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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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여기로 오라고!”
“네, 네. 갑니다.”

질리지도 않나 한두번도 아니고 10번 이상이나 날 보며 여기 오라고 소리를 치고 있다. 그렇지만 군소리 없이 맥주 박스를 옮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면 나도 이런 상황이 마냥 싫지 않은 듯 하다.

“이야 왠일이야 상부에서 우리 부서전원한테 휴가를 주다니.”
“아무래도 저번 보고서를 잘 써서 그런가 봐요.”
“아닌데 내가 리타 박사한테 싸바싸바를 잘 해서 그런건데?”
“푸훗, 박사님 아까 그 표정 진짜 웃겼어요!”
“그랴? 내가 이렇게 그 사람 앞에서 말이야 우리 부서애들이 있죠 엄청 고생하는데 휴가 못 가서 지금 죽을라고 하는데……”

우리 부서내에서 가장 권위 있고 위엄넘치시던 김 박사님이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모든 연구원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이런 웃음을 지어보는게 얼마만일까, 어젯밤까지 그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한 보고서를 쓰느라 밤샘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 피로마저 싹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뻥!

지금 막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맥주의 뚜껑을 따며 벌컥벌컥 마셔본다. 비록 오늘 하루밖에 못 즐기고 따로 밖으로 나가질 못 하지만 팀원들끼리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 그럼 이제 우린 가보도록 할까?”
“벌써요?! 좀만 더 놀고 가죠!”

평소에도 까불거리던 A.연구원은 김 박사님의 팔에 매달리며 더 놀자고 조르고 있다. 박사님은 징그럽단 표정으로 질색을 하는데 그 표정이 지난번 그 도마뱀을 봤던 그 표정보다 더 질려하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마시던 맥주를 뿜으면서 나도 미친듯이 웃었다.
허파에 바람들어간 것처럼 이는 웃음을 멈추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그들의 면면을 다시 살펴보았다.
김 박사님이야 우리 부서에서 우리 연구부서 책임자니깐 다들 알고 A.연구원은 워낙에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 나같이 말을 잘 섞지 않는 사람도 저 사람의 장난은 심심치않게 듣곤 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른다. 이 사람들은 24시간동안 어쩌면 내 가족보다 더 가까이 지냈다고 과언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들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 이런 삭막한 곳에서 오늘 날씨가 어땠나요 가족들은 잘 지내시죠 오늘은 늦잠잤어요 같은 이야기를 꺼낼 엄두가 나겠는가?
날씨? 밖에 안 나간지 2주가 넘었다.
가족? 여기 들어오면서 이혼했다.
늦잠? 이 중에 1시간이라도 편히 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재단이 공식으로 인정한 노는 날이다. 나도 오늘만큼은 이 날을 조용히 보내고 싶지 않다. 내일부터 또 그 삭막한 환경에 내쳐지기 전에 내 옆에 있는 연구원이 뭘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 속으로 내심 우스워 보일 수도 있는 결심을 하고 자리에 일어나서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파티장 속으로 걸어갔다.

“워워 어딜 가는건데?”

갑자기 내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손이 있는가 싶더니 김 박사가 날 잡고 있었다. 아까 저기서 웃고 있지 않았나?

“자네는 아직 보고서를 다 쓰지 않았잖아.”
“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이전 보고서라면 분명 제출했는데?

“아니아니 그거 말고. 자네가 써야 할 보고서 말일세.”

기분이 나빠지려 한다. 이 사람은 무슨 말을 지껄이는거야? 벌써부터 술주정이라도 하는건가. 시덥지 않게 여기며 나이 많은 노인의 손을 뿌리치려했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있는 힘껏 움직이려 하지만 내 발에도 무슨 접착제라도 바른 것처럼 요지부동이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써야 할 보고서라면 분명…….”
“미안하네.”

영문모를 소리만 하던 김 박사는 갑자기 내 어깨를 놓았고 그 상태에서 난 당연하게도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쓰러지면서 보이는 장면들이 천천히 지나가기 시작한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휴식을 즐기며 떠들고 있다. 모든 것이 편해보였고 나도 저기 가서 모두와 놀고 싶다. 어린 아이같다고 웃어도 좋다. 나도 몇 년에 한 번쯤은 놀아도 되잖아?

그러나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이미 내 머리는 지면에 부딪힐 준비를 끝마쳤고 잠시 후에 올 딱딱한 대리석 바닥과의 충돌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하였다.

삐빅! 삐빅! 삐빅! ……

“……… 시끄러워.”

쓰러졌던 자세 그대로 내 머리맡으로 울리는 알람시계의 스위치를 눌러봤지만 일반적인 시계랑 다르게 멈출 생각을 않는다.

