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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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 노크 소리가 점점 거세지자, 의자에 앉아있던 소년이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소년은 갓 중학교에 들어갔다고 해도 믿을만큼 어려보였다. 그는 목줄에 묶인 채 창 바깥을 내다보는 청년을 타박했다.

"문 열어줘요. 불쌍하지도 않아요?"

"네 오피스다. 너가 처리해야지."

검은 셔츠를 입은 20대 초반의 청년이 대답했다. 청년의 모습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좀 기괴했다. 그의 머리는 젖어서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고, 목에는 목줄이 걸려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눈의 흰자가 모두 검은색이었다. 청년은 창 바깥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시 위에 잔뜩 낀 구름은 하늘을 시멘트 바닥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떨어지는 빗방울은 유리창에 그 몸을 문질러대며 부서져갔다. 청년은 그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부여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인간이 그려낸 작품을 감상했다. 소년은 청년이 움직여주지 않을 거란걸 직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투덜댔다. 문고리가 돌아간 뒤 보안 담당관 하나가 나타났다.

"자우 요원님, 그리고.. 어.. '귀신 군' 요원님, 파견입니다."

"어디로 가나요?"

"325기지에서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주변 민간인들의 기억 소거를 해 달라는데요."

"먼 길이네요. 지금 가면 되나요?"

"네. 가능한 한 빨리 출발해달라고 기지 관리자님이 부탁하셨습니다."

"그렇다네요, 귀신 군. 지금 가죠."

자우는 싱긋 웃고 오른손을 당겼다. 창 바깥을 바라보던 청년이 천천히 몸을 돌려 따라왔다. 청년은 잠시 보안 담당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젖은 머리에서 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음에도, 바닥이나 청년의 옷은 여전히 마른 상태였다. 보안 담당관은 등줄기에 올라오는 소름을 느꼈다.

"우리말고 다른 인원은 없나?"

"어, 아니요. 차출되는 인원은 두 분 뿐이신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 그렇군."

"귀신 군, 왜 그래요? 운전 하고 싶어요?"

"아니, 장대비가 내리니까."

청년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걸어갔다. 그들이 명령서를 받고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년은 차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 탄 청년은 자신이 받아온 명령서를 읽어주었다.

자우 군과 그 조수에게.

325기지에 혼돈의 반란이 들이닥쳤어요. 늘 그렇지만 피해가 꽤나 심각해요. 지금은 기동특무부대가 도착해서 나름 해결된 모양이지만, 자우군이 가서 우리 기억 소거제좀 절약했으면 좋겠네요. 민간인들이 방송국에 달려가서 횡설수설하기 전에 말이지요.

출동한 특무부대는 아직도 현장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다 끝나가니까 아마 기지 관리관이 지휘하고 있겠죠. 임시 기지 관리관 카잔씨를 찾아가도록 하세요. 제가 보냈다고 하면 금방 도와줄거에요. 자잘한 사항은 직접 가서 확인하고. 비 내리니까 조심해서 운전해요. 다치면 혼날거에요.

추신 - 올 때 파운드 케이크 사와요. 그쪽에 유명한 빵집이 하나 있다던데. 영수증 가져오면 업무비로 쳐 줄게요.

기지 관리자 노래마인

"또 혼돈의 반란이에요? 주말도 안 쉬고, 주중도 안 쉬고. 최저임금은 주고 부려먹는걸까요, 그 사람들."

자우는 한숨을 쉬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짙은 썬팅을 한 차는 시내를 가로질렀다. 공기는 비오는 날이면 항상 그렇듯 탁한 푸른색이었다. 청년은 조수석 창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음울한 음색이었다.

"너와 비슷한 이유일지도 모르지."

"와, 자기는 빼는 거에요? 아닌 척 하기는."

"장대비가 심하군. 오늘은 힘든 날이겠어."

"귀신 군, 지금 도망치고 있습니다."

