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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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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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신, 호구별성(戶口別星),두술사(疱術師), 살덩어리 역귀

개요

태초 이래로 사악한 살덩이들은 사방을 돌아다니며 세간에 그 가증스러운 족적을 남기고 다녔다. 전 세계에 흩뿌려져 있는 역병신, 역귀 설화는 이 중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질병의 권능을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며, 지나간 자리에는 끔찍한 죽음만이 남아 있는 이 역신들의 행적은 살덩이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이들 중 한반도의 역신 설화, “손님네 설화”는 그 특유의 구체성과 특수성으로 이목을 끌었다. 시사점은 다양하다. 마마신 손님네 본인들의 고향, 능력, 약점. 그리고 이와 연결점을 보이는 또 다른 설화, “처용 설화”까지.1

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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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네 중 한 사람인 호반손님을 그렸다고 추정되는 벽화.

지식

특징: 손님네는 한국 설화에 수록된 질병 조정자들이다. 천연두의 한국 북부 방언이 '큰 손님'이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들은 예・맥・한 계통 국가의 판도 전역에서 천연두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묘사된 행위와 그들의 성정으로 보아,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2 이들을 사르킥 교인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에서는, 그들이 통일신라인들 및 고려인들과는 차이를 보이는 외모나 복식을 가졌다고 묘사된다. 『반야록』(般野錄)3에서는 그들이 "이방인임을 여실히 드러내었다"라고 서술하는 대목이 있다. "그들이 지나가면 아낙들은 수다를 멈추었고, 사내들은 나무 하기를 멈추었다"하고, "서둘러 제 아이를 숨기기에 바빴다"라는 손님네들을 언급하는 또 다른 대목은 그들과 현지인들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인 의복 문화적 차이를 암시한다. ‘손님굿’에서는 압록강의 사공이 손님네의 일원인 각시손님에게 반해 희롱하였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하므로, 당대인들의 기준으로 혐오스러운 외모는 아니었던 듯하다.

성질: 구성원은 총 네 명으로, 각각 한국 설화에서의 명칭은 ‘각시손님’, ‘호반손님', ‘문반손님’, ‘작은 손님’이다. 그들은 사르킥 혈술로 추정되는 마법적 의식과 기적학적 행위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생성해내고 이를 조종할 수 있었다.4 이들이 한국 민간 설화에서 역신, 마마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르킥교도 특유의 사악한 성정으로, 그 심성이 변덕스러워 민간에 크고 많은 양의 피해를 줬다고 전해진다. 특히나 그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무례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반드시 피해를 보았고, 그러하지 않은 이들조차 천연두를 앓게 하는 등 손님네는 무분별한 공격을 자행하였다.

특히 구성원 중 ‘작은 손님’이라는 자는 그 무자비한 공격의 대표적인 희생자이다. 본디 그는 약 909년경에 태어난 통일 신라인으로, 상술한 두술(痘術)로 천연두를 앓게 됨과 동시에 사르킥적으로 변이56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목격담에서 그는 다른 손님네를 모시는 종 내지 제자로 묘사되었다.

흔히 사르킥 고위 계급이 그러하듯, 손님네들의 수명은 상당히 긴 것으로 보인다. 신라 땅에 도착했을 때의 이들의 나이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행적이 남아 있는 점, 또 명확하지는 않으나 그 이후에도 이들이라고 추정되는 삽화가 출현하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두술사들은 장생족의 평균 수명과 비슷한 정도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내력 및 관계: 두술사들이 정확히 어디 출신인지, 사르킥 내에서의 계급은 무엇인지, 무슨 경위로 한반도로 흘러들어왔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찾을 수 있었던 자료로는 오직 이들이 묘사된 신라의 역사서와 간간이 등장하는 조선 시기의 목격담, 그리고 이들을 다룬 굿인 ‘손님굿’뿐이다. 구한 말부터 현대까지의 기록을 아는 자는 추가 부탁.

