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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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차 한번 존나게 막히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8월 어느 하루, 남자는 공영주차장에 겨우 난 자리에 차를 대고 투덜거렸다. 시동을 끄자 에어컨을 켜두지도 않았던 듯 차 안을 다시 찜통으로 만든 부산의 더위도 짜증이 났지만, 거의 1년 만의 휴가 첫날 대부분을 아지랑이 올라오는 아스팔트 위에서 허비한 게 더 억울했다. 하필이면 광안대교는 왜 지금 통행이 막혀서. 교각에 녹이 슬었으면 벗겨내면 될 것이지, 차를 못 다니게 해서 부산 시내 교통을 다 마비시켜버리면 되나?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리쬐는 햇빛에 남자는 눈을 감고 선글라스를 찾아 목덜미를 더듬었다. 안경알이 손에 닿았다. 선글라스를 끼자 눈을 뜰 수는 있지만, 손자국이 렌즈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차피 땀 때문에 더러워질 거다. 옷을 갈아입고 닦아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남자는 걸음을 옮겼다.

"끄으으윽…"
공영주차장을 나와 해수욕장으로 걸어가던 남자의 귀에 신음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백인 하나를 사람 몇 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다가간 남자는 기겁을 했다. 백인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심각했다. 노출된 살갗은 군데군데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출혈이 없는 곳도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남자가 구경꾼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아, 건너핀서 소란스러버쌋고 나와 보이께 이 외국인이 일케 다쳐 있더만."
"뭐 하다가 이렇게 다쳤답니까?"
"나가 물어보이께 쏘련 말인가 미국 말인가로 계속 말해쌓는데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해파리에 쏘인 거 같은디."
남자는 다시 그 백인을 보았다. 두 눈이 풀린 게 언제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남자는 얼른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하지만 초점을 잃었던 백인의 두 눈이 한순간 모여서 남자의 눈과 마주쳐, 선뜻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Не вступай… в воду!"
영어는 아닌 것 같고… 러시아어인가? 남자는 당황스러웠다. 이 사람이 대체 나에게 뭘 바라는 거지?
"Эти твари… в воде не медузы."
"호스피탈? 앰뷸런스?"
"끄아아악…"
그 러시아인은 이젠 입에 거품까지 물어가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남자의 사진을 찍고는, 119 번호로 사진을 전송했다. 곧이어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답장이 왔다. 됐다. 구급차가 올 테니, 아무래도 된 일이다.
"Не… медузы…"
남자는 러시아인이 계속 자기를 쳐다보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애써 무시하며 해수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면 이 찝찝한 경험을 떨쳐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남자는 수평선을 바라보고는 마음속으로 감탄을 했다. 바다라면 인천 앞바다도 많이 가 보았지만, 멀리 온 덕일까, 부산까지 와서 바라보는 해안가는 유달리 시원해 보였다.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도 적응이 되니 외려 정열적으로 느껴졌고, 땀이 흘러 끈적해진 몸도 옷을 벗으니 한결 나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의 랜드마크 광안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
"…녹이 많이 슬긴 했구나."
희어야 할 광안대교 교각 아랫부분이 이 멀리서도 시뻘겋게 녹이 슬어 있는 것이 보였다. 통행을 금지한 게 어느 정도 납득이 될 정도로 위태로웠다. TTS 프로그램으로 만든 조악한 음질의 안내방송이 해수욕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저희 광안리 해수욕장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적절한 준비운동과 휴식으로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시고, 쥐가 나는 것에 대비해 주시고, 여름철 폭염과 해파리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남자의 머릿속에 불현듯 방금 본 러시아인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돌아가야 하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몇 달 만에 온 휴가인데, 이렇게 날려버릴 수야 있나.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그랴.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들도 물속에서 놀고 있는데, 건장한 성인인 자기가 못 들어갈 이유는 없지 않은가.

모래사장을 건너 물에 들어가니 물이 생각보다 시원했다. 좋다, 여름인데 시원하게 열을 좀 식혀야지. 해안선과 가까운 곳은 아이들과 수영 못 하는 사람들이 탄 튜브로 가득해서 수영을 마음껏 즐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자는 멀리, 아슬아슬한 곳까지 나가서 수영하는 것을 택했다. 수영장의 염소 섞인 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비릿한 바닷냄새와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아찔함, 그리고 파도 소리까지…

쏴-
쏴-
쏴-
우르릉-
갑작스러운 굉음에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광안대교의 교각이 휘어졌고, 곧이어 끊어졌다. 케이블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단 도로가 케이블이 하나하나 끊어지면서 물속으로 낙하한다. 15만 톤의 충격량이 물을 때리자,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수영하고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해안가로 수영해 나아간다. 더러는 비명을 지르다가 물을 먹고 빠져버리기도 한다. 남자도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이지만, 물이 너무 차가운 탓일까, 쥐가 났다.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채, 남자는 허우적거리면서 수면을 향하려 하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모터 소리가 다가오더니, 남자 앞에 뭔가 빨간 것이 눈앞에 떨어졌다. 구명튜브였다. 가까스로 구명튜브를 잡은 남자는 제트스키에 탄 구조대원을 보았다.
"어서 올라타세요!"
제트스키는 타본 적도 없는 남자였지만, 목숨이 달린 일이니 그 미끄러운 표면을 타고 구조대원의 허리를 끌어안고 버텼다. 몰려오는 파도 소리, 사람들의 비명, 제트스키의 모터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곧이어, 사이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곧 정신을 차린 남자는 겨우 떠다니는 파편을 붙잡고 흐릿한 시야로 주변을 둘러봤다. 붉게 물든 광안리 바닷가에 시체와 파편이 떠다녔다. 끌어안았던 구조대원은 축 처진 채 옆에 떠 있었다. 이제 남자는 왼손에는 사람을 붙잡고, 왼발만으로 헤엄을 쳐서 해안가로 돌아가야 했다. 파도를 거슬러 올라갈 때보다도 모래사장까지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바다에 잔뜩 떠 있었다. 저건… 해파리인가?

"Не… медузы…"
러시아인의 모습이 남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건 도와달라는 애원이 아니었다.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절규였을 거다.

돌아갔어야 했어,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파리에 몇 군데 쏘이더라도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왼발을 휘휘 저으며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갔다.

퍽 소리가 났다. 손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감촉은 그대로였다. 남자는 왼손을 보았다. 그는 손을 잡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손 위로는 없었다.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손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 가만히 있으면 끔찍히 죽을 건 확실했다. 남자는 다시 해안가로 몸을 돌려서 헤엄쳐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희끄무레한 것이 어른거렸다. 남자는 한순간에 알아챘다. 저건 해파리가 아니었다. 파도가 그를 덮쳤고-

그리고 그의 얼굴이 녹아내렸다.


사건 기록 790-KO-23

20██년 8월 12일, 부산 앞바다 부근에서 SCP-790-KO-██ 종의 이상 증식이 포착되었다. 해당 종은 천해에 서식하며 내부 체액은 강산성이다. 이 때문에 이상 증식 이후 먹이 고갈로 사망한 KO-██의 시체 때문에 광안대교의 교각이 심하게 부식되어 결국 붕괴하였다. 시체의 부식성 산 및 붕괴로 인한 사상자 수는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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