 없이 계속 삽질만 했다. 새로운 무덤을 만드는 것 같았다. 그가 묘지기 주변을 뱅뱅 돌며 시선을 끌어보았으나, 묘지기는 흙에 삽을 꽂고 잠시 쉬는 때마저도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 구덩이를 오르기 위해서 구덩이 가장자리에 걸쳐 자라고 있는 마른 나무줄기를 붙잡았다. 그가 지면에 나와 옷자락을 터는데, 그가 잡고 올라왔던 나무줄기 한 편에서 길다랗게 늘어진 것을 발견했다. 옷을 가늘게 찢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올가미 한가운데에 썩어가는 고기 한 점이 놓여있는 형태였다. 아마 새덫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이것에 대해 잠시 동안 심사숙고해보았다. 저 덫은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건 분명했다. 만들 사람이라곤 그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새라고는 자기 어깨 위에 앉아있는 까마귀밖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까마귀를 다시 쳐다보았다. 까마귀는 그와 새덫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한 번 울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 까마귀를 잡으려고 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쩌면 그 이유가 자신이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기억을 잃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그는 까마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까마귀는 항의하듯이 울며 도망갔다.
길 저편에서 검은 차가 나타났다. 그가 길 옆으로 비키자, 보닛에 흰 리본을 길게 묶은 운구차는 서둘러 치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이 급히 남자의 시체를 향해 달려갔다. 차가 지나치자마자 그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운구차는 이미 비탈길을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가 이번엔 오른쪽 어깨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까마귀를 잠자코 노려보았으나, 까마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번 울었다. 그는 이 영물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갑자기 묘지 방향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는 깜짝 놀라 서둘러 비탈길을 향해 내달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다. 그는 급히 비탈을 올라 공동묘지 안으로 뛰어들면서 검은색이 아닌 것을 찾아 무덤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종소리가 점점 시끄러워졌다. 그는 묘지 위쪽을 향해 달려갔다.
노란 옷을 입은 어떤 남자가 묘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묘지들을 구경했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반가워진 그는 노란 옷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곧 그의 발소리를 들은 남자가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까마귀가 하늘로 날아올라 그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남자는 무어라 손을 흔들어댔다. 남자가 그를 가리키며 입을 뻐끔거렸는데 종소리 때문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좀 더 다가가기 위해 다리를 뻗자, 남자가 뒤를 보며 뭐라고 소리치더니 그대로 뒤편을 향해 뛰어갔다. 그가 남자를 따라잡기 위해 쫓아 달렸다. 그러나 남자는 안개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고, 그는 어느 순간 거듭 같은 자리에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저 종탑은 결코 가까워진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는 남자를 놓쳐가는 종소리를 들으며 종탑 아래에 있을 교회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귓전을 때리던 금속의 노랫소리가 끝내 잦아들었고 묘지는 죽은 자와 검은 조문객들의 전유물로 되돌아갔다. 그는 그들에게도 무언가 꾸미는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죽은 수식어는 별로 존재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까마귀가 울었다.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그것을 한 번 쳐다보고 암흑의 강물이라는 비유를 되새겨주었다.
그때 종소리가 크게 다시 울부짖어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아까 그 남자가 돌아오는 걸까? 그는 기대에 찬 눈을 하고 전방을 보며 기다렸다. 그러나 나타난 것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다른 남자였다. 그는 남자의 취향에 약간 실망했지만, 어쨌든 묘연하게나마 얼굴의 형체가 보이는 것에 기뻐하며 남자에게 걸어갔다.
그는 오른 편에서 다른 남자가 기분 좋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을 곁눈으로 보았다. 놀라 그 자리에 순간 멈춘 그는, 그 남자와 검은 옷의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어느 쪽을 보고 있어야 할지 고민했다. 검은 옷의 남자는 어느새 자신을 향해 한쪽 팔을 뻗고 있었다. 두 남자 모두 곧 얼굴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에, 그는 우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검은 옷의 남자를 제쳐두고 그들을 지나가려는 언제나 죽는 남자를 골라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안개가 너무 짙었다. 이번만큼은 종소리가 그의 귀를 틀어막고 있어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 남자가 검은 옷의 남자와 그의 사이를 지나치는 순간, 빛이 번쩍하더니 빨간 꽃잎이 엷게 흩뿌려졌다. 그는 아쉬운 마음에 남자에게 달려갔지만, 그의 얼굴은 뭔지 모를 무언가에 의해 구멍이 뚫리면서 안쪽으로 말려들어가 있었다. 아마 너무 작은 것이라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빛이 다시 번쩍했다. 짧은 순간 동안 그는 곰돌이 손수건이 시체의 얼굴을 향해 나풀거리면서 떨어져 덮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이 빛이 또 한 번 번쩍해준다면, 검은 옷의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우선 시체를 내버려 두고 검은 옷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여전히 팔을 뻗고 있었지만 이번엔 두 팔 다였다. 흐릿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향해 뻗은 남자의 두 팔을 받아 잡았다. 다시 한 번 빛이 번쩍였지만 너무 밝아 오히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뒤로 넘어지면서 남자의 두 팔에서 붉은 꽃잎이 쏟아져내리는 것을 보았다. 종소리가 웅웅거리면서 꽃잎들을 춤추게 하는 것 같았다. 바닥에 쓰러지자 뒤집힌 땅과 하늘 사이로 그를 향해 하얀 리본을 매단 운구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일어났지만 검은 옷의 남자는 피하지 못했다.