청년은 이어지는 자우의 말을 무시하며 다시 창 바깥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목 뒤에서 쓴맛이 올라오는걸 느끼며 조용히 생각했다. 몇명이나 살아남았을까. 나름 옆 기지라서 아는 사람도 조금 있었는데. 청년이 완전히 창문 밖으로 빠져버린 걸 확인한 자우는 톨게이트 직원의 기억을 지우고 고속도로에 올라갔다. 많이 살아있으면 좋겠네요. 자우는 엑셀과 연민을 동시에 밟으며 차를 가속했다.


카잔은 느긋한 인상의 20대 남자였다. 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그는 화상을 입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반쯤 파괴된 기지의 사무실에서 온갖 종류에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물품들을 요청하는 서류거나 주변 민간인들의 기억 소거 경과를 보고하는 보고서들이었다. 그는 피곤함을 쫓으려는 듯, 책상 위에 늘어놓은 박카스들 중 하나를 들이킨 후 한숨을 쉬었다. 자우는 임시 기지 관리관의 말 없는 절규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정말 고마워요. 손이 정말 부족했는데. 기억 소거 요원이시죠? 노래마인씨가 가장 필요한 분을 보내셨네요. 여기 지도하고 현재 상황을 적어놓은 종이에요. 가시면서 확인하세요. 원래라면 배웅해드려야하지만 서류가 이래서야.. 전 그녀가 아니라서, 저걸 하루만에 처리할 수는 없어요. 미안해요."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삼일 밤을 샌 피로와 기지 관리관의 책임감이 그의 얼굴을 고정시켜버렸다. 자우와 청년은 그 표정을 이해했고, 곧 발걸음을 돌렸다. 문이 막 열리기 시작할 때 카잔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차, 말씀을 안 드렸네. 마을쪽은 대부분 정리가 된 상태에요. 기지 안이랑 방송국 쪽이 지금 문제네요. 우선 방송국부터 가주실래요? 외무부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작업하는데 썩 결과가 좋지는 않다네요."

"네. 수고하세요."

자우는 문 바깥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는 총탄에 벌집이 된 채 고장나있었기에 그들은 계단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계단 벽 역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성한 곳이 없었다. 시체들은 이미 운구되었지만 피들은 씻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청년은 목줄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자우에게 물었다.

"사망자 명단은 나왔나?"

"네. 곧 재단 측에서 보상을 해 주겠죠."

청년은 계단을 내려갔다. 1층 계단의 문은 완전히 우그러져 뜯어내야 했기에, 문은 없었다. 텅 빈 로비는 임시로 시체 감별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지의 직원들이 시체를 일일이 보며 신원을 파악했고, 신원이 파악된 망자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직원들 몇명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고, 한명은 도중에 쓰러졌다. 관을 끌어안고 계속해서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쩔쩔매며 도와주려고 했지만 별 방도가 없었다. 자우는 보다 못해 감별소에 다가가서 자격을 설명한 후, 가지고 있던 C급 기억 소거제를 몇명에게 처방했다. 곧 그들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되었다. 친구가 저렇게 처참히 죽었다는 사실은 모르게 될 겁니다. 나중에 적당히 설명해주세요. 자우는 몸을 돌려 기지를 나왔다.

"그래. 때로는 망각이 어느 심리 상담보다 효율적이지."

"맞는 말이죠. 이겨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그냥 잊어버리는 편이 나아요."

두명은 차에 탔다. 빗길이지만 지역 방송국까지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방송국 입구에는 남자 하나가 경비원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자우가 가까이 다가가는 사이, 청년은 렌즈를 눈에 꼈다. 흰자위가 있는 것 처럼 보이게 해주는, 불투명한 흰색의 렌즈였다. 비록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이내 자우가 차를 가까이 몰자, 남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예상외로 익숙한 사람이었다.

"격리불가씨..? 여기서 뭐 하는 거에요?"

"와, 자우 군. 살았어요. 빨리 이 사람좀 어떻게 해 봐요."

"평소처럼 차에 타서 묻어가지 않고 뭐 하는 거에요, 지금. 평상시야 높으신 분들이 다 알아서 한다지만 여기는 없다구요?"

"기지 꼴이 저런데 제가 어떻게 차를 빌려요. 말도 안 되지."

