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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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어스름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는 상태로 나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저 밝았으며, 또한 전율스러웠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우선 그 밤으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다.


언제나와 같은 밤이었다. 기묘한 전단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전단지는 디자인적으로는 괴멸적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평범한 전단지들보다 눈을 끌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다른것보다 내가 잊어버리고 싶지만 잊어버리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으니까.

문득문득 드는 생각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도, 내가 해버리는 실수들도. 그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싫기 때문이고, 그래서 나는 변하고 싶었다.

그 전단지에 붙은 문구가 내 눈을 끈 이유는 그 탓이었을거다 분명.

"당신 스스로를 완벽히 이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문구에 너무나도 신경이 쓰이는 나 스스로를 발견했을때는, 또다시 충동적으로 전단지가 가르키는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내 충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충동조차 나이기에 그저 긍정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내 충동을 긍정하는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음에도, 그저 긍정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골목으로 들어서며, 지울 수 없어 긍정하는 내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어릴적 나는 소위 말하는 나쁜 친구들에게 이끌린적이 있었다. 나도 날 이해할 수 없이 그냥 그 친구들이 하자는대로, 나쁜짓이던 아니던 개의치 않고 했고, 결국 그것은 당연하게도 문제를 일으켰다. 난 그제서야 그래서는 안됐다는것을 떠올렸다. 그런 나는 무엇이었을까.

고등학생때는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남들이 공부하며 자신을 혹사시킬때, 나는 놀고먹으며 나름의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공부따위가 무엇인가 자유를 찾으라며 내 철학에 스스로 감화되었었다. 그러나 결국 이는 후회만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하게도, 나는 인생의 자유를 찾기는 커녕 자유롭지 못하게 얽메였다.

사회에 나가서도 큰 차이는 없었다.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해 일어났고, 막상 그로 인한 불이익은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치고는 했다. 분명 스스로는 그를 견뎌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것일텐데, 막상 스스로의 상처에는 한없이 약했다. 무엇을 하고싶었는지도, 그로 인해 결국 원래의 불의는 더 커졌을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도망치기만 했을 뿐이었다.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싶은것이었을까.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심장이 두근대는것을 느꼈다. 이번에야 말로 모순덩어리인 날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야말로 내 심장을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생각마저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일지고 그것을 그냥 긍정하기로 했음에도, 결국에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따라버리는 나를.


전단지가 가르키는 장소로 향한 나는, 굉장히 엉망으로 보이는 한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을 파는지도 잘 모르겠는 가게였지만, 우선 발걸음이 멈춰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밖에서 본 가게는 먼지 투성이었고, 가구로 보이는 것들과 어지러히 얽힌 전자기기들이 쓰러져 있었다. 간판이 달려있었을 것만 같아 보이는 자리에는 흉하게 전선만이 얼기설기 마감되어 있었다. 비가 내려도 괜찮을지, 잠시 다른 걱정을 하며 아래로 옮긴 시야에는 열심히 정리한듯한 입구와, 완전히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제법 깔끔하게 치운 실내가 보였다.

전단지에 적힌 약도가 가르키는 장소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기도 잠시, 문 옆쪽에 간신히 붙어만 있는 종이 한장을 볼 수 있었다.

[배우자, 친구, 연인, 자기 자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언뜻 보니 심리상담소라도 되는 듯 하였지만 심리상담 같은 것이 뭘 그리 도와줄 수 있을지, 상심한 나머지 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손님이쇼? 얼른 들어오십쇼, 요새 단속이 심해져서… 저렇게 보여도 필요 설비는 다 작동합니다"

"아, 아뇨, 그냥 전단지를 보고 구경이라도 하려고…"

내가 우물쭈물대는 사이에 그 멀쑥한 분위기의 아저씨는 나를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또다시 남에게 휘둘리기만 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질만큼 내부는 엉망이었다.

"아, 아뇨…"

"어휴 괜찮아 괜찮아. 단속 걸릴까봐 그런거지? 단속온지 얼마 안되서 앞으로 일주일은 잠잠할거여. 어디서 보고 왔어? 골목길? 뒷골목? 아니면 저번에 시술해준 넬케신도한테 영업받으셨나?"

그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하자, 머리가 더 아파왔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 무렵, 본론을 꺼내자 나는 형연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껴버렸다. 내 심장이 뛰어왔다.

"그래서, 이해할 대상이 누구여, 혼자 온거 보면 스스로? 스스로를 이해하겠다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말여"

"…네, 그…접니다. 그리고 혹시 그냥 전단지 보고 온건데 그래도 괜찮나요?"

"그럼 괜찮고 말고, 근데 그럼 골목길을 모른단말여? 일반인이었네. 나중에 궁금하면 연가시 프로그램 받아서 골목길 접속해보라고."

일반인? 그 알수없는 대화에 머리가 아픈것도 잠시, 우선 가능하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나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어떻게 절 이해할 수 있다는…건가요?"

"일반인한테 어떻게 그걸 설명해, 그냥 채혈 좀 하고, 여기 이 기계에 손 좀 얹고 있으면 될거야. 15분정도 걸리고, 비용은 선결제다?"

"비용은…그럼 얼마죠?"

"비용이 뭐가 중요해, 그짝도 절박하니까 온거 아녀? 안되면 무조건 환불해줄게."

그 말과 함께 카드를 낚아챔당한 저는, 알 수 없는 기계에 손을 올리고, 다른 손은 바늘로 살짝 손을 따서 채혈당했다. 위생은 제대로 챙기는 건지 의문이 들던 시점에서, 다행히도 소독은 해주는 걸 보고 그만 마음을 놓아버렸다.

