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섬유 이동은 거의 즉각적이다. 뭔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도 전에, 측정 불가능한 정도의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뒤섞이곤, 재구성된다. MTF-카파 10은 빛의 속도로 첫 임무지인 사이퍼시티로 가기 위한 계단에 도착했다. 그레이프, 토른, 8번 공은 맥스웰교의 인장이 새겨진 강철 방폭문까지 걸어 올라갔다.

여기가 입구 맞죠?

백도어란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지.



그레이프는 문을 힘껏 밀었고, 진짜로 밀리자, 꽤나 놀랐다. 한 번 더 어느 정도 밀자 간신히 들어갈 만한 공간이 생겼다.
알렉스가 우릴 위해 미리 열어뒀나 보군. 누가 보기 전에 빨리 들어가자고.

셋 모두는 달려 들어가곤 뒤의 문을 닫았다. 어두운 골목을 걸어 나가 광장으로 들어서자, 반대편에서 비치는 강렬한 빛에 셋 모두의 눈이 찌푸려졌다. 탑들이 디지털 달에 닿을 정도로 높이 솟아있었다. LED로 만들어진 비행선은 저 위를 떠다니며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 모습은 심해의 빗해파리들을 떠올리게 했다. 거의 모든 건물의 꼭대기에선 분홍, 초록, 빨강 빛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며 지나갔다. 지평선에선 보기에 목이 아플 정도로 높디높은 오벨리스크가 빛나며 엷은 파랑의 레이저를 하늘로 쏘아올리고 있었다. 스카이라인은 마치 해저 생물의 발광하는 모습처럼 어둠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지상의 광경은 도쿄의 거리와 라스베가스 스트립을 뒤섞은 것처럼 붐볐고 그보다 반짝이고 난잡했다.
맥스웰 교도들이 셋의 앞에 있는 안뜰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몇몇은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정장을 입은 금도금 안드로이드에서부터 메이드 복을 입은 고양이 소녀, 거대한 날개를 가진 검은 피부의 인간형 개체, 그냥 '아무개'처럼 생긴 평범한 사람까지 다양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맥스웰 교도들의 아바타는 제각각 다들 독특하고 옆에 있는 사람과도 달랐다. 토른은 어두운 골목에서 한가롭게 걸어 나와 밝은 안뜰에 경외감을 느끼며 들어섰다.
와, 여기 정말 개쩌는- 워어우!

그레이프가 토른의 옷깃을 잡고 어두운 골목 안으로 잡아당겼다.
그따위로 돌아다니지 마라, 꼬맹아. 다음 몇 시간 정도는 니 머리에 CPU가 달린 것처럼 행동하라고, 알았어?

네 네 네.

그레이프는 일행을 천천히 구석진, 덜 붐비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의 관심은 갑자기 토른의 주머니에서 나기 시작한 삐 소리에 쏠렸다. 작은 금 큐브였다. 토른이 꺼내 들고 다른 둘에게 보였고, 확실히 앞면이 빛나고 있었다.
오, 도움이 되겠군. 알렉스가 줬나?

그레이프는 부드럽게 토른에게서 큐브를 집어 들곤 살펴보았다.
넵. 이건 뭐죠?

이건 클록 스캐너야. 알겠지만 꼬맹아,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싱크를 맞추기 위해서 특정한 클록 속도로 작동하고 있지. 우리가 찾고 있는 그 누구 아님 그 뭔가는 더 빠른 속도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고.

우리처럼?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지 말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 돈이 좀 있으면 돌아다니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여긴 거대하군.
8번 공, 저쪽 벽에 현금 지급기가 있는 것 같던데. 접근할 수 있나? 해독과 해체는 가능하고?

8번 공은 벽에 설치된 익숙한 ATM처럼 보이는 기계로 몸을 돌려 다가갔다. 몇 초간 8번 공의 눈 렌즈가 깜박이더니, 8번 공은 기계 전체를 와이어프레임 모델로 변환시켰고 작은 은색 육각형 동전이 쏟아졌다. 동전에는 맥스웰교의 문양과 이진수 성구가 적힌 작은 문자열이 새겨져 있었다.
그레이프는 무릎을 꿇고 서둘러서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겼고, 토른도 따라서 서너 움큼 집었다. 그리고 황급히 안뜰로 나와, 로그인한 유저들이 여러 가지를 하며 즐기고 있는 주 도로로 내려갔다. 셋은 온갖 상점, 길거리 행상, 가상공간 활동을 지나쳤다. 다만 홍등가를 피하기 위해서 살짝 애를 써야 했다. 금요일 밤에 군중 사이를 뚫고 지나가긴 꽤나 힘들지만, 그레이프는 큐브를 가지고 큐브가 알려준 곳으로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좋아, 이제 이걸 좀 알아보고—
8번 공, 토른 어디 갔는지 봤나?