"어, 잠깐. 거기 지금 중학생이 운전하는 거에요? 신원 미상인 남자도 모자라서 이젠 중학생이 운전을 해? 세상이 도대체 뭐로 돌아가는 겁니까?"

격리불가는 트레이드마크인 지팡이를 경비실에 휘둘러대며 핸드폰을 꺼내는 경비를 막으려고 했다. 청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더니 경비실에 다가갔다. 그리고 청년은 그 특유의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경비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뭘 한다니, 지금 이 불법 침입자들 두명을 막고 있잖아요?"

잘 들어. 당신 지금 꿈 꾸고 있는거야. 낮잠 잔 거라고.

"그게 무슨..!"

경비는 한 순간 머리를 창틀에 처박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자우는 휘파람을 불었고, 격리불가는 가면과 옷이 흐트러지지 않았나 점검했다. 청년은 머리를 감싸쥐며 신음소리를 냈다.

"격리불가씨, 제발 가면 안 벗을거면 어디 뒤쪽으로 숨어가기라도 해요. 여긴 당신 정체를 아는 높으신 분들이 한명도 없단 말입니다."

"옛 말에 군자는 대로행, 즉 큰 길로만 다닌다고 했는데 재단의 외무부 소속인 제가 도둑고양이마냥 담을 넘어다니면 되겠습니까? 재단 명예의 추락이라고요, 그건. 더 이상 군자가 아니게 되어버려요."

격리불가는 싱글거리면서 대답했다. 평소의 쾌활한 웃음이 아닌,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있는 웃음이었다. 그는 옷 매무새를 다듬은 뒤 방송국 건물로 힘차게 들어갔다. 손에는 재단 직원임을 증명하는 카드, 즉 담화 교정 면제특권 재단(Speech Correction Privilege Foundation)의 직원 카드가 들려있었다. 전 세계 모든 방송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마법 카드라고 봐도 좋을만한 카드였다.

"빨리 끝내고 기지로 돌아가죠. 오늘은 별로 바깥에서 일 할 기분이 아니네요. 비도 내리고."

격리불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말했다. 여전히 씁쓸한 미소 그대로였다. 그 미소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보도실에 들어갈때까지 계속되었다.

보도부장은 의외로 완고했다. 지방으로 좌천된 지 몇 년, 겨우 잡은 특종을 놓치기 싫다는 듯 그는 계속해서 격리불가의 제안을 거절했다. 총기사건이라고! 총을 발사했단말이야! 이걸 어떻게 숨겨? 근방 주민들은 죄다 총성을 들었을걸? 당신들이 얼마나 노력하던 상관 없어! 격리불가는 계속되는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보도부장은 연방 총을 발사했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더 많은 대가를 원했다. 격리불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음같아서는 기억을 싹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럼 관계가 썩 개선되지는 않겠죠. 자우 군도 저런 기억을 먹고 싶지는 않을테고. 좀 다른 방법을 써 보죠."

돈을 더 달라는 쉬운 말을 위악으로 가려내 몇십분동안 늘려대던 보도부장의 말을 격리불가가 잘랐다. 그는 간단하게 얘기했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상한선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이상을 원하신다면, 저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는 없어요. 그 '극단적인' 선택이 보도부장의 머리 속에서 재가공되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망상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채 일분이 걸리지 않았다. 보도부장은 현실과 타협했고, 격리불가는 입에 미소를 머금은 채 보도실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격리불가는 자우에게 말했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한 시름 덜었네요. 마음같아서는 기지 일을 돕고 싶습니다만, 러시아쪽에서 일이 또 터져서요. 큰 일이라서 오늘도 야근해야 할 모양입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차출 인원만 받고 있기도 하고. 졸고 있을 때 가면 안 벗겨지게 조심하세요."

"에이, 저 믿죠?"

