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역사 제2부
평가: +2+x

우리가 2008년 말, 거의 2009년이 다 되어 이사한 후에도, 위키는 여전히 수많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SCP 작품의 수는 계속 증가하는 속도로 늘어나는 듯 보였고, 도서관 분류에 이야기들이 추가되었습니다. 관리자 4명과 조정자 5명은 관리자 5명과 조정자 7명으로 바뀌었습니다. 회원 페이지는 정확히 16개로 늘어났습니다. 아직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모두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이지만, 흥미롭고 다양한 작품을 거둘 수 있을 만큼은 컸습니다.

대화방도 이 때 시작되었습니다. 콘드라키Kondraki가 IC 챗으로 만들었지요. 페어오브덕스Pair of Ducks1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나는 대화방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습니다. 사실, #site19를 만든 건 원래 콘드라키였지요. 하지만 대화방은 그러고는 솔직히 말해 썰렁했습니다. 걔, 나, 스놀리손snorlison, 프리츠(네, 프리츠요!)만 계속 있었지요. 그 당시에는 대화방이 자캐들로 되어 있었답니다!

결과적으로 #site19는 완전히 잊혀졌죠 … 하지만 내가 돌아와서, 등록하고, 사람들을 거기에 들어놓으려고 무진장 노력했지요. 한참 동안, -여전히- 대체로 나, 콘드라키, 스놀리손만 있었지만 … 난 기어스가 방에 어느 날 들어왔던 걸 기억해요, 마치 유명인을 만난 것 같았다니까요 … 하지만 대화방은 꽤 빠르게 커졌죠. 곧 아이스버그Iceberg, 라이츠Rights,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솟아났죠. - 페어오브덕스/파라독스Pair of Ducks/Paradox

옐로 드라켁스yellowdrakex(라이츠Rights), 네임name2, 블라스트요부츠BlastYoBoots, 그리고 에버스트롬Eberstrom3이 위키닷 위키에 데뷔했습니다. 이들 새 작가들은 001-999 SCP 목록을 수백개의 작품으로 채워나갔고,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안 좋았지만, 모두 새롭고 거의 틀림없이 독창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위험 모듈이나, 대량 추적 툴이나, 탐색 바 같은 위키닷 툴의 사용 역시 있었습니다. 엑젠트릭 로너Ekzhentric Lohner가 만든 이 도구들은 SCP 위키를 둘러보는 더 쉬운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위험 모듈은 객체 등급을 보충하며, 그 SCP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재해, 기억조작, 독성, 정신자, 기타등등) 약간의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대량 추적 툴은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기록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도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약간의 선호 설정이 딸려 있고 위키의 모든 페이지를 나열해 주는 모듈이죠. 탐색 바는 더 간단한 것으로, 메인 페이지로 돌아갈 필요 없이 한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었습니다. 로너Lohner는 이를 허락 없이 만들었고, 그걸 좋아하지 않고 로너가 그냥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 짜증난 관리자들과 맞닥뜨려야 했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침착하게 견뎌냈고, 결국에는 스태프가 될 만한 잠재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스태프가 되었죠)

이런 몇몇 유저들이 또한 다음 세대의 관리자와 조정자가 되었습니다. 2009년 2월, 아이스버그7Iceberg7, 뚱뚱한 고스트Fat Ghost, 브라이트Bright, 그리고 페어오브덕스가 조정자가 되었고, 콘드라키 박사DrKondraki는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운영진이 갖춰지며, 케인과 기어스는 사이트의 권한을 조금씩 덜 관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힘의 균형이 그들에게서 익살스럽고 떠들썩한 시대(Wacky Hi-jinx era)4의 주 관리자가 될 콘드라키 박사에게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작가 세대와 함께 두 가지 주요한 글쓰기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HK-016처럼, 독자를 낚기 위해 작품의 기초를 진지한 진짜 과학으로 하려고 시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라이츠Rights나 콘드라키 박사같은 사람들은 한 연구원의 입장에서 재단을 파헤치는, 캐릭터로 진행해 나가는 작품을 썼습니다. 연구실에서, 특정한 연구원들에 의해서만 취급할 수 있는 SCP 객체들이 있었죠. 2009년 2월이 되어, 두 번째 스타일이 위키에서 지배적인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글쓰기에서의 이 변화와 함께 분위기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이트의 분위기는 냉혹한 호러와 진지함에서 얼빠진, 우스꽝스럽고 덜 심각한 스타일로 빠르게 변해갔습니다. “익살스럽고 떠들썩한 시대”는, 현재 알려진 대로, 규칙이 느슨했던 시간이었습니다. “lol 재단”5이라고 불리는 것이 생겨났고, 작가들은 거기서 끔찍하거나 무섭게 구는 대신 웃기고 귀여운 걸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케테르 업무” 부록도 이 시기에 생겨나서, 유저들은 작품에다가 대상을 잘못 다룰 경우 “케테르 업무”에 배정될 거라는 부분을 추가하곤 했습니다. 또한 지금은 인기없는 [데이터 말소]를 반복적으로 쓰는 글쓰기 스타일들이나, 오래된 글을 따라한 것들도 생겨났습니다.