그가 옷을 털었다. 앞에 서 있던 여자 조문객이 얼굴을 가린 천 속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가 다시 내렸다. 운구차가 사라지자, 그는 검은 옷의 남자 곁에 꿇어앉았다. 남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저 검은 조문객들처럼 되어버린 듯했다. 이윽고 종소리가 멎은 것을 눈치채고 나서야 그는 이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운구차의 바퀴에 짓눌려 버린 것이다. 그는 시체로나마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진흙 범벅이 되어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죽은 수식어는 필요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는 흥미를 잃었다.
그는 운구차가 나타나 그 시체마저도 거두어 가기를 기다렸다. 자신이 습관적으로 콧잔등을 긁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그때부터 다시 가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긁어보아도 어긋난 곳을 긁고 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귓바퀴가 가려울 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지 않았나 싶었던 그는, 혹시 콧잔등과 귀의 신경이 교차되어 혼선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귀를 긁어보았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그는 묘지기가 파던 새로운 무덤을 떠올려냈다. 남자가 지내기에 괜찮은 곳처럼 보였다. 그는 시체를 끌고 다시 비탈길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제야 시체에게 팔이 붙어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지금껏 몰랐다면 어차피 되돌아가도 찾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그는 한쪽 다리를 붙잡고 시체를 끌었다. 기왕이면 예의를 갖춰 어깨에 메는 편이 좋았겠지만, 몸뚱아리는 무거운 법이다.
회색 하늘을 향해 시체를 끌고 가는 도중에, 그는 길가에서 올가미로 만든 원시적인 새덫을 재차 발견했다. 잊고 있던 숙제가 생각나자 그는 머리를 들어 아직도 자기 주위를 돌고 있는 까마귀를 쳐다보았다. 까마귀는 그가 끌고 가는 시체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 뿐인 듯했다. 그는 자신이 까마귀를 잡으려는 이유가 그것을 만져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는 까마귀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까마귀는 고도를 낮춰 그를 탐색하듯 뱅글뱅글 돌더니, 왼쪽 어깨에 앉았다.
그가 노려보자 까마귀는 한 번 울었다.
비탈길에 도착한 그는 흐릿하게 보이는 아래쪽의 흙더미를 향해 시체를 굴러 떨어뜨렸다. 그리고 길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간 그는 시체가 정확히 구덩이 안으로 떨어져있는 것을 보고 만족했다. 그러나 묘지기가 흙바닥에 삽을 꽂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항의하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머뭇거리며 묘지기에게 손짓해보았지만, 묘지기는 아무런 반응 없이 얼굴 없는 얼굴을 그에게 돌린 채로 그렇게 계속 서 있었다. 결국 그는 다시 시체를 구덩이 밖으로 끌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묘지기가 다시 삽을 뜨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인이 이미 정해져 있던 모양이다. 묘지기는 누구를 위해서 무덤을 파고 있는 걸까? 그는 저 묘지에 가장 알맞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기분 좋게 걸어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엔 벽돌 아니면 비슷하게 생긴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시체로 달려가보니 막 곰돌이 손수건이 얼굴에 덮이는 참이었다. 그는 붉은 하트가 품에 안고 있는 꽃잎과 함께 손수건을 말아 쥐며 들어 올렸다. 남자의 얼굴은 완전히 뭉개져있었다.
그는 그 형태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남자의 얼굴을 예상해보았다. 약간 익숙하게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이 남자는 아주 흔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몰랐다.
어슴푸레 종소리가 들렸다.
까마귀가 그의 어깨에서 날아오르더니 올가미 덫을 놓아두었던 그 나무 가지에 앉았다. 덫에 걸려 파닥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는 남자의 코를 관찰했다. 부서진 코의 형체 속에서 이미 구더기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는 저렇게 구더기가 기어다닌다면 무척이나 가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몸을 돌렸다
종소리가 울렸다
흔한 생김새
네 번째 줄 일곱 째
종소리가 울부짖었다
재밌는 생각이다
"이 빌어먹을 자식"
곰돌이 손수건이
그가 까마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다면 남자는 누구나 될 수 있었다
까마귀가 그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깨질 듯한 종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