격리불가는 휘적휘적 엘리베이터로 걸어나갔다. 나머지는 자우와 청년의 일이었다. 방송국 일이 늘 그렇듯, 청년은 방금 급조한 사원증을 받아 피해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자우의 존재는 청년에게 '동생과 함께 출근한 기자'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주었고, 그래서 청년은 금방 사람들을 줄 세울 수 있었다. 청년은 사정 청취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우는 주민 한명 한명에게 C급 기억 소거제를 나눠주며, 정부에서 나온 약이니 집에 가서 꼭 먹으라는 당부를 했다. 이대로 하루만 지나면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을 잊겠지. 설령 기억 소거제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물증이 없는 이상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자우는 37개의 기억 소거제를 나누어준 후에 차에 타서 기지로 돌아갔다. 물론, 보도부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의 기억을 지우는것도 잊지 않았다.


기지에 도착해서 맨 처음 한 일은 사후 처리 지휘소에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것이었다. 기동특무부대, 하다못해 보안관도 아닌 일반 연구원들의 정신은 연약했고, 이런 일이 벌어지면 PTSD에 시달리거나 정신병을 앓는 일이 왕왕 벌어지고는 했다. 기억 소거 전문 요원으로서의 직무는, 그런 사람들을 막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심리상담가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자우는 세심한 설득 대신 기억 소거제로 무장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존엄함을 손에 든 채 자우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연락은 거의 10분에 한번 꼴로 왔고, 대부분은 시체 감별소에서 생겼다. 그리고, 대개는 이런 일이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지금이 몇 시인데 자는거야!"

연구원 하나가 관에 누운 시체에 대고 소리쳤다. 시체는 까맣게 타 버려 이미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지 못했지만, 용케 금속 명찰은 남아있어 자신의 신원을 알려주고 있었다. 시체와 가장 친했다던 연구원은 머리에 붕대를 두른 채 눈물을 흘리면서 관에 매달렸다. 주변 사람들이 말려보려고 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남아있었는지, 그는 필사적으로 시체를 잠에서 깨우려고 노력했다. 손에 검댕을 묻힌 채 어깨를 미친듯이 흔드는 연구원을 제지하고, 기억을 먹은 후 자우는 목줄에 묶인 청년에게 물었다. 청년 역시 근처에서 바닥에 누운 채 미친듯이 웃던 여성 연구원 한명을 치료한 뒤였다.

사람들은 왜 싸우는 걸까요?

서로 믿는게 달라서 아닐까. 혼돈의 반란과 재단은 개체를 보는 시각이 다르니까.

이런 걸 감수하고서도요?

그게 믿음이지. 그냥 믿는거야. 이렇게 슬픔을 넓혀 나가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기억들은 아팠다. 5살때부터 알아왔던 우정을, 1000일을 앞둔 채 죽어버린 남자친구를, 성실한 후배 연구원을, 존경받던 선배 연구원을 기억 속에서 조금씩 지워가는 일은 슬프고 애절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말을 내뱉었고, 자우는 그들의 의도를 충실하게 배반했다. 언젠가 그들이 충격을 감당할 수 있게 되면, 추억들을 천천히 복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기지 속에서 쌓아온 인연들이 통째로 부셔져버린 이 세상은 아직 그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열 한시가 되어야 일은 겨우 끝났다. 기지 안의 사람들 중 충격을 덜 받은 사람들은 기지 복구를 돕거나 일을 했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기억 소거제의 달콤한 꿈에 취한 채 복도나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풀려버린 눈은 어쩌면 추억 속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들이 죽이기로 결정했고, 곧 깊은 망각의 늪 속으로 떠밀려버릴 추억을 마지막으로 회상하는지도 모른다. 자우는 그 시선들 사이를 지나쳤다. 복도의 불은 꺼질 줄을 몰랐고, 그들은 원 기지에 복귀하기 위해서 기지 관리자실의 문을 열었다. 그들이 기억 소거 요원으로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관리자실 안에는 음파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미처 다 토해내지 못한 울분과 절규를 내뱉는 비명이 관리자실 전체를 흔들었다. 어쩌면 복도에까지 들릴 지도 몰랐다.

"사람이 죽었잖아! 저기 시체가 누워 있잖아! 근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너네가 사람이야? 사람이냐고! 대답해!"

"사정은 이해합니다만, 재단도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습니다. 기지 복구는 대충 일주일 후면 완료될 테니 그때부터 근무를 다시 해 주시.."