“망할, 이딴 걸 선물이라고…….”

이혼하기 전, 버릇처럼 늦잠만 자던 나에게 아내가 이별선물이라고 준 이 시계는 아침마다 날 괴롭힌다. 퍼즐이 맞춰질 때까지 절대 멈출 생각도 않는 망할 녀석이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어두운 방안을 더듬더듬 거리며 퍼즐 조각을 줍는다.

탁!

요란한 시계소리가 멈추고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현실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다시 쌓이자 이제는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꿈속의 장면들이 어떤 이야기인지 알게 된다.
간신히 떠진 눈으로 탁상달력을 바라본다. 거기엔 아무 표시도 되어있지 않지만 유독 내 눈에 띄는 검정색 숫자가 보인다. 그 날은 내가 죽다 살아난 날이지. 우리가 맡았던 SCP의 실험으로 인해 해당 부서 연구원 1명을 제외한 전원 사망. 그래, 나를 제외한 전부가 죽은 날이기도 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 생생할 정도로 기쁨이 넘치던 장소. 내가 왜 그런 꿈을 꿨을까? 그렇게 친한 사이도, 얘기를 나눈 사이도 아니었는데 왜? 그 사고에서 나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쉬움 때문에? 뭐가 아쉬운데? 알 수가 없다.

“아니아니 그거 말고. 자네가 써야 할 보고서 말일세.”

머릿속에 또 울리는 김 박사의 말. 그래, 내가 써야 할 보고서는 남아있어. 책상 위 모니터에는 아직도 그 사고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고해야 할 문서의 양식이 공란으로 되어 있다. 사고의 여파는 나에게 거의 미치지 않았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뭔지 아니면 내가 이미 그 SCP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가까이 있던 인원들 중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은 나였으며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파괴되었다. 말그대로 모든 것이.

살아남은 나에게 남은 것은 이 보고서와 상부의 윗대가리 어르신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지시서. 원래 재단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죽음이랑 가깝게 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에 지낸 몇 년동안 질릴 정도로 많이 들었다. 어느 실험을 하다가 사망했다더라 격리에 실패해서 다들 죽었다더라…….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그게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나리라곤 생각을 못 했을 뿐이다.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안전 등급의 SCP. 그 SCP의 변화를 살피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실험들. 그 사이 인원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뀐 적은 없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변화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나한테 가장 먼저 온 문서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연구부원들의 죽음에 대한 심심한 위로? 내 안부를 묻는 전 아내의 편지? 이번 사건으로 받을 수 있는 보험금? 아니, 당장 그 SCP의 새로운 특성을 보고하라는 지시서였다.
손을 바삐 움직인다. 가끔씩 저 멀리서 뭔가가 흔들리는 소리라던가 이상한 굉음을 제외하곤 키보드 자판이 타닥타닥 내는 소리만이 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 기억속에 남은 그 SCP의 특성과 영향,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주변 기물들이 어떻게 파괴되고 내 옆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던 A.연구원의 표정이………

거기까지가 내 한계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어제 먹은 것도 없으니 나오는 건 없지만 어떻게든 뭐라도 뱉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위액만 실컷 뱉다가 속이 진정되자 겨우겨우 물을 내린다.

천천히 돌아간다. 내가 뱉어낸 위액도, 침도, 눈물도, 콧물도 전부 그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다. 물이 천천히 돌아가면서 그 속에 뭐라도 있는 것 마냥 가만히 쳐다보지만 있는 것이라곤 금방 차오르는 새로운 물이다. 내가 뱉어낸 더러운 위액은 버려지고 새로운 물이 차올라 또 다른 더러운 뭔가를 받아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마치 내가 게워내기 전에 봤던 그 물처럼 말이다.

그 날 오후,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에 이미 새로운 선임연구원이 발령되었는지 위엄이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바라본 뒤에 보고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새로운 보고서에 맞추어 어제까지 안전등급이었던 SCP는 유클리드가 될거고 새로운 격리 시설에 옮겨져 새로운 연구원들과 함께 실험당할 것이다.
주변의 동료 연구원들은 묵묵하게 내 할 일만 하는 나를 보고 내가 말을 별로 하지 않으며 사교성이 없는 사람으로 여길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 어느 것 하나 바뀐 것은 없다. 바뀐 것은 단 하나, 저 눈 앞에 있는 SCP이다. 등급이 바뀌었고 몇 가지 특성이 추가되었다. 그것말곤 없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내가 그런 꿈을 꾼 이유는 그거일지도 모른다. 다소 즐겁게까지 느껴질 법한 그 악몽을 꾸는 이유는 나대신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도, 아쉬움도 아닌 그저 부러웠던 게 아닐까.

내가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이상,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 꿈을 꾸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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