1월에는, SCP에 대한 비평이 대규모로 시도되었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어떤 형식이든 비평이 효과적이기에는 너무 많은 SCP가 너무 빨리 올라왔죠. 스태프들은 비평을 위해 위키를 잠그고 싶어하지 않았거나, 그럴 권한이 없었고, 그리하여 그 아이디어는 아무 조치 없이 지나갔습니다. 작품들은 계속 같은 속도로 올라왔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몇몇이 부르는 것처럼, 위키의 “황금 시대”라 불릴 만한 때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머저리 같은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훌륭한 글도 많았죠. 사이트 전체가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고, 점점 더 복잡한 설정이 생겨났습니다. 그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피시몽거”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첫 번째 유명한 이야기인, 방랑벽(Wanderlust)은, 빼어난 이야기로 평가되었습니다.6

불행하게도, 좋은 일과 함께 나쁜 일도 따라왔습니다. 2008년 하반기와 2009년 초반기까지 많은 끔찍한 작품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참여하기 위해서는 위키 계정을 만들어야 했지만, 여전히 메리수 판타지나 정말로 SCP에는 맞지 않거나/멍청한 뭔가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 예는 퇴역 SCP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량 수정(Mass Edit)7 때 사이트를 정화해 버리기 전의 오래된 시기였고, 그런 많은 작품들을 한 번에 지워버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절차가 존재하지 없었습니다. 사이트 운영진은 이를 알아차렸고, 특히 클레프 박사DrClef가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단텐슨Dantenson8이라는 유저가 SCP-239, 어린 마녀를 썼습니다. 2008년 11월 토론 페이지에 클레프 박사DrClerf가 이 포스트를 썼습니다.

A. 클레프 박사의 보고: 이 상황을 분석한 것은 저를 SCP-239가 격리를 받아들일 수 없고, 보안상 위험하다는 결론으로 이끌었습니다. 몇가지 제안하는 사항이 있지만, 다른 SCP를 격리하기 위해 SCP-953과 다른 것을 사용하는 예는, 현실을 조작하는 SCP를 제어할 수 있는 재단의 능력을 과대 평가할 수 있는 위험의 뚜렷한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싶습니다. SCP-239의 피부를 뚫을 수 있는, SCP-148로 귀걸이를 제작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잠들어서 능력이 무력화된 사이에 이것으로 SCP-239를 죽일 수 있을겁니다. SCP-239의 각성 및 제거에 대한 저항의 위험, 그리고 혹시모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SCP-668을 들고와서 작업하는것을 추천합니다.

이 절차의 위험 중 하나는, SCP-239가 깨어나서 친구 혹은 "좋은 사람"이 이 작업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가능성입니다. 제가 자원해서 이 절차를 수행하고자 하는것은 이러한 이유때문입니다. 제 인사 파일에 적은 [데이터 말소]가 자연스럽게 현실이 조작된 뒤에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 클레프(Clef)

이 포스트에 이어, 클레프는 콘드라키 박사에게 연락을 받았고, 콘드라키는 클레프가 239를 파괴하려 하면 그를 부득이하게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곧 “처분 명령”, 또는 “박사들의 전쟁”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야기로 태어났고, 2008년 12월 4일 위키에 생겨났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많은 인기 없는 글들이 퇴역되었고, 그 결과 그 이야기는 엄청나게 유명해졌습니다. 첫 타자를 따라 더 많은 퇴역이 뒤따랐습니다.