"…그래서 GOC놈들이 말야, 내가 복제사업하는게 일반사회에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하지를 않나, 다 때려부수질 않나, 그래서 결국 이런 형태로나마 영업하고 있는거라고."

앞의 내용을 놓쳐버렸지만 흘려듯지 못한 뒷부분도 수상하고 이해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려부쉈다구요? 경찰은요?"

"아, 일반인이니 잘 모르겠군. 자자 휴대폰 잠시 줘봐, 연가시 프로그램 옮겨줄테니까 나중에 골목길에 가게 홍보나 해달라구"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옆에 내려놓은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뭔가 프로그램을 깔아서 다시 내밀었다. 잠시 멍때린 사이에 또다시 실수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니, 이게 뭔줄 알고…제가…"

"해킹이나 그런건 아니야, 오히려 해킹에서 안전하게 해주니까 별 신경쓰지 말고, 이제 거의 다돼간다."

그 말과 함께 아저씨가 처다본 곳에서는 기묘한 기계가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람보다도 큰 기계가 진동을 일으키는 것에 묘한 기분을 느끼던 것도 잠시, 그 기계는 곧 증기같은 것을 뿜어내며 멈추었다.

그리고 그 기계가 열리자 그곳에는…



'내'가 있었다.



농담도 장난도 아니고, 그곳에는 내가 있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나와 똑같은 키와 머리스타일을 가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지? 뭐가 일어나는거지? 의문에 들어찬 나를 뒤로하고 그 아저씨는 칼을 들고 '나'에게 다가갔다.

"아니 이게 무슨… 그 칼은 또 뭐에요? 아니…"

내가 또다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물대는 사이에, 그 아저씨는 '내' 가슴을 절개해 심장을 꺼내들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처리 하나만 더 하고 올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저씨는 더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지금 사람이 죽은건가? 아니 나는 여기 있는데 '나'를 살해했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의문에 빠져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 그 아저씨가 다시금 나왔다.

손 안에는 주먹만한 투명한 상자가, 그보다 작은 심장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심장은, 뛰고 있었다.

의문에 빠진것도 잠시, 아저씨는 카드와 함께 그 심장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그리고 어영부영 나는 감사인사를 하고, 나와버렸다. 감사인사를 할 상황조차도 아니었겠지만, 이미 내 머리를 멈춰서 더이상 사고하기를 거부하고있었다.

가게를 나와 잠시 정처없이 걸었다. 걷다보니 산책로였고, 산책로에 도달한 김에 아예 산책로로 이어진 언덕에 올라가기로 했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꺼내자, 오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알림이 하나 와있었다. 카드로 40만원이 긁혔다는 알림이었다. 문득 허탈해졌다, 사실 내가 뭘 하고있는지도 모르겠었다. 그저 난 뭐든간에 해서 머리를 비워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정처없이 그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 3~40분정도 걸었을까, 산책로의 끝이 눈앞에 보였다.

의자와 작은 정자, 운동용 벤치가 놓여있었다. 나는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그리고 결국 마주하기 싫은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심장을 주머니에서 꺼내자, 아직도 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찬 새벽공기에 비해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심장을 유리함에서 꺼내들었다. 손가락 두마디정도의 크기였다. 손안에서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었고, 그 온기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심장을 들고 아저씨의 마지막 주의사항을 떠올렸다.

'지금부터 24시간 내로 먹어야 혀, 넬케식 혈술로 붙잡고 있는거라 그시간 이상은 유지가 안돼. 알겠으?'

모르겠다. 이걸 는다고?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또다른 말이 나의 간절함을 붙잡았다.

'이걸 먹기만 하면 댁도 댁 스스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거여'

를 이해할 수 있는, 나를 이해하고싶은 나에게는 어쩌면 간절한 그 말이 나를 붙잡았다.

하늘이 어스름해졌다. 나는 심장을 입에 넣었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입안에 뛰고 있는 심장을 넣고 있는 것은, 정말로 기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대로 심장을 씹었다. 그리고 그것은 씹자마자 그대로 흘러내려 나에게 그저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모든것을 이해했다.



그곳에서 있던 '나'는 정말 나였다. 복제된 나 그자체였다. 이 심장은 '내'심장이었고, 나는 이해를 위해 '나'를 죽였다.


해가 어스름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는 상태로 나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저 밝았으며, 또한 전율스러웠다.

나는 오늘 나를 알기 위해 '나'를 죽였다. 나는 살인자이지만, 나를 이해했고, '나' 또한 만족했으리라. 그리 짐작하며 나를 온전히 이해했다.

우유부단하고 남에게 쉽게 이끌리지만, 반대로 원하는 순간에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과감해질수도 있는 나를, 우유부단함 속에 그 모든 것을 숨겨왔던 나를. 이해했다.

내가 '나'를 죽였음을 알고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야만 했던, 현실을 피하던 나를. 이해했다.

알고 싶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수상함과 이상함을 이겨내고 갔음에도, 끝까지 주저했던 나를. 이해했다.

그럼에도 현재 나를 이해하고는, '나'를 죽였다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나를. 이해했다.

결국 내 뛰는 심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마음을 알기 위해 내 심장을 꺼내 삼켰어야만 했던 나를 이해해버렸다. 나는 결국 내 심장을 마주했어야만 했던것이다. 이 방식이건 아니건, 결국 나는 심장을 마주했어야했을 것이다. 심장이 욱신거리나, 이것은 환희일까 아니면 미약한 죄책감일까, 어쩌면 이 심장의 부작용일까. 알 수 없는 감정속에서, 아니 이제는 알고 있는 감정속에서, 이해해버린 감정속에서 나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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