우태근(優苔根)의 『체사문』(諦史文)과 김거식(金去湜)의 『기물사편』(奇物史編) 「신라사」에서는 공통으로 이들이 한반도에 도착한 시기를 약 889년경으로 묘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세히 서술된 『기물사편』에 의하면, 이들은 신라 금관경 강주 땅에 배를 통해 상륙했고, 곧장 수도 금성으로 향하여 당시 군주였던 효공왕을 만났다. 효공왕은 그들을 고대 페르시아에서 온 귀빈으로 대접했다. 이는 천연두를 감염시킬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행한 일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두술사들은 그가 생각한 것처럼 얌전히 귀화인 귀빈 대접에 만족하지 않았고, 이후 그들은 신라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천연두를 부리기 시작한다.

손님네들이 처용과 조우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라고 추정된다.7 처용은 『삼국유사』제2권 「기이」 처용랑 망해사에 등장하는 인물로, 동해 용의 일곱 아들 중 하나이며 아내와 동침한 역신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방식으로 쫓아냈다는 일화가 있다.89

『기물사편』의 기록에서는 두술사들의 행보가 “한 기이한 도사”를 만난 직후 수그러들었다고 지칭한다. 이때 이 도사를 지칭할 때 ‘급간’, ‘용의 아들’, ‘제웅’, ‘먼 곳에서 온 자’ 등의 별칭을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이는 바로 처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문집』(流文輯)에서 처용랑의 부인을 탐한 기이한 여인10에 대한 기록도 특기할 만하다.

가장 사료적으로 잘 기능하는 글은 작자 불명의 『객지사』(客之史)라는 서적이다. 이 서적의 확인 가능한 부분을 보면, 호구별성(戶口別星)과 ‘부인’이라고만 표현된 묘령의 여인과의 성관계 묘사, 그리고 그 후 집에 돌아온 ‘부인’의 남편에 대한 묘사를 보면 어떠한 정황을 묘사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끔 한다.11

결국, 조합해보면 이들이 한때 처용을 만난 것, 그리고 폭력적 접촉 이후 두술사들의 천연두 전파 행위에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린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접근법: 처용랑 망해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誓今已後
見畵公之形容
不入其門矣
因此
國人門巾占處容之形
以僻邪進慶

"맹세코 이제부터는 공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인발술을 연상하게끔 하는 대목이다. 이에 본 학인은 처용랑의 역귀 퇴치법이 아직 소실되지 않았으리라는 싵날같은 희망을 걸고 수개월 간 도서관을 뒤진 끝에12, 『세을가기』(世乙加記)라는 고서적을 한 부 발견하는 데 성공하였다. 저자가 처용, 혹은 그 후손이라고 추정되는 이 사료에는 다른 글보다 상세하게 그 퇴치법을 서술해놓고 있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 종이, 피13, 붓을 준비한다.
둘째 — 종이에다 피로 처용의 얼굴을 그린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본판과 얼마나 닮았는지가 아니라 본래 처용랑의 얼굴에 서려 있던 상서로움을 얼마나 그려내느냐다.14
셋째 — 문에다 붙인 후, 남은 피로 그 위를 칠한다.

이외에도 ‘손님굿’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사방진을 그리며 달래를 태우는 것, 표적이 된 인물을 현실성 농도가 짙은 곳으로 피신시키는 것, 검은 옷을 입히고 짚에다 불을 피워 아래위로 쓸어내리는 등의 행위를 시도할 수 있다.15

관찰 및 이야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님네들에 관련된 도서관의 서적들은 그 양이 다른 주제와 비교해볼 때 현저히 적다.16따라서 상술했듯 우리가 이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이들의 삽화를 발굴해내는 중이다.

신라 시기 이후의 기록은 『객지사』에 수록된 조선의 초상기관 이금위 문서가 있다.