퇴역 시스템은 우리의 현 삭제 방법과 비슷합니다. 스태프가 엄청나게 낮은 점수에 도달한 글을 발견하고, 아무도 그걸 살려낼 수 없거나/살려내고 싶지 않아 한다면 그건 퇴역되는 것입니다. 충분한 도움이 있다면, 퇴역 이야기가 쓰여지고 그 글은 삭제되지요. 복사본이 대신 퇴역 SCP 목록에 보존되고요. 안타깝게도, 이들 글에 대한 원 토론 페이지 역시 삭제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과정에 대해 약간 남아있는 글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SCP-213은 네코크리스NekoChris가 다시 쓰기 전에는 퇴역되기로 되어있었고, 그래서 아직도 그걸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있습니다.

퇴역 이야기는 대개 나쁜 SCP를 파괴하기 위해 꽤나 바보같은 방법을 쓰는 상급 직원 자캐가 등장했습니다. 파괴하려는 사람들은 컴퓨터 바이러스를 쓰는 데에서, 대폭발에, 거대한 철 주먹으로 으깨버리는 데까지 나아갔지요. 이는 또한 실제 이야기에서 상급 직원 자캐가 처음으로 사용된 때이기도 합니다. 이 때 클레프/콘드라키 경쟁 구도나, 브라이트 박사, 크로우 교수, 피시몽거9, 라이츠 박사, 스트렐니코프 요원, 라이트 박사, 만 박사, 아이스버그, 브레이크, 글라스 박사 캐릭터가 생겨났습니다. 캐릭터들과, 특이한 장소에서 쿨한 짓을 하는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시대였습니다.

처분 명령 이후 다른 퇴역 이야기들도 등장했고, 제각각 저번 것보다 더 과장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사이보그 벤을 박살내는 거대한 강철 주먹에다가, 자신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고귀한 전사 다인이나, 산산조각난 크로노코모도가 있었죠. 이런 이야기들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되어 갔고, 새벽까지의 공작이라는, 가장 막나가는 것으로 평가되는 퇴역 이야기의 창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새벽까지의 공작은 사이트 운영진에게는 일종의 알람으로 작용했습니다. 콘드라키 박사가 SCP-682를 타면서, 재단 시설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플롯은 작품이 어느 정도로 나가 버렸는지 보여주었습니다. 메리수를 없애는 대신, 점점 더 만들고 있었지요. 클레프 박사DrClef는 SCP 내역 스레드에 이 포스트를 썼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린 약간 멍해지네요. SCP가 마구잡이로 퇴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웃기고 가장 창의적인 퇴역을 위해 경쟁하고 있고. 그리고 그게 통틀어서 가장 막나가는 퇴역 보고서, 새벽까지의 공작으로 이어지는군요. 그리고 충격받을 수밖에 없군요. 우리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메리수 SCP를 제거하려는 시도했지만, 메리수 연구원들을 만드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나는 이 사이트에 있으면서 내가 조져놓은 일들을 바로잡으려고 하는데 노력했습니다. 그로 인해 일어난 일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 에너지와 흥분은 우리가 지금까지 가진 것 중 가장 뛰어난 글을 만들게 해주었다만, 우리는 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며 고속도로를 시속 90마일로 질주하면서, 절벽으로 곧장 달려가고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바퀴 두 짝이 가장자리에 걸려서야 브레이크를 밟는 데 성공했고, 차에서 조심스럽게 빠져나와서, 단단한 땅으로 허우적거리며 돌아와서는, 지금은 다시 시속 65마일로 절벽으로 달리고 있는 꼴입니다. - 클레프 박사DrClef

위키가 3월로 들어서며, 위키에서 약간의 제약이 시도되었습니다. 캐릭터들이 조금 더 멀쩡해졌습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변화를 환영한 것은 아니고,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사이트의 유명 관리자, 콘드라키 박사DrKondraki였습니다. 그는 재단을 그 옛 스타일 그대로 보는 것을 선호했고,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콘드라키는 행동에 나섰고, 다른 사람들의 페이지를 수정하고 많은 사이트 유저들에게 트롤 짓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불평했지만, 그는 항상 처벌받지 않고 빠져나갔습니다.

그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2월 말/3월 초 그가 다른 어떤 스태프와도 상의하지 않고 최저 평점 페이지에 있는 모든 글을 지운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로 비판받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요. 이는 많은 권력 남용의 시작이었는데, 그는 짜증이 나 뭔가 과격한 일을 하고, 다시 진정하고는 했습니다.