"같은 랩에 있던 애들이 죽었다고! 같이 술 마시면서 농담하던 친구들이 총에 머리가 터지는걸 두 눈으로 직접 봤는데 근무를 다시 하라고? 난 상관없어! 내 밑에 있는 애들이라도 일주일만 더 줘!"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사사로운 감정으로 부탁드리는게 아니고, 해당 개체는 숙련자가 격리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개체라.."

"야, 카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기지 관리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40대쯤 되어보이는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휴가 기간의 연장을 요청했다. 카잔은 그 제안을 거절하는데 난점을 보이는 듯 싶었다. 보안관을 불러 제지할 만도 하지만, 카잔은 남자의 분노를 온 몸으로 맞고 있었다. 카잔의 멱살을 잡은 남자는 이내 고개를 늘어뜨리고 흐느꼈다.

"제발.. 제발 일주일만 더 주면 안되겠나.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네."

"정말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지가 없다는건 남자도 알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민감한 개체들이기 때문에, 숙련자가 없으면 격리가 극도로 힘들다.

인간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건 카잔 역시 알고 있었다.
동료가 총에 맞아 죽는걸 눈 앞에서 직접 본 사람에게, 일주일만에 일에 복귀하라는건 고문이다.

하지만, 두 명 다 타협을 할 수는 없었다. 남자는 사형을 언도받기라도 한 듯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계급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남자는 이겨낼 수 없었다. 카잔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우 군, 수고했어요."

"예, 방송국 일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지휘소에서 더 이상 코마 상태에 빠져 있는 직원은 없다는 확인도 받았어요."

"다행입니다. 꼬박 삼일 내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직원 분들이 많았는데. 비록 이런 방식이어도, 더 이상 아프지는 않으니까요."

카잔은 의도적으로 마지막 말을 삼켰다. 그래야지 일에 복귀할 수 있겠죠. 개체 중에서는 당장 격리가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그는 임시일지라도 기지 관리자로서 추가적인 재해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 의무는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룩해야할 일이었다. 나중에 윤리 위원회에 불려가더라도, 지금으로서는 막을 수밖에 없다. 이미 기지는 충분히 망가진 상태니까. 그래서 카잔은 차갑고 냉정하게 노력했다. 기지를 한시라도 빨리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서.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돌아가실 건가요?"

"네."

"노래마인씨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바쁠텐데 유능한 직원 두명이나 파견해줘서 고맙다고. 나중에 케이크 산다고 전해줘요."

"꼭 전할게요. 기뻐하실거에요."

"배웅 않겠습니다. 살펴가세요. 운전 조심해서 하시고요."

"네, 카잔씨도 수고하세요. 쉬어가면서 일 하세요."

카잔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내 그의 고개가 서류더미 아래로 사라지자, 자우와 청년은 문 바깥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시체들이 안치되어있는 로비를 지나, 여러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전하고 건물 바깥으로 나오자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빗물들은 길 옆으로 작은 도랑을 만들며 흘러내려갔고, 땅바닥은 진흙이 되어 질척거렸다. 기지 앞에는 몇 명의 연구원들이 가지고 뛰쳐나온 연구 자료를 늘어놓고 분류하고 있었으며 다른 몇 명의 직원들이 자재들을 운반했다. 감수성 풍부한 사람들은 조용히 울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자우는 차에 올라타기 전 청년에게 말했다.

장대비가 이래서 싫은 거군요.

청년이 음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비는 그쳐도, 땅은 여전히 젖어 있으니까. 젖은 땅이 굳기 전까지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거야. 장대비가 내렸었다는 기억에서.


돌아오는 길, 가로등 불은 어째서인지 장대비와 같이 떨어졌다. 차 안에서 청년과 자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애써 쾌활한 어조로 상황을 전달하려고 노력한 그들의 기지 관리관도, 책임감을 어깨에 잔뜩 얹은 채 짓눌려가던 저들의 기지 관리관도, 후배들의 걱정으로 울부짖던 늙은 박사도, 일본에서 급하게 날아와 담판을 짓고 떠난 채 야근하고 있을 외무부 요원도, 그리고 혼자 남겨진 채 다시 내일을 맞이해야 할 수많은 사람들도,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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