귀신(鬼神) 신사(辛巳) 제(第) 이호(二號)

상(詳) 마마(媽媽)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
당(當) 이금위(異禁衛) 감찰관(監察官) 비사대부(批士大夫) 노바(怒貌)
결(結) 귀신사와 교전 중 [某]
현(現) 비록(秘錄)에 기록 후 종결(終結)


선비가 말한다.

이들은 마마를 자유자재로 능히 다루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推定)되는 이물들로, 본디 도가의 선인(仙人)으로 알려진 바 있다. 허나 옛 신라서부터 고려의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이들이 도사가 아닌, 나아가 조선인, 또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전부 두세 명으로, 둘은 사내이며, 하나는 여인이다. 인간에게 마마를 앓게 할 수 있는 것은 셋 모두 한가지다. 그 나타난 바는 불명(不明)이며, 이들이 옛 신라 때 이 땅에 당도(當到)했던 것만 알 수 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손님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붙임] 한성 땅에서 이들 중 하나라고 추정되는 사내를 사로잡으려는 목적으로 귀신사가 출두하여 [某]

[붙임] 소위 손님네라는 작자들을 사로잡는 일은 중단되었다. 이는 하등 이익이 될 바가 없고, 나아가 그 특질(特質)마저도 불명확한 사안이어늘, 그야말로 노승발검(怒蠅魃劍)과 다르지 않다. 다른 사안에 힘을 쓰는 것이 옳으리라. 비사대부 노바

이후의 행적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면 여기에 추가로 기재하길 바란다.

의문점

처용의 퇴치 이후에도 손님네들은 계속 한반도 전역을 돌아다녔고, 이는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조선 중기 이후까지 이어졌다. 대체 이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무얼 얻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배회하며 천연두를 퍼뜨린 걸까?

손님네들이 사용한 두술의 정체를 명확히 규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만약 이 술법이 정말로 실존했다면, 한반도 기적술의 한 양태에 추가될 수 있으리라. 우리는 현재 다양한 문헌에서 조선 대의 역병 사례와 관련된 도사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 한 분파를 이룰 수 있는 정도였다면, 왜 지금까지 문헌자료에 한번도 등재된 적이 없는지 역시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어쩌면 이들이 다룬 두술이라는 것이 정상세계의 것일 가능성도 존재하리라.

몇 학인을 중심으로 처용이 메카네교도란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처용랑께서는 태호 복희씨의 자손임이 유력해 보이는군.

첫째, 『세을가기』를 탐독해 보았을 때, 식별 가능한 문단에서 하나라 대의 문자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문법 요소 역시 하나라 문헌과 유사점이 많았어. 동시대에 쓰인 문헌들과의 차이점은 상당하지. 게다가 『세을가기』 내부에 ‘공예’, ‘기계’, ‘제조’ 등의 공업 관련 단어가 지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메카네교의 그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겠고.

둘째, 처용이 급간의 지위에 오른 뒤 헌강왕은 용을 위해 ‘망해사’라는 절을 하나 세웠다고 하지.171819 『체사문』에서는 이 절을 “이방인들의 사찰”로 묘사하며, “처용의 뒤를 잇는 자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라고 서술해. “기이한 재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었다”라는 문구는 메카네인의 종교 행사로 생각할 수 있겠지. 뇌명식(腦瞑殖)의 『이량서』(異倆書)에서는 망해사를 공계사(工械寺)라고 부르며 “불자(佛者)가 불자의 일을 하지 아니하고” “태업”(兌業)에 관련된 일을 하였다고 하더군. 이 태업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밝혀진 바 없으나 뒤이어 나오는 “제업의 도”(製業之道), “변질의 덕”(變質之悳) 등의 어구로 미루어보아 한국식 메카네교 교리로 생각함이 맞을 것 같네.20 궁극적으로 『기물사편』 「조선사」에서는 경오년인 1450년, 망해사에서 “쇠를 숭앙하는 자들이 모여 상스러운 놀이를 즐겼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처용의 사상적 후예들이 조선시대에도 남아 메카네교 의식을 치뤘다는 걸 알 수 있지.