3월달의 또 다른 사건은 티비트롭스(TvTropes)10에서 새로운 유저들이 유입된 것이었습니다. SCP 재단 페이지가 그곳에 만들어졌고, 사이트가 보아온 이래 처음으로 뉴비들이 급증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수십 명 정도였지만, 위키가 옛날에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감안하면 정말 큰 증가였죠. 이는 신청서를 쓰는 데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별개의 위키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단순히 위키닷 회원인 것만으로도 아니고, 사이트 설정에 대한 6가지 질문에 답하고 현재 신청서와 비슷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티비트롭스에서 이주해 오는 작가들에 대해 불만을 표했지만, 사이트 회원 수를 늘려주었고, 여러 뛰어난 작가들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또한 역할놀이(RP) 같은 재단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인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역할놀이에 대한 재단의 관심은 최소한 위키의 시작 때부터 있었습니다. 옛 스레드로 돌아가보면, 비즈한, 케인, 그리고 미확인 도마뱀Unconfirmed Reptile이 재단 기반 역할놀이를 조직하는 것에 대해 포스트를 쓴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꾸려지지 않았으며, 설령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4월달에 바뀌었는데, 콘드라키가 지금은 현장 연구(Fieldwork)로 알려져 있는, 첫 재단 IRC 역할놀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11

근본적으로, FW(현장 연구, Fieldwork)는 부적응자들 수용소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은 17기지로, 위험한 SCP가 사방에 널려있고, 사람들은 미쳐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약간 이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역은 마치 “감독관은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고, 브라이트는 사이트의 머리고, 콘드라키는 게슈타포” 같은 체제로 굴러갔죠. 모든 현장 요원과 박사들은 별난 점이 있었고. 조금씩 “여기는 위험한 구역이고 모든 사람들은 바지에 지릴 정도로 겁에 떨며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함”에서 “여기 왜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는 유능한 또라이들이 있음”으로 바뀌어갔죠.

진짜로 거칠기 짝이 없는 캐릭터들도 있었고, 비전투 캐릭터들도 있었고, 웃긴 일이나, 우울한 일이나, 소름끼치는 일도 있었죠. 탈주는 약간 바보같은 무언가에서 감염 지역 전체를 핵폭탄으로 타격하는 008 감염까지 나뉘었고요.

꽤나 있어볼 만한 장소였지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좋아하지 않았고, (내 생각에는, 그들은 좀 그랬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이건 너무 멍청하고 우린 뭔가 더 진지한 걸 원한다”고 하며 전시 근무(Active Duty)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브라이트이거나, 요릭Yoric, 왁스Waxx, 때로는 라이츠가 아니라면 AD(전시 근무, Active Duty)는 황당할 정도로 우울했고 웃기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계속 진행되어가며 점점 우스워졌고 진지함은 훨씬 덜해졌습니다. 대체로 LBD12에 의해 운영되었지만, 황당할 정도로 바보같이 진행되기도 했고요. 시스 박사Dr. Syx (럴커Lurker)와 라이츠 박사는 9가지 규칙 위반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재미를 보고 있었으니,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죠. 슈퍼 SCP 역할놀이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삶의 웃긴 조각이 되는 데에서 그쳤습니다.

기어스가 가장 끝내주게 멋진 탈주를 운영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네요, 바지선 뭐시기였나,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안타깝게도 할 일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한 탓에 대체로 기억이 안 나는데, 들은 바로는 무시무시하고, 재밌고, “오 신이시여 내 자캐가 여기서 진짜로 살아남을까요?” 같은 걸 합쳐놓은 거 같았다는군요.

정말요? 끝이 난 건 배에서 내려서 AD로 가 버린 많은 사람들이 FW를 황량하게 만들어 버렸고, 뭔가를 하기에는 동시에 접속해 있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서 그래서 그렇지요. - 익명의 FW 참가자

AD에서 그렇게 많이 활동한 건 아니지만, AD가 시작하고 참가자들이 옮겨오기 시작한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FW 책임자가 되었죠. 자캐 삽입도 많았고 – 우리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는 회원 페이지에서 가져오거나 회원페이지가 없다면 직접 만들어낸 거였고 상급 직원들의 능력은 일반 직원을 훨씬 넘어서 있어서 그 사람들이 놀이를 주도했지요.