둘은 꼼짝없이 길 위에 멈춰 섰다. 그레이프는 거리를 살폈고 8번 공은 떠다니며 근처를 스캔했다. 녹색 머리 꼬마를 찾기엔 머리가 너무 많았다. 8번 공은 거의 수십 개의 아바타를 스캔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8번 공이 이렇게 무질서한 집단에 배정된 걸 불평할 수 있었다면, 했을 거다. 그레이프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 때쯤, 누군가가 어깨를 쳤다. 그레이프는 재빨리 머리를 돌렸고, 토른이 옆에 서 있었다.
미안해요, 잽싸게 가서 그냥 뭐 좀 사 왔어요. 이제 가죠.

지금. 그거. 뭐냐?

중절모요.

나도 눈이 달려있어, 토른! 너 미쳤— 아니다. 신경 꺼.

그레이프는 다시 걸었다. 토른과 8번 공은 서둘러 그레이프 뒤를 맥스웰 교도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쓰며 따라갔다.
무슨 문제 있어요? 전 그냥 알렉스 말처럼 섞이려고 한 건데. 이거 인간 사이에서 대중적인 모자 아니에요? 인터넷에서 자주 봤는데.

꼬맹아. 인터넷 밈은 좋은 조사 자료가 아니야.

에이, 그레이프. 밈은 문화나 행동 체계의 기본 요소로 정의되요. 당연히 좋은 자료죠.



뭐 그래도 여전히 모자는 보기 좋잖아요.



어쨌든.

토른은 토라져서. 둘의 뒤를 쫓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혼잡한 인도를 걸어갔다. 도시의 블록을 가로지를 때마다 여러 가지가 관심을 끌었다. 소리죽인 글리치합 음악이 댄스 클럽에서 들려온다. 머리 위에선 차량이 부드럽게 쌩쌩 대며 지나간다. 가상공간 아케이드의 창문을 지나가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이 모두가 토른의 시선을 끌었고 결국 어떤 맥스웰 교도와 세게 부딪혔다.
오! 거기 있는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헐! o(≧∇≦o)
(쓰러짐)
님 그 모자 어디서 괌요?!?!
그거 레어템 아님 흔템?

음, 네? 제 모자요? 제 모자 말이죠? 저-저기 있는 '클랜 친즈 트레이드 허브'라는 가게에서 팔아요. 저 길로 다섯 블럭만 돌아가시면 돼요.

ㄱㅅㄱㅅ! <3
이거 동생 생선으로 개굿굿
+1꾹 줄게 담에봐요
~*☆*WAN 가호 있길*☆*~
(シ_ _)シ

작은 초록 화살표가 갑자기 토른의 코앞에 나타났다. 토른은 화살표를 붙잡아 흥미롭다는 것처럼 살피곤 주머니에 넣었다. 돌아보자, 어린 맥스웰 교도의 아바타는 이미 저 멀리 멀어져 있었다.
어. 고-고마워요. WAN 있길 가호, 그쵸?

둘은 서로에게 공손하게 손을 흔들었고 토른은 뒤로 돌아 건너편 길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레이프와 8번 공에게 가며 손을 두 배는 흔들어줬다. 그레이프는 뒤처진 토른을 잠깐 쏘아보곤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토른은 뒤처지거나 휩쓸리지 않도록 애썼다.
그리고 몇 블록 더 가자, 셋은 딱히 멀쩡해 보이지 않는 펍에 도착했다. 문 위에서 빛나고 있는 더러운 간판에는 '갬빗스 라스트 드링크'라고 적혀 있었다. 그레이프는 손에서 빛을 내고 있는 큐브를 바라보며 깊게 심호흡했다.
여기가 우리 목적지 같은데? 들어가자고.