이러한 사료들과 역사 속에 기록된 그의 이국적 외양 등으로 유추해보건대, 처용은 아무래도 하나라의 유민이 아니었을까? — Liú

글쎄, 아직 섣불리 단정하긴 이르다 싶어요. 의문이 몇 가지 드는군요. 우선 그 시기에 메카네교가 조선반도에 들어오는 게 적당하냐가 첫번째, 처용이 두술사들을 물리친 방법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메카네인들의 방법과 유사하냐가 그 두번째에요. 특히 두번째 의문에서의 방법은 오히려 혈술과 더 비슷하지 않나요? — S.Y.

생각해볼만한 질문이군. 첫째로, 메카네교가 한반도에 어떻게 오느냐. 이 질문은 하나라 사람들의 교리가 전해졌다고 가정해보는게 옳겠지. 불말(不末)의 가르침과 아륜(牙輪)의 도리, 묵술(默述)의 이야기는 먼 곳에서 발하였으니, 자네가 그리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거리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다양한 교류가 있던 중국에서 전해졌더라면 가능한 이야기겠지. — Liú

두번째도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네. 피를 쓰긴 했지만 이 기법의 정수는 아무렴 인발이지. 낼캐교도들이 쓰는 혈술과는 어딘가 핀트가 어긋나 있다고 봐. 그보다는 조금 더 기적학적으로, 더 무속적으로 접근한 방어술이라는 것이 옳은 설명 같은데? — Y.Y.

나이스 서포트, 이 양. 망해사에 관해 한 가지 더. 저번에 내가 울주로 가서 이곳을 직접 둘러봤는데, 짜잔. — Li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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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딘데요? — S.Y.

망해사 후면으로 돌아가면 일종의 길Way이 있어. 기초적이고 단순하지만 알아채기는 힘들지. 내가 혼자 알아낸 건 아냐. 『한국술법학논총』 통권 14호에 누가 “한국 사찰과 그곳에서의 여분차원 이용”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놔서, 여기도 있겠거니 한거거든. 여튼 이 길만 통과하면 또 하나의 사찰로 들어갈 수 있는데, 현판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적혀있더라고. 거기 옆에서 찍은 걸세. 뭔지 짐작이 가나? — Liú

아뇨. 그냥 꾀죄죄한 폐가 같이 생겼는데. — Y.L.

복희를 모신 사당이야. 부서진 아버지 복희라고! 이곳 내부에는 복희의 신주와 그를 형상화한 탱화21가 있고, 간소하게 꾸민 향합과 향로가 있더군. 찾는 사람이 수십년간 없었는지 향이 피워지기는 커녕 거의 다 쓰러져 가긴 했네. 물론 앞으로 연대 측정도 하고 관련 사료도 찾아봐야겠지만, 난 이 가묘의 존재가 처용이 하나라 유민이라는 것과 그가 이 땅에 메카네교를 전파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고 생각해. — Liú

메카네교도라는 건 나도 찬성. 이 시기에 서방에서 신라와 교역했다는 기록도 있으니, 메카네인도 당연히 한반도에 도달할 수 있었을거야. 더군다나 낼캐교도들인 손님네들도 신라에 왔던 거잖아. — Mrghn.

나는 율이한테 부분적으로 동의. 처용이 메카네인일 수도 있다는 안에는 긍정적이지만, 혈술의 양태는 우리가 찾아낸 것만 해도 수만가지 변이가 있어. 낼캐 디아스포라의 적응 및 진화에 의하여 생긴거지. 섣불리 단정하기엔 어려운 주제야. 물론 류씨야, 네가 근거를 많이 들고 오긴 했으나 판도는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는 거지. 일단 연대 측정부터 해보자고. 근시일 내에 학술회가 열리니, 서적들은 거기서 논의해보고. 고서적 덕후 친구들이 발광을 할걸. — Hx.

현재 “서천 컨트리클럽”이라고 알려진 단체에 손님네의 일원이라고 알려진 존재가 위치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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