현장 연구를 끝장낸 건 밸런스가 안 맞는 거하고, 전시 근무가 시작한 거였죠. AD가 시작되고 FW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책임자가 되었고, LBD의 조력을 받기로 했죠. 최악의 결정이었습니다. – 만약에 게임의 목에 올가미가 걸려 있으면, GM으로 그를 뽑는 것은 내가 막을 수도 있었을 함정문의 레버를 열어버린 거였고, 하지만 현실 문제가 방해가 되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SCP 기지에서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활동량의 문제죠 – 아무도 FW에 관심이 없었고, 특히나 훨씬 균형이 잘 잡힌 AD가 시작하고, 유일하게 활동하는 FW의 GM들이 죽게 놔두었으니 – 나와 다른 관리자들은 방치했고, LBD는 잘못 운영해서 – 솔직히 말해서, 아무도 FW에서 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관리를 잘못한 탓이었으니 LBD가 거기에 더 관련이 있을 것 같군요. 그가 그렇게 인기가 있던 건 아니거든요. - 피프스먼Fifthman

현장 연구가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유명세와 함께, 안 좋은 SCP 작들과, 더 커진 커뮤니티가 되어갔습니다. 더 나은 운영진 간의 의사소통 방법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2009년, 5월 1일에, 지금 SCP 재단의 운영진으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쓰이고 있는 05 커맨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조정자/운영진”으로 표시된 이 포스트에 의해 공지되었습니다.

사이트의 성장과 함께…우리는 운영진끼리 얘기할 방법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왼쪽의 링크는 이제 새로운 운영진 사이트로 이어집니다. 현재는 그냥 포럼이지만, 나는 대화 모듈을 도입하고, 프로젝트 페이지나 다른 그런 것들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관리자나 조정자라면, 방문해서 가입해 주십시오. 바라건대 이것이 의사소통을 약간 더 쉽게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http://05command.wikidot.com/start - 기어스 박사DrGears

스태프들이 차단이나, 홍보나, 위키 정책 같은 사안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지는 등, 논의를 위한 운영진 사이트를 가지는 것의 효율성은 즉시 명백해졌습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 한 첫 활동은 오랫동안 스태프들을 자극해 온 “르 블루 듀드Le Blue Dude”라는 유저를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 동안 다른 사이트 회원들이 그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에, 스태프들은 얼마간 그의 행동을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LBD가 그걸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많은 스태프들이 이에 대해 포스트를 올렸지만, 피시몽거가 쓸 때쯤에는 스레드에 작은 논점 일탈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사이트 반달로 직책을 박탈당한 뒤, 그의 조정자 직책이 다시 복구되었거든요. 이 작가가 활동하는 동안, 피시몽거가 05 커맨드에 올린 유일하게 중요한 포스트는 이것뿐입니다.

스레드가 원래 의도된 주제로 돌아왔을 때, 왁스는 대화방의 조정자들과 사이트 회원들의 LBD에 대한 반응을 모은 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난 그 애한테 안타까움은 있다만 그냥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다섯 살짜리를 상대하는 것 같은 수준까지 가는 겁니다.

LBD, 신발 신어.
"싫어."
LBD, 우리 가려고 하니까 망할 신발 신으라고.
"하고 싶지 않은데, 넌 나한테 소리지르고 있고 난 괜찮다고."

그가 위키에 해 온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대화방에서 본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완전 답이 없어요. 가망이 없다니까요. 과거에 LBD 같은 사람들을 상대해보기도 했으니, 그에게 뭔가를 가르치거나 갱생시키려고 시도하느니 그냥 없애버리는 게 훨씬 쉬울 거라고 확실하게 말해드릴 수 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니, 그냥 노력을 낭비하는 셈이죠. 마음속으로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할 테니, 그가 받은 모든 기회는 완전히 의미가 없는 겁니다.

내 경험 상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잘라내 버리고 갈 길 가게 해 주는 게 가장 나아요. 가혹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많은 두통거리에서 구해줄 겁니다. - 왁스Waxx

LBD는 위키와 대화방에서 차단당했고, 나중에는 차단을 회피했다가 다시 차단당했습니다. 이는 05 커맨드를 통해 누군가가 차단된 첫 사례로, 이 사례를 통해 그 과정이 매우 간소화되었습니다. 곧, 삭제에 관한 다른 문제점들도 생겨났습니다.

퇴역 방법이 형편없이 끝나고, 어쨌든 퇴역해 버리기에는 안 좋은 글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새로운 삭제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공식 정책은 플러스 없이 8개의 마이너스를 받은 작품만을 지우는 것이었죠. 이는 사람들이 악의를 가지고 플러스를 누르는 일이나, 플러스 하나에 마이너스 여러 개를 받은 작품들이나, 콘드라키가 모든 최저 평점 글을 삭제해 버리는 등의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정책 변화는 2009년 5월 20일 클레프 박사DrClef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간단하게 만들죠.

-5: 조정자 3명과 최소 한 명의 관리자의 동의가 있으면 삭제.