토른은 다른 사람들로 가려진 안쪽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며 앞서 들어갔다. 안은 놀랍게도 외관과는 달리 현대적이지 않았다. 바닥은 페인트칠 된 콘크리트판이었고 의자와 당구대로 가득 차 있었다. 방안은 온통 젖은 스펀지 같은 악취가 났다.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세 AIC가 태연하게 바까지 걸어가는 동안 머리 위의 스피커에서 블랙 플래그가 울려 퍼졌다. 바는 마치 수십 년간 풍화된 모래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의 반대쪽에는 한 무리의 맥스웰 교도가 이미 모여있었다. 그레이프와 토른은 의자에 앉았고 8번 공은 그냥 의자 위에 떠 있었다. 토른은 손을 테이블 위에 얹곤, 이제 자기가 첫 술을 시킬 뿐 아니라, 새로 급증한 사회적 기술을 시험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붉은 머리의 바텐더가 등을 돌려 진열된 병을 닦았다.
어. ㅎㅇㅎㅇ? 머리 ㅅㅌㅊ네요. 깨쩌는듯.
(*^∀゚)ъ

그레이프는 귀가 자기한테 헛소리를 한 듯 느릿하게 고개를 토른을 향해 돌렸다. 토른이 저렇게 쪽팔리게 속어를 날렸을 리가. 그레이프가 진짜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바 뒤의 여자가 대답했다.
고마워요— 아마. 하지만 거기 칩박이 분들, 나가 달라고 부탁드려야겠네요. 그냥 잠수만 타고 싶으셔도 여기 머무르게 둘 순 없네요.

ㄴ-네? 우린 여기 그냥— 그니까 제 말은 제가 뭘 하려는—

저희 이 병신 같은 무식한 놈이 하려는 말은 죄송하다는 겁니다. 얘가 가끔 지 입에다가 양발을 쳐넣고 다니거든요.

어, 그 정도도 아니죠. 전 정말로 평생 당신처럼 멋진 여우와 만나본 적이 없는걸요. 그냥 정중하게 굴고 싶어서 그랬던 거에요.

그녀가 양손을 바에 올리자 그레이프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다른 맥스웰 교도가 반대편 무리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검은 재킷과 검은 바지, 레이싱 고글, 마스크에, 10 사이즈의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의 공허한 걸음마다 마른침을 삼키는 토른에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저흰. 칩박이. 필요. 없어요. 알았죠? 무슨 목적이든 알 바 아니죠. 제가 세 분 킥밴하기 전에 좋게 떠나주세요.

무슨 문제 있어, 비숍?

>/:_아니요
>/:_아니요


여기 칩박이 셋. 트롤인지 규칙은 지키는데 멍청한 건지는 모르겠네.

그래. 어, 우린 너희가 말하는 그런 타입의 "칩박이"가 아니야.

그럼 누구인데? 원하는 건 뭐고?

여기 테스트에 나가려고요! 레이스요!

토른이 불쑥 내뱉은 말이 누가 침묵을 깨주지 않을까 바라는 사람들 사이를 떠다녔다. 그레이프와 8번 공은 가장 혼란 가득한 표정으로 토른을 쳐다봤고, 그레이프의 얼굴은 더욱 심했다. 토른은 근처 칠판을 턱을 들어 가르켰다.
이번 주 그랜드마스터 레이싱 클랜의 입단 테스트!
~입장료 필요~시뮬스페이스 레이싱 토너먼트 오프닝 이벤트가 3주 뒤에 있습니다!
모든 참가자분께 행운을 빕니다!
그레이프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을 돌렸다. 그래도 하나의 계획이긴 했다. 끔찍한 계획이었지만, 그래도 계획은 계획이었다. 그레이프는 짜증은 속으로 숨기고 동조하기로 했다. 특히 처음 도착한 장소에서 조사를 금지당할 판이었으니까.
.
나가서 뭐 하려고? 레이싱할 타입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뭐, 미친 건가 싶은 건가? 모든 일엔 처음이란 게 있는 법이지.

그레이프는 토른을 잡아당기곤 주머니를 뒤적였다. 양손 가득히 그레이프는 토른이 쇼핑하고 남은 돈을 꺼냈다. 두 맥스웰 교도는 바의 가장자리로 쏟아질 정도로 많은 은색 무늬 육각형 무더기를 보곤 헉 소리를 내었다.
오 WAN이시어. 적어도 2,000크리트는 넘겠네, 루크.

2,000크리트? 그 정도면 거의 모든 토너먼트용 공간을 빌릴 수 있어.



그리고 내 친구들 입장료랑 모두에게 시뮬스페이스 샷 한 잔씩 돌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네. 물론. 샷. 가져다드리죠.

토른은 모자의 끝을 잡고 살짝 들어 올렸다.
감사합니다, 숙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