-10: 조정자 3명의 동의가 있으면 삭제.

-15: 누구든지 삭제 가능. - 클레프 박사DrClef

05 커맨드는 또한 첫 공식적인, 홍보 스레드를 허가했습니다. 2009년 5월 15일, 라이츠 박사와 엑젠트릭 로너가 조정자가 되었고, 브라이트 박사는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또 임명 대상으로 고려된13 유저들로는 불쌍한 요릭pooryoric, 브레이크 이터널Break_Eternal, 그리고 헤이든Heiden14이 있었습니다. 이들 새로운 스태프 회원들은 운영진 인력을 늘려주었고, 2명이나 3명의 사람만 남아서 관리가 마비될 걱정 없이 위키를 운영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6월 말, 콘드라키에 관한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작가 페이지를 수정할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자기가 보기에 만족스럽지 않은 컨텐츠를 지웠습니다. 이전의 비행과 함께, 이 행동은, 그를 운영진 직책에서 해임하고 24시간 동안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15

그의 해임을 지지한 중요 인물 중 하나는 전(前) 공동창작자 클레프 박사로, 그의 유치한 행동이나 운영진 권한을 앞서 말한 것처럼 남용하는 것에 질려 있었죠. 콘드라키에게 동정적이었던 다른 스태프들도 계속적인 비행에 마음을 돌렸고. 6월 24일, 콘드라키를 운영진 위치에서 해제하는 최종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아래 기록은 기어스 박사가 콘드라키에게 쓴 것입니다.

콘드라키,

오늘 부로, 당신은 더 이상 SCP 재단 위키의 관리자나 조정자가 아닙니다. 최소한 3개월간은 이 권한 박탈에 대한 어떠한 철회나 이의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그 이후 당신이 검토를 요구할 경우, 이는 당신의 행동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이 결정의 세부사항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면, 질문 사항에 대해 답변해 주십시오.

저는 진심으로 이 일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당신이 좋은 관리자/불한당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어쨌든 당신의 행동이 거의 언제나 사이트의 더 큰 선을 위한 것이었다고 확신합니다만, 그 방식은 대개 개탄스럽거나 미숙했습니다. 마지막 사건 때, 이것이 당신의 “마지막 기회”이고, 그 이후의 독자적 행동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 비평 기록과 회원 페이지 수정에 대한 검토 결과, 저는 그 마지막 기회가 날아갔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사이트에 유저로서 남아 있으며, 그 시간 동안 침착하게, 성숙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결정은 제가 내리지 않았길 바랬던 것입니다, 콘드라키.

안타까움을 담아,

기어스 박사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작가였고, D&D를 꽤 괜찮게 내놓았습니다. 사이트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했고 좋은 친구였고요. 하지만 브라이트보다도 훨씬 더 융통성이 없었고, 브라이트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나갔죠. 괜찮았던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특히 수인물(furry)를 싫어했고, 또는 짜증나는 시끄러운 작자들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나간 앙갚음은 점점 심해졌고, 성난 열정으로 가득 찬 기간은 길어졌죠. 결국, 너무 심해져서 그는 악성 유저 하나를 인터넷의 다른 곳으로 쫓아가서는 거기서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 지점에서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가끔씩 돌아오지만, 기분에 맞춰서 왔다가 안 왔다가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케인 파토스 크로우Kain Pathos Crow

콘드라키가 떠난 이후에도 많은 활동이 계속되었습니다. 8월, 위키닷은 사이트 상단에 새로운 툴바를 도입했고, 거기에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링크와, “가입 사이트” 페이지로 가는 단축 링크와, 로고가 있었습니다. 불필요하고 보기에 안 좋았고, 많은 사이트 유저들은 그게 없어지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사이트의 최고 관리자만이 그걸 제거할 수 있었고, 프리츠윌리/관리자가 사라졌기에, 스태프들은 그걸 바꾸기 위해 위키닷에 메시지를 보내야 했습니다.

오, 최고관리자 교체….와우, 엄청나게 오래 전 일이군요…

좋아요, 그 변화가 생긴 건 위키닷이 사이트 꼭대기에다가 작고 쓸모없는 툴바를 추가하기 시작했던 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게 정신사납고 거슬린다고 느꼈지만, 그걸 없애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프로 계정 같은 걸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뿐이었죠. 그래서, 이걸 할 수 있는 길은 진짜 사이트 소유자가 해결하는 것뿐이었지만, 얼마 간 관리자The Administrator에게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죠. PM을 통해 몇 번 그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시도했지만,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고, 그래서…우린 기다렸습니다. 계속 기다렸죠.

그리고 좀 지나서, 마침내 우리는 그냥 부딪쳐보고 직접 위키닷과 연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꽤 쉬운 일이었죠, 그냥 높은 양반한테 PM을 보냈고 금방 답장을 받았으니. 그들이 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답장이 없었고…소유권을 저한테 넘겼죠. 내 생각에 우리는 지금까지 그한테 한 개인가 두 개의 메시지를 받았으니, 그는 가버렸거나, 아니면 깊게 잠수한 거겠죠.

그건 그렇고, 나도 비슷한 이유로 만Mann한테 소유권을 넘겨야 했습니다. 프로 계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그는 지불할 능력이 있었고, 난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넘겼지요. - 기어스 박사DrGears

이 조치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질 때, 프리츠윌리가 “관리자” 계정을 이용해 답장을 썼습니다. 이는 그가 보낸 가장 최근의 메시지입니다.

기어스 박사,

사이트에서 내 위치를 저버린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행동에 당신과 다른 관리자들에게 크게 사과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SCP 세계를 사랑하고 위키닷으로 호스팅을 옮기는 것으로 매우 큰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불행하게도 진짜 세계가 이 이야기를 즐기는 것보다 더 제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소식은 내가 건강한 남자아이의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었다는 겁니다. 나쁜 소식은 내 아내가 직업을 잃었고 내 새로운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두 배로 더 일해야 한다는 거고요.

이 사이트가 나 없이도 계속 발전해 나갔다는 것에 기쁘고 당신이 요청한 대로 프로 계정을 만들어야 하겠군요, 그 정도의 빚은 지고 있을 테니까. 가끔씩 재미삼아 살짝 보기는 하겠지만, 평상시의 관리는 당신의 유능한 손에 맡깁니다.

고맙습니다,
관리자

LOL재단이 시작된 이후 웃기는 글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콘드라키의 몰락은 이를 촉진시켰습니다. 초기 사이트의 우스꽝스러운, 무사태평한 분위기에 대한 상당한 반발이 있었죠.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움에 질려 있었고, 좀 더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브라이트 박사나, 헤이든, 뚱뚱한 고스트, 불쌍한 요릭 등의 스태프들은 이를 환영했고 촉진시켰으며,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반발은 점점 더 탄력을 얻었고, 7월이 되어서는 이곳의 새로운 법이 되었죠. 전시 근무, 두 번째 SCP 역할놀이는 이런 진지한 재단으로의 이동을 가장 잘 설명해 줄 것입니다. 브라이트 박사와 헤이든에 의해 만들어진 전시 근무는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에 있는 23기지에 배치된 재단 인원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시작된 이후로는, 회원들이 빠르게 늘어났고, 현장 연구의 참여자들과 뉴비들을 모두 끌어들였습니다.

전시 근무는 사이트 설정의 큰 부분의 탄생으로, 롬바르디나, 탐린 가문이나, 몇몇 사람들이 생각해낸 최고 사령부 컨셉이 여기서 생겨났습니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유명해지며 역할놀이 설정과 사이트 설정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시 근무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SCP-XXX-R 번호를 사용하며, 사이트에 올라갔습니다. 전시 근무는 다른 어떤 SCP 역할놀이보다도 거대한 커뮤니티였고, 대부분 브라이트가 만든 대단히 중요한 몇몇 플롯도 나왔습니다. 그 중 하나는 켄스의 그림에 나와 있는 것으로, 아기를 임신한 연구 감독관과 야누스Janus가 좀비로 나오는 것입니다.16

사이트 설정과 문화에 대한 전시 근무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LOL재단의 관에 박는 마지막 못이었고, 진지한 설정을 확고하게 굳혀 놓았습니다. 에코 포 델타EchoFourDelta나, 에버렛 만 박사DrEverettMann, 브라이트 박사, 헤이든, 소피아 라이트Sophia Light 같은 몇몇 유명한 커뮤니티 회원들이 위키에서 그들 각각의 설정과 흥미를 끌어들이고, 대부분의 모든 재단 역할놀이의 기반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스태프 회원들이 이 새로운 설정을 편안하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초기 사이트 회원들은 이전에 재미를 느꼈던 위키를 선호했죠. 이런 이유가 개인적인 문제와 합쳐지게 되자, 많은 위키의 옛 수호자들이 오랜 기간 떠나버렸고, 몇몇은 영원히 가버렸습니다. 옛 재능 있는 이들의 상실은 안 좋은 SCP가 탄생하는 문제를 악화시켰고, 이는 무시하기에는 빠르게 악화되었습니다.

클레프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조잡한 작품들 문제는 여전히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2나 –3에 있으면서 아무도 어느 쪽으로든 옮겨버릴 수 없었던 것들이 너무 많았죠. 대규모 SCP 검토에 대한 제안이 다시 생겨났고, 2009년 9월 4일, 대량 수정(Mass Edit)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검토가 지난번과 같은 운명을 맞지 않도록 새로운 SCP 글을 만드는 것은 중지되었습니다.

대량 수정은 퇴역 아이디어가 지지받지 못한 이후 형편없는 작품들을 삭제하려는 주요한 시도였습니다. 이는 위키의 모든 작품을 검토하고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지울지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위키의 회원은 누구든지 표를 던질 수 있었고, 2009년 9월 6일부터 2009년 12월 6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대량 수정의 결과는 작품 상당수의 삭제와, 위키 작품 질의 향상이었습니다.

대량 수정은 스태프들이 모든 작품을 한 덩어리씩(예를 들어 001-099, 100-199, 기타 등등.) 샅샅이 훑고 검토할 작품들을 올리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원한 이들이 글을 수정하거나 다시 쓸 수 있는 시간제한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반응에 따라서, 그걸 살리거나 지울 수 있었지요. 이는 모든 작품에 대해 수동으로 이루어졌으니, 누구든지 그걸 하나라도 끝내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대량 수정 때 영향을 받은 것은 SCP 작품만이 아닙니다. SCP-014-J, SCP-4444-J, SCP-4445-J, SCP-1344-J, 기타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J 작품이 지워졌습니다. 만약 –J 작품들을 전부 안 좋은 팝 컬쳐에서 가져온 “옛 시간”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이때가 이 모든 것들이 지워진 때입니다. -J 작품들도 이 당시 메인 목록에 있었지만, 나머지가 전부 지워지고는 남아있는 작품들은 치워지고, -J 분류로 이동되었습니다. 대량 수정 이전에 메인 SCP 목록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SCP 클래식 위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량 수정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질 통제에 대한 명료하고 강력한 목표와 함께, 훨씬 더 간결하고 좋은 글이 있는 위키를 확보했습니다. 부진한 작품들이 지워지고, 스태프들은 위키에 들어오는 컨텐츠를 보다 잘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대량 수정이 없었다면, SCP 위키는 질 낮고 끝없이, 우려먹는 작품들로 망한 더 홀더(the holder) 장르의 길을 갈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모든 이들이 결과에 만족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키에 한 기여가 전부 삭제되었고, 시간제한 때문에 자기들의 작품을 살릴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꽤 인기가 있던 작품들도 멍청하거나/말이 안 된다고 삭제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소수였습니다. 지워진 대부분의 작품들은 극도로 질이 낮았습니다.

2009년 11월, 페어오브덕스는 물러났고 클레프가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추가해서, 11월 12일 클레프와 브라이트는 하찮음 씨MrUnimport를 조정자로 승진시켰습니다. 이런 변화와 함께 새로운 정책이 생겼고, 초기 회원 한 명이 최종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콘드라키 박사는 운영자 위치를 잃었음에도, 위키와 IRC에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11월 15일, 브라이트 박사가 05 커맨드에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Tybernius_ty라는 회원이, 뭔가가 있습니다. 퍼리입니다. 대화방에서 그걸 인정했고.

콘드라키가 걔를 세컨드 라이프로 쫓아갔고, 그를 특정해 낸 다음에, 나갈 때까지 대화방에서 맹공격했습니다.

이 때 일어난 일이 바로 콘드라키가 약간의 곤혹스러운 개인정보와 함께, 유저들의 세컨드라이프(SecondLife) 프로필을 찾아낸 것입니다. 사이트 운영진은 이것이 대단히 미성숙한 행동이라는 데 동의했고, 이에 대해 그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습니다. 이 사건 직후 콘드라키의 행동은 영구 차단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콘드라키는 SCP 위키를 떠났고, 우리는 그를 오래, 오래도록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2010년으로 들어선 위키는 2009년에 우리가 겪었던 것과 매우 달랐습니다. 우리는 훨씬 어두운 분위기로 돌아갔고, 아주 많은 유저들이 있었습니다. 스태프들은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효과적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했습니다. 우리는 옛 운영진의 정체된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들의 